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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手來 空手去 보다는 有手來, 無手去라고 하여야
고문승 0 302 2006-05-25 08:41:44
空手來 空手去 보다는 有手來, 無手去라고 하여야

高 文 昇

空手來 空手去라고 해서, 빈손으로 오고 빈손으로 간다고 하는데
빈손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몸, 즉 두뇌, 두 팔, 두 손, 심장 등을 가지고
세상에 나왔으니 有手來하였고,
떠날 때에는 이것들을 버리고, 손도 없이
가지고 온 몸도 손도 세상에 두고 떠나는 것이니,
空手가 아니라 無手로 떠나는 것이라고 보면, 無手去하는 것이다.
空手來 空手去가 아니고, 有手來, 無手去라고 하여야
바른 표현이 되는 것은 아닌지.
空手로 가는 곳은 무덤까지인데, 혼은 무덤에 가기 전에 몸에서
이미 떠났는데 빈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손도 몸도 세상에 두고 떠나는 것이다.

물론 세상의 재산 명예 등을 가지고 떠나지 못한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지만,
떠날 때에 손과 몸 이외에도
많은 것을 세상에 남기고 떠나는 것이다.

이 세상에 훌륭한 판결문들을 남기든지, 준엄한 논고문들을 남기든지,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변호의 말들을 남기든지, 좋은 저서들을 남기든지, 감동적인 연설들을 남기든지, 국가와 국민에게 좋은 정책을 시행한 업적들을 남기든지,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준 기업을 남기든지, 이웃 사람들에게 따뜻한 봉사의 업적을 남기든지, 우정을 다지는 조직을 관리한 업적을 남기든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자녀들을 남기든지, 훌륭한 농장을 남기든지, 아름다운 주택을 남기든지, 유용한 빌딩을 남기든지, 건실한 회사의 주식을 남기든지, 민족의 혼이 깃든 골동품을 남기든지, 무엇인가 남기고 떠나는 것이다.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남긴 것들을 기억하며 지낼지는 알 수 없으나, 세상은, 후손들은, 이웃 사람들은, 가까운 후배들은, 그리고 자기가 일했던 곳의 사람들은
남긴 것들을 기억한다.

생산하고 취업기회를 창출하는 기업의 주식이나 중소기업의 출자를 남기면
이것은 이웃을 돕는 길의 하나이다.
그러나 어떤 종교의 지도자는 “모두가 부자 되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부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덕을 닦으며 이웃에게 베풀며 사는 사람입니다.
단순한 부자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고 말했다.
무소유도 주장했다.

그러나 이웃을 도울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이웃에게 어떻게 베풀어야 할까?”
우리의 이웃들 가운데 직업이 없는 사람들에게 직업을 만들어주는 것이
베풀어야 할 일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다.
자기가 직접 직업을 만들 수 없을 때에는 직업을 만들 수 있는
다시 말해서 일자리 창출을 위한 투자 (job creating investment)를
찬양하고 권장하는 일을 하여야 할 것이다.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을 필요 이상으로 괴롭히는 사람들을 각성시키는 일을 하여야할 것이다.
직업을 만들어 주려면 공장을 세우든지, 유통업을 창업하든지
부자들이 자금을 출연하여 회사를 만들어야 하는데 부자는 아니어도 다소의 주식을 구입하고 회사의 경영에 기여하는 사람들, 주식은 아니어도 중소기업에 출자하여 일자리를 창조하는 투자에 기여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가난하고 직업이 없는 사람들에게 직업을 제공해 줄 수 없다.

부자가 재산을 팔아서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
공장을 세울 돈이 없어져 버리고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 없다.

한국에 직업이 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한국의 통계청 홈페이지 http://www.nso.go.kr 에서
KOSIS - 통계정보시스템을 click 하면 http://kosis.nso.go.kr 가 뜨는데,

이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실업률은 3.7 % 이고 88만 8천명이라고 하고 있으나 잘 들여다보면 88 만 8 천 명만이 실업자라고 할 수 있는지 걱정스럽다.

