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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월드컵에 출전한 북한 김영남 선수 / 전문가.주민 “쪽배 표류 불가” 등(프리존뉴즈,조선, 동아, a
헌변홈피독자 0 295 2006-06-30 14:01:53
다음은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의 홈페이지 http://www.law717.org 의 국내보도자료 편에 있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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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프리존뉴스, 조선닷컴, 동아닷컴, asahi 신문의 기사들을 모은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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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프리존뉴스 http://www.freezonenews.com 에 있는 기사임.


거짓말 월드컵에 출전한 북한 김영남 선수


노대통령, 선거민심 수용한다고?


편집장 기자, 2006-06-30 오전 9:14:51




2006년 6월 30일, 오늘은 신문관계법에 대한 헌재의 일부 위헌 및 헌법불합치 결정 파장과 의미 등이 중점 조명되고 있으며, ▲고교생 납북자 김영남씨 회견, ▲미일 정상회담 내용, ▲노대통령-여당 지도부 ‘선거민심 수용’ 방침, ▲정부의 서민주택 재산세 완화 조치 등이 주목되고 있습니다.

○ 헌재의 신문관계법 일부 위헌 판결과 관련해, 은 핵심 조항인 시장지배자 문제가 위헌이 된 만큼 신문법을 폐지하거나 전면 개정하라고 촉구한 반면, 다른 신문들은 헌재가 신문시장의 현실을 외면했다고 불만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 신문법 찬성론자들이 ‘신문시장의 공공성’을 내세워 찬성론을 폈지만 애초부터 이 정권에서 만들어진 신문관계법이 조-중-동을 겨냥한 ‘표적 입법’이라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헌재 결정 이후에도 방송에 나온 교수님들이 ‘신문 시장’을 일반 시장과 동일한 잣대로 규정하는 것은 잘못이라면서 헌재의 결정을 비판하고 있었습니다만, 그들이 현정권의 충실한 앵무새라는 것을 몰라보는 국민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 대한민국에서 선출되지 않은 절대권력 중의 하나로 조-중-동의 위력은 막강했습니다. 그들의 오만과 횡포도 분명히 우리사회에서 극복되어야할 영역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속보이는 ‘표적 입법’으로 조-중-동을 압박하려 한 것은 방법론적으로 잘못된 것이 분명합니다. 조중동을 싫어하든 좋아하든 언론자유가 훼손되고 법치주의 질서가 왜곡되는 경우에는 다같이 저항하는 것이 옳다 할 것입니다. 첨예한 이해대립의 사안에 대해, ‘헌재’라는 기구를 통해 적절한 균형점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 사회의 선진성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신문관계법 개정을 놓고 벌어질 후속 라운드에서는 얼치기 친북좌파들의 ‘특정언론 죽이기’ 차원의 저급한 접근이 배제되고, 진정한 언론자유를 놓고 생산적 토론이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 납북자 김영남씨 회견과 관련해, 언론은 강제납북을 부인한 김씨의 회견은 북한의 사주에 의한 ‘연극’이라고 비난하고, 납북자 문제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대응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 고교생이었던 김영남씨가 쪽배를 타고 졸다가 북한으로 넘어가게 됐다는 말을 믿을 바보가 대체 얼마나 있을까요? 김씨 혼자라면 모르되, 비슷한 시기에 5명의 고교생이 모두 쪽배를 타고 졸다가 북쪽으로 끌려갔다는 얘기나 다름없는데,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럴듯한 구석이 있어야 믿는 시늉이라도 해줄 것 아니겠습니까. 더욱이 김씨를 납치했던 공작원이 귀순해 지금 남한에 살면서 ‘김씨 납치’를 증언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 앞에 나서서 거짓말을 한 김영남씨를 탓할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북한이란 집단의 뻔뻔함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를 두고 ‘가증스럽다’고 하지요. 또 다른 문제는 이런 저급한 연극을 대하는 우리 정부의 태도입니다. 김영남씨가 이런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을 때, 우리 정부는 훌륭한 들러리 역할 말고는 다른 생각이 없어보입니다. 제대로된 정부라면, 즉각 김영남씨 회견에서 드러난 북한측의 ‘납북자 문제 호도’ 태도를 강력 비판하고 납북자 전원에 대한 송환협상 등을 촉구해야 옳은데, 이 정부는 현재도 침묵하고 있고 앞으로도 입을 열거나 적극적 행동에 나설 조짐이 전혀 없어보입니다. 김영남씨는 회견을 통해, “가증스러운 북한권력”과 “바보같은 남한정권”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할 것입니다.

