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빨갱이에게 늘 당하는 가난한 자들을 구출하는 지도자들이 나와야 자유통일 대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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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8:3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가난한 자는 곡식을 남기지 아니하는 暴雨(폭우) 같으니라]
지도자의 목표는 인간의 가난에서 자유를 갖게 하는 것이다. 가난이란 무엇인가?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다. 이는 천국이 저희의 것이기 때문이라 하신다. [마테복음 5: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가난하다의 ‘poor’는 ptochos{pto-khos'}라 발음하고, 그 안에는 reduced to beggary, begging, asking alms 등의 의미를 담는다. [요한계시록 3:17.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역시 원어적인 의미가 같다. 심령의 가난함의 의미도 역시 하나님의 기준으로 봐야 한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통치의 부요를 얻어야 할 상태를 강조하심이다. 전자는 그 필요성을 성령의 각성으로 깨달아 갈증 갈망 갈구 갈급한 자들을 의미한다. 후자는 그 필요성을 주시는 성령으로부터 멀어져서 그것을 절실하게 깨닫지 못하는 자들의 상태를 말한다. 우리 대한민국에는 성령의 대 각성이 임하여 물질적인 부요보다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것에 대한 갈증 갈급 갈구 갈망이 일어나야 한다. 거기서 창조경제가 나오기 때문이다.
가난을 처방하는 것에는 모든 공복의 근본목표이다. 물질적인 부요만을 강조하는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기준으로 소경이고, 그와 그의 인도를 받는 국민은 모두 다 가련하고 곤고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상태로 있게 된다. 이는 곧 하나님의 통제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의미한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처방은 하나님의 통제의 부요함으로부터 시작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의 부요함을 받으면 그는 곧 창조경제의 주역이 된다. 그 길만이 나라의 물질적인 경제를 부요케 하는 唯一無二(유일무이)한 길임을 직시해야 한다.
사람들은 경제가 성장하는 길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다. 그 때문에 아버지의 통제를 벗어나는 蕩子(탕자)처럼 미리 유산을 받아 다 팔아서 아버지의 영향을 받지 않는 먼 나라로 간다. 거기서 그는 자기실험을 하다가 결국은 다 탕진한다. 그때 마침 그 나라에 대 기근이 들어 할 수 없어 시골의 어느 돼지 치는 집에 빌붙어 지내나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 돼지가 먹는 쥐엄(husks)열매라도 주는 자가 없을 정도로 처절하게 된다. 이는 그가 아버지의 통제를 벗어난 연고로 시작된 가난의 길인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다시 아버지의 통제를 받으러 간다.
이 탕자의 비유를 예수님이 하셨다.(누가복음 15:11-32). 통제를 받는 즉시 그는 그 가난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리가 섬기자고 강조하는 하나님 아버지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유일무이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창조경제는 그분만의 소관이시고 그분에게서만 나온다. 그 때문에 그분의 통제에 부요한 자들이 되어야 비로소 창조경제를 이루게 된다. 하나님의 통제 밖으로 나가면 결코 하나님 기준의 창조경제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악마경제 반역경제 뇌물경제 향응경제 지하경제 탐욕경제 불륜경제 패륜경제만 나온다.
그만큼 인간이 돈만 사랑하는 경제를 부추기는 것이기에 돈은 많아도 도리어 하나님의 통제는 전혀 없는 통제가난도 있게 된다. 이들이 가진 물질적인 부요는 이기적인 탐욕의 부요는 될지언정 이웃을 살리는 경제는 될 수가 없다. 창조경제는 이웃을 살리는 경제기 때문이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에 부요한 자들은 부요한 만큼 이웃을 살리는 본능이 강하다. 이는 탐욕의 이기심의 죽음과 하나님의 이타심의 발로가 마치도 물이 솟구치듯이 나오게 됨을 의미한다. 그 본질의 본성과 본능의 의미는 이웃사랑의 경제를 이룬다.
다음은 하나님의 통제를 받아서 나오는 창조경제의 의미의 말씀이다. [잠언 8:14.내게는 韜略(도략)과 참 지식이 있으며 나는 명철이라 내게 능력이 있으므로 15.나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방백들이 공의를 세우며 16.나로 말미암아 宰相(재상)과 존귀한 자 곧 세상의 모든 재판관들이 다스리느니라]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지혜의 통치를 받는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통치에 부요한 자들이다. 그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로 국민을 섬긴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국민을 섬기면 국민을 살리고 국리민복과 국태민안의 법치구현을 한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통치를 부요하게 받는 지도자들만이 국민을 그 모든 악마의 경제에서 벗어나게 한다. 악마경제 반역경제 뇌물경제 향응경제 지하경제 탐욕경제 불륜경제 패륜경제에서 국민을 벗어나게 하는 권능이 곧 하나님의 통치의 부요함 곧 하나님의 명철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명철이 없으면 국민을 그 모든 악마의 경제에서 구출하지 못한다. 인간의 욕심을 부추기고 欺瞞(기만) 暴力(폭력) 殺人(살인)으로 조합한 사취 착취 갈취 약취 강취로 몰아가는 악마의 마수에서 벗어나게 못한다. 인간은 그렇게 虛弱(허약)하다.
