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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철수하면 경제가 무너질 것인데 부모는 누가 모시나? 무감각한 세상이다.
Korea, Republic of 구국기도 0 764 2017-06-22 13:38:19

[잠언 30:11.아비를 저주하며 어미를 축복하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인간에게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영광과 그의 성령과 그의 도를 그의 말씀을 남겨주고 가는 부모는 하나님의 기준으로 최고의 부모이다. 부모도 부모 나름인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 통치를 받아 하나님과 동행하는 부모는 자식들에게 최고의 부모들이다. 물론 인간은 부모가 어떠하더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성령으로 받아 그 안에서 공경을 해야 한다. 봉양, 효도의 최고 곧 하나님의 기준으로 최고는 부모를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초대하여 그의 성령 통치를 받도록 인도함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부모를 둔 자들은 즐겨 순종으로 함께 함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게 함이 孝道(효도)이고 더불어 모셔 섬김이 효도이다.

 

진정으로 효도하는 것은 부모자식이 서로가 천국에 가도록 서로를 성령의 손길로 드려져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초대하고 그들로 성령으로 행하도록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기준의 최고의 효도인 것이다. 경제적인 논리로 부모를 대하는 자식들이, 한 푼이라도 더 부모의 것을 착취해서 자기 자식들에게 주려는 짓을 한다. 부모의 것을 여러 이유들로 구실을 붙여 본심은 탈취를 하는 것인데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가져다가 자기들의 주머니를 채우고 그것으로 자식에 준다는 自慰(자위)적인 행동을 한다. 부모 가슴에 상처를 주는 짓인데 자식의 이름으로 버젓하다.

 

노인 장수시대의 경제문제는 이젠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자식들의 경제가 잘 된다 해도 탐욕을 가지면 노부모의 재산을 생전에 노리는 것이다. 경제가 안 되면 더욱 자식의 이름으로 부모의 것을 모든 방법을 동원해 가히 약탈을 하다시피 해간다. 노인들은 절박함에 내몰리고 그렇게 갈등을 갖고 지내니, 서로가 원수가 되고 악담이 오고가고 등등 좋지 않는 결과로 몰려간다. 자식이니 어쩌랴 그 아픔을 감수하면서 그들이 주는 모욕을 묵묵히 감내한다. 경제가 그렇게 만든 것일까? 아니다. 인간의 부패함이 그리 만든 것이다. 스스로 의인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의 통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주어진다. 그 첫 출발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를 받음에서 성령이 그 속으로 오신다. 누구든지 성령의 통치를 받으면 결코 부모를 공경하게 된다. 결코 부모를 공대하게 된다. 성령이 그리하게 하신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항상 부모의 몫을 챙겨 드린다. 부모의 재산을 지켜드리고 하나님이 부모에게 주신 것이고 맡기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지대로 그 돈을 재산을 사용하도록 보장한다. 부모의 것을 자식의 이름으로 도적질하고도 아니라고 하는 자들은 성령의 통치를 받는 자들이 아니다.

 

잠언 28:24.부모의 물건을 도적질하고 죄가 아니라 하는 자는 멸망케 하는 자의 동류니라” 

 

오늘 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부모의 유산을 받을 수 있는 상속법의 의미들이 겹쳐서 나이 들어갈수록 자식의 노림을 당하게 된다. 어떠하든지 자식들은 부모의 것을 가져다가 불로소득을 높이려고 한다. 자식의 이름으로 행하는 이 짓들은 항상 부모에게 효도하려고 보다 나은 환경을 만들려고 한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그것은 다만 명분일 뿐이고 본심은 착취이다. 자식이 경제적으로 안정권에 들어야 늙으신 부모를 공양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지금 부모의 것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자신의 경제적인 입장을 안정권에 넣을 수 있다는 말은

 

다만 그의 주장일 뿐이다. 그냥 놔두는 것이 더 경제적인 안정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는 운영인데 자신이 지금 가진 운영이 잘못됐기 때문에 안정권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그 손실금을 부모의 것으로 충당한다는 것인데 둘 다 절박함으로 몰아넣는 짓이다. 부모를 공대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행함이다. 성령으로 행하면 처음에 훈련의 과정을 거친다. 성령과 손발을 맞추는 과정이다. 성령으로 행하는데 익숙해지면 하나님은 그에게 창조의 바라 아사 야찰의 지혜를 주신다. 그에게 재물 얻는 능력을 주신다. 부자가 된다.

 

하나님의 복을 받으면 부모의 재산이 아니더라도 넉넉하다. 부모의 것을 사취하지 않아도 된다. 자식의 이름으로 다가가서 죽는 소리를 하면 부모는 내줄 수밖에 없으니, 사취가 아니고 무엇인가? 성령의 사람들은 결코 사취하지 않는다. 성령이 그들에게 재물을 넘치도록 얻게 하시기 때문이다. “신명기 8: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敬畏(경외)할지니라경외는 히브리 구음으로 yare {yaw-ray} 이아레 야레 요-라이이다. to fear, revere, be afraid이다. 우리말 구음에 비슷한 것은 요래인데 경외란 의미와는 너무나 멀다. ‘에라는 있다.

