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위병이 김일성을 싫어한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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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위병이 김일성을 비판한 이유에 대해 중공 가서 손가락의 힘을 보고 온 일성이 1967년 1월 20일, 김일성을 비난하는 최초의 대자보가 나타났다. 해당 대자보는 부수상 겸 정치위원회 위원 김광협이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최용건의 지시로 체포되었다고 비난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는 헛소문으로, 김광협은 1967년 12월에 부수상에 재임명되면서 건재함을 드러냈고 조선중앙통신은 이를 두고 자본주의 국가의 음해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김일성에 대한 홍위병의 공격은 그치지 않았는데 1967년 2월 4일, 군부 쿠데타로 김일성이 체포되었다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었으며 북한 여행을 다녀온 홍위병들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홍위병들의 김일성 공격 근거는 다음과 같았다. 1. 수정주의자이며 흐루쇼프의 추종자. 2. 월남 인민의 투쟁을 무시하며 월남에 군대를 보내지 않고 있다. 그럼 너네는?(사실 북한은 비밀리에 베트남에 공군을 파견했다) 3. 우리의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을 무시하고 있다. 이는 문화대혁명의 성과를 왜곡하고 모택동 주석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다! 4. 평양을 가보니까 김일성 이거 물질적 쾌락에 미쳐서 혁명 열기를 싹 잊어먹었다. 수정주의자가 틀림없다. 5. 반혁명 수정주의자, 백만장자, 귀족, 자본가 새끼다. 평양에 있는 김일성의 자택은 마치 황제의 궁전과 같다. 지들끼리 화려한 선물을 주고받고 저녁에는 만찬을 즐긴다. 당연히 김일성은 문혁같은 정신병자 짓거리에 동참할 생각도, 그렇다고 굳이 반대할 생각도 없었지만 적어도 북한에까지 퍼지는 것은 원하지 않았는데 홍위병들의 비판이 거세지자 알제, 자카르타, 뉴델리, 아바나의 공사관을 통해 <조선중앙통신> 기사를 배포하여 자기네 자주노선을 핍박하지 말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북중관계는 소련과 북한의 관계회복, 북중국경문제로 인해 극도로 악화되었고 한때 각각의 대사를 소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중국이 데탕트를 추구하면서 북한의 말을 잘 듣게 하기 위해 당근을 척척 쥐어주면서 관계는 회복되는 듯 했지만 판문점에서 어떤 병사가 도끼를 휘두르면서 그 결과는....?~~^^ 참고문헌: 서대숙, 김일성 평전, 청계연구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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