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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등초> 1
Korea, Republic of 북한군 1 2567 2014-12-22 19:05:09

제1회 북한인권문학상 수상작


등초


봄바람이 기승을 부렸다. 얼마나 지독한지 백두산 정상에서 시작해 산자락을 거치면서 뿌연 먼지를 동반할 때면 앞뒤분간조차도 어렵다. 엄혹한 자연의 실태에 방풍림과 같은 바람막이가 없으면 부식토와 씨앗은 송두리째 날아가고 농사포전은 사막처럼 메말라 버리는 곳이 바로 척박한 이 땅의 특징이다.


해만 뜨면 시작해 별이 뜨는 밤에서야 그 자태를 움츠리는 반갑지 않는 불청객, 하지만 이 천방지축도 해마다 5월23일이 오면 마치 정해준 순리마냥 서리 맞은 호박잎처럼 되어버렸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우리고장의 서북계절풍을 두고 어떤 이들은 농본 기를 알리는 전주곡이라고도 했고 어떤 토박이들은 신호탄이라고도 불렀다. 암튼 이 기간이면 농부든 직장인이든 이 땅에 모여 사는 모두가 떨쳐나서야했다.

부지깽이도 뛰어야 하는 천하지대본의 시기라 노동당은 이 적기만 되면 발등에 불이라도 달린 것처럼 사람들을 마소와 같이 몰아붙였다. 남녀노소는 물론 어린이든 사병이든 그 누구도 가리지 않았다. 제외대상이라면 오직 하나 당, 정권, 군부, 법(안전, 보위)기관에 종사하는 노동당간부들과 그 추종세력들뿐이었다.


이 날도 나는 허기진 배를 끌어안고 삽을 멘 어깨를 들썩거리며 포전으로 향했다. 집 쌀독은 거미줄이 쓸어 초근목피로 끼니를 에우고 있는지도 벌써 보름을 넘었다. 태어나서 부터 시작된 식의주문제해결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졌고 그로 인해 사람들의 의욕은 떨어 질대로 떨어졌다.


여기저기에서 농부의 근본을 어기고 땅 속에 파묻힌 종자는 물론 먹을 것이라면 닥치는 대로 집어가는 판이었다. 심지어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인육을 먹고 파는 기이한 일까지 자행되었다. 갈수록 깊어가는 가난의 대물림에 기아는 우리들의 생존권을 시시각각으로 위협했다.


이대로 굶어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은 가장인 나의 어깨를 그대로 짓눌렀다. 어떤 뾰족한 수든, 네모난 수든 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난 집에 기름을 붓 듯 내 앞으로는 화가 쌍이 되어 덮쳐들었다.


오전 10시 경, 농부라면 또는 직장인이라면 너나없이 벅적이는 작업반포전으로 소위 초급지휘성원이며 유급이라는 반장이 나타났다. 그는 상기된 벌건 얼굴을 흥분으로 채우며 나를 보고 담당경찰관이 찾는다는 것이었다.


반장의 옆에는 겉보기에도 아주 투박해 보이는 북한군소좌가 뒤짐을 쥐고 건방을 떨고 있었다. 질근질근 껌을 씹으며 군 장성들이 입고 다니는 색다른 외투에 붙은 벙거지 모자를 뒤집어쓰고 주변을 응시하는 그의 눈초리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매서웠다. 주변 환경과 너무나 대조적인 그의 행동과 자세는 상대를 무시하는 전형적인 조폭의 모습을 그대로 연상시켰다.


반장의 때 아닌 출몰과 괴이한 소좌의 행동으로 이상한 혹성에 불시착한 것처럼 나의 마음은 불안하기 시작했다. 젊은 제대군인들로 조직된 노동자규찰대원 3명도 그와 함께 동행 했다.


나는 그들을 따라 포전을 나섰다. 이 동네에서만큼은 법기관의 하수인들로서 절대 권력이라고 자처하는 규찰대원들까지 대동한 마당이어 사태의 엄중성파악을 위해서는 그들을 따라가야 했다. 착잡한 심정은 온 몸을 향해 긴장과 공포를 몰고 왔다.


그들은 병아리를 품은 암탉처럼 나를 에어 싸고 담당보안원(경찰관)의 집무실로 향했다. 마당에는 소련산 <우아즈>라고 하는 지프 형 차가 굶주린 호랑이마냥 입을 벌리고 서있었다. 차의 번호는 군부대호칭이었다.


반장이 지적과는 달리 담당경찰관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차 조수석에서 사복을 입은 40대의 사내가 내 앞으로 묵직한 몸집을 들어내며 다가왔다. 그는 나와의 거리가 좁혀지자 입에 개 거품을 물며 신 것 같은 동작으로 허리춤에서 수갑을 꺼내들었다.


전혀 생각지 않았던 돌발 상황이었다. 수갑을 보는 순간, 눈앞은 아찔했다. 생각과 감정, 경직에 가까웠던 몸은 두려움으로 완전히 얼어붙었고 겉모습만 단지 인간을 형상하고 있었다. 졸지에 식은땀이 등골을 향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나를 연행했던 소좌와 또 다른 북한군대위가 양팔을 숙련된 동작으로 저지시켰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가 보태지 않고 전문훈련을 받은 프로에 가까웠다. 그 치밀함에 산전수전을 다 겪은 나 자신도 놀랐다. 역대군대를 구별 짓는 세 가지 요소인 훈련, 기강, 사기가 박진감 넘치는 그들의 기질에 그대로 묻어있었다. 특히 사기 하나는 호랑이를 잡은 포수마냥 기고만장했다.


“당신을 불법월경(밀수)혐의로 체포한다.”