그것들의 손에 잡히면 서로가 강탈 수탈 늑탈 억탈 약탈 겁탈의 악순환에 빠져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디모데전서 6:10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악마경제에서 벗어나게 하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음이 곧 하나님의 지혜요 명철이다. 거기서 이웃사랑경제가 나온다. 누구든지 그 지혜와 명철을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구해 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厚(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신다.
“야고보서 1:5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6.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성령의 각성만이 인간에게 이웃사랑의 경제를 깨우치신다. 성령의 각성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통치의 부요를 진정으로 구한다. 성령의 각성을 받은 만큼, 그만큼 갈증 갈급 갈망을 느껴 갈구하게 된다.
[17.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귀가 있는 자들은 들으라 하신다. 성령의 각성이 그만큼 切實(절실)하다. 거기서 기도의 갈망이 나온다. 성령의 각성에서 나오는 갈증,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로 행하는 것, 곧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통치의 부요함의 갈망으로 기도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통치의 부요함을 얻게 된다. 그들은 곧 그 속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을 만나게 되고, 共有(공유)하게 되고 누리게 된다. 인간다운 인간이 된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인간다운 인간이 되면,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완수 완성한다. 그들은 곧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를 받는 경제를 행한다. 참으로 하나님의 기준으로 인간다운 경제행위를 한다. 거기는 결코 어떠한 불의가 없다. 무법 불법 편법 위법 탈법이 없다. 하나님은 그때 비로소 하늘의 아름다운 寶庫(보고)를 여신다. 그 보고는 여러 의미를 담는데, 우리 하나님은 유일무이하신 여호와시고 만물의 창조주시다. 그 보고 안에는 창조에 관한 모든 지식이 그 안에 가득하다. 그 안에 지식들은 하나님의 잣대와 그 저울과 추로만 독해하고 받아 누린다.
“신명기 28:12.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寶庫(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찌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13.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14.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하늘에 아름다운 보고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지도자들만이 악마경제에서 국민을 벗어나게 하고, 하나님의 창조의 지식의 寶庫(보고)를 열게 한다는 말씀이다. 여신다는 의미는 곧 그 잣대와 저울과 추의 공유를 은사로 주심을 의미한다. 누구든지 그 잣대와 저울과 추를 받아 누리면, 그는 각 피조물의 창조 時(시)에 부여한 황금비율을 독해한다. 그 독해력이 향상하면 그 황금비율을 모든 영역에서 찾아내는데 능하게 된다. 거기서 창조경제가 시작된다. 거기서 인간답게 살면서도 부자가 되는 첩경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가난탈출의 첩경이다.
이 첩경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려고 오직 우리 주 예수께로 돌아오지 않고 도리어 인본주의로 가거나 敵(적)그리스도로 행한다. 그 길은 악마경제이다. 그 경제로 들어가면 경제파괴만 있지 성장은 없게 되고, 성장이 없으니 소비만 있게 된다. 결국 탕진하게 되어 심각한 빈곤에 매몰된다. 그 때문에 우리는 성령의 각성에 눈을 떠야 한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통치의 부요함이 곧 경제성장의 유일무이의 첩경인 것을 절실하게 깨달아야 한다. 약육강식의 경제가 아니라 인간다움의 경제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 곧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로 행하는 것에서 부귀와 장구한 재물과 의가 나온다. 그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가 낫고 그 소득은 天銀(천은)보다 낫다. [18.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19.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天銀(천은)보다 나으니라] 거듭 말하지만 하나님 기준의 창조경제는 악마경제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통치를 받는 경제이다. 박근혜式(식)의 창조경제는 무엇일까? 우리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창조경제를 세상에 소개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式(식)의 경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가난을 하나님의 통치의 부요로 극복하게 하신다. 그 통치의 부요로 하나님의 잣대와 그 저울과 추를 공유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황금비율을 얻게 하시고, 창업을 하게 하시고, 그것으로 경제를 일으켜서 성장하게 하신다. 그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의 그 통치하심을 무한히 누려야 대한민국 만세가 된다고 날마다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20.나는 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평한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21.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 가난을 하나님의 통치의 부요로 극복함이다.
세상에는 악마가 있고 그것들의 種子(종자)들은 인간을 가난하게 하고, 그 가난 속에 가둬서 악마의 유혹을 받게 한다. 그것으로 악마의 경제에 埋沒(매몰)되게 한다. 오늘날 선거 때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답시고 무상복지를 내거는 것은 결국 마당에 널어놓은 곡식을 전부다 휩쓸고 가는 폭우와 같은 짓을 하는 것이다. 그들의 목표는 국민을 가난의 악순환에 묶어 두는 것이다. 이는 그들에게서는 창조경제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식의 창조경제만이 모든 機會費用(기회비용)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기회비용이 많아지면 경제를 망하게 할뿐이다.
