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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자유를 한번 맛본 자들은 믿을게 못되"
Korea, Republic of 김태산 1 893 2017-09-01 13:28:35

뉴스를 보니 지난 8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 쪽에서 몇몇 진보적이라는 단체들과 비전향 장기수들이 모여서 비전향 장기수의 조건 없는 2차 송환과 보안법 철폐를 요구하는 기자 회견을 하는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 행사를 주관한 단체들이야 이런 행사를 벌여서 보안법을 철폐하도록 정부를 압박하라는 보이지 않는 ‘상부의 지령’ 을 집행하느라고 벌인 일이겠지만 거기에 따라 나와서 북한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는 비전향장기수 어르신들의 행동이 참으로 딱하기에 내 생각을 글로 몇 자 써본다

....................

1993년3월 교도소에서 34년간을 복역하면서도 끝내 전향을 하지 않았던 유명한 이인모씨가 처음으로 송환되어갔다. 이인모에 대한 북한의 배려는 전무후무할 정도로 대단했다.


평 백성들은 상상도 못할 최고급 단독 주택은 물론 북한 최고의 김일성 훈장과 공화국 영웅칭호도 수여하였고 “신념과 의지의 화신” 이라 부르며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의 산 모범으로 “민족과 운명” 이라는 예술영화의 주인공으로까지 내세워 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고향인 양강도 파발리 소학교를 “이인모 소학교”로 명명해주었고 김씨 가문과 동등하게 봉화진료소에서 치료받는 것은 물론 미국에 까지 보내서 신병치료를 해주었다.


이인모 역시 비전향 장기수 답게 당과 수령의 배려에 보답하기 위하여 수령에게 충성할 것을 독려하는 글들과 당과 수령을 우상화하는 장문의 글들을 연속 써냈다. 그가 쓰는 글들은 노동신문 1면에 대서특필 되군 했다. 40여 년간을 적들의 감옥에서 꿋꿋하게 지켜왔던 그의 충성심은 참으로 대단했다. 전체 간부들과 국민들은 이인모 따라 배우기에 끌려 다니느라고 적지 않은 땀을 뺐다.


수령에 대한 충성심 문제를 놓고는 중앙당의 간부들에게도 서슴없이 일갈을 하는 이인모 앞에 높은 간부들조차 마주서기를 꺼려할 정도였고 김정일은 이인모가 가보고 싶은 곳은 모두 가보도록 막강한 권한도 주었다.


거침없는 충성의 일로를 달려 나가던 이인모가 자기 일생의 반을 빼앗아간 감옥생활이 떠올랐던지 어느날 갑자기 북한의 “교화소”를 한번 보겠다고 하였다. “이인모 동지가 요구하는 것은 다 들어 주라.” 는 김정일의 지시가 있었던지라 간부들은 그를 데리고 사리원시에 있는 “국제교화소”로 갔다.


사리원에는 “7호교화소”와 “국제교화소”가 있다. 7호교화소는 일반교화소로서 시설과 대우가 너무 열악하여 절대로 공개를 못한다. 그러나 “국제 교화소”는 죄를 지은 외국인들과 항일투사가족들 그리고 비서국대상 간부가족들만을 받아들이는 곳이다. 나름대로 시설도 괜찮고 죄수들에 대한 대우도 좋다고 한다. 그래서 국제 인권단체들이 교화소를 보자고 찾아오면 서슴없이 보여주는 곳이다.

휠체어에 몸을 맡긴 이인모는 왜서인지 “국제교화소”를 돌아보는 장시간동안 굳은 표정으로 한마디의 말도 없다. “사람 못살 남조선”에서 오랫동안 감옥살이를 한 이인모가 아마도 너무 감동을 먹은 모양이라고 생각한 북한 간부들은 참관을 끝내고 마당에 나오자 “이인모 동지 돌아보신 소감이 어떻습니까?” 하고 자신에 넘쳐 물었다.

