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안보불감증 안전불감증을 치료하고 조난구조능력을 함양하는 슬기를 가진 총리가 나와야~ |
---|
제목:국민의 안보불감증 안전불감증을 치료하고 조난구조능력을 함양하는 슬기를 가진 총리가 나와야 한다. [잠언 22:3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災殃(재앙) 중에 재앙은 악마의 종자들이다. 그 종자들을 이길 수 없다면 재앙을 당하게 된다. 이김에는 逆轉勝(역전승)도 있고 樂勝(낙승)도 있고 大勝(대승)도 있고 辛勝(신승)도 있는데 모든 이김에는 이기는 지혜와 명철과 모략이 있다. 악마의 종자들은 언제나 安全(안전)을 人質(인질)로 삼는 짓을 구사하는데 능수능란하기에 재앙 중에 재앙이라는 말이다. 그 모두의 안전을 지켜내면서 또는 동시에 구출하면서 그것들의 협박과 위협과 공갈에 굴하지 않는 슬기가 필요하다. 그러한 슬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것이 최고이다.
이를 다 살펴 재앙을 이기는 것을 避(피)한다고 한다. 그 피함은(cathar {saw-thar'} to hide, conceal)을 담는다. 하나님의 슬기(`aruwm {aw-room'} subtle, shrewd의 영역에서 crafty, sly을 이기게 하는 sensible, prudent을 가진다면 국민의 안전을 인질로 삼는 자들의 손에서 악마의 종자들의 인질극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바로 그것이 약점이 되는 것이 국정의 총 책임자들의 아픔이라 하겠다. 누구보다 더 많은 정보를 대하는 지도자들은 그런 인질극에 국가안전사고에 늘 노출되고 공갈 협박 위협을 당하게 된다. 악마의 종자들의 수법은 늘 동일한 패턴이다.
내란적인 구도를 지닌 대한민국에서 적에 편에 선 세력들은 언제나 인질극을 벌인다. 정면대결을 할 수 없게 하는 것으로 자기들의 이익을 고수 획득해가는 것이니 언제나 無故(무고)한 생명이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안전이라는 것에 인질극을 당하고 있다. 재앙의 반대는 안전이다. 재앙은 악마의 종자들이다. 그 종자들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것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집회결사의 자유로 사람을 결속하고 그 하부를 만들어 대한민국에 재앙이 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그들의 수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악마의 종자들이 각기 주체가 되는 것이면 그 집단은 대한민국 전체에서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들은 모두 다 안전을 인질로 잡고 세상을 위협할 것이고 지도자들을 윽박질러 자기들의 목표를 달성하려고 할 것이다. 악마의 종자들을 능히 제압해야 안전을 만들 수 있는데, 누가 이를 다 헤아려서 안전을 만들어 낼 수가 있을 것인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눈이 아니면 그 악의 結社(결사)체들을 다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그것들의 목표가 무엇인가가 중요한데, 특히 남한적화에 매달리는 북괴에 連結(연결)된 모든 결사체들은 하나같이 움직이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공갈 협박 위협함으로 움직여서 자기들의 노림을 얻어내려는 수작질일 것이다. 완전한 안전을 목표하는 政府(정부)가 되어야 한다. 빈틈이 없는 그물망을 만들어서 국가안전망에 이상이 없도록 24시간 풀가동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안전을 담당하는 부서가 국민안전을 도모하는 것에 전혀 이상이 없어야 하는데, 북괴와 연결된 그 수많은 결사체들의 의미가 지령을 따라 무슨 짓이라도 한다고 하는 것을 능히 감안해야 한다. 80%가 빨갱이 기자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언론 방송으로 테러를 가한다. 그 테러를 두호 변호 비호 미화한다.
또는 그것을 이용하여 정부의 무능을 악선전 선동한다. 정치가들은 그것들이 만든 여론을 이용하여 합법을 가장하여 공갈 협박 위협을 한다. 행정가들은 그것을 기반삼아 공갈 협박 위협에 노출 당하게 한다. 대한민국 3부에 걸쳐 있는 모든 官(관)피아들이 그 역할을 한다. 안전을 목표로 하는 정권은 그 안전을 인질로 잡는 세력에게 늘 당하게 된다. 여기서 안전을 도모하려면 국민의 눈을 밝혀야 한다. 대한민국은 내란적인 구도로 몰려가고 있기에 안전을 擔保(담보)할 수 없다. 국가의 한계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국민적인 참여를 높이자는 것이다.