오늘 본문에서 A poor는 ruwsh{roosh}로 발음하고 그 안에는 to be poor, be in want, lack의 의미를 담으며 the poor은 dal{dal}로 발음하고, 그 안에는 low, poor, weak, thin, one who is low의 의미를 담는다. 오늘 본문의 의미는 악마가 그 가난을 악용함의 의미다. 악마는 지구상에서 모든 것을 악용하고 모든 기회를 악용한다. 악마에게 악용당하는 경제는 악마경제라고 한다. 그것에 악용당하지 않으려면 그리스도의 자유인이 되어야 한다. 그 自由人(자유인)은 그 자신의 욕심과 타인의 욕심에서 벗어나고, 욕심에 당하는 이웃을 구출한다.
그 자유인은 그리스도의 자유인이라 한다. 이는 곧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를 받되 부요하게 받아 행하는 자를 의미한다. 그들이 많아지면 국가는 악마의 경제에서 벗어나게 된다. 악마경제 반역경제 뇌물경제 향응경제 지하경제 탐욕경제 불륜경제 패륜경제에서 벗어나게 한다. 악마의 경제는 가난한 자들이 먹어야 할 穀食(곡식)까지도 휩쓸어가는 暴雨(폭우)와 같은 것이다. 남북의 빨갱이가 북한주민의 경제를 그렇게 망치게 하였다. 개혁개방을 하면 되는데 도리어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려고 남침땅굴을 파고 있다.
수령의 경제는 악마의 경제이다. 남북의 한민족을 도탄에 빠뜨리는 이 경제를 막아내고 도리어 창조경제로 인도하는 지도자들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지도자들을 단숨에 만드시는 권능이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께 있다. 이 땅에 성령의 대 각성이 일어나면 그런 지도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아모스 5:14.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찌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하시리라 15.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찌어다] 성령의 각성이 곧 하나님 선을 구함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16.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모든 광장에서 울겠고 모든 거리에서 오호라 오호라 하겠으며 농부를 불러다가 애곡하게 하며 울음군을 불러다가 울게 할 것이며 17.모든 포도원에서도 울리니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로 지나갈 것임이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너희 가운데로 지나갈 것임이니라!” 성령의 대 각성이다. 성령 각성만이 나라를 살리는 것이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국민의 증가가 오로지 관건이다.
[이사야 66:7.시온은 구로하기 전에 생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자를 낳았으니 8.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뇨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순식간에 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구로하는 즉시에 그 子民(자민)을 順産(순산)하였도다] 성령을 부어주시는 순간부터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국민 가운데 지나가시면 대 회개운동이 일어난다.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통제를 받는 자들이 양산된다. 누구든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품에 안기면 하나님의 통제를 받게 된다. 위대한 지도자가 된다.
[9.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임산케 하였은즉 해산케 아니하겠느냐 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해산케 하는 자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하시니라 10.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다 그와 함께 기뻐하라 다 그와 함께 즐거워하라 그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여 다 그의 기쁨을 인하여 그와 함께 기뻐하라 11.너희가 젖을 빠는 것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을 인하여 즐거워하리라]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통치를 받음에 부요한 자들에게 그 모든 가난을 그 빈곤을 퇴치하게 하시니 즐거움이다.
크나큰 즐거움이다. 하나님의 즐거움이 부어진바 되고, 그 속에 오신 하나님의 즐거움이 솟구친다. 그들은 하나님의 희락으로 희열에 잠긴다. [12.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같이, 그에게 열방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 하나님의 통치로 발생되는 경제는 너무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 그런 통치를 성령의 각성으로 바라보는 자들은 언제나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통치를 구하게 된다. 그 통치가 곧 하나님지혜요 명철이기 때문이다.
[13.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14.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 원수에게 더하리라]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국민 지도자들은 결코 가난을 악용하는 악마와 그 종자들 손에서 영구적으로 벗어난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선거 시마다 나온 모든 공약들이 결국은 나라를 빚더미에 앉힌 결과만 나온 것이다. 미래세대에 엄청난 짐을 떠넘기는 것이고, 가난한 이들이 도저히 부자가 될 수 없게 하는 짓이다.
곧 총선과 대선이 다가오고 있다. 또 가난한 자들을 서민을 惡用(악용)하려는 음모가 있다. 속으면 당하고 그 표를 빼앗겨서 남북의 빨갱이들 그 폭우들을 선출하고, 도리어 모든 가난빈곤에 매몰당하게 된다. 이제 다시는 그들에게 정권을 내주지 말자! 그것에 속지 않으려면 우리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통치에 부요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요한계시록 3:18.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眼藥(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인간이 하나님의 기준의 진정한 부자가 되려면 오직 예수님을 모시고 그 안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19.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 대통령이 꿈꾸는 자유통일대박과 창조경제로 이르는 길은 유일무이하다. 그 길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만이 첩경이다. 성령각성으로 그 길로 邁進(매진)하자.
<구국기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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