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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할 때의 경험(2)
리중건 2 524 2006-04-05 22:28:28
제일 어려운 탈북노정은 북한국경

탈북자 하면 탈동독인에 비교하기 쉽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탈북자들은 탈동독인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회적, 지리적으로 탈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잡히면 죽고나 처형당할 확률이 훨씬 더 높을 뿐만 아니라 설사 탈북에 성공했다고 해도 남은 가족까지 연좌제 처벌하는 것이 북한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완화되었다고 하나 그것은 탈북자가 너무 많아 어쩔 수 없는 현상일 뿐 근본태도가 변한 것이 아니다.

지리적으로도 동독보다 탈북하기 매우 어렵다. 동서남북 탈북노정을 보면 남쪽은 반세기동안 북 과 남이 총력을 들여 쌓아올린 군사분계선 장벽이 있으며, 동쪽과 서쪽은 바다가 놓여있다. 비교적 탈북하기 유리하다는 북쪽도 그리 만만치는 않다. 이곳에는 조국에서 제일 긴 압록강, 두만강이 가로 흐르고, 제일 높은 백두산 밀림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선을 넘는다고 해서 탈북이 성공한 것이 아니다.

넓고 넓은 중국대륙이라는 조건도 있지만 더욱 어려운 것은 체포 북송하는 중국정부이기 때문이다. 이를 피해 남쪽으로,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또 공산당의 나라 베트남이 나타난다. 그 밖 지역은 열대의 정글들이어서 넘어갈 엄두로 내기 힘든 지역들이다. 설상가상으로 유일한 자유국가였던 홍콩인지 콩알 인지하는 小國 마저 중국에 반환됐다. 이러한 사회적 지리적 조건 때문에 탈 동독인들처럼 대량 탈북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현재 수 만 명의 탈북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북한내부사정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러시아 벌목공처럼 해외에 나갔다가 탈북 하는 것보다 국내에서 탈북 하는 것은 시작부터 어렵다. 북한국경지대는 ‘특별여행증’ 없이는 갈 수 없다. ‘특별여행증‘ 없이 나타나면 탈북 의도자로 체포당한다. 일단 국경지역에 가기가 쉽지 않은데다가 국경을 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러기에 탈북 전 과정에서 가장 긴장한 때는 북한국경을 넘을 때라고 말한다. 잡히면 무서운 처형이 기다리고 또 가장 경비가 심하다. 북한국경을 넘어 중국에 가면 그 것의 경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탈냉전이후 북한당국은 군사분계선보다 더 경계하는 것이 조, 중 국경이다. 탈북자를 막고 또 외부사상 유입을 막기 위해 무력을 수배나 증강하였다. 군견과 실탄이 지급됐고 불응하면 현장사살을 명령한 상태이다.

죽어서도 천시 받는 탈북자

나 역시 탈북 방향을 북쪽의 국경선인 압록강 쪽으로 잡았다. 북한 국경경비대의 총기사용과 군견추적을 피하려 한 밤중에 벼랑을 타고 내려갔다. 이 벼랑장소는 죽은 귀신이 나온다고 누구나 기피하는 곳이다. 차가 탈선하여 떨어져 십여 명이 죽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일부로 나는 이 장소를 탈북 길로 택하였다. 압록강을 건널 때에는 신속한 탈출을 위해 신발을 신은 채로 헤엄쳤는데, 오히려 신발 때문에 빠른 물살에 휘말려 죽을 번하였다. 내가 여자 또는 어린이나 노인 탈북자였다면 물에 빠져죽었을 것이다.

장정인 나는 살았지만 이렇게 강을 넘다 죽은 탈북자들이 많다는 것은 훗날 탈북자 지원 단체들의 녹화자료에서 확인하였다. 이렇게 죽어서도 탈북자는 천시를 받는다. 중국 쪽에 시체가 걸리면 막대기로 하고 떠민다. 북한 쪽에서도 시끄럽다고 다시 중국 쪽으로 시체를 떠민다.

중국에서 체포당하다

압록강의 북한 국경을 넘으면 이제는 살았구나! 했는데, 그만 뜻밖에도 체포되었다. 그것도 탈북 하루 만에 날카로운 북한 경비대가 아닌 허술하게 본 중국변방대에 붙잡힌 것이다. 붙잡힌 장소는 길림성 장백현 장백 시 거리에서였다. 막상 탈북 하여 외국에 나와 보니 어떻게 할지 막막하고 당황하였다. 이렇게 방황하는 수상하게 본 사복변방대원 두 명이 나를 단속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사회 망나니겠지 하고 끌려갔지만 경비대 초소가 나타나자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잡히면 죽는 다는 각오는 하였지만 실제 닥치고 보니 그 것도 감상일 뿐 그 참담한 심정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체포되는 순간부터는 너무나 혼이 빠져 이름도 무엇도 속일 줄도 모르고 대라는 대로 대는 벙벙한 상태였다. 그 속에서도 막연히 탈출해야 산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주위에는 군인들이 득실거리는 병영이다. 탈출기회는 경비대 병영에서 군용지프로 감옥으로 호송할 때였다. 달리는 차 문을 열고 도망하려 하였다. 그러나 북한 지프와 중국지프의 차 문고리가 달라 어떻게 열지 몰라 망설이던 중 벌써 감옥에 도착하여 모험 할 기회마저 놓쳐 버렸다. 북송되면 죽는다고 통사정하면 혹시 감옥에 가기 전에 놔줄지도 모르겠지만 혼이 빠져서인지 그 냥 끌려 다니기만 하였다.

탈북 하루 만에 어이없이 잡힌 것은 그만큼 개방개혁 된 중국은 별일 없겠지 하고 방심한데도 있지만 그 보다는 중국에서의 경험이 없는 대가였다. 난생처음 찬 수갑은 중국제이고 감옥도 중국감옥이다. 장백 시에 있는 탈북자 수용 감옥은 시 외 각에 4m 높이의 시멘트벽과 철조망 친 울타리 안에 있었다. 중국은 유엔난민 법(UNHCR)을 무시하고 탈북자들을 잡으면 북송하는 것이 관례이며 독선이다. 탈북자인 나를 조사하는 과정 중국 변방대는 전기 침과 전기곤봉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훗날 북한감옥에선 고문 설비의 낙후 때문인지 전기 침이나 곤봉 세례를 받은 적은 없었다.



중국 경비대에 의해 체포된 나는 길림성 장백현 장백시 외국인 감옥소에 수감되었다가 북한 혜산 시와 연결된 압록강의 를 거쳐 북송 되었다. 그러나 이 다리는 조선과 중국 공산당 정부끼리 이지 탈북자에게서는 죽음의 다리였다.

북송 전에 중국군 장교(조선족)에게 간절히 매달려 북한에 넘기지 말아달라고 사정해도 아무 소용없었다. 감옥 안에서 항의하니 여러 군인들이 전기곤봉으로 뭇매를 가하여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한 밤중에 깨여나 보니 병원이었는데 자국에서 죽는 탈북자처리가 싫어서인지 즉시 북송 조치하였다.

호송 차에 실려 북한 국경초소에 이르니 자동보총(AK소총)을 든 북한군인은 나를 보자마자 날카로운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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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다가 2006-04-06 11:33:45
    정말 가슴이 아픔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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