국민적인 참여를 높이려면 눈이 밝아야 한다. 재앙의 실체性(성)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데, 재앙은 눈에 보이지 않게 가까이 와서 갑자기 덮치기 때문이다. 재앙을 보는 안목이 보다 더 넓고 깊고 길고 높아야 한다. 그런 국민으로 지도해 가야 하는 것인데, 80%의 빨갱이 기자들이 대세라서 그런 것을 국민에게 알리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모든 재난의 그 뒤에는 언제나 빨갱이가 있다. 이를 일명 RO(Revolutionary Organization)로 알려지게 된 것은 이석기의 정체가 드러남에서부터다. 이런 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우리의 안전을 인질로 삼는 악인들이다.
이런 것에 무감각한 것을 안전 불감증(safety frigidity)이라고 하는데 이런 것은 내란적인 구도에서 안보불감증을 만드는 것이 곧 그 시발점이다. 대한민국은 북괴로부터 수많은 도발을 당하면서 그 때마다 일시적인 충격을 당하고 곧 그 사실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강하다. 그것들의 도발에 만전을 다하는 것에도 그 눈빛이 빈틈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非正規戰(비정규전)으로 나오는 것에는 너무나 무지하고 무감각하다 하겠다. 테러를 사고로 위장하는 기본적인 전술에서 국민이 정말 그것이 테러라고 하는 것을 인식하는 통찰하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것들이 공격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불찰로 인해 벌어지는 수많은 안전사고에 관하여 분명한 척결의 의지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안전사고의 가능성의 모든 영역을 다 읽어내고 그것을 제대로 대처하는 습성이 되어야 한다. 미연에 방지하는 안목과 그 가능성의 차단과 각 테러집단의 작전 디자인의 가능의 모든 영역을 읽어내는 독해력과 사고 발생時(시)에 대응하는 매뉴얼의 습관화를 가져야 한다. 각종 언론 방송에서 이를 날마다 주지시키는 작업을 하지 못하는 경우라면 안전방송국을 두고 그것에 專擔(전담)하여 국민의 눈을 밝혀야 한다.
하여 정부의 한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세월號(호) 구조에 대한 해경의 아픔은 그 한계의 기대치가 너무나 높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조능력의 한계 밖에 것을 요구하는 것이기에 문제가 있다. 우리는 할리우드에서 나오는 遭難(조난)영화를 보게 된다. 거기서 신묘 기묘 현묘 오묘 교묘 정묘 미묘 영묘한 조난구조 기술을 보게 되는데 그런 것을 보다 보니 우리는 왜 그런 능력이 없는가? 질타한다. 그것은 허구성을 가미한 영상물인데 우리능력이 거기에 달한다고 여기는 것은 우리 능력을 과신하는 것이다. 우리의 조난구조능력을 알아야 한다.
우리 정부의 조난구조 능력과 안전을 만들어 내는 능력의 그 한계를 알아야 한다. 그것이 곧 슬기로운 국민이 되어 재앙을 피해가고 재앙을 이기는 국민이 되는 것이다. 발에 차이도록 至賤(지천)인 것이 사고인데 그것에서 사고가능성을 읽어내고 그것을 未然(미연)에 방지하는 안전 감각이 아주 뛰어나야 한다는 것과 사고가 나거나 진행되는 동안에도 서로를 구출하는데 능하며 그 사고를 정치적으로나 남한적화에 이용하는 자들의 준동을 막는데도 能(능)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대란에 늘 노출되고 있는 대란민국이 되면 안 된다. 따라서 슬기로워야 한다.
모든 것에서 재앙이 다가오는 것은 악마가 그 종자들을 통해서 그것들을 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테러이다. 모든 것을 오용하여 발생하는 사고도 역시 악마가 昏迷(혼미)케 함을 주어 일순간 실수를 한 것이다. 그런 부주의가 큰 사고를 부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영적안보가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영적인 안보는 하나님 기준의 이웃사랑이다. 인간 속에 하나님을 모시도록 만들어진 것이 곧 인간인데, 그 속에 악마가 들어간다면 영적안보가 무너진 것이다. 하나님은 그 속에서 그를 모든 재난 재앙에서 이웃을 구출하는 자가 되게 한다.
하나님의 눈빛은 안전이 완전함을 찾아내는 능력이고 그 손은 그것을 지켜내는 능력이고 그 발은 재앙의 땅에서 안전한 곳으로 신속하게 피하게 하는 능력이시다. 하나님의 구조 구출 구원 구제 구휼 구난 구명의 능력이 전지전능하시다. 그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신 분이시고 지구를 만드신 분이시고 만물을 만드신 분이시기에 인간을 그 모든 것에서 구출하는데 전지전능하시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 속으로 오셔서 인간을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와 그 지혜의 지휘를 내려 구출에 능하게 하신다.