결국 터졌다. 법기관의 체포, 숙명처럼 이 몸을 휘감아 오던 쇠사슬이었다. 바라지 않던 안타까운 현실에 나의 머리는 이미 정상과 광기의 구분조차 모호해졌다. 하지만 벌레도 밟으면 꿈틀거리는 법이다. 신상의 위협에 동물적인 감각이 절로 튀어나왔다.


“왜 그러십니까? 나에겐 죄가 없습니다.”


“개소리 치갔어? 빌어먹을 자식!!!!”


볼 사나운 광대뼈의 사복을 입은 사내가 수갑으로 뺨을 후려갈겼다. 정신, 육체적 긴장의 방심으로부터 나는 미처 그 타격을 피하지 못했다. 포물선을 그리며 육박의 총창으로 돌변한 수갑의 이가 오른쪽 이마에서 쌀알 크기의 살점을 앗아갔다. 때를 맞추어 뒤에 포진되어있던 장교 두 명은 독수리가 병아리를 덮치듯 뒷무릎을 군화발로 꺾었다.


“야! 이 000들아!!!”


나는 발버둥을 쳤다.


“여! 부과장!! 그 새끼의 척추를 분질러 버려!!!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알았습니다. 부장동지!!”


약삭빠른 소좌의 대답이었다. 그러나 죽음의 문턱에 직면한 인간의 최후발악도 만만치는 않았다.


“우리공화국법이 죽이지 못해 살려주었더니 개 같은 놈이 그 새 많이 자랐는데? 인간이기를 포기한 새끼!!! 아직도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겠는가?”


부장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잠시 당황했던 소좌와 대위가 배와 허리, 팔과 무릎, 얼굴과 목을 비롯하여 드러난 모든 육체를 향해 살인적인 공격을 들이댔다. 스피드와 힘을 동반한 그 파워에는 인정사정이 따로 없었다.


순시 간에 코와 입에서 피가 분수처럼 내 뿜었다. 이어 입술과 볼을 비롯한 육부의 여기저기가 고무풍선처럼 불어났다. 샌드백에 가까운 무방비의 육체는 내남없이 파김치처럼 늘어졌다.


숨 돌릴 틈조차 주지 않는 상황에 안개가 낀 듯 희뿌연 해지는 시야로 수천, 수만 개의 불꽃이 번개처럼 스쳐지나갔다. 왼쪽에서 담금질을 하던 멀쩡한 허우대의 대위가 권총손잡이로 끝내 나의 정수리를 내리찍었던 것이다.


“그러게 왜 까불고 있어? 우리가 왼뺨을 치면 조용히 알아서 오른뺨을 대란 말이야!! 이 미난(우둔한)자식아!!”


한계의 바닥을 드러내는 무의식 속에 쟁쟁히 들려오는 부장의 목소리였다. 먼지가 자욱한 담당경찰관의 집무실마당은 피와 부러진 이, 살점으로 얼룩졌고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한 30대 청춘의 육체는 넋을 잃고 나무토막처럼 넘어갔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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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복 ip1 2014-12-23 01:49:49
    영화 보는 듯 잘 썼네요.
    연재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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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섰어요 ip2 2014-12-23 15:01:40
    잘 썼어요.

    자칭작가라고 하는분이 이것을 좀 보아야 하는데 진짜 작가는 자신을 낮추는데 어디서 북한식 아첨글만 쓰는자가 자칭 작가라 하니 참 한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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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문장 ip3 2014-12-24 01:30:28
    글을 너무 잘쓰셨습니다. 북한에서 살았지만 저리도 험악한 곳일줄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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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52634921 ip4 2014-12-31 16:31:36
    2013년에 중국국적을하려는생각접어두고 자본주의나라로망명신청할려하는데 2014년초에 태국에서 국경선감시가 강화됐다는데 지금풀렸는지? 아니면어찌된건지 아는분있어요? 그리고 저한테공민증같은거 없는데 어렸을때 도강했습니다. 자기를증명할것이없는데 그러면자기가무조건북한사람이란 네글자로 뭘증명할수있는지 어떤것을준비해야되는지 좀알려주세요? 김일성노래한곡예쁘게불러줘야될까 장백산줄기줄기피어린자욱 압록강 굽이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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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중사 ip5 2014-12-31 22:20:00
    악질반동적인 보위부.인민보안원.수용소 관계자및 인간이기를 포기한 새끼들의 명단을

    지속적인 증언을 통해 자료를 모아 통일이 되면 철저히 보복할수있는 해야한다.북한에

    서 구타에 몸서리친 탈북자의 증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다같이 동참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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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my ip6 2015-01-29 17:40:39
    내 이웃에게 피눈물 나게 하는 언행은 복수에 복수를 부른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고 대한민국이 힘이 없어 그동안 얻어 맞은 줄 아세요, 전쟁이 무서워 피하는 것 아니에요, 견제할 중국과 일본이 있고 어떻게 하면 다시금 동족 끼리 피 흘리는 일 없이 통일하는 어려운 숙제 이기에 기다리고 심사숙고 하는 겁니다. 악질 반동 그거 외치면 통일 되더라도 깊은 상처만 남습니다.지금 못된 짓 하는 인간들 대한민국 법에 맡기고 열심히 일하고 북한 인권 운동 하면서 차분히 통일을 준비 합시다. 그리운 고향 가셔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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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hctktma ip7 2015-01-07 16:04:30
    산 증인으로서의 가슴아픈 사연을 담은 글을 잘 읽었습니다.
    죽음의 소굴에서 용케 살아나 이렇게 대한민국의 품에 안겨 삶의 자유를 만끽하며 인간생지옥에서의 지나온 삶을 회유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님의 앞길을 응원합니다. 앞으로 더 좋은 글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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