○ 노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만나, 드디어 ‘5.31 선거민심’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정리했다고 합니다. 그 구체적 조치로 6억이하 주택에 대한 재산세 인하 등이 현실화될 것이라고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부동산 세금폭탄’에 대한 조정이 시도될 모양인데, 도대체 어느 수준까지 손질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병주고 약주는’ 방식으로는 절대 성난 민심을 달랠 수 없을텐데, 아무리봐도 이 분들은 스스로 잘못끼운 단추를 원점에서 풀어갈 뜻이 없는 것 같아 또 다른 걱정이 밀려오는 오늘입니다.


2006-06-30 오전 9:13:05 © 프리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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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조선닷컴 http://www.chosun.com 에 있는 기사임.

김영남 모자 오열 속 작별

어머니 최씨에 팔순 사진첩 선물



▲ 30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14차 남북이산가족 작별상봉행사에서 28년만에 북측 아들을 만난 어머니 최계월(오른쪽)씨가 이별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방치된 납북자 문제
- 조선닷컴의 톱뉴스


[포토] 김영남 모자 아쉬운 작별 현장


- 김영남, 이산가족 상봉

김영남-최계월씨 모자가 30일 오전 9시부터 금강산호텔 2층 한 켠에 마련된 별도의 방에서 작별상봉 행사를 가졌다.
아들 영남씨가 선물한 휠체어를 탄 최씨는 상봉장에 들어서자마자 손수건으로 두 눈을 닦으며 오열했다. 최씨를 안아주며 “엄마 울지마”라고 말하는 김씨의 목소리도 울먹임으로 떨렸다.

두 모자는 한참 동안 부둥켜 안고 서로 다독였다.

영남씨는 최씨가 눈물을 그치지 않자 “왜 그래. 됐어..됐다..알아..안다”며 어머니를 진정시켰다. 옆에 있던 며느리 박춘화씨도 “진정하세요. 또 오시면 되지”라고 했고 영남씨는 계속해 “일없어(괜찮아), 일없어”라고 말했다.

최씨가 “아휴, 우리 아들”이라며 눈물을 그치지 않자 영남씨는 “어머니가 너무 감격해 그래. 울지마. 일없어”라고 거듭 다독였다.

이어 누나 영자씨에게 “금강산에 왔는데 온천이라도 한 번 했느냐. 엄마 잘 잤느냐”고 물었다. 영자씨가 “새벽 4시에 일어났다”고 답하자 영남씨는 “노인네라서 일찍 일어났구먼”이라고 말했다.

어머니 최씨가 “너(영남씨) 그런 다음부터”라고 말끝을 흐리자 영남씨는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영남-영자씨 남매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최씨는 손자 철봉군을 안아 뽀뽀한 뒤 “학교 잘 다니고 아빠 엄마 말 잘 듣고, 훌륭하게 커서 또 만나”라고 당부했다.

영자씨는 영남씨에게 “너 봐서 너무 편하게 간다. 또 만날 날 있겠지”라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이어 “와서 볼 수 있게끔 해주세요. 여러분들이 도와주세요”라며 주위에 있던 남북 당국자들에게 호소했다.

은경 양은 할머니에게 “아침에 식사는 잘 하셨어요”라고 안부를 물었다.

어머니 최씨가 다소 진정되자 영남씨는 가지고 온 사진앨범을 꺼내 보였다. 앨범에는 전날 어머니 최씨의 팔순잔치 사진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앨범을 보던 영자씨가 “잘 찍었어”라고 말하자 영남씨는 “우리 측 관계자들이 특별히 나를 위해서 준비했어”라고 자랑했다. 옆에 있던 최씨는 아들 영남씨의 등을 두드리며 대견해 했다.

