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을 진감하는 아리랑함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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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슈퍼리그 중국축구의 얘기다. 개혁, 개방 이후 눈부신 경제성장과 부를 창조하며 역대 전문가들의 기존관념마저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 중국은 오늘날, 미국과 더불어 세계경제의 양대 산맥을 형성했다. 그러나 스포츠문화, 특히는 축구에서만큼은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아시아에서조차 축구의 변방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국이 시진핑주석이 대두하고부터는 그 차원이 달라졌다. 경제대국에 걸 맞는 투자로 세계축구계를 한 손아귀에 장악하려하고 있다. 정치적 위정자들과 경제의 부자들이 주를 이루어 워낙 민족배타의식이 강한 한족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56개의 소수민족들은 늘 축구에서만큼은 여태 얼굴조차 내밀지 못했다. 유독 연변조선족들만이 유일하게 발버둥을 쳤었다. 사실, 그들의 운명은 2년 전까지만 해도 죽느냐, 사느냐는 갈림길에서 우왕좌왕하던 바람 앞의 등불 이었다. 조선족 사회전체가 이런 한심한 팀을 향해 손을 놓았고 낙동강 오리알 취급만 하려 했다. 기뻐하는 것은 한족들뿐, 안타까움에 발만 동동 구른 축구애호가들은 있어도 그들을 구원해 줄 따뜻한 은인은 없었다. 이러한 와중에 비약의 무지개와도 같은 획기적인 일이 터졌다. 한국인 박태하감독이 동포애의 뜨거운 정을 안고 쓰러져도 몇 번은 더 쓰러졌을 연변 팀의 재기를 시도했던 것이다. 시즌 초반의 우려를 불식시키며 박태하감독은 허약한 연변 팀을 상대로 지난 1년8개월간을 분위기 급반전으로 성공의 기관차를 거침없이 몰아갔다. 지난해 리그 우승으로 1부 리그인 슈퍼리그에 전격 복귀했고 지난 7월에는 홈에서 4승 1무라는 새 역사를 써내며 일찌감치 슈퍼리그 잔류에 청신호를 켰고 말았다. 2016년 7월 30일, 연변 팀은 올해 중국축구 슈퍼리그 제20라운드 홈경기에서 전국슈퍼리그 팀 중 강팀으로 불리는 산둥 루넝을 2대 1로 기분 좋게 격파하면서 축구는 돈으로만 하는 것이 아님을 만방에 알렸다. 경기 후 "태산석간"의 기자 좌해토(左海?)는 '루넝이여 연변 팀을 배워라, 신앙이 뭔지 알려 줄 것이다'라는 제목으로 연변 팀에 자신의 견해를 이렇게 피력했다. “어떤 사람들은 조선족 선수를 주체로 세 명의 한국 용병이 있는 연변 팀의 강점은 쉼 없이 뛰는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 관점을 찬성하지 않는다. 다 같은 동아시아인이고 모두 다 두 다리로 하나의 공을 쫓는데 누가 누구보다 더 강하단 말인가? 누구나 힘들다. 하지만 경기 자세에서 연변 팀은 생명으로 전투를 치르고 투지도 충만되여 있다. 연변 팀 용사들에게는 승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헌신하려는 그런 정신이 있다. 경기종료 휘슬이 울리기전까지 그 누구도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경기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부덕용사 대부분이 그대로 그라운드에 쓰러진다.” 그렇다. 기자의 말대로 정신력이었다. 그 어느 민족도 가질 수 없는 만신창이가 되어서도 다시 일어나 발을 추켜들고 상대의 문전으로 공을 날리고서야 쓰러질 우리민족의 그 정신력에 돈으로 도배되고 세계거물급 스타들이 즐비한 명문구단들이 하나하나 무너졌다. 이런 정신력이 있었기에 연변 팀은 상하이 선화, 장수 쑤닝, 광저우 부리, 산둥 루넝과 같은 중국 슈퍼리그의 최강팀을 차례로 꺾었고 괴물 광저우 헝다와도 비길 수 있었던 것이다. 연변 팀은 국내 슈퍼리그 중에 투입이 가장 적고 몸값이 가장 낮은 서민구단이라고 한다. 5명 외적용병 몸값을 합쳐도 산둥 루넝에서 요즘 영입한 펠레의 몸값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다.
