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권반환 무기연기. 이젠 북한인권법제정, 남한빨갱이 척결과 남침땅굴 파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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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7:5 面責(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하나님의 책망은 하나님의 본질에서 나온다. 하나님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본질에서 나온다. 그 본질과 맞지 않으면 책망과 진노가 나온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또한 조금의 어둠도 없으신 빛의 속성이시다. 그 때문에 결코 그 사랑을 숨길 수가 없다. 그 때문에 책망이 나온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본질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니, 그것들도 결코 그 속에 품은 것을 숨길 수 없게 하신 것이다. 인간도 그 속에 품은 본질대로 그 언행을 한다. 그 속에 대한민국을 품으면 대한민국의 언행을 한다. 북괴를 품으면 북괴의 언행을 한다.
북괴와 궤를 같이 하는 자들을 종복이라 하는데, 그들은 철저한 계급사회이기 때문에 상급단체의 지시나 지령을 결코 거역할 수 없는 수령의 명령으로 받든다. 우리는 민주당이었던 새민련(새정치민주연합)이 과연 그 속에 대한민국을 품고 있는지 懷疑(회의)를 표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과 궤를 같이 하는가? 최상 최선 최고 최적으로 가치를 위해 公黨(공당)끼리 경쟁해야 한다. 하지만 북괴를 품고 마치도 대한민국을 품은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면, 善意(선의)의 경쟁이 아닌 주적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속에 적개심으로 가득 찬 敵(적)일 뿐이다.
속에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다면 때마다 일마다 건수를 잡고 트집을 잡아 대한민국이 망하도록 공격한다. 과연 새민련은 종북인가? 종북이란 북괴가 하는 대로 발을 맞춰주고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면책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전술전략도 그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다만 지시하는 대로 지령에 따라서 그대로 움직이는 자들이고 수령무오에 근거한 자들이다. 神(신)적인 존재인 수령으로 우상화한 북괴는 소위 김일성 무오說(설)로 그 누구의 비판 거역을 허락지 않는다. 주체사상도 수령 김일성의 결정에는 誤謬(오류)가 없다고 궤변한다.
이는 마치도 그들의 손에 잡힌 자들은 앵무새와 로봇이 된다. 그러한 앵무새 로봇적인 현상이 북괴에서 늘 나오니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런 체제요 그런 자들이니까! 북괴의 앵무새 로봇의 현상이 대한민국의 공당인 민주당 곧 새민년의 족적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으니 문제다. 그들은 북괴에 대하여 일절 面責(면책)을 하지 않는다. 면책하지 않는 그것을 一貫(일관)되게 유지한다.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면책을 주저없이 하는 자들이 유독 북괴에만 면책하지 않는다. 북괴의 정책노선에 언제나 발을 맞추는 모습을 보여 왔다. 恒常(항상) 그러했다.
같은 편 안에서도 최선 최상 최고를 추구하기 위한 경쟁은 있는 법인데, 오로지 편만 든다면 독립체가 아니다. 종속체이다. 대한민국 내에서 종북이니 친북이니 하는 자들은 일관성이 있다. 그 일관성은 북괴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명백한 하자인데도 면책할 줄 모른다. 전혀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하고 있다. 그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새민련이 하는 말마다. 이미 모든 곳에 기록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 말들을 다 종합해도 그들이 대한민국과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주저없이 날린 살인적 펀치級(급)의 질타는 가득해도 북괴의 잘못에 대한 질타는 거의 없다.
어쩌다가 그들을 책망한다는 것은 양비론이나 양시론을 사용하여 한다. 솜방망이 ‘때찌’일 뿐이다. 그들은 언제나 북괴를 자극하지 말라고 한다. 많은 것을 퍼다 주어서 무조건 달래라고 한다. 천안한 폭침도 연막호도한다. 연평도 포격도 편든다. 북괴의 쉬지 않는 모든 도발이나 그들 內治(내치)의 정책의 실패는 모두다 미국의 방해 때문이라고 그 모든 책임을 전가시킨다. 모든 것이 모호한 태도로 북괴 편을 드는 이유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숨은 사랑일까? 애국심을 포장지로 삼는 이들의 작태는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른다. 곧 무신론자 빨갱이들의 행동패턴이란 얘기다.