한국은 2005년 7월 총인구 약 4천800 만 명에서, 15세 이상 인구가 3천 840만 3천명인데 이 중에서 62.7 %가 경제활동을 하여 경제활동인구가 2천 407만 2천명이라고 하고 있다.

종사상 지위별 취업자를 보면,
2005년 7월 총계 취업자는 23.184 천명이고,

비임금근로자(非賃金勤勞者) = (자영업주와 무급가족조사자) 가 7,812 천명인데,
이중에 무급가족종사자 (無給家族從事者)가 1,566 천명 즉 156만 6천명이다.

상시근로자(常時勤勞者) = (상용근로자와 임시근로자)가 15,372 천명 즉 1천 537만 2천명이다.
이중에 임시근로자(臨時勤勞者)가 5,173 천 명 즉 517만 3 천명이다.

일용근로자(日用勤勞者)가 2,310 천명 즉 231만 명이다.
취업자는 비임금 노동자와 상시근로자 그리고 일용노동자를 합친 숫자이다.

여기에서 무급가족종사자가 156만 6천명이고, 일용근로자가 231 만 명인데, 이를 합치면 387 만 6천명인데, 이중에 100 만 명 이상은 실업자로 보아야 지 않을까?

그러면 실업자는 88만 8천명에 100만 명을 더하면, 188만 8천명이 되고 이렇게 가정하면 실업률은 3.7 %가 아니고 다음과 같이 된다.

경제활동인구 2천 407만 2천명 × 실업률 = 188만 8천 명
실업률 X = 188만 8천명 ÷ 2천 407만 2천명 = 0,07843--- = 약 7.8 %

실업률은 3.7 %가아니고 7.8 %가 된다.
그리고 한국의 15세 이상의 인구 3천 840만 3천 명 중에서 62.7 %가 경제활동에 참가하고 있고 이 중에서 3.7 %가 실업자인 88만 8천명이라고 하고 있는데,------------

경제활동참가율 78 %인 스웨덴이나 73.5 %인 노르웨이처럼 한국의 경제활동참가율이 72.7%가 되면 현재의 경제활동참가자보다 384만 명이 더 많게 된다.

(38,403 천명 × 0.1 = 3,840,300 명 = 384만 300 명)
그러면 실업자가 384만 300명이 더 많아지고, 앞에서 가정한 188만 8천명 까지 합치면,
실업자는 572만 8300 명이고 실업률은 경제활동참가가 24,072 천명에서 38403 백 명을 보탠 27912300 명 즉 2천 791만 2300 명이므로 실업률은 20.5 %이다.

(572만 8300 명 ÷ 2천 791만 2300명 = 0.20522 -- % = 20.5 %)

한국이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처럼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일 수 없으니 실업률이 20 % 라고 주장할 수는 없으나, 자영업주가 6,246 천명 즉 624만 6천명인데, 이중에는 구멍가게를 하는 사람들과 노점상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다른 좋은 일자리가 있으면 자영업을 그만 두고
싶은 사람들도 많다.

실업률이 3.7 %이고 실업자는 88만 8천명이라고 하면서 세계에서 좋은 편이라는 생각을 하는 지도자들이 크게 각성하여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CREATING JOBS) 경제를 살리는 것이고, 국민에게 참다운 행복을 주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잊지 않아야 한다.

고도의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하려면 투자가 활성화 되어야한다.

기획예산처의 홈페이지 http://www.mpb.go.kr 에서 “정보공개방”에서 “주요재정통계자료”의 “주요경제지표”를 보면
2002년 29.1% 이고, 2003년의 국내투자율이 29.7 %이다.
1990년 투자율 37.6 %, --- 1991년 39.8 %, ---- 1996년 38.1 %--- 인데,
2002년 투자율 29.1 % 이고, 2003년 29.7 %이다.