 

감탄사생각을 단념하거나 무엇을 포기하려 할 때 내는 소리. 실망의 뜻을 나타낼 때 내는 소리. 아이들이나 아랫사람에게 비키라’ ‘그만두라라는 뜻으로 내는 소리. ‘같은 말에루화(노래할 때 흥이나 즐거움을 나타내는 소리). 에라, 좋구나! 경외라는 말과는 너무나 멀지만 에라는 구음은 비슷하다. 경외가 戱畵(희화)가 된다면 그 세상은 타락한 것이다. 만일 그런 곡절을 거쳐서 에라가 된 것이면 참으로 우리민족은 많이 타락한 것이다. 성령이 아니면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는 부패를 당한 것이다. 성령의 각성으로 경외케 하는 은사를 누리자.

 

누구든지 성령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면 하나님은 그를 축복의 땅으로 인도하신다. “7.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곳은 골짜기에든지 산지에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8.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들의 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9. 너의 먹는 식물의 결핍함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10.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

 

찬송은 barak {baw-rak} to bless, kneel

 

하나님이 부요하게 하시면 교만의 시험이 오는데 그 시험을 이기는 길은 오로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찬송을 하는 것이다. 찬송은 바락 이다. 바락 바락 교만과 대적해야 한다. 바라 바락 찬송을 하지 않으면 교만하게 되고 교만에 잡히면 하나님이 주신 은총을 잊어버리고 하나님도 잊어버리게 된다. 결국 그 부요는 모두 다 사라진다. “신명기 8:17.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바락 바락 교만과 싸워야 하고 내가 했다고 여기는 심리와 싸워야 한다. 반드시 이겨야 부요를 지킨다.

 

지면 다 빼앗긴다. 지금 대한민국은 이 교만에 빠져서 자기들의 손으로 부요를 가지게 되었다고 큰소리친다. 하나님을 무시한다. 결국 성경에 이른 대로 두려운 일이 발생하고 있다. 재물은 재물로 늘어나지 않는다. 자본을 운영하게 하시는 창조자의 권능으로만 그 자본이 증식되는 것이다. 모든 것에 생명을 주시는 분의 능력이 아니면 결코 자본은 늘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찬송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열심히 찬송하고 그의 은덕을 늘 칭송한다. 바락 바락 교만과 자만과 싸운다. 성령으로 싸우면 늘 그것들과 전투에서 이기게 된다.

 

그렇게 자본이 많아지는데 부모와 다툴 이유가 없다. 도리어 부모를 부자 되게 한다. 부모를 부자 되게 하는 자녀들이 부모를 저주하지 않는다. 부모의 것을 도적질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경제논리로 온갖 못된 짓을 하는 자녀들은 이미 그 심령에서 찬송을 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신명기 8:18.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성령통치를 받아 재물 얻는 능력을 받는 자들은 찬송을 쉬지 말아야 한다. 물론 진심으로 찬송이다

 

시편 112:3.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시편 112:9.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고 그 뿔이 영화로이 들리리로다

찬송하는 자들만 그의 경내에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그들의 양식의 근원이 되어주는 것이다. 찬송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bara {baw-raw}=to create, shape, form)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yatsar {yaw-tsar}=to form, fashion, frame) 만들었느니라(asah {aw-saw}=to do, fashion, accomplish, make)

 

하나님이 부자로 만드신 것이다.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있는 것을 가공하시고 승화시켜 큰 부자가 되게 하심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만드신 것이다. 이사야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yatsar {yaw-tsar}=to form, fashion, frame 나의 찬송(tehillah {teh-hil-law}= praise, song or hymn of praise, adoration, thanksgiving (paid to God))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이사야 43:22.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로와하였으며 23.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 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 하였느니라 나는 예물로 인하여 너를 수고롭게 아니 하였고 유향으로 인하여 너를 괴롭게 아니하였거늘 24.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케 아니하고 네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하나님께 찬송드림을 괴로워하는 심리를 가진 것이니 복을 놓치는 것이다. 그것이 나요 대한민국이다. 회개하자.

 

“25.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26.너는 나로 기억이 나게 하고 서로 변론하자 너는 네 일을 말하여 의를 나타내라 27.네 시조가 범죄하였고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역하였나니 28.그러므로 내가 성소의 어른들로 욕을 보게 하며 야곱으로 저주를 입게 하며 이스라엘로 비방거리가 되게 하리라진정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깨달음을 성령으로 받아야 한다. 스스로 의인이 되지 못한다. 나라의 경제가 망하면 개인경제도 아울러 망해 부모공양의 짐이 축복이나 도리어 저주로 여긴다.