한참동안 먼 곳을 응시하던 이인모는 드디어 북한을 통째로 뒤흔들어 버리는 핵폭탄 발언을 터뜨렸다. “나는 이런 곳이었다면 34년은 고사하고 3년도 견디어내지 못 했을거야.” !!! ??? 그 자리에 있던 간부들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이인모의 얼굴만 쳐다보았고 마침내 그는 간다온다 소리도 않고 그곳을 떠났다.


그 순간부터 30분도 채 되기 전에 노동당과 안전보위부, 인민보안성, 3개의 통보선으로 이인모의 교화소 행적과 발언 내용이 김정일에게 직보 되었다. 김정일은 분노하여 말했다.“역시 자유를 맛본 자들은 믿을게 못 되” ...


그때부터 이인모는 “당과 수령의 신임을 저버린 쓸모없는 고깃덩이” 취급을 받았고 마침내 2007년 6월 누구도 찾지 않는 속에서 고독한 생을 마쳤다. 이것이 바로 자유를 버리고 충성의 길을 택하였던 공산주의자에게 차례진 쓸쓸한 종말이었다.

그 후부터 이인모에 대한 선전은 남한의 언론매체들에서도 사라졌다. 그러나 김정일은 더는 입을 열지 못하는 그의 시신을 애국열사릉에 안치시킴으로서 “광폭정치”의 선전효과를 지금도 톡톡히 보고 있다.


물론 그 사건이 있은 후부터 2000년 9월에 송환된 63명의 장기수들은 선발된 선전용 몇 명을 제외하고는 자유란 없고 평양시민들과 같이 600그램의 쌀 배급과 배정되는 몇 가지 생활필수품에 의존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들이 북한에 들어가서 헤어졌던 가족들에게 해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특히나 남한에서 전향을 했던 분들은 아무리 강압에 못 이겨 전향을 했다고 해도 북한 땅에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찬밥 신세가 된다.

.........

나는 교도소란 곳을 가보지 못하였다. 도대체 남과 북의 교도소가 얼마나 큰 차이가 있기에 그렇게도 수령에게 충성을 바치던 이인모가 경악을 했는지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아니 그보다도 사실은 북한에서 살 때에는 그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던 김정일의 “판결문”과 같은 말... “역시 자유를 맛본 자들은 믿을게 못되” 가 이 남한에 와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보니까 더 심금을 울린다.


자루속의 송곳은 숨길 수 없듯이 자유를 한번 맛본 사람들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전혀 없는 독재사회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진리를 김정일 자신이 직접 밝혀 주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변절도 하지 않았고 북한에게 충성을 했으니 돌아간다면 아마도 특별대우를 해 줄 것이다.” 라는 생각은 자유를 버리는 그 순간부터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무서운 후회를 몰아 올 것이다. 북한이란 나라를 국가전복 행위를 한 간첩도 살려준 자유대한민국처럼 생각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비전향 장기수 어른들의 부모와 자식들 그리운 마음에 나쁜 재를 뿌리자고 이글을 쓴 것이 아니다. 두 제도를 살아본 사람으로서 북한의 감춰진 진실을 권해 드리고 싶을 뿐이다.

“인간은 자유를 버리면 우리 안에 갇힌 짐승이 된다.”는 것이 내가 찾은 진리다.

.........

탈북자 김태산

2017,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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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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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삥이 ip1 2017-09-01 13:37:02
    그 어르신은 젊은시절 나름의 이데올로기에 충실햇던 과거를 기억하면서 떠났겠지요
    자세히는 모르나 공맹심도 있었을 거구요
    어쩌나 시대를 읽지 못하였으니, 자신이 인간임을 망각해 부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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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삥이 ip1 2017-09-01 13:44:36
    태산이횽한테의 아쉬움

    형요 발제글만 쓰지 마시고
    밑에 댓글다는 아우들 댓글에도 사랑 좀 주십시오
    아쉽습니다
    이 횽도 권위가 몸에 베있어 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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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태산 ip2 2017-09-01 13:53:27
    초삥이님 부족한 글에 관심 주심에 감사합니다.
    ...
    그리고 님께서 먼저 저에게 댓글을 청했으니까 말슴을 드린다면....
    님도 이창을 찾는 독자들을 위해서 도덕을 좀 베풀어야 합니다.

