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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넘쳐난다. 연간 무려 1만여 명의 박사가 배출된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11년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은 1만 645명이다. 1960년 6월 당시 국내 박사는 91명에 불과했다.
박사(博士)는 ‘넓게 아는 선비’라는 뜻이다. 서양에서의 박사인 ‘Doctor’는 라틴어 ‘가르친다’는 뜻의 ‘docere’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사전적으로 말하면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서 수여하는 가장 높은 학위 또는 그 학위를 딴 사람이다. 우리가 말하는 박사는 보통 의사(Medical Doctor) 등이 제외된 순수한 Ph.D(Doctor of Philosophy)를 가리킨다.
박사는 가문의 영광이요, 출세의 보증수표였다. 앞길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옛날에 박사는 전문 학자나 기술자들에게 주던 벼슬 이름이었다. 중국 진(秦)나라 때 학문을 맡는 관직으로 처음 생겼다. 남북조시대를 거치면서 전문학자의 역할이 커졌고, 당(唐)대에 와서는 오경(五經), 국자(國子), 태학(太學), 사문(四門), 율학(律學), 산학(算學), 의학(醫學) 박사 등으로 종류가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박사라는 명칭은 고조선 때 처음 등장했다. 준왕이 중국에서 망명해온 위만을 박사로 봉하고 서쪽 변방 100리의 땅을 주었다고 한다. 박사가 관직으로 체계화된 것은 삼국시대다. 고구려 역사책인 《신집》을 편찬한 이문진이 태학박사로 나타난다. 박사 고흥은 백제 역사서 《서기》를 편찬했다. 또 백제의 박사 왕인은 일본으로 건너가 《논어》와 《천자문》을 전했다. 박사를 수출까지 한 셈이다. 신라에는 최고 교육기관인 국학에 박사가 있었다. 이 밖에도 《삼국사기》에는 산술(算術)을 가르쳤던 산학박사(算學博士), 의학·천문·율령을 각각 교육했던 의학박사·천문박사·율령박사, 누각전(漏刻典)에서 물시계에 대한 연구와 교육을 담당했던 누각박사, 문학을 담당했던 통문박사(通文博士) 등이 나온다. 고려시대에는 국자감, 조선시대에는 성균관·홍문관·규장각·승문원 등에 박사를 두었다.
논문은 없고 이름만 있는 박사도 있다. 이른바 명예박사다. 서울대 명예박사 1호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다. 그는 1948년 8월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해방 직후 주한 미군 사령관이었던 존 하지 중장이 2호를,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한국인으로는 처음이지만 3호를 기록했다. 이 전 대통령의 명예박사 학위 수여 이유는 “조국 독립을 위해 공적이 다대했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서 민족 문화에 공헌이 현저하므로”였다. 1964년까지 서울대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한국인은 4명. 이승만을 포함해 1961년 이희승(문학)과 조백현(농학), 1964년 이태규(화학) 등이다. 이후 35년간은 이방인들의 독무대였다. 1999년 10월 김수환 추기경이 자체 심사를 통해 선정한 첫 서울대 명예박사(철학)가 됐다.
명예박사의 단골손님은 대통령이다. 대학 입장에서도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에게 명예박사를 수여하면 대학을 홍보하게 되는 등 손해 볼 일은 아니라는 점이 작용했다. 10명의 대통령이 국내외에서 무려 40여 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3관왕’으로 최다 명예박사 타이틀 보유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1개로 랭킹 2위. 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단 1개의 명예박사 학위도 갖고 있지 않다.
독립운동가였던 서재필 박사도 진짜 박사였을까? 글쎄다. 서재필(1864~1951)은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미국에서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로 명성을 날렸다. 조선 사람으로 제일 먼저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던 그는 1892년 한국인 첫 서양 의사가 됐다. 하지만 실제 정식 박사학위는 없었다. 단지 의사였는데 ‘닥터(medical doctor)’를 박사라고 불러왔기에 생긴 오해다. 진짜 박사학위 1호는 이승만이다. 그는 1910년 프린스턴 대학에서 〈미국의 영향을 받은 영세중립론〉이라는 논문으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여성 박사 1호는 김활란 전 이화여대 총장이다. 1931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한국의 부흥을 위한 농촌교육〉이라는 주제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렇다면 국내 박사 1호는 누구일까? 대한민국 박사학위 1호는 현상윤 고려대 초대 총장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서 1호라는 숫자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정식으로 갖게 된 해방 이후 정부가 인가한 대학교에서 한국인에게 수여한 박사학위의 순위를 뜻한다. 그는 학자이자 사상가이자 문학가로 활약했다. 특히 미개척지였던 한국사상사를 집대성해 1949년 《조선유학사(朝鮮儒學史)》를 펴냈다. 고려대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3년 3월 대구의 임시교사에서 거행된 제46회 졸업식에서 《조선유학사》의 학술적 가치를 높이 평가해 본인을 대리한 장남 현인섭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이는 건국 이후 한국 정부가 인정한 첫 박사학위로 꼽힌다. 현상윤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 납북됐기 때문에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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