특히 민주당은 정강 「우리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항일정신과 헌법적 법통, 4월혁명·부마민주항쟁·광주민주화운동·6월항쟁을 비롯한 민주화운동을 계승하고, 경제발전을 위한 국민의 헌신과 노력,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 향상을 위한 노력을 존중한다.」이다. 전문 초입에 나온다. 그들의 민주화는 대한민국에 국한되는 폐쇄된 민주화이지 인류의 보편적인 열린 민주화가 아니다. 그 때문에 북괴의 3대세습과 그 모든 暴政(폭정)과 전대미문 未曾有(미증유)의 인권유린에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어쩌다가 누군가에게 발각되면 북괴를 자극하면 전쟁난다는 말로 겁을 준다.
그들은 폭동을 5.18광주민주화운동이라 자랑한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화운동이 되려면 그런 운동이 地球(지구)로 전이 되어져가야 한다. 평양을 민주화하고 북경을 민주화하고 세계 모든 나라의 민주화가 되는 영향을 끼쳐야 한다. 하지만 그들의 민주화는 삼팔선 이남의 민주화로 스스로 閉鎖(폐쇄)한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애국을 한다고 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진정한 애국은 민주화를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삼는데서 나오는데, 그들만의 민주화로 폐쇄하는 것을 애국이라 한다. 북괴를 외롭게 할까봐 북괴와 손을 잡는 독재자들을 민주화하지 못한다.
그들은 언제나 자기들의 본질을 숨기는 혀를 가진다. 애국심의 포장지 또는 인권의 포장지 또는 복지 환경 통일 평화 민족 차별법의 포장지로 감싸다 그것이 안 되면 內政干涉(내정간섭)이라는 성역으로 도망쳐서 폐쇄의 辯(변)을 삼는다. 북괴의 수많은 도발에 도리어 대한민국을 탓한다. 언제나 북괴를 감싼다. 수많은 도발에, 그들의 內治(내치)의 실패로 인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인민이 받고 있는데도 이를 모르쇠로 일관한다. 결코 수령은 실패할 수 없다고 여기고 그런 것은 성공을 위한 과정이라 강변한다. 하여 이를 고난의 행군이라 부추긴다.
민족의 통일을 위해 그리 하는 것이니, 이를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민의 피와 살로 민족의 통일을 이뤄 열강에서 살아남는 선택을 위해 부득불 지불해야 하는 대가로 치자고 한다. 가증스런 변이다. 이번에도 장성택 일행을 재판없이 공개숙청하는 것에 일언반구도 안 한다. 우리가 볼 때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이는 수령의 교도들이기 때문으로 思慮(사려)된다. 참으로 이상할 만치 조용하다. 어떤 이는 이를 두호 비호 변호 미화하기에 급급하다. 그들은 늘 인권을 입에 달고 살면서 그들의 인권은 언제나 국내용이다. 그만큼 폐쇄적이다.
환경도 그러하다.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수많은 실험을 하는데도 조용하다. 그들이 말하는 환경은 언제나 국내용이다. 그만큼 폐쇄로 북괴를 두호한다. 결코 북괴에게 왜 핵실험으로 환경을 파괴하는가를 질타하지 못한다. 그들의 지지층은 북괴의 핵무장이 결국 한민족의 핵무장이 될 것이라고 여기고, 오늘도 그 핵무장 때문에 단잠을 잔다고 너스레를 떤다. 북괴의 핵무장은 대한민국을 核(핵)인질로 삼는 최악의 흉기인데도 이를 敵愾(적개)하지 않는다. 아니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민주당의 정체성을 웅변하는 것이다. 새민년의 눈에는 대한민국이 타도할 적인가?
새민련의 정체성은 김일성교도들이 다수 포함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있는 한 그들의 정체성이 되는데, 그 폐쇄적인 민주화 운동, 인권 운동 환경 운동 등등이 그들의 지지 세력일 뿐이다. 그들의 강령에 “우리 헌법적 법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지는 몰라도 대한민국의 헌법이 유일무이하다는 의미이어야 한다. 만일 그것이 아니면 반국가 단체일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 3조의 의미를 따라 북한지역도 우리 국민이다. 적치下(하)의 국민을 해방 자유평화통일하려는 일절의 노력이 없다. 우리 민간단체들이 대북풍선전단을 보내는 것에 일일이 시비를 걸고 있다. 기가 차다.