    이창을 찾는 독자들이 얼굴을 찌푸릴 정도로 난장판을 해놓으면
    누구도 님을 대상하려 안합니다. 독자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 버립니다.

    즉 님의 행동은 남의포장마차에 가서 술마시고 깽판을 치는
    무도덕한 인간들과 비슷하다는 겁니다...
    술 마시고 깽판을 치는 사람에게 누가 대화를 하려고 할 것이며
    또 그런 주정뱅이가 매일 찾아오는 포장마차에 누가 가려고 하겟습니까?

    너무 직선적인 충고 미안합니다만 서로 지켜줄 것은 지켜야
    상대방으로부터 인간대접을 받는겁니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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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삥이 ip1 2017-09-01 14:00:02

    님께서는 도덕의 기준이 뭐라 생각하십니까 ?
    님의 도덕적인 잣대로 하나씩 말씀해 주시지요

    제가 깽판을 쳤습니까 ?
    여기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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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삥이 ip1 2017-09-01 13:57:01
    솔직히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물론 100%는 아니라 생각하고..
    배가 고파서 중국에 더돌다가 남을 선택한 형제들은 이해가 간다..
    북에서 나름 잘묵고 잘살던 인간들은 왜 남을 선택햇는가 ?
    이유가 뭔가 ?
    인간세상이란 게 뭐 해서 그들은 남쪽에 와서도 나름 대우 받는 게 씁슬하다

    옳고 그름을 논하지 말자
    원래 인간세상이 그리 생기 쳐 먹엇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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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삥이 ip1 2017-09-01 14:14:13
    태산이횽한테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
    횽은 어떤 세상을 원하십니까 ?
    모든 게 내생각에 맞는 세상을 원하십니까 ?

    제가 살아 본 세상은
    그렇더랍니다
    인간세상이란 거는 겸손해 하는 것이 젤 처신을 잘하는 것이다
    최선보다는 차선
    절대선보다는 필요악
    이래서 저라는 사람도 제자리가 있는 겁니다

    존경하지만 답답합니다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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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민복 ip3 2017-09-01 14:15:26
    참 좋은 글입니다.
    다른데 퍼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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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삥이 ip1 2017-09-01 14:18:33
    민복이횽한테 함 여쭤 보자
    형도 내가 남의 포장마차에서 행패 부리는 놈인 거 같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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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삥이 ip1 2017-09-01 14:28:45
    이 말 꼭 하고싶다
    북에서 자칭 엘리트라 여기고 권세질 하던 놈들은 찌그러져 있어라
    가혹할지는 몰라도
    양심이 잇는 놈드른 그래서는 안된다

    난 이양반이 좋더라, 현재까지는
    이성주, 옌날에 열차에서 사고 당하시고 의족인가 하고 계시는 분
    내가 모르는 분들도 있겠지..

