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공포를 이기는 국민적인 힘을 비축해야 국가계속성을 이루고 창조생산경제로 부강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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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4:10네가 만일 환난날에 落膽(낙담)하면 네 힘의 微弱(미약)함을 보임이니라]
인간은 極(극)한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다. 그것이 곧 환란을 당하는 보통사람들의 심리적인 현상이다. 환란이 주는 극한 공포에 눌리면 그 환란을 이길 수 없다. 지도자들은 자기 속에서 일렁이는 패닉은 물론하고 자기 집안과 하부와 국민의 그 모든 패닉을 다 장악 소화해야 한다. 소화한다는 말은 그 환란의 술에 취하여 인사불성, 취생몽사하지 않고 도리어 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찾아내어 국민을 하부를 집안을 안전한 항구로 이끌어내고 도리어 富强(부강)하는 기회로 삼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극한 위기를 관리하여 부강의 기회로 삼는다.
대개 극에서 극으로 이동하는 것을 창조성이라 한다. 극에서 극 사이에 거대한 절망의 강이 흐르는데, 그 불가능의 강을 넘어서서 도리어 부강의 기회로 삼아내는 창조성은 그 주어진 모든 절망을 응용하여 최선의 가치를 만들어 낸다. 그 만든 것을 가공하고 패션화하여 최고의 가치를 만든다. 극한 패닉에서 마음이 물처럼 쏟아지는 상황인데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도리어 그것을 솜뭉치로 삼는다. 창조성은 위기를 넉넉히 삼켜 거기서 부강의 실을 만들고 그것을 짜서 밧줄을 만들고 그것을 조직하여 옷감을 만들고 그것을 패션화하여 브랜드로 만든다.
그 밧줄은 그 주어진 여건의 강력한 결집과 없는 양식 조건 기회를 商賈(상고)의 배와 같이 실어(끌어) 온다. 또는 나락에 빠진 것을 구출하는 구명줄이다. 환란의 바람에 날아갈 수밖에 없는 것들을 묶어 둔다. 대체적으로 이런 일을 해내는 힘을 소화력이라 한다. 이는 창조적인 소화력이다. 물론 생산적인 소화력도 있다. 생산성은 증산이다. 증식이다. 극한 환란 속에서도 도리어 재산이 불게 한다. 우양의 수를 불린다. 곡식증산을 한다. 집안의 번성함과 생산을 증대한다. 이런 창조와 생산의 소화력을 가진 자들에게 환란은 도리어 양식인 것이다. 그 힘만큼 그 양식을 먹고 소화한다.
이런 힘은 DNA적인 힘이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소화력은 타고 나는 것인데, 그 분량이 천차만별이다. 각 사람마다 그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그릇의 차이로 구분한다. 큰 그릇은 그만큼 분량으로 국민에게 이웃에게 봉사한다. 작은 그릇은 그만큼만 봉사할 수 있다. 인간 중에 큰 그릇도 능히 감당할 수 없는 환란이 오면 절망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세상은 그 환란에 망하게 된다. 그 지도자들의 합으로 그 소화력의 그릇의 분량을 키우는 것으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한다. 人本主義(인본주의)의 시작이다.
국민 한사람이 가진 DNA소화력은 미약하지만 이를 모으면 거대하게 된다는 이치를 활용함이다. 이를 하나처럼 모으는 힘도 역시 소화력이다. 국민에게는 그 힘이 없는데 지도자가 그 힘을 만들어 내고 국민에게 공급하는 창조성이다. 극에서 극으로 이끌어내려면 그만큼의 힘이 있어야 한다. 이는 그 모든 절망을 극복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극한 환란을 삼켜 소화하는 것은 곧 그 환란의 요건을 솜뭉치로 삼아 기회의 실을 짜내는 아이디어의 응용 선용에 있다. 그런 이치를 국가와 국민에게 계몽케 하고 하나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인본주의의 過程(과정)이다.
만물을 인간을 지구를 창조하신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들의 눈에는 인간의 합을 중시 여기는 인본주의의 술에 취함이다. 그 술에 취한 자들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은 하나 합심하면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늘 역설한다. 인본주의의 등불을 들고 그것으로 세상을 경영할 수 있다고 속이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는 자기들에게는 묘안이 있고 그것의 백출로 인해 인간의 DNA적인 창조성과 생산성을 결집할 수 있게 되고, 그것에서 새 역사를 창조하고 증식 증진과 생산증대를 할 수 있다고 盲信(맹신) 過信(과신)하는 자들이기도 하다.