영자씨가 “아픔이 있는 만큼..”이라며 말끝을 흐리자 영남씨는 “한 번이 아니라 또 봐야지. 이제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전날 영남씨는 남측 가족들을 8월 평양 아리랑 공연에 초대했다.

영남씨 모자는 팔순잔치 앨범을 하나 하나 넘겨 보며 침울한 분위기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영남씨는 누나 영자씨의 사진을 가리키며 “누나 몸 좋다. 중년 부인치고 이만하면”이라고 장난스레 말하자 영자씨는 “찍는 사람이 잘 찍은 것 같다. 나는 좀 만든 사진 같다”고 응수했다.

영남씨가 또 “내 기억 속에 엄마가 상당히 젊었던 것 같은데”라고 하자 영자씨는 동생 이마의 주름을 가리키며 “너가 이렇게 됐는데”라고 28년의 세월이 흘렀음을 일깨워줬다.

영남씨는 영자씨에게 “누나 좀 있으면 시어머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은경양도 앨범을 보며 “고모 막 웃으라 했는데, 안 웃고”라며 영자씨에게 핀잔을 줬다.

영남씨는 “형님, 누나들한테 이 앨범 잘 보여주고”라고 당부했다. 최씨는 “둘째 성(형)이 찾으러 댕긴다고..”라며 28년 전 기억을 더듬자 영남씨는 “됐다, 됐어”라고 만류했다.

영남씨는 이어 취재진에게 “이제 많이 찍으시지 않았냐”며 가족끼리 시간을 갖게 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날 오전 9시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된 작별상봉 행사 중 영남씨 가족상봉은 첫 10분만 공개됐다.

(금강산=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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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조선닷컴에 있는 기사임.


김영남씨의 '놀라운 능력'

北측 김씨 가족 VIP대접..전담 안내원 4-5명

북측은 김영남(45)씨와 그 가족들의 상봉기간 최대한 편의를 제공하며 초특급 대우로 일관했다.



- 김영남, 독일월드컵

김씨의 북측 가족은 상봉 둘째 날인 29일 개별상봉장인 해금강호텔까지 별도 차량을 이용해 이동했다. 다른 북측 상봉자들은 버스를 타고 왔지만 김씨 가족은 번호판 ’평양 73-319’의 현대 카운티 미니버스를 이용했다.
이날 오전 9시50분께 해금강호텔 1층 로비 엘리베이터 앞에는 북측 상봉자들이 남측 가족이 묵고 있는 방으로 올라가기 위해 줄을 섰지만 김씨 가족은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탔다.

김씨 가족에 대한 북측의 각별한 배려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개별상봉 뒤 공동오찬 때는 전날 단체상봉 때처럼 김씨 가족이 별도의 방에서 점심을 먹도록 했다. 김씨는 오찬에서 어머니 최계월씨를 위해 팔순 잔칫상을 준비하기도 했다.

북측 당국자들은 김씨 가족과 남측 취재진의 접촉 기회를 철저하게 제한했다.

28일 첫날 단체상봉 때 김씨 가족이 만나는 별도 방에 남측 취재진을 6명으로 제한했고 다음날 오후 기자회견에서도 남측 취재진 중 7명만 입장하도록 허용한다는 방침을 전해오기도 했다.

김씨와 어머니 최씨의 모자상봉 모습도 사전에 약속된 시간에 한해 공개됐다. 김씨 가족 주변에는 북측 당국자로 보이는 전담 안내원 4-5명이 늘 따라 붙었다.

김씨는 28일 첫 날 상봉행사 때 건장하고 훤칠한 외모로 남측 당국자와 취재진을 다소 놀라게 한 데 이어 둘째 날에는 어머니 최씨에게 줄 휠체어를 하룻만에 마련해오는 수완을 발휘했다.

