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눈석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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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1986년에 제작된 조선예술영화 "봄날의 눈석이"는 일본의 조총련계 젊은 남녀가 북한을 조국으로 알아가면서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러브스토리입니다. 당시 18세인 저는 평양의 ‘철도안전국’(남한의 철도경찰대) 노동자로 근무했지요. 주 업무는 안전원들의 편의를 보장해주는 후방부처에서 건물관리를 했습니다. 어느 날, 본부강당에서 상영한 이 영화를 보았는데 무척 놀랐습니다. 일본의 도시 모습이 화면에 나오고, 멋진 남녀가 자가용을 타고 도쿄거리를 달리니 말이죠. 폐쇄적인 북한사회에서 영상으로나마 황홀한 외국의 거리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이며 외부세계가 궁금했던 제 마음에 기름을 퍼부었답니다. 평양에서 외국에 친인척이 없는 일반시민이 자가용승용차를 운전하며 시내를 달린다는 것은 정말이지 영화나 소설에서도 찾기 어려운 일이지요. 당시 철도안전국장(소장 편제)은 1600cc 일본산 소형승용차, 상급기관의 백학림 사회안전부장(차수 편제)은 2500cc 독일산 벤츠를 탔는데 정말 부러웠습니다. 그때 저는 한 달에 쌀 15kg, 두부 2모, 기름 1병, 물고기 3마리, 비누 2장, 담배 10갑을 김정일의 배려로 받았으니 일반 시민들에 비해 충성심이 상당히 높았었습니다. 그때로부터 29년이 지난 오늘, 저는 이땅에서 대통령을 내손으로 선출하고 비판하는 자유민주주의를 만끽하며 가고 싶은 어디든 아무 때나 자유롭게 다녀옵니다. 세끼 쌀밥을 접하며, 고기는 살찔까봐 적당히 먹고, 수십 가지 부식물을 골라서 먹지요. 최소한 밥이 없어 배고픈 걱정, 옷이 없어 추워할 걱정은 모르고 삽니다. 평양과 서울에서 살아보니, 사람은 좋은 나라에서 태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령이 주인인 사회주의보다는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가 훨씬 낫습니다. 김정은이 버린 우리들입니다. 북한에서 너무나 춥고 배고파 뛰쳐나왔건만, 길가의 돌마냥 아무 쓸모없는 우리를 세계 어느 나라, 누구도 반기지 않았습니다. 오직... 대한민국 정부만이 따뜻한 구원의 손길로 우리의 손을 잡아주었지요. 눈에 흙이 들어가도 그 사랑, 그 은혜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 림 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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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보시죠~
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lW_3JCnXtVs
내가 잘 몰라서 하는 소리이지만...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만.
잘 읽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