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화일보) 게재 일자 : 2016년 08월 19일(金) 안찬일 ㈔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최근 ‘고위(高位) 엘리트 탈북자’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달 대한민국으로 망명해 온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외에도 지난달 초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근무하던 김철성 3등 서기관을 비롯해 올 들어서만 최소 7명의 북한 외교관이 탈북했다. 외교관뿐만이 아니다. 군과 정보기관 관계자, 그리고 수학 올림피아드 입상 경력을 가진 영재 소년 등 북한 엘리트층의 탈북이 줄을 잇고 있다. 과거엔 생존을 위한 ‘생계형 탈북’이 많았다. 그러나 이젠 생활 여건, 삶의 질을 생각하는 ‘이민형 탈북’이 늘어나고 있다. 현재 한국으로 온 탈북자는 이미 2만9000명을 넘어섰으며, 이 추세대로면 조만간 3만 명을 넘어설 것이다. 탈북자의 구성도 매우 다양해졌다.‘빨치산 가문’도 탈북 대열에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질 정도다. 이제 남은 것은 ‘만경대 가문’ 출신 정도다. 만경대 가문마저 탈북 행렬에 동참하면 그날은 김정은 체제 ‘최후의 날’이 될 것이다. 과거 빨치산 가문이 과오를 범하면 혁명화를 바로 보냈지만, 만경대 가문만은 그것을 덮어줄 정도로 그들은 특권을 누리며 살아왔다. 김정은은 현재 외교관 가족들을 모두 평양으로 소환하며 그들의 탈북을 방지하고자 고육책을 총동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임시방편이 될 수밖에 없다. 이같이 북한 엘리트층마저도 북한 체제에 등을 돌리는 것은 단순히 자녀 교육을 잘 시켜 보자는 근시안적 발상이 가져다준 단순한 결단이 아니다. 이제 김정은 정권에는 희망이 사라지고 곧 평양 정권은 침몰할 수밖에 없다는 절망이 그들의 최후의 선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북한은 주체사상의 나라라고 하지만 외화가 없으면 얼마 못 가는 ‘한시적 정권’이다. 그동안 이걸 몰라서 모두를 우왕좌왕했는가? 그것 역시 아니다. 빤히 알면서도 모두 손 놓고 구호만 외친 것이다. 고위층의 잇단 탈북이 북한 정권 엘리트들에게 주는 임펙트는 계량하기 어렵다. 어제 노동당 국제비서 황장엽 선생이 망명하고 오늘 태영호 공사가 망명을 선택했다면 내일은 장승길 주이집트 대사처럼 어느 나라 주재 북한 대사가 대한민국을 선택하게 될지도 모른다. 김정은도, 노동당도 그것을 가로막을 힘을 상실한 지 오래다. 북한에서 일단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여권을 휴대한 주민이라면 ‘탈북면허’ 소지자다. 그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탈북해 자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량 탈북은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하고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을 때 시작됐다. 죽음을 각오하고 국경을 넘는 탈북자들의 앞길을 가로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시 김정일은 통제 불능 의 북한 체제에서 이른바 ‘불평분자’들이 떠나는 것을 내심 환영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난민 관리형’ 탈북자 정책으로는 계속되는 북한 엘리트층의 탈북을 수용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8·15 경축사에서 언급한 대로, 김정은과 그 최측근을 제외한 북한 간부와 주민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차별과 불이익도 없이 동등하게 대우받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제 전문 지식과 경험을 가진 북한 탈북자들을 ‘통일 역량’으로 묶어내고 적극 활용할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러지 않고 탈북 산부인과 의사가 빌딩 청소하다 추락사하는 것과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게 해선 안 된다. 이제 탈북자들은 보호 대상이나 부담이 아니라, 국가 역량으로 재평가돼야 한다. 그래야 통일로 다가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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