사실 인간에게는 환란을 소화하되 창조성 생산성으로 소화해내는 지도자가 절실하다. 이들이 국민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지도자들이다. 하지만 그런 지도자는 없다. 구국의 구원 구속 구조 구난 구명 구출 구제 구휼 치료 치유 모든 선의 섬김이나 청소나 改善(개선) 改造(개조) 개량 개혁 및 새롭게 함과 증식 증진 진보의 의미가 나올 수 있게 하는 것이 창조 생산의 소화력이다. 하나님은 모든 창조의 源泉(원천)과 根源(근원)이시고 생산의 원천과 근원이시다. 그 창조와 생산은 인간에게 생명수이다. 그것의 근원이시고 그것의 江(강)이고 샘이시다.
누구든지 그 운전대를 하나님께 바치는 자들, 곧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기름부음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을 모시고 그 사랑의 통제와 그 지혜의 지휘를 받는 자들에게은 하나님의 무궁무진한 창조력과 생산력을 공급받게 된다. 항상 다함없이 공급되는 것을 일컬어 물댄 동산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이라 한다. 하나님의 것을 받아서 인간에게 국민에게 제공하고, 그것으로 모든 환란을 소화해서 도리어 부강의 기회로 삼아내는 것이다. 인간의 한계로 그 일을 전혀 할 수 없게 되어야 비로소 구분될 수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시다.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 이 구분을 정확하게 깨닫게 되는데, 이는 정직한 영의 도움을 입는 것이다. 이를 성령의 각성이라 한다. 극한 환란에 빠지면 곧 드러날 자신들의 역량이지만 극한 환란에 처하지 않더라도 성령의 각성으로 이를 뼈속 깊이 공감하는 것을 성령의 각성이라 한다. 이는 진리의 영이시고 정직한 영이신 성령의 도움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 힘을 입으면 언제나 인간의 한계를 안다. 인간의 한계를 성령으로 각성한 자들만이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창조력과 생산력 그 소화력을 공급받는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소화력, 그 창조와 생산력이 물댄 동산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같이 솟구치고 흘러나오는 지도자들이 나와야 한다. 그분들이 대한민국을 섬겨주어야 대한민국빛나만세가 된다. 모든 지도자는 그 세대의 선택에서 나오는데 그것이 그 세대의 안목이다. 안목은 등불이다. DNA의 등불이 밝은 자들을 그런 지도자들을 선호하고 최상 최선의 가치로 높인다. 하지만 우리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강조한다. 언제든지 악마는 인간 DNA의 등불이 최고 최선이라고 속인다. 미혹의 영이기 때문이다. 하여 인간은 미혹을 당한다.
막상 환란을 당하면 속수무책이다. 지도자나 일반 국민이나 동일하다. 전혀 구분할 수 없다. 재빨리 나라를 버리고 도망친다. 이는 그 세대가 악마의 미혹에 속았기 때문이다. 진리의 영 정직한 영의 도움을 입어 각성된 자들은 그 각성의 힘으로 인간 DNA의 창조 생산 소화능력을 신뢰치 않는다. 모든 육체의 합에서 나오는 것들을 무시한다. 하나님의 기준에 이르도록 그것을 무시하게 하는 성령의 각성을 누린다. 이를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한다. 그 십자가에 육체를 신뢰하는 것을 못 박아야 정직함이기 때문이다.
그 정직함의 분량이 많을수록 하나님께 진실로 간구한다. 그 진정성의 기도를 드려 응답받는 것이 곧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6:1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그런 자들만이 하나님의 무궁무진하신 창조 생산 소화능력의 샘을 공유하고 그 힘으로 국민의 눈의 눈물을 씻어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통해서 인간세계를 통치하는 기둥으로 삼길 원하신다.
성령의 각성으로 정직한 영 진리의 영의 도움을 입어 정직한 자들은 하나님의 창조생산의 소화권능을 무한히 무궁무진하도록 누리게 하신다. [갈라디아서 6:16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지도자들만 이 권능(평강과 긍휼)을 누리게 하시지 않는다. 모든 국민이 이런 권능을 누린다면 그 권능의 합을 성령의 줄로 묶어낸다면 이는 진정한 합심이다. 인본주의의 적그리스도적인 합심이 아니라 성령의 그리스도의 합심이다. 국민이 하나님의 창조 생산 그 소화능력으로 무장되면 성령이 국민 눈에 눈물을 씻어주심이다.