다만 그들은 후과(결과)를 걱정톤으로 공갈한다. 북괴를 자극하면 결국 전쟁이 나고 전쟁이 나면 대한민국이 해를 당하니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무섭게 질타한다. 하지만 그들이 대한민국에 하듯이 북괴에게 하지를 못한다. 북한주민을 괴롭히지 말고 개혁개방을 위해 진실을 알 권리를 찾아주어야 한다고 하지 못한다. 특히 북한인권법을 제정치 못하게 가로막는다. 국회선진화법을 만들고 그것으로 북괴를 돕는 짓만 한다. 새민련의 적은 과연 누군가? 대한민국인가? 북괴인가? 그 정당이 만일 대한민국을 사랑하기에 숨은 사랑보다 면책이 더 낫다는 말로 면피가 가능한가?
그들은 북괴를 추종하는 집단이라고 한다면, 이는 수령 무오설에 근거하여 결코 면책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웅변한다. 북괴는 상위집단이고 새민련은 하위집단인가? 만일 그런 因果關係(인과관계)라면 북괴는 나무이고 새민련은 열매인가? 대한민국에 드러내놓고 사랑할 수 없으니 햇볕을 핑계 댄 세월이 10년이고, 그 후부터 지금까지 그 노선을 한번도 버린 적이 없다. 정말 둘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인가? 그렇다면 면책을 해야 한다. 하지만 도리어 비호 옹호 두호 변호 방호 원호 미화하기에 급급하고, 다만 우리 정부에게만 상상이상으로 적개 질타만 한다.
우리는 새민련이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건전한 수권정당으로 확립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과연 새민련의 노선은 보편적인 열린 민주주의가 아니라 극우민족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는 북괴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 아닌가? 북괴는 개혁개방을 하지 않는 집단이다. 북괴의 폐쇄성이 새민련의 폐쇄성과 같다. 그들이 내건 슬로건 민주 복지 인권 환경 평화 통일이라는 미사여구는 모두 다 투쟁의 武器(무기)이지 본질과 목표가 아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용어의 혼란 전술을 통해 국민을 속이는데 능하다.
그들이 말하는 민주화는 공화국의 이익을 거부하는 저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떼거리일 뿐이다. 김대중은 이를 직접민주주의 거리의 민주주의라고 定義(정의)하였다. 저들만의 목표를 위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떼거리로 악용하는 것이다. 선거로 안 되면 폭동으로 민주화하겠다고 한다. 대한민국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공화국이 아니라, 저들만의 이익을 보장하는 공화국으로 가자고 폭동을 일으킨다. 수령체제의 이익만을 위한 공화국으로 70년 철권정치를 하고, 그것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다. 같은 동질에서 같은 짓이 나오는데, 옷만 다르게 입었을 뿐이다.
면책은 숨은 사람보다 낫다. 그렇다. 하지만 그것을 못하는 것은 그들이 수령무오설에 묶인 자들이고, 하급집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시와 지령이 없이는 아무 짓도 할 수 없는 자들의 집단이다. 이번에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우리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이뤄졌다. 한미동맹의 연합사를 노무현이 깬 것을 다시 회복하여 원위치로 돌려놓은 것이다. 시기를 못 박지 않았기에 전작권반환 무한연기이다. 하지만 새민련은 이를 질타한다. 불루투데이의 보도에 의하면 “남북관계와 국가 안보의 실패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정부를 맹공을 했다.
「23일 새민련 백재현 정책위의장은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세계 어느 나라도 자기 군대의 지휘권을 다른 군대에 위임·양도하는 경우는 없으며 만약 있다면 이는 주권의 포기일 것” “전작권 전환 시기 재연기 이유로 안보 환경의 변화를 이야기하지만 변한 것은 민주 정부 10년 동안 공들여 쌓은 국가 안보와 남북관계 성과를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완전히 무너뜨린 것” “전작권 전환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대통령이 국민과 약속한 전작권 환수 시기를 재연기하려는 것은 분명히 지적할 것”」라고 맹공을 했다. 주권포기라는 말로 맹공한 것이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24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원회의에서 “전작권을 차질 없이 환수하겠다고 했던 박 대통령의 공약이 허언으로 끝났다” “전쟁 상황에서 우리 군대를 지휘할 권한을 다른 나라에 맡기는 이 비정상적 상황을 바로잡으라는 국민 여망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건지 진실로 우려된다”」이런 의미는 결국 북괴를 위한 발언일 뿐이다. 북괴도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민련은 나라의 주권을 빙자하고 남북관계를 빙자하여 비판하고 있지만 반발하는 북괴와 동일하다. 이런 질타는 核(핵)무장한 적 앞에서 적전분열을 의미하는 것이다.