구출 구원 구조 구난 구명 구제 구휼 치료 치유에 능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 기준의 차원의 이웃사랑의 완성에 담겨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아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 지혜로 우리 국민과 인류를 섬기는 세상을 열자고 강조한다. 재앙을 미리 보고 피하게 하는데 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슬기로 행하는 국민이 되게 해야 한다. 우리 국정원이 국가안보처가 각종 대공수사팀에서 모든 적들의 모든 것을 다 읽어내고 그 가능성의 영역의 도발을 대비하고 있다.
그 마저도 국민이 함께 하지 않으면 그 모든 도발을 막아낼 수도 이겨낼 수도 수습할 수도 없다. 안전사고도 그러한 것이다. 실수로 일어나는 사고와 테러로 발생하는 사고들을 모두 다 읽어내는 국가안전담당 관청에는 반드시 안전방송국과 활자 및 인터넷 신문 등을 확보하고 그것으로 국민에게 구출 구원 구조 구난 구명 구제 구휼 치료 치유의 지식을 공급하여 슬기롭게 해야 할 것이다. 조난구조능력의 인간의 한계 우리국가의 한계를 제대로 알아야 적들의 선전선동에 놀아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슬기로 무장하면 안전이 인질이 되지 않는다.
실수를 가장한 테러들이 발생하는 것은 대통령의 눈과 귀와 입을 막고 그 결정권을 좌지우지하려는 거래타협이라 하겠다. 그 일에 가담하는 기자들과 정치인들과 관료들과 각 결사체들이 하나처럼 움직이는 것을 보면 마치도 아리랑 체조를 보는 것과 같다. 이번 세월號(호)는 그들이 사고를 위장하여 냈다는 것을 진단하는 소리들이 있고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6.4선거에 이용하여 재미를 보았고 그것으로 대통령 퇴진운동을 하는 소재로 삼아 세상을 혼돈케 한다. 이런 일련의 내용들이 모두 다 도리어 사고를 빙자한 테러였을 것이라고 웅변하는 것일까?
복원력이 이미 없는 배를 왜 그 孟骨水道(맹골수도)로 몰고 가서 변침 곧 갑자가 방향을 튼 것일까? 그 수로에서 복원력이 없는 배를 變針(변침)했다면 사고를 위장한 사고 곧 테러일 개연성이 있는 것이고 그것이 곧 북한의 사주라면 이는 비정규전에 일환일 것이다. 기자들은 그것이 북괴가 했을 것이라는 개연성을 열어두지 않는 여론으로 몰아가는 것에 열을 올리고 우리조난구조의 능력의 한계를 무시한 주문을 내고 그것에 부응하지 못하는 해경을 연일 매 타작하듯이 하였다. 그것으로 박근혜정부의 조난구조능력의 무능을 정치적으로 만들어 연일 공격의 소재로 삼는다.
이제 다시는 그런 문제가 터지면 안 되는데, 안전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나라가 되고 국민이 되면 저들이 더 이상 공갈협박 위협을 할 수가 없기에 기자들은 다른 記事(기사)로 국민의 눈을 가리고 또 가리는 짓을 하는 것이다. 기자의 역할은 전문가의 눈이 되어 구출 구원 구조 구난 구명 구제 구휼 치료 치유에 능한 정보를 찾아내어 국민에게 제공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도리어 구출 구원 구조 구난 구명 구제 구휼 치료 치유를 받을 수 없게 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다만 가십거리로 시간을 때우고 아님 말고 식의 카더라 소설쓰기에 주력하고 있다.
정치인들도 관료들도 각종사회단체들도 오로지 남한적화에만 매몰되어 있지 국민의 안보와 안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것이 곧 이 나라의 재앙이라 하겠다. 이런 재앙에 잡힌 대한민국은 언제나 도발과 사고에 노출되어 있다. 이를 분명하게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우리조난구조의 능력의 한계를 알고 각자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자신을 이웃을 구출 구원 구조 구난 구명 구제 구휼 치료 치유하는데 능하게 하도록 지도 편달해야 한다. 그것이 모여져서 평안이 되고 더욱 쌓이면 강력이 된다. 이 강력으로 국민은 무장해야 한다.
재앙을 피한다는 말은 그 강력으로 무장하여 이김을 의미한다. 피한다 함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으로 그것을 이긴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구출 구원 구조 구난 구명 구제 구휼 치료 치유로 그 모든 재앙을 극복하고 방지하고 수습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기준으로 재앙을 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재앙을 보고 도망치라는 말이 아니다. 재앙에 맞서 싸우되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의 통제와 지휘를 받아서 하라는 말이다. 그 때만이 국민이 안전해지는 것이다. 안보불감증 안전불감증을 치유하고 조난구조능력을 함양할 총리를 기용해야 한다.
<구국기도생각> http://onlyjesusnara.com
신고 0명
게시물신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