평양스케치 5) 오이는 거꾸로 먹어도 제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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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는 거꾸로 먹어도 제 멋
북한에서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충실성 교양이 광풍(狂風)으로 불던 1970연대 초라고 생각된다. 상철이 남조선 혁명의 크나 큰 꿈을 안고 대남공작원으로 남조선에 파견되었다. 무슨 임무를 받고 파견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아무튼 상철이 적진을 누비며 용감하게 대남공작임무를 수행하던 중 전우들은 모조리 죽고 상철이 적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드디어 총살당하는 날이 왔다. 상철이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하였다. “그래 사람이 태어나서 누구나 한번 죽는다. 그런데 그 죽음을 어떻게 맞는가는 절대로 같을 수 없다. 나는 끝까지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를 위하여 용감하게 싸우다 빛나게 죽으리라.” 사형장으로 나갔다. 그런데 나가면서 보니 자기뿐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자기처럼 대남 혁명을 하기 위해 나왔다 잡힌 사람이 무려 열 두 명이나 되었다. 이들은 모두 어느 찬바람 부는 강기슭 같은 곳으로 끌려 나갔다. 앞에는 사형수들이 총을 들고 섯다. 상철이 열 두 번째였다. 그러니 열두 번째 즉 제일 마지막에 총살당하게 된 것이다. 상철이 마음속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이 놈들아 너희들이 아무리 나를 죽여도 나의 혁명정신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아니 이건 아니다. 그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만세,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 만세” 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아니 이건 어떨까 바로 총을 맞는 순간 “영광스러운 조선노동당 만세” “남조선 혁명 만세” 아무튼 멋지게 최후를 장식해야 한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죽는 순간 어떤 포즈를 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복잡하다. 한 방 맞자마자 뒤로 벌렁 넘어진다? 아니 그건 멋이 없어, 앞으로 넘어지면서 죽어도 조국의 산야를 무척 사랑하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흙 한 줌을 움켜쥐다? 아직 미처 결정하지도 못했는데 키작고 까만 안경을 낀 뚱뚱한 남조선 안기부 깡패 놈이 앞으로 왔다. “야 이 빨갱이 새끼야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어?” “아니 왜 그럽니까. 제가 열두 번째 제일 마지막이 아닙니까?” 상철이 갑자기 당황하여 졌다. “이 새끼야 그건 내 마음이지 네가 무슨 상관이야 나는 마지막으로부터 거꾸로 쏘기로 했단 말이야”군사깡패 눈도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일번 쪽으로 갔던 놈들 모조리 이쪽으로 오고 있다. 상철이 갑자기 이건 아주 잘 못 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번쩍 손을 쳐들고 한마디 하였다. “군사 깡패동지 제기할 것이 있습니다.” “이 새끼 당장 뒈져 까마귀밥이 될 놈이 제기는 무슨 제기할 것이야? 그래 뭐야?” “그래도 모든 일에 순서가 있는 법이지 어떻게 일번부터 쏘지 않고 마지막으로부터 거꾸로 쏜단 말입니까. 이건 정말 불공평합니다.”“이 새끼 총살당하는 게 뭐 너희 식량배급소에서 배급 타는 줄과 같은 줄 알아, 그런 푸념은 죽은 다음 염라대왕한테 가서나 해”군사깡패 놈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순간에 상철이 그렇게도 마음먹고 준비하였던 자신의 최후의 장면 다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아무리 죽더라도 너무 억울하여 이건 아니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이건 또 뭐란 말인가, 아직 남조선 안기부 깡패 놈들 총은 쏘지도 않은 것 같은데 갑자기 목이 꽉 막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건 안 됩니다, 군사 깡패동지 여기가 아무리 남조선이라고 해도 전 분명 열두 번째란 말입니다”상철이 손과 발을 휘저으며 항의를 하는데 캑 캑 숨이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옆에서 자던 형이 잠결에 통나무 같은 다리를 목에 올려놓은 것이었다. “빌어먹을 확실히 남조선 놈들은 틀려먹었어, 어떻게 1번부터 쏘지 않고 12번부터 쏘려한단 말인가.” 상철이 두덜거리다 돌아눕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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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연구사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3-12-04 01: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