김씨는 첫날 만찬상봉 때 최씨가 타고 있던 휠체어가 대한적십자사 공용이라는 사실을 알고 누나 영자씨에게 “엄마에게 새 휠체어를 하나 선물하고 싶다”고 즉석에서 제안했다.

김씨는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룻밤 사이 약속한 새 휠체어를 마련, 개별상봉장에 나타났다.

김씨가 하루 만에 최씨의 팔순 생신상과 새 휠체어를 마련한 것은 북측 당국의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북측에서 김씨의 탄탄한 지위를 짐작하게 한다. 더구나 이날 어머니 최씨의 팔순 선물로 90년 된 북한산 산삼, 고려청자 기법으로 제작한 식기세트를 준비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상봉 마지막 날인 30일 작별상봉에서도 김씨의 ’놀라운 능력’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

김씨가 29일 공동중식 때 어머니를 위해 마련한 팔순잔치 관련 사진으로 가득 채워진 사진첩을 들고 나온 것이다. 김씨는 “우리 측 관계자들이 나를 위해 준비했다”고 자랑했다.

북측은 김씨 모자상봉이 포함된 4회차 상봉행사를 지원하기 위해 평양에서 여느 상봉행사 때 보다 40여명이나 많은 행사요원을 파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일련의 일들이 이례적으로 발 빠르게 처리되는 것을 본 우리 측 당국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또 상봉행사가 열린 금강산호텔 주변에는 김씨 모자상봉과 관련한 것으로 추정되는 평양 번호판을 단 벤츠 승용차 7-8대가 항시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북측 당국은 물론 남측 취재진의 관심이 김씨 모자의 상봉에 집중되자 다른 남측 상봉자들 사이에 “김씨 가족만 이산가족이냐”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황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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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조선닷컴에 있는 기사임.


김영남 "메구미와 좋아서 결혼했다"


“메구미, 3살 때 교통사고 당했다고 했다”


납북 김영남(45)씨는 남측 가족을 만나 전처 요코다 메구미가 결혼 전에도 많이 아팠다며 “인간적으로 (결혼)하고 싶어서 알고 결혼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30일 남측 취재진을 만난 누나 영자(48)씨에 따르면 김씨는 “(메구미가) 3살 때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다”면서 “머리를 많이 아파하고 힘들어 해도 보호해줘야 겠다고, 내가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어떤 동정심에서, 또 둘이 좋아했었다”고 밝혔다.

김씨는 “지금도 (메구미와) 결혼 사진, 돌사진을 가지고 있다”며 다른 것은 가지고 결혼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번 상봉장에는 메구미의 사진을 갖고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통일사업한다는 데 어느 정도냐, 과장 계장 등이냐”는 영자씨의 질문에는 “그쪽에 말하면 국장 정도”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강산=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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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조선닷컴에 있는 기사임. 연합뉴스의 기사라고 함.


김영남 `표류' 주장 맞나

전문가.주민 “쪽배 표류 불가”


1978년 여름 선유도 해수욕장 앞바다에서 쪽배를 타고 표류하다가 북한 선박의 구조를 받았다는 김영남(45.당시 고교 1년)씨의 주장은 과연 설득력이 있는 것일까.
김씨의 이 같은 주장과 관련해 전북 군산시 옥도면에 위치한 선유도 주변의 해수 흐름과 지형 등이 어떤지 새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군산대 이상호(물리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북한 선박이 군산 근처에 와 있지 않는 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했다.

이 교수는 “바닷물은 6시간 동안 나갔다가 그 시간 만큼 들어오기 때문에 어느 한쪽 방향으로 계속 표류한다 해도 5㎞ 이상은 가지 못한다”면서 “5㎞면 말도나 관리도 등 고군산군도 부근까지 밖에 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씨의 말대로 쪽배를 타고 북한 해역까지 가려면 적어도 한 달 가까이 걸린다”면서 “이는 선유도 주변 바다의 물흐름상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선유도 주민들의 반응도 대체로 이 교수의 논리와 비슷하다.