2004년 까지도 이런 수준이라면 경제성장이 잘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
GDP의 상당히 높은 비율의 투자를 하여야
직업을 창조하는 투자 ( job creating investment )도 되고, 고도의 경제성장도 되고, 일자리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 creating job opportunity ) 창조할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돈 버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찬양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사람들을 높이 우러러 보게 하여야 한다.
외국의 기업들을 위한 투자환경을 조성하여 외국인 투자가들이 한국에 투자하게 하여야 한다.
돈 있는 사람들이 투자하여 돈 벌고 취업기회를 창조하면 그들을 찬양하여야한다.
또한 세금을 잘 내면 표창도 하고 돈을 번 것이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것으로 생각하는 즉 기업을 활성화 시키는 분위기를 만들어야하고, 근면, 검소, 절약, 저축, 그리고 현명한 투자를 한 사람들이 돈을 벌었다는 가치관을 국민들이 깨닫게 하여야 한다.

“이 세상의 직업에 귀(貴)하고 천(賤)한 것이 없다.
하느님이 그 직업을 선택하고 그 직업에 최선을 다하라고 했다.
근면은 성공의 어머니다.
절약하고, 저축하라.
그리하여 모은 재산은 하느님의 축복이다. (The wealth is the blessing of God.)"

이러한 프로테스탄트(改新敎)의 윤리가 자본주의의 정신에 영향을 주었다.

미국의 마이아미 대학교 (Miami University)의 Reo M. Christenson 교수는 그의 논문인 -- Dodd, Mead and Company 가 발행 한 Ideologies and Modern Politics 라는 저서(著書 - 共著)에서 --Economic Democracy : Capitalism and Socialism 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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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경제적 신조 ---

고전적 형태에서 자본주의제도의 중심적 모습은 개인 재산의 우위 (the dominance of private property), 이윤 추구동기의 역동성 (the dynamics of the profit motive), 자유로운 시장의 존재 (the existence of a free market), 경쟁의 있음(실재)[the presence of competition)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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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의 있다는 것은 다 알고 있지만, 경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고방식을 가진 일부의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육상 경기에서 100m 이든 10,000 m 이든 선수들은 동일한 출발선에서 동일한 시간에 출발하여 뛰고 1 등은 금메달, 2등은 은메달, 3등은 동메달을 받고 나머지 선수들은 메달을 받지 못하는 불평등(不平等)한 대우를 받는다.

모든 선수가 평등하게 모두 금메달을 받을 수 있도록 빨리 달릴 수 있는 선수는 천천히 뛰어서 모든 선수가 같은 시간에 결승선에 모두 꼭 같이 도착하면 모두 금메달을 받는 평등을 실현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는 경기에 있어서의 경쟁이 핵심적인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고, 설혹 그렇게 한다면 경기를 하지 아니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프로야구선수들이든지 프로축구선수들을 비롯해서 모든 선수들의 연봉에 불평등(不平等)이 있는데 이를 평등하게 실력이 모자란 선수들이나 실력이 뛰어난 선수를 평등(平等)하게 연봉을 줄 수가 없다.
만약에 모두에게 같은 금액의 연봉을 준다면 그것이 불평등(不平等)한 대우가 된다.
팀에 크게 기여하는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를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불평등한 대우가 된다.