이사야 32장이다. [1.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며] 의와 공평은 하나님이 제시한 기준이다. 이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 속으로 오시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의 완성을 의미한다. 그 기름부음을 받은 분량의 질서대로 정부의 조직을 만들어 인간을 섬기는 세상을 여심인데, 그 백성을 하나님의 여호와의 聖民(성민)이라 하고, 그 성민 속에도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각기 분량대로 임하여 계신 것이다. 성령의 심령통치와 성령의 질서통치이다. 이 통치력은 곧 하나님의 창조력생산력과 그 소화력이다.
[2.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하나님이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각 사람 속으로 오셔서 각 사람 앞에 있는 환란을 잡아먹게 하시고, 그 질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창조 생산의 그 소화력을 무궁무진하게 공급하신다. 하여 광풍을 피하는 곳을 낸다. 하여 폭우를 가리우는 곳을 낸다. 마른 땅에 냇물을 낸다.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을 낸다. 거대한 태풍을 장악하여 찻잔 속의 미풍으로 만들고, 그것에서 창조 생산을 내는 것이다.
성령이 각 사람 속에 하드웨어가 되시고 질서를 움직이는 하나님이 소프트웨어가 되셔서 그 일을 응용하심에 따라 서로에게 소통하여 응함의 순응의 속도가 어찌 그리도 빠른지! “시편133:1.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3.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영생의 결합을 이루는 성령의 화답이다. 성령에게 동하고 움직이는 이 조직은 하나님의 사랑의 구현을 이루는 조직이다.
하나님께 순응 반응 副應(부응) 符應(부응) 상응 호응하여 合致(합치)된 응함으로 協力(협력)된 응함으로 하나님의 운전하심을 온전히 완전히 완벽하게 따라가는 순종자가 되는 것이다 [3.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의 귀가 기울어질 것이며 4.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하나님의 창조와 생산의 그 소화의 응용소프트에 제대로 응하여 그대로 適時(적시) 適量(적량)으로 합당하게 움직이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성령의 각성을 국민적으로 받자고 강조한다.
[5.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칭하지 아니하겠고 궤휼한 자를 다시 정대하다 말하지 아니하리니] 인본주의의 합을 강조하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이다. 그들의 화려한 스펙을 높이 평가하던 시절은 이미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을 박은 것이다. 이제는 육체대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하나님의 기름부음의 여부로 평가하는 것이다. 성령의 각성을 받은 자들은 각 사람을 열매로 그 나무를 아는 통찰력을 갖는다. 사람의 속에 무엇이 있는가를 성령의 지혜의 안목으로 통찰하고 그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함이다.
詭譎(궤휼)한 자들은 그 속에 악마를 품은 자들이다. 그들이 외모를 화려하게 하여 세상을 미혹 고혹 혹세무민 곡학아세해도 결코 하나님의 성령의 통찰에 간파 격파 분쇄되는 것이니, 그런 세상에서는 그들이 결코 지도자가 될 수 없다. 흔히들 대한민국은 지도자의 복이 없다고 하는데, 이는 대한민국이 지도자를 선출하는 안목이 미개하단 말이다. 이는 하나님의 빛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통찰하는 빛을 무한하도록 공유하는 국민이 되는 길이 곧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성령의 각성에 있다. 그 세상은 결코 어리석은 자들과 궤휼한 자들에게 속지 않는다.
인본주의와 적그리스도의 존재들은 세상을 속여 망하게 하는 자들이다. 곧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지 못하게 한다. 성령의 하드웨어와 하나님의 기름부음의 질서로 행사하시는 하나님의 소프트웨어에 응하지 못하게 미혹 박해한다. 그 때문에 창조 생산 그 소화력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 국민이 환란에 삼켜지고 극한 패닉에 망하게 되어도 그 누구 하나 국민을 구출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생산의 그 소화력을 무궁무진하게 공급받는 성민이 되고 지도자가 되는 길로 가자고 강조한다.
적그리스도 곧 남북 빨갱이의 지령 지시를 암시를 교사를 충동 선전 선동에 움직이는 衆愚(중우)들이 있다. [6.이는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리며 주린 자의 심령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의 마시는 것을 없어지게 함이며 7.궤휼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베풀어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빈핍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함이어니와] 그 세력을 이기는 길은 유일무이하다. 창조 생산의 소화력의 근원되시는 유일무이의 길로 이끄시고 각성케 하는 성령이시다.