선유도 2구 김덕수(61) 이장은 “우선 선유도 해수욕장은 북쪽, 서쪽, 남쪽 모두 섬으로 막혀 있어 쪽배가 표류해 빠져 나갈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김 이장은 이어 “선유도에서 표류하면 썰물 때는 서남쪽인 부안군 위도 방면으로, 밀물 때는 동쪽인 군산 방면으로 흘러간다”면서 “따라서 인천을 경유해 정북 방향으로 표류해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당시 선유도에는 노젓는 배는 있었어도 쪽배는 없었다”면서 “주민 가운데 쪽배는 물론이고 배를 잃어버렸다고 신고한 사람도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반면 서해수산연구소 손재경 박사(해양생태 전문가)는 “바닷물의 흐름은 썰물과 밀물의 영향을 받는 조류와 일정한 방향성을 가진 해류로 나눌 수 있다”며 “김영남씨는 선유도 해수욕장에서 조석간만에 따라 섬에서 멀어진 뒤 서해 연안 해류(황해난류)를 따라 북쪽으로 흘러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김영남씨의 주장대로 쪽배에 탄 뒤 잠깐 잠든 사이 썰물에 실려 섬에서 멀어 진 뒤 해류에 따라 북쪽 방면으로 표류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분석이다.

한편 김씨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실종 당시 여학생을 둘러싸고 불량배들과 다툼이 있었다는 등의 정황은 대체로 맞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의 실종사건을 다룬 전북일보 1978년 8월 17일 사회면 기사에는 “...사고당일 여자친구인 조모양(18·서울 종로구) 등 2명과 4명이 선유도에 간 후 이날 하오 7시쯤 불량배인 김모(22)씨가 여자관계로 시비를 걸어와 김군을 해수욕복 차림으로 해변 우측으로 끌고간 후 돌아오지 않자...” 등의 내용이 실려있다.

선유도는 군산시 고군산군도에 속한 섬 중의 하나로 면적은 2.13㎢(해안선 13㎞)이며 5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선유도 북단에는 해발 100여m의 선유봉이 있으며, 선유봉 정상의 형태가 마치 두 신선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여 선유도라 불리게 됐다.


군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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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母子상봉 보니 불쌍하고 안타까워”

28년 전 ‘김영남 납치’ 김광현씨

나도 그렇고 김영남씨도 그렇고 자신의지와 상관없이 이렇게 되고 만거야



▲ 1980년 생포당시 김광현씨.

- 방치된 납북자 문제
- 조선닷컴의 톱뉴스


``난 배만 몰았디… 그래도 미안하디…``


- 김영남, 이산가족 상봉

- 한반도 평화의 길

29일 오전 6시45분 김광현(金光賢·68)씨는 출근길이었다.

자신이 북한으로 강제 납치했던 까까머리 고1생 김영남(金英男)씨가 앞머리가 벗겨진 중년이 되어 28년 만에 남에서 온 팔순의 모친, 최계월(崔桂月)씨와 금강산에서 ‘눈물의 상봉’을 한 다음날이었다. 지령에 따른 남파간첩의 공작이 빚은 비극이었지만, 김씨는 깊이 침묵했다.


검은색 바지에 소매를 접은 긴팔 와이셔츠를 입은 김씨는 자신이 납치했던 김영남씨가 최씨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막내아들’이라는 것이 일본정부의 DNA 검사로 밝혀졌던 두 달 전보다 더 수척해졌고, 걸음도 힘겨워 보였다. 그는 혹시나 주변 사람들이 기자와 자신을 보고 있지 않은지 계속 두리번거렸다. 잰 걸음으로 앞서 가던 그가 기자를 뒤로 보며 짧게 말했다.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어. 그만 (나를) 내버려 두라.”


종로에 있는 사무실로 향하는 지하철에 올라 탄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창 바깥으로 눈을 돌렸다. 입술을 꽉 다물고 있었다. 그때 김씨 옆에 앉아 있던 한 회사원이 신문을 펼쳤다. ‘김영남씨, 어머니와 28년 만에 상봉’. 그의 눈은 사진과 기사를 위아래로 재빠르게 훑고 있었다. 곁눈질이었다.


