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자 분이 올린 주소창이 뜨지 않아서 내가 보도내용을 복사하여 다시 올립니다 참고하시고 도움줄실 분 성심성의껏 도와주십시요 처지가 참 딱하네요,
사회사목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삶이 버겁지만 다섯 아이의 엄마기에…다섯 자녀 둔 탈북민 김은진씨, 중국에서 자녀 데려오며 빚더미
2016. 10. 16발행 [1385호]
다섯 자녀 둔 탈북민 김은진씨, 중국에서 자녀 데려오며 빚더미
▲ 다섯 아이가 복닥복닥 지내는 김은진씨의 집은 잠시도 조용할 틈이 없다. 하지만 아이들이 있어 김씨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김은진씨 제공
한국생활 4년 차인 탈북민 김은진(36)씨는 아직도 지난해 1월을 잊지 못한다. 중국에 두고 온 아이들을 만나러 간 날이었다.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숨어 살던 김씨는 중국인 남편을 만나 아이를 3명 낳았다. 먼저 자리를 잡고 아이들을 데려올 생각에 한국 땅을 밟은 뒤 아이들을 보러 간 길이었다.
“중국에서 친할아버지와 잘 지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이들 얼굴을 보니 도저히 사람의 몰골이 아니더라고요.”
2년 만에 만난 아이들의 얼굴에는 땟국물이 가득했다. 머리는 잔뜩 떡이 지고, 한겨울이었는데도 발가락이 다 보일 정도로 해진 신발을 신고 있었다. 친할아버지가 아이들을 제대로 돌봐주지 않아 열살 남짓한 아이들이 밖에서 음식을 훔쳐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눈물도 안 나오더라고요. ‘무조건 아이들을 데려와야겠다’라는 생각뿐이었어요.”
김씨는 한국에 돌아와 아이들을 데리고 올 비용을 마련하려고 애썼다. 닥치는 대로 일도 해보고 여기저기 돈을 빌려도 봤지만 도저히 아이들을 데려올 비용을 맞추기 어려웠다. 결국 김씨는 높은 이자율을 감수하고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다. 그때 진 빚이 지금까지 김씨를 괴롭히고 있다.
그사이 아이 두 명이 더 태어났다. 남편은 중국과 한국을 왔다 갔다 하며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어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6개월 된 막내를 돌보느라 일을 하지 못하는 김씨는 기초생활수급비만으로 여섯 식구의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한창 돈이 들어갈 데가 많은 나이의 아이들이라 먹고 살기도 팍팍하다. 중국에서 아이들을 데려오면서 진 빚은 손도 못 대고 있다.
“주위에서는 그런 이야기도 많이 해요. 눈 한 번 딱 감고 쉽게 돈 벌어보는 게 어떠냐고. 하지만 저는 땀 흘려서 정직하게 벌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거든요.”
유흥업소에서 일해 보라는 유혹에도 김씨는 꿋꿋하게 인력사무소에 나갔다. 지금은 막내딸을 돌보느라 집을 비울 수가 없지만 아이가 크면 중국어 실력을 활용해 장사를 해보겠다는 꿈도 꾸고 있다. 김씨는 중국에서 사는 동안 언어를 익혀 중국어로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다.
김씨의 바람은 딱 하나다.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크는 것이다. “둘째 딸(11)이 태어날 때부터 사시였는데 제대로 병원 한 번 못 가봤어요. 사시 교정 수술이 있다는데 그걸 받아서 고칠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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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목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삶이 버겁지만 다섯 아이의 엄마기에…다섯 자녀 둔 탈북민 김은진씨, 중국에서 자녀 데려오며 빚더미
2016. 10. 16발행 [1385호]
다섯 자녀 둔 탈북민 김은진씨, 중국에서 자녀 데려오며 빚더미
▲ 다섯 아이가 복닥복닥 지내는 김은진씨의 집은 잠시도 조용할 틈이 없다. 하지만 아이들이 있어 김씨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김은진씨 제공
한국생활 4년 차인 탈북민 김은진(36)씨는 아직도 지난해 1월을 잊지 못한다. 중국에 두고 온 아이들을 만나러 간 날이었다.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숨어 살던 김씨는 중국인 남편을 만나 아이를 3명 낳았다. 먼저 자리를 잡고 아이들을 데려올 생각에 한국 땅을 밟은 뒤 아이들을 보러 간 길이었다.
“중국에서 친할아버지와 잘 지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이들 얼굴을 보니 도저히 사람의 몰골이 아니더라고요.”
2년 만에 만난 아이들의 얼굴에는 땟국물이 가득했다. 머리는 잔뜩 떡이 지고, 한겨울이었는데도 발가락이 다 보일 정도로 해진 신발을 신고 있었다. 친할아버지가 아이들을 제대로 돌봐주지 않아 열살 남짓한 아이들이 밖에서 음식을 훔쳐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눈물도 안 나오더라고요. ‘무조건 아이들을 데려와야겠다’라는 생각뿐이었어요.”
김씨는 한국에 돌아와 아이들을 데리고 올 비용을 마련하려고 애썼다. 닥치는 대로 일도 해보고 여기저기 돈을 빌려도 봤지만 도저히 아이들을 데려올 비용을 맞추기 어려웠다. 결국 김씨는 높은 이자율을 감수하고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다. 그때 진 빚이 지금까지 김씨를 괴롭히고 있다.
그사이 아이 두 명이 더 태어났다. 남편은 중국과 한국을 왔다 갔다 하며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어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6개월 된 막내를 돌보느라 일을 하지 못하는 김씨는 기초생활수급비만으로 여섯 식구의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한창 돈이 들어갈 데가 많은 나이의 아이들이라 먹고 살기도 팍팍하다. 중국에서 아이들을 데려오면서 진 빚은 손도 못 대고 있다.
“주위에서는 그런 이야기도 많이 해요. 눈 한 번 딱 감고 쉽게 돈 벌어보는 게 어떠냐고. 하지만 저는 땀 흘려서 정직하게 벌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거든요.”
유흥업소에서 일해 보라는 유혹에도 김씨는 꿋꿋하게 인력사무소에 나갔다. 지금은 막내딸을 돌보느라 집을 비울 수가 없지만 아이가 크면 중국어 실력을 활용해 장사를 해보겠다는 꿈도 꾸고 있다. 김씨는 중국에서 사는 동안 언어를 익혀 중국어로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다.
김씨의 바람은 딱 하나다.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크는 것이다. “둘째 딸(11)이 태어날 때부터 사시였는데 제대로 병원 한 번 못 가봤어요. 사시 교정 수술이 있다는데 그걸 받아서 고칠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김유리 기자 lucia@pbc.co.kr
후견인/양은숙 사무국장(수원교구 민족화해위원회)
김은진씨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다섯 아이를 돌보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평화신문 독자 여러분들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주시길 간곡히 요청합니다.
성금계좌(예금주 : 평화방송)
국민 004-25-0021-108
농협 001-01-306122
우리 454-000383-13-102
※김은진씨 도움 주실 독자는 16일부터 22일까지 송금해 주셔야 합니다. 이전에 소개된 이웃에게 도움 주실 분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담당자(02-2270-2414)에게 문의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