국민대 박휘락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당수의 국민들은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이나 환수를 어떤 하나의 권한만 전환 또는 환수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1994년 평시 작전통제권 환수에 이어서 이번에 전시 작전통제권까지 환수되면 행사할 권한이 없는 한미연합사령부는 해체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보수층에서는 이 문제를 한미연합사 해체 여부로 토론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던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전작권’으로 줄여서 통용되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을 줄인 말인지, 어떤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전작권 반환 무기연기를 한 정부에 질타를 하는데 주저 없는 자들이 북한 핵무장에 이를 초래했다고 말을 못한다. 대한민국이 북괴에 핵인질로 잡힌 것은 누구 때문인가? 햇볕정책 때문이 아닌가? 결국 열린우리당 민주당 새민련 등의 이름으로 갈아입으면서 유지해온 햇볕의 결실물이 곧 核(핵)인질이 된 대한민국이다. 이 대한민국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하나님의 지혜로 말미암는 한미연합사 유지이다. 그 때문에 전작권반환 無期延期(무기연기)를 한 것이다. 새민련이 이를 질타한다면, 核(핵)인질된 대한민국을 구할 방법을 말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70년 동안 호시탐탐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려고 준동한 북괴가 어찌 그 핵무기를 사용치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나? 새민련의 그 잠꼬대 같은 논리를 따르면 누가 우리 대한민국의 핵우산이 되어 줄꼬? 결국 북괴의 핵우산 속으로 들어가자는 말일 것이다. 북괴를 동족이라고 우기는데 그렇다면 왜 북한인권이 전대미문 미증유한가를 답해야 한다. 동족을 왜 저렇게 유린하고 있는가를 그 폭정 속에 가둬 350만명을 기아학살하고 반종교의 자유로 김일성종교를 만들어 우상숭배를 강요하는가를 답해야 할 것이다. 새민련이 북괴를 감히 질타할 수 없다면 북괴의 하급단체일 뿐이다.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은 것은 분명하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자들은 그 속에 하나님을 모시게 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 사람을 숨겨두는 것은 빛 되신 하나님의 속성에 맞지 않는다. 그 사람의 언행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 사랑이 드러나는 그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본질에 반하는 언행을 하는 자들에게 면책을 한다는 것에 있다. 이 면책은 원어로 towkechah{to-kay-khaw'}라 발음하고 그 안에는 rebuke, correction, reproof, punishment, chastisement, argument, impeachment, chiding을 담고 있다.
[Open rebuke is better than secret love.] 하나님의 본질을 누리는 자들은 언제나 그 본질의 반응에 따라 그 반응을 그대로 드러낸다. 악마의 본질을 가진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편이 되겠는가? 북괴의 본질을 가진 자들이 어떻게 대한민국의 편이 되겠는가? 모름지기 사랑은 최선 최상 최고 최적을 추구하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 사랑대로 최선 최상 최고 최적을 요구한다. 그 때문에 잘못된 언행을 면전에서 책망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강조컨대 새민련의 면책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동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대한민국을 미워하는 북괴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일 뿐이다. 어차피 그들의 반발은 여전할 것이다. 그것을 감안하고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할 것이다. 그 지혜로 그 반발을 감소케 하고 앞으로도 쭉, 대선 총선 지자체 선거에서 한미동맹을 굳건히 유지할 지도자들을 선출하는 일에 소홀히 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노무현의 우를 되풀이하지 말자! 거듭되면 안 된다. 아울러 남침땅굴에 대한 문제를 하나님의 지혜로 처리하여 다시는 오판을 할 수 없도록 하고, 북한인권법을 제정하고 남한 빨갱이 척결하고 북한해방을 해야 할 것이다.
<구국기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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