[8.고명한 자는 고명한 일을 도모하나니 그는 항상 고명한 일에 서리라] 고명한 일에 서는 자들이 누군가? 성령의 각성을 받은 자들은 언제나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의 심령통치를 받아들인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의 소프트웨어의 질서에 순응한다. 그것이 고명한 일을 도모하고 그 일에 서는 자들이다. 그분들만이 하나님의 무궁무진한 힘 창조 생산의 소화력을 누리게 된다. 창조 생산의 소화력을 하나님의 안정한 심령이라 한다. 이를 마치도 물을 저수지에 모아두는 것처럼 목표하고 늘 그 힘을 비축하는데 주력한다.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행동인 것이다. “베드로전서3:3.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나라가 잘되려면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을 준비하는 여자들이 되어야 한다.
사치와 안일에 빠져 자기사랑에 극한 자들이 되면 나라가 망하게 된다. 하지만 성령의 각성으로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온유와 안정한 심령은 곧 극한 환란을 극복하고 소화하여 오히려 창조 생산을 낸다. 하지만 여자들이 안일과 사치에 빠져 자기 사랑의 일락에 매여 있으면 결국 극한 환란에 삼켜진다. 집에서 사치와 일락과 안일에 빠진 여자는 공포 확산기다. 극한 환란이 오면 곧바로 공포 확산기가 되어 집안을 戰慄(전율)케 한다. 집안을 극한 절망에 빠뜨려 망하게 한다. 그 때문에 그 환란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9.너희 안일한 부녀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찌어다 너희 염려없는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찌어다 10.너희 염려없는 여자들아 일년 남짓이 지나면 너희가 당황하여 하리니 포도 수확이 없으며 열매 거두는 기한이 이르지 않을 것임이니라 11.너희 안일한 여자들아 떨찌어다 너희 염려없는 자들아 당황하여 할찌어다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베로 허리를 동일찌어다] 그 때문에 여자들은 성령의 각성을 받아 하나님의 온유와 안정한 심령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것이 여자가 해야 할 단장이다.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 거기서 부강함이 나온다.
여자들이 하나님의 평강의 힘 곧 안정한 심령을 얻지 못하면 그 힘을 저수지에 담아두지 않으면 그 미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결국 망하게 된다. [12.좋은 밭을 위하며 열매 많은 포도나무를 위하여 가슴을 치게 될 것이니라 13.형극과 질려가 내 백성의 땅에 나며 희락의 성읍, 기뻐하는 모든 집에 나리니 14.대저 궁전이 폐한바 되며 인구 많던 성읍이 적막하며 산과 망대가 영영히 굴혈이 되며 들나귀의 즐겨하는 곳과 양떼의 풀먹는 곳이 될 것임이어니와] 대한민국의 여자들이 성령의 각성을 무시하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누구든지 그 힘을 준비치 않으면 공포에 먹힐 것이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인간은 하나님의 온유와 안정한 심령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이도 역시 성령의 각성으로 해야 하나님 수준의 각성을 얻어내는 것이다. 그분들만이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성령의 힘으로 그 소화력을 누린다. 창조 곧 광야가 아름다움 밭으로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되는 은총을 누리게 된다. [15.필경은 위에서부터 聖神(성신)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되리라]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각성이 이 나라의 살길이다.
[16.그때에 공평이 광야에 거하며 의가 아름다운 밭에 있으리니 17.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18.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종용히 쉬는 곳에 있으려니와] 하나님의 평강의 힘으로 극한 패닉에서 영원히 벗어나고 오히려 그것으로 창조와 생산의 기회를 만들어 부강한 민족이 나라 국민이 되자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은총을 얻어 누리자고 강조한다. 남북 빨갱이의 수작질은 그것들의 공갈협박위협에 잘 놀아나는 衆愚(중우)를 대량 양산하는 것이다. 극한 패닉에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다가 지리멸렬하는 대한민국으로 몰아가고자 함이다.
그것에 속으면 나라가 큰 환란에 잡히고 상상할 수 없는 공포에 망하는 인간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아뜩한 세월이 되는 것이니 참담한 것이다. [19.먼저 그 삼림은 우박에 상하고 성읍은 파괴되리라] 필경은 성신이 부어진다는 전제에 반드시 나라를 이루는 조건에 있어 성령의 각성이 얼마나 절대조건인지를 아는 학습의 효과를 거친다는 의미인데, 우리의 강조는 그런 과정을 거치면 그 세대는 버림을 받으니 지금이라도 성령각성을 구하면 극한 환란의 패닉에 망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그 모든 환란의 패닉을 이기게 하는 하나님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20.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는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 그 때문에 성령의 각성으로 기경하자고 강조함이 복이 있다. 참으로 복된 외침이다. [예레미야 4:3나 여호와가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 [호세아 10:12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성령의 각성으로 극한 환란을 넉넉히 소화하는 하나님의 힘을 무한히 누리는 우리 대한민국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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