고등학교에서 시험을 보았는데 선생님이 모든 학생들이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된다면서, 시험을 잘 본 학생들이나, 못 본 학생들 모두에게 평등하게 100 점씩 주었다면, 이것도 평등하게 해준 것이 아니라, 불평등하게 대우한 것이다.
누구나 시험을 볼 수 있고, 누구나 주어진 시간 안에서 시험을 볼 수 있고, 누구나 철저한 감독 하에서 시험을 보아야하는 평등 다시 말해서 산술적 평등의 정신에서 시험을 보아야한다.
그러나 시험 성적은 우수한 답안지를 작성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과는 차이가 생기는 것을 합리적 차등(合理的 差等) 다시 말해서 합리적 불평등(合理的 不平等)인 각자에게 그의 것을 주는 배분적 평등 (配分的 平等)으로 처리하여야 한다.
Reo M. Christenson 교수는 앞의 책에서 “자본주의의 정치적 신조의 하나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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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富)의 불평등(不平等)[ inequality of wealth]이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상태로 간주(看做)된다.
자본주의제도를 기능하게 하고 자본주의에게 활력을 주는 것은 불평등[ inequality] 대한 열망 [aspiration]과 불평등의 실현[ realization]이다.
부(富 - wealth)는 사회의 필요에 최선으로 기여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것이고, 빈곤( 貧困 - poverty )은 (사회의 필요에) 거의 기여하지 않은 사람들의 정당한 운명( the just fate )이 된다.
Inequality of wealth is regarded as a normal and desirable state of affairs.
It is the aspiration for and realization of inequality that enables the system to function and gives it vitality.
Wealth naturally gravitates to those who serve society`s needs best, and poverty becomes the just fate of those who contribute lit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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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에 최선을 다하고, 검소, 절약하고, 저축하고, 현명한 투자를 한 사람들은 돈을 벌고 부자가 될 수 있다.
부정행위를 통하여, 마약을 거래하고, 밀수를 하고, 폭력을 사용하고, 가짜 참기름을 만든다든지 부정식 품을 만들어 팔고, 사기를 친다든지 기타방법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있지만 법의 엄한 심판으로 이런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
직업에 불성실하고, 낭비하고, 사치하며, 저축도 하지 않고, 술과 도박에 빠지고, 어리석은 투자를 한 사람들은 가난에 빠진다.
사회에서 운동장에서 경기하듯이 경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Reo M. Christenson 교수가 지적 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과 경쟁하여 다시 말해서 더 부지런히 일하고, 절약하고, 저축하고, 현명한 투자를 하여,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지려고 하는 열망(aspiration)을 가지게 되고,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지게 되는 것을 실현하여,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더 좋은 불평등의 실현 (realization of inequality) 을 이룩하게 되고, 이러한 경쟁이 사회전체의 발전에 기여한다.

근면하고, 절약하고, 검소하게 살며, 현명한 투자를 했으나, 천재지변(天災地變) 같은 불행에 직면한다든지, 가족들이 암(癌)에 걸려 치료비 등으로 재산을 잃게 되는 경우에 빈곤(貧困)에 떨어질 수 있다.
자본주의에 토대를 둔 혼합경제 (mixed economy based on capitalism ) 사회는 복지(福祉) 정책을 개발하여, 의료보험, 생명보험, 자동차보험, 화재보험 등, 예기치 않은 불행에 대비하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으며, 최저한도의 생활수준 (minimum standard of living)을 확보하여 저소득층의 국민들을 지원하고 있다.
대한민국도 자본주의에 토대를 둔 혼합경제 사회이고 “ 생활이 어려운 자들에게 필요한 급여를 행하여 이들의 최저 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 1 조)”고 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하여 저소득층을 지원하고 있으며, 또한 부유하고 소득이 많은 국민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누진과세(累進課稅) 정책으로, 소득이 높은 사람들과 소득이 낮은 사람들을 불평등(不平等)하게 세금을 납부하게 하는 즉 부유한 사람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하고 있다.

한국사회는 모든 국민은 평등하게 1 인(人)이 하나의 투표권(投票權)을 가지는 산술적(算術的) 평등의 이념이 적용되기도 하고,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들과 적게 내는 사람들 또는 세금을 내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세금을 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지원을 받는 즉 다른 사람들이 낸 세금을 받고 살아가는 세금을 마이너스(minus)로 내는 사람들이 있게 되는 불평등하게 세금을 내는 배분적 (配分的) 평등(平等)의 이념 다시 말해서 합리적 (合理的) 차등(差等)의 이념이 적용되기도 한다.