    북에서 김시왕조 경배하면서 남쪽에 오신 분들이야 말로 진짜
    이 사이트의 민폐족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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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삥이 ip1 2017-09-01 14:42:24
    태산이 이횽 실망이네
    형은 인간대접 받으라고 여기 오는 거요 ?
    그런 인간대접 당신이나 받으라
    왜 니 잘 나갈땐 남쪽 생각 안했냐 ?
    머리카락이 희어지니 남쪽이 좋아 보이더냐 ?
    말씀 함부로 하지 마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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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GI ip4 2017-09-01 15:38:12
    김태산님의 이인모 언급은 사실입니다.그때 북한 교화소들을 돌아본 이인모가 그 열악성에 놀라 -내가 남조선에서 34년 감옥 살이를 했다지만 이렇게 살면 2년도 못살았을 것이다- 하며 구류장 교정의 가혹함과 사식과 영치금을 받아 주어야 한다고 말하며 -나도 남조선 교도소에 있을때 김대중 서준식 등 민주인사들이 넣어준 영치금으로 감옥에서 사식을 사먹었다- 고 하엿다
    (김대중대통령은 그 시기 남한에 연고가 없는 모든 사상범들에게 1$ 영치금을 기탁 했다고 되어 있다) 그 후부터 구류장에서 수감자들이 무릎에 요포를 깔고 앉게 되었으며 교화소들에서 사식으로 -펑펑이 가루-를
    ?받아 주었다.
    그러나 그후 이인모는 확실히 외면 당하였다.
    김태산님의 이 언급은 남과북 체제에 대한 명확한 비교이며 제 수기작 -무죄 -에서도 한대목 소개 되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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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뺑이 ip1 2017-09-01 16:00:42
    나도 안다
    당신이 지금 하고 싶은 야기가 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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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뺑이 ip1 2017-09-01 16:06:23
    당신 원래 공산주의자인가 ?
    그렇다면 존경한다

    난 단순한 놈이다
    해방 당시 공산주의자 아닌 사람은 다 친일파 아니면 무식했던 우리 조상님들이라 생각한다 난 아직도 그시절을 너무 모른다
    그 시절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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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뺑이 ip1 2017-09-01 16:12:06
    오늘 여섯병째다
    오바이트 나올라 한다
    케지아이 당신의 거짓없는 양심을 말해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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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양놀새다 ip5 2017-09-01 17:29:28
    초뺑이 아우야! 어찌 듣기 좋은 꽃노래만 들으려고 하냐 ?자네의 글을 재미있게 보는 사람도 있을 테고 곱갑게 보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도 인정해라!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께 뭐가 있냐? 형님! 그동안 내가 너무 지나쳤군요 앞으로 자중하겠습니다"라고 사내답게 화끈하게 인정하고 사과했다면 좋아을텐데.... 어쨋던 태산이 아바이 글 사실이고 훌륭한 글이다 그리고 광일 선생은 올곧은 양반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다. 지하철 타고 이동 중이라 이 정도만 한다 다음에 얘기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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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빼이 ip6 2017-09-01 17:42:47

    - 조빼이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7-09-01 18:4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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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림일 ip7 2017-09-02 11:09:00
    간만에 심오한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 탈북민들이 살아 본 북한은 전체가 감옥이나 다름없지요.
    그 속에 있는 '수용소' '교화소' 등은 굳이 표현하면
    감옥 속의 <고문실>이라고 봐야 하겠죠.

    그 고문실에 갇힌 수 십만의 죄인 아닌 죄인들의 분노의 울분을
    우리 탈북민들이 꼭 대변해주어야 합니다.

    사랑합니다. 우리 김태산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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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lfgidals65 ip8 2017-09-03 22:10:41

    - tlfgidals65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7-09-04 06:3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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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짓말 ip9 2017-09-03 23:07:20
    나는 남조선 인천구치소에 수감되였던 사람이다.

    수감 첫날밤 나는 독방에서 찬마루바닥에서 잤다. 지금도 그때의 어열로 생긴 신장병으로 하여 매일 피오줌을 보고 있으며 극심한 허리통증으로 하여 매일 고통을 겪고 있다.

    사식은 뭔 개소리인지 모르겠구나.

    국가보안법위반사범이라며, 피고인이라며, 범죄자라며 밥도 안주고 차별하던 인천구치소.

    구치소에 수감된 수용자들을 동원하여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던 머저리같은 인천지방검찰청 공안과 부장검사 윤상호는 박근헤정권의 파멸과 함께 법무부연수원 기획과장으로 파면되였다. 완전 머저리가 된것이다.

    내가 있었던 인천구치소는 그야말로 인간생지옥이였으며 유기견보호소와 다름이 없었다.

    그야말로 일제강점기시절 서대문형무소와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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