지하철이 잠시 정차하자, 그가 닫았던 입을 열었다. “어제 TV로 잠깐 봤어. 참 불쌍하고 안타까운 일이야. 화면이랑 자막을 통해서. 요새 당뇨와 고혈압이 심해져서 귀가 더 안 들려.”


그러곤 다시 침묵하던 김씨가 어렵게 말을 이었다. “김영남씨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렇게 되고 만 거야.”


김영남씨와 모친 최계월씨가 금강산에서 눈물의 해후를 했던 28일, 그는 장모의 49재(齋)를 올렸다. 그는 장모를 ‘어머니’라고 불렀다. “어머니께서 무슨 잘못이 있으셨나. 나 때문에 이렇게 되신 것 같아 마음이 아파.”


지하철이 을지로입구역에 도착하자, 김씨는 힘겹게 지하철 계단을 올랐다. 회사 근처에 다다르자 그는 악수를 청했다. 명함을 건네려 하자 그것도 사양했다. “필요 없네. 나를 내버려 두게. 그냥 지켜봐 줘.” 출근 인파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그는 “(김영남 모자의 비극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북한에선 이날 김영남씨가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은 납북된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납치와 피랍의 당사자들이 뒤바뀐 운명으로 각각 한국과 북한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본능적인 ‘방어’를 하고 있었다.


김씨는 북한에서 대남간첩의 침투·복귀 업무를 담당했던 ‘301해상연락소’에서 근무했으며, 1980년 6월 간첩선을 타고 충남 대천 해상에서 침투를 시도하다 생포된 뒤 남한에 귀순했다. 김씨는 당시 조사를 받을 때 “김영남씨를 군산 선유도해수욕장에서 납치했다”고 진술했지만 최근 인터뷰〈본지 4월 15일자〉에선 “자신은 배에서 갑판 일만 담당했고, 김영남씨는 얼굴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었다.





전현석기자 winwin@chosun.com

입력 : 2006.06.29 23:55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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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 가족 “北의 정치 쇼 불과”


“고교생이 자진해 北 남겠다 했겠나”



- 방치된 납북자 문제
- 조선닷컴의 톱뉴스


- 김영남, 이산가족 상봉

- 한반도 평화의 길

납북자가족 단체는 북측이 주선한 김영남씨의 기자회견에 대해 결국 쇼라고 비판했다.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납북자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납치 사실의 인정”이라며 “28년 전 학생 신분으로 자진해 북에 남기로 했다는 말을 누가 믿겠느냐”고 말했다.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사무총장도 북한의 쇼라며 “정부는 자국민 보호라는 원칙에 입각해서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6·25 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미일 이사장은 “김정일의 블랙코미디”라며 “납치 피해자에게 ‘납치가 아니다’라고 말하게 하는 것은 반인륜적”이라고 했다.

납북자 가족들은 기존처럼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납북자 일부를 포함시켜 만나게 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강제 납북과 전쟁에 의한 이산가족은 문제의 성격과 해법이 다르다”며 “가해자가 먼저 사과를 하고 송환을 전제로 해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도 총장은 “북측에 끌려 다닐 것이 아니라 직접적이고 과감한 협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북한이 김씨의 입을 빌려 모든 납북자는 자진 월북 또는 불가피한 월북이라고 주장하면서 송환 요구에 선을 그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남 교수는 “우리도 일본처럼 납치 전후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를 수집해 가면서 북한과 협상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가족 상봉 자체에만 집중해서는 문제를 풀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당국자는 이에 대해 “정부의 목표도 다르지 않다”며 “하지만 북한이 납북자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가족들을 위한 최선의 방법을 취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용균기자 agon@chosun.com

입력 : 2006.06.30 00:00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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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동아닷컴 http://www.donga.com 에 있는 기사임.
“金씨 여러곳서 압력받아 본심 말하기 힘들었을것”






“그동안 들었던 북한 측 설명과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29일 오후 5시경 일본 TV를 통해 방영된 김영남 씨의 기자회견을 본 일본인 납치피해자 요코타 메구미(실종 당시 13세)의 부친 요코타 시게루(橫田滋) 씨는 이렇게 단언했다.