한국의 방송프로에 어떤 시민이 부동산에 투자해서 벌어드리는 이익금을 투자자의 불로소득(不勞所得)인데 이를 전부 회수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들었는데, 투기소득이라고 했으면 모르나 불로소득(不勞所得)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Karl Marx는 노동가치설(勞動價値說)을 주장하여 공산주의 혁명에 불을 질렀는데, 노동가치설이 잘못되었기에 노동가치설에 따른 소련(Soviet Union)도 멸망했고, 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모두 공산주의를 포기했다.
중국의 공산당과 북한의 조선노동당 그리고 베트남의 공산당과 쿠바가 공산주의를 하고 있으나, 중국의 공산당이나 베트남의 공산당은 사회주의적 시장경제(市場經濟)를 하고 있는데, 북한의 조선노동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만이 생산한다는 노동가치설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은 자본도 생산한다는 엄연한 진리를 부인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서울역에서 영업용 택시를 타고 김포공항 까지 가서 택시비를 30,000원을 지불했을 경우 30,000 원을 누가 생산했느냐고 따지면 택시 기사인 노동자가 생산했다 혹은 벌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마르크스와 공산당의 입장이다.
노동자도 생산했고, 자본인 자동차도 생산했다고 보는 것이 자본주의의 입장이고, 따라서 30,000원에서 기름값, 세금, 보험료, 등을 제외한 금액을 노동자와 자동차의 소유자인 자본가가 합리적 기준에 따라서 나누어 가지는 것이 원칙이다.
이 경우에 자본가가 받는 자본소득을 노동하지 아니한 불로소득(不勞所得)이라고 주장하고, 더 나아가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으니 세계의 노동자들은 단결하여 자본가들을 옹호하는 자본주의 국가를 전복하고 자본가계급을 타도하여 노동자들이 권력을 장악하자는 주장 다시 말해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proletariat dictatorship)를 이룩하여 계급 없는 사회 (classless society)를 만들자고 하는 것이 공산당 이론이다.
이렇게 생각하여 공산주의 국가를 만들었으나 오히려 공산당 간부들이라는 새로운 계급(The New Class)이 출현했다고 유고슬라비아의 부통령을 했던 밀로반 지라스 (Milovan Djilas)는 그의 저서 새로운 계급 ( The New Class )에서 주장했다.

공산주의를 했던 나라들이 공산주의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노동만이 생산한다는 잘못된 엉터리이론에 도취되고 마비된 공산당 간부들이 자본가들과 기업가들을 불로소득(不勞所得)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하여 타도한 결과 국가에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숙청해버렸으니 국가의 생산이 제대로 안되어 공산주의 국가들은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완전히 패배하여 망했다.
자본가들이 돈을 버는 이유는 자본이 생산한다는 것과, 어떤 사업을 할 경우 예상이 빗나가서 망할 수 있는데 합리적 연구와 준비 그리고 망할지도 모르나 모험을 하는 위험부담(risk burden)을 안고 투자를 해서 성공해서 돈을 번다.
그러나 예상이 빗나가서 망한 기업가들이 많고 이들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빚으로 망하고 빈 털털이가 된다.
1945년에 한국에서 기업을 했던 기업가들이 그 후손들에게 기업을 물려주고 지금도 하고 있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많은 기업들이 쓰러지고 또 많은 기업들이 탄생한다.
부동산에 투자하여 번 돈을 불로소득으로 보지 말고 자본소득인 투기소득으로 보고 세금을 많이 매기는 것은 타당하나 불로소득(不勞所得)으로 규탄하는 것은 언어의 개념을 모르는 공산주의자들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것이다.
예를 또 들면 자동차공장에서 기계가 작동하여 자동차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TV에서 볼 수 있는데, 자동화된 이 기계들은 노동자가 작동 버튼(button)을 누르기만 하면 기계가 자동적으로 작업을 하는데 이 기계들은 노동자들인가 아니면 자본인가?
이 기계들은 자본이며, 자본인 기계들이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도 생산하고 자본도 생산하는 것이고, 노동과 자본이 협력하여 생산하여야 서로 이득을 크게 할 수 있다.

자본인 기계들이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자본의 생산성을 무시했다가 망한 공산주의 사고방식에 세뇌된 사람들이 한국에 적지 않은 것이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한국이 경제성장을 하려면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본주의에 토대 둔 혼합경제 (mixed economy based on capitalism)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여야 하는데 각계각층의 건실한 시민들이 알기 쉬운 말로 풀어서 시민들을 깨우치는 길 밖에 없다.
물론 투기에 몰두하는 극히 일부 국민이 있겠지만 그들도 선량한 투자가로 만드는 정책을 개발하면서 나아가면 투자는 활성화될 것이다.

부자들이 있어야 투자도 하고 새로운 일자리들이 생기고 일자리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오늘 가난한 사람들도 훗날 부자가 될 수 있는 희망을 이야기 하는 것이 무소유(無所有)를
강조하는 것보다 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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