그들은 돈을 적게 받는다, 돈이 없다, 구단자체가 경제상 어렵다. 이는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다. 승리한 것만큼 상금도 두둑하고 슈퍼리그 정상에다 아시아챔피언리그까지 참가한다면 이보다 더 완벽한 것이 있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돈은 많은데 투혼이 따라서지 못하는 바로 현 중국축구의 고질병은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고향과 자기민족자치구를 지키려는 충정의 마음과 한족에게만큼은 절대로 굴복하지 않으려는 민족의 자존심에 바탕을 둔 연변 팀의 전술은 언제나 간단하지만 명확하고 확실했다. 그래서 승점 30점 이상이어야 슈퍼리그 잔류가 확실시 되는 1부 리그에서 연변축구는 지금 잔류의 9부 능선을 넘었다. 박태하 감독은 선수들에게 늘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항상 초심으로 남은 매 경기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연변 팀은 잔류만이 아닌 더 높은 곳을 향해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오늘도 박태하감독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선수들의 사기만큼이나 중국조선족동포사회도 장난이 아니다. 홈에서 열릴 때마다 2만 명의 팬이 모여드는 것은 기본이고 그날만큼은 연길의 모든 식당들에서 맥주는 무상공급이라고 한다. 거기에 원정길에 따라나선 팬들의 뒤에는 언제나 아리랑의 함성이 울려 퍼져 세인을 감동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한족들에겐 눈엣가시로 승승장구하는 조선족 연변축구, 그들의 발전을 보면서 북한의 축구를 떠올리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연변축구단에는 북한의 명문구단인 기관차축구단에서 킬러 두 명이 용병으로 기용되어있었다. 헌데 올해 8월에 연변땅을 밟은 기관차축구단의 처지는 말이 아니다. 누구하나 반겨주는 사람이 없다. 하도 불쌍하게 여겨 연변축구팀의 2부 리그가 평가전을 치루는 것으로 불편한 손님을 맞이했다. 아시아축구계에서조차 북한국가축구팀이 변방으로 분리된 마당에 그들리그의 운명은 이렇듯 보지 않아도 비디오인 것이다. 오늘날 북한의 축구가 만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최하위에서 얼정거리는 것은 다름 아닌 독재를 핵과 미사일로 영구화하려는 지도부의 의지력에 그 원인을 두고 있다.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8강의 신화를 썼던 북한의 축구는 김일성의 우상화를 기정사실화하려는 김정일의 음모에 의해 갑산파의 박금철, 이효순이 반당, 반혁명종파로 낙인되어 제거되면서 내리막 길의 시초를 열게 되었다. 당시 그들이 북한의 축구를 장악하고 아시아를 제패한 다음, 세계를 호령하려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축구인재육성은 가시밭 길을 걷게 되었고 투자는 축구가 아닌 엉뚱한 곳, 문화예술계로 흘러들어갔다. 선수들의 정치사상학습이 훈련 위에 군림해 그들의 정신, 육체적 고통은 기술향상의 한계만 불러왔다. 독재정권의 사고방식으로는 좁아질 것 같던 세계화의 격차를 점점 넓게 만들어 놓은 꼴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났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북한의 축구가 발전하는 다른 길은 없다. 개혁, 개방의 급물살로 축구계를 오픈한다면 아마도 중국조선족들 못지않게 또다시 그때의 괴력을 과시할 것이다. 민족의 동질성으로 놓고 보아도 결코 뒤지지 않을 그 힘, 아리랑의 함성이 남북한, 그리고 중국조선족들과 함께 이 행성위에서 더 높이 울려퍼질 그 역사적순간을 기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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