일본에서는 김 씨의 전처인 메구미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들을 수도 있다는 기대로 기자회견에 뜨거운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김 씨가 ‘메구미는 1994년 우울증에 따른 자살로 사망했다’는 그간의 북한 측 설명을 되풀이하자 일본 언론들은 ‘역시나’ 하는 반응을 보였다.




요코타 씨는 “가짜 유골을 보내 우리를 납득시키려 했던 2004년의 상황과 똑같다”며 “우리로서는 일본 정부에 메구미의 생존을 전제로 교섭하되, 잘 안 될 경우 북한에 대해 경제 제재를 하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김 씨가) 혜경이를 일본에 보내지 않겠다는 것은 친권이 있으니 뭐라 할 수 없는 일”이라며 “혹 유학을 올 의사가 있다면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메구미의 어머니 요코타 사키에(橫田早紀江·사진) 씨는 “김 씨가 얼마나 본심을 말했는지 의심스럽다”며 “어제(모자 상봉)도 감시원들이 주변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김 씨는 여러 곳에서 압력을 받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은 “북한에서는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일본 정부는 납치 피해자가 전원 생존해 있다는 것을 전제로 교섭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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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asahi 신문 http://www.asahi.com 에 있는 기사임.


「怒りで煮えたぎっている」横田夫妻会見


2006年06月29日22時12分



 「めぐみは、不幸にも94年に死亡した。これがすべてだ」。29日、北朝鮮から流れてきた横田めぐみさんの夫とされる金英男(キム・ヨンナム)さん(44)の記者会見。その映像を東京で見ていた、父滋さん(73)は唇をかみ、母早紀江さん(70)は大きく息を吸い込んだ。「予想通りの内容」。2人はそう言ったが、「死亡」という言葉を淡々と読み上げるように語る英男さんに対し、怒りを隠せなかった。
厳しい表情で記者会見する横田夫妻=29日午後5時34分、東京・永田町の衆院第1議員会館で


 「相当に訓練されて(記者会見に)来ている。予想された通りの会見」「目新しい事実は何もなく、今後もめぐみの生存を前提に交渉してほしい」

 映像の放映直後に始まった記者会見では、横田夫妻は「北朝鮮の従来の主張通り」と冷静な姿勢をみせた。遺骨について「(日本側が)偽だと決めつけるのは、私とめぐみに対する侮辱」とした発言については、「偽の骨を持ってきて納得するように言っているのは、これまでと同じ」と話した。

 会見が進むうちに、娘と孫を愛する両親、祖父母としての顔がにじみ出た。

 早紀江さんは、めぐみさんの病気について「出産も育児も何も教えられていないことを初めて経験して、どんなに大変だったかいつも想像してきた。うつ病にはなったかもしれない」「あまりにも孤独で、それでも生きていかなければならない。13歳まで本当に幸せに暮らしていたのに、なって当たり前だと思う」と繰り返した。

 英男さんについて質問が及ぶと、「向こうにいたから偶然結婚させられただけ。日本にいましたら、健全な結婚ができて、子どももできて……」と、少し声を震わせる場面もあった。

 英男さんが、めぐみさんの娘ヘギョンさん(18)を「日本に行かせるつもりはなく、本人も行く意思はない」と話したことについては、滋さんは「父が親権者なのだから、こちらが無理に連れてくることは難しいかもしれないが、留学などで、受け入れたい」と控えめに話した。

 演出されたような英男さんの記者会見に、いらだちも。1時間弱の会見の最後に、滋さんは、韓国政府に対し「北への融和政策をとるのはわかるが、拉致をなかったことにするのは間違いだ」と訴えた。

 早紀江さんは、小さくため息をつき「頭の中も、おなかの中も怒りで煮えたぎっている。怒りすぎて、倒れてしまいそう」と漏ら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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