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에 북한 개입문제로 글 몇 줄 썼더니 악을 쓰며 북한의 개입을 전면 부정하거나 무턱대고 욕을 해대는 인간들이 있기에 후편을 써본다. . 내가 쓴 글이 다 옳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의심이 되는 증거들을 짚었을 뿐이다. 그래서 북한의 개입을 전면 부정하거나 욕을 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묻는다. . 1) 당신들 말대로 북한이 전혀 개입을 안했다면 광주시민들이 자발적으로 40여 곳의 예비군 무기고를 점령하여 카빈총으로 무장하고 자신의 부모형제인 광주 시민들과 군인들을 사살 했다는 것인가? .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민주 투사가 아니라 자기 동족을 사살한 살인자이며 폭도라는 뜻인데 이것을 인정할 자신이 있는가? 그리고 그 무장폭도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가? . 2) 무장한 폭도들이 사상범들이 수감된 교도소를 수차례나 공격했는데 정말로 광주시민들이 사상범들을 풀어서 대한민국을 전복할 음모를 벌인 것이 옳은가? .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5.18이 민주화 운동이겠는가? 그리고 역시 그 교도소 습격에 참가했던 폭도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 3) 아세아 자동차를 습격하여 군용차량을 탈취하여 기관총을 설치하고 국민들을 반정부 투쟁에로 선동하던 그 긴머리 청년들은 지금 어디에 있으며 그 주모자는 누구인가? 이것이 민주화 투쟁이었다면 그들이 증언을 해야 할 것 아닌가? . 4) 그 당시에 북한에서 보니까 어떤 민주화 투쟁 구호도 없고 오직 “전두환을 찢어 죽이라!” 는 풀랭카드 들만 보이던데 광주 사람들의 민주화 투쟁은 사람을 찢어 죽이며 진행할 만큼 잔인한 것이었는가? . 5) 그 당시에 광주 사건을 실시간으로 녹화하여 북한으로 전송한 그 기자들은 누구이며 지금 어디에 있는가? 피가 튀기는 그 무서운 현장에서 목숨을 내걸고 촬영을 한 기자라면 응당히 큰 공로를 세운 유공자일 것인데 그는 왜 없는 것인가? . 6) 5.18 당시 광주에 북한군이 개입 안했다고 주장하는 조갑제 기자는 무기고 습격과 교도소 습격, 방송국 점령, 카빈총으로 시민 사살 등은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북한군 개입만을 부정하는 이유가 뭔가? . 정확한 판단력과 집중력을 소유한 조갑제 기자의 눈과 입과, 손과, 카메라는 광주에서 정말로 아무 증거도 찾은 것이 없단 말인가? 혹시 조갑제 기자 자신도 5,18 유공자는 아닌가? ,,,,,,,,,,,,,,,,,,,,,,,,,,,,,,,,,,,,,,,,,, 상기 질문에 양심적인 답을 못한다면 5.18은 단순히 폭도들의 반정부 난동이었을 뿐 5.18 유공자란 한명도 없어야 정답이다. 북한군이 아니라 광주 시민들이 자기들끼리 무기고 털어서 자기들끼리 총질을 했는데 뭔 놈의 유공자란 말인가? . 그러나 5,18에 북한이 개입했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그 판결은 달라질 것이다. 즉 광주 시민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죽이기를 한 무고한 살인자, 폭도라는 불명예만은 벗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 그래도 북한의 개입을 전면 부정 할 자신이 있는가? 나는 광주시민들은 절대로 살인자 ,폭도가 아니라는 것을 믿고 싶으며 아직도 마음 속으로 믿는다. ................... 2019,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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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 25일에 무력부 명령으로 어느 특수부대가 대기하고 있다가 27일에 진압작전이 끝난 관계로 결국은
무마한 사건입니다
광주사태의 만행을 고발한 사람은 미국과 일본에서 발표를 하고 그것을 본따서 북한땅에 전한 사건입니다
광주사태에 진압군으로 있었던 군인들 대다수가 알콜증독아니면 조울증에 시달리면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한가지만 원주시 반계리에 사는 그군인들이 말하기를 그때의 악몽에 시달리여 힘들게 사는것을 목격하고그들이 진압작전에서
얼마나 잔인하였는지 하고 말을 하면서 알콜증독에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 당시 광주에 해병대 전역군인들 1231명과 대령출신장교들이 13명이 생계를 유지하면서 살고 있을때
자기들 눈앞에서 학생들을 때려죽이고 총칼로 죽이는데 격분하여 결국은 무장을 잡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 광주시민들중에 운전자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들이 2만 3천 780명이라는 집계가 나왔고
이들이 군경험과 아울러 운전면허소지자들인데 차량탈취는할수 있는거 아닙니까
북한군 600명이 내려 왔다고 허튼소리를 하는자들이 그럼 그때 미군이나 한국군인들이 눈감고 있어는지
그리고 북한군 개입설을 지만원이라는자는 우리 탈북자들에게 얼마나 피눈물을 흘리게 하였는지 그 작자한테 당한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광주교도소습격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교도소에서 계엄군들이 학생들을 잡아다가 무자비하게 죽이고 매장을 하여 지금도
그시체를 찾고 있는중입니다
이름은 조학재 중위 나이 30살 1군단 13사 민경대대에서 잠복근무 나가던중
신입대원이 수류탄 착용시 오발로 온몸을 덮어서 17명의 인원을 살린 사람으로서
1980년4월초에 이있은 일인데 이보고를 1980년 5월13일에 함경북도 시찰나가던 김정일이 열차에서
받고 이날자에 영웅칭호를 수여하여 무력부사적관에 게시한것이고
다른 한명은 이춘영 상사 나이 27살 5군단 화학여단에서 근무하던중 외출시 강원도 평강군 김일성연구실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누구도 근접못하는 그 상황에서 뛰여들어 해설원 여인 3명을 구출하고 다시 들어가서 초상화를 안고나오다가 온몸에 화상을 입고
쓰러지면서 초상화를 가슴에 안고 죽은 일로 이두사건이 김정일에게 보고되여 그날에 영웅칭호된분들입니다
저분들이 광주와 전혀 상관없는 분들입니다
그때 당시는 당중앙위원회 대남사업부가 무력부 산하가 아니고 따로 독립적으로 남쪽으로 공작원들을 파견했어요. 나중에 일부부서가 중앙당에서 무력부 정찰국으로 옮겨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