 

부모가 돈이 있으면 그 돈을 사취하려고 자식의 이름으로 모든 짓을 다한다. 그것이 망하는 나라에 자식들의 가진 심리이다. 이런 나라로 몰려가고 있으니, 노인들은 이제 그것을 각오하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에 경고를 받아 행동하든지 해야 한다. 답은 하나이다. 하나님을 성령으로 경외하면서 찬송하는 것이다. 찬송을 하는 자녀들은 하나님의 창조와 생산의 권능과 연결이 되어 부요를 얻게 된다. 재물 얻는 능력을 얻는다. 경제는 늘 요동친다. 그 속에서도 늘 재물을 얻는다. 이는 그에게 하나님의 창조와 생산의 복, 그 능력을 주시기 때문이다.

 

부모를 저주하지 않는 세상 부모가 자녀를 저주하지 않는 세상을 열어야 한다. 그것은 곧 지금 우리가 늦었다고 여기더라도 찬송하는 것이다. 찬송으로 보답해야 한다. 찬송으로 보답하기를 괴로워하는 짓을 하면 되레 망하게 된다. ‘There is a generation’ 히브리구음으로 dowr {dore} or (shortened) dor {dore} 도우르 도레 돌 도레이다. period, generation, habitation, dwelling이다. 기간을 의미하니 우리말 구음으로 到來(도래)가 맞다. 각 시대마다 찬송을 하느냐 아니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도래하는 것이다. 이 말고도 渡來(도래)도 있다.

 

도래(到來)‘ː’ ‘명사어떤 시기나 기회가 닥쳐옴. 유의어: 도착. 도래(渡來) ‘명사물을 건너옴. 외부에서 전해져 들어옴. 유의어: 전래. 이런 의미들은 원인 결과적인 의미로는 근접하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물결을 얻어야 한다. 유리바다 건너편에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그 거대한 군중의 찬송의 힘을 우리도 누려야 한다. 그 힘을 얻어 하나님을 찬송하는 민족이 되어야 한다. 그 찬송만이 이 나라를 고칠 수 있고 하나님의 바라 아사 야찰의 창조를 내려주셔서 새 역사를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공대하는 효도의 세상은 찬송에 있다.

 

찬송을 하지 못하면 안하면 하나님께 배은망덕이고 교만에 잡힌다. 교만에 잡히면 하나님을 잊어버린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간다. 하나님에게서 떨어져나가면 하나님의 창조생산의 지혜는 오지 않는다결국 부모를 저주하고 부모는 자식을 저주하는 악순환의 극한 가난의 그 고통이 올 것이다. ‘that curseth’ 히브리구음으로 qalal {kaw-lal}콸알 콰랄 콰우-라르이다. to be slight, be swift, be trifling, be of little account, be light이다. 저주로 번역되었지만 실상은 자녀들이 부모를 대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이다. 부모에게 경솔하고 부모에게 악을 행하는데 신속하고, 부모 공대가 사소한 일이 되고, 부모의 짐을 조금이라도 가벼워 져야한다고 여기는 행동들이 모두 다 저주에 해당되는 것이다. 콰랄은 우리말에 없는 것 같다.

 

비슷한 구음은 구날 構捏’ ‘명사’ ‘같은 말구허날무(터무니없는 말을 만들어 냄). 은 있다. ‘구라치지말라고 하는 말이 거기서 나온 것 같은데 콰랄에 비슷한 음은 없지만 가열(苛烈)‘ 가열하다(싸움이나 경기 따위가 가혹하고 격렬하다)’의 어근. 은 있다. 부모에게 가혹하게 대한다는 의미로도 사용될 수 있다. 만일 콰랄이 가열로 변형이 되었다면 부모에게 가혹한 자식의 짓을 제대로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 경제가 안 되면 부모에게 과연 가혹해야 하는가? 그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식의 이름으로 가난의 이름으로 자기새끼양육의 이름으로 가혹한 것은 분명하다.

 

이는 부모에게 저주하는 것과 같다. 미군이 철수하면 전쟁이 나거나 자본이탈이 가속이 되어 결국 처절해지는 것인데 그런 선택으로 몰려가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도리어 무감각한 세월이니 가난으로 버려질 부모세대에게 저주스러운 짓을 하는 거다. 이는 곧 苛烈차고 苛酷한 짓이다.

 

their father=ab {awb} father of an individual

their mother.=em {ame} mother, of humans

우리말 구음으로 아버지는 아비 어머니는 어미이다. 히브리 구음과 일치 의미도 일치한다. 우리말에 고대히브리어와 구음의 의미가 일치되는 것들이 많다.

  

 

<구국기도생각>

http://onlyjesusna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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