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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신. 이오시프 스탈린.독재의 최고봉. 제16편..
Korea, Republic of 돌통 0 217 2019-11-12 13:51:25

             붉은 군대 스탈린의 소련이 제 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끔.



그러자 보다 못한 몰로토프 등의 심복들이 스탈린의 관저로 가서 스탈린에게 대책을 세워야 할 거 아니냐고 요구하기 위해서 찾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들은 먼저 스탈린을 설득하기로 하고 스탈린의 관저로 찾아갔다.이때 니콜라이 보즈네센스키는 만약에 그래도 스탈린이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스탈린이 아니라 몰로토프에게 전쟁 지휘권을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본 관저에 있던 스탈린은 축 늘어져서 안락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자신들이 오자 "무슨 일이오?"라고 물었다. 나중에 출판된 미코얀의 회고록에 따르면, 스탈린은 갑자기 찾아온 측근들을 경계하는 눈치였으며 굉장히 나약하고 의기소침해 보이는 모습이여서 그런 스탈린의 모습을 보지 못한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미코얀의 회고록에는 스탈린이 측근들이 스탈린을 불신임하고 체포하러 온 줄 알았다는 눈치라고 생각했다고 적혀 있었다. 이 때문에 로버트 서비스, 앤터니 비버 등 여러 저명한 연구에도 스탈린이 체포를 두려워했다는 내용이 기술되었으나 이는 사실 미코얀의 아들인 세르고 미코얀이 아버지의 회고록을 멋대로 조작해서 넣은 문구고, 미코얀이 직접 기술한 회고록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이는 나중에 미코얀의 회고록 초판이 공개되면서 밝혀졌다.



당시 스탈린의 속내는 이반 4세가 자신이 왜 통치해야 하는지를 각인시키기 위해서 수도원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던 이유와 비슷하다는 추측이 있다. 물론 정말로 충격을 먹은 것도 영향이 상당히 있겠지만..  한마디로 "이놈들이 왜 이제서야 나의 중요성을 깨닫고 찾아오는 거야." 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스탈린에게 전쟁을 이끌 사람의 필요성을 이야기했고, 그러자 스탈린은 "그래서 누가 전쟁을 지휘할 것인가?" 라고 이야기했다. 이에 심복들은 "당신이 전쟁을 지휘해 주시오." 라고 이야기했고, 스탈린은 꽤나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그 제안을 승낙하여 전쟁을 지휘했다.



특히 스탈린은 자신의 부하들이 자신들끼리 권력 투쟁이나 자리 싸움을 하는 것을 보고 더욱 안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만약에 몰로토프가 전쟁을 지휘한다고 이야기했을 경우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모조리 숙청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라브렌티 베리야 "스탈린의 나약한 모습을 본 미코얀과 몰로토프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대가를 치루게 될 것이다." 라는 섬뜩한 예언을 했다. 그러나 미코얀과 몰로토프 모두 정치적 굴곡은 있었을지언정 그냥 제 수명에 죽었다.


미코얀은 1978년에 사망, 몰로토프는 1986년에 사망. 어쨌든 현실을 깨달은 후에는 적극적으로 전쟁수행에 개입했다. 이것이 지나쳐서 몇몇 군사작전에 개입했다가 수백만의 병력을 날려먹긴 하지만,자신이 개입해 봐야 별로 좋을게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이후에는 직업군인이 짠 작전에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히틀러는 이와 반대로 더욱 개입해서 안 그래도 시궁창이었던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여기서 스탈린과 히틀러의 군에 대한 자세와 태도를 비교할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치타델 작전 당시 히틀러는 군사작전과 행정에 온갖 간섭을 하여 혼란과 비효율성을 이끌어 내고 막판에는 서부 연합의 이탈리아 침공이 이뤄지자, 이탈리아의 중요성을 장성들에게 역설하며 그나마 조금씩 성과를 내던 작전을 취소 시켜 버렸다.


반면 소련은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 군사회의에서 한개의 돌파구에 전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스탈린과, 적어도 두개 이상의 돌파구를 열어 독일군에게 혼란과 피해를 강요해야 한다는 콘스탄틴 로코솝스키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스탈린은 그에게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게'라며 두번이나 돌려 세웠으나 계속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자, 스탈린은 그에게 다가가 어께위에 손을 얹었고, 그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스탈린이 그의 계급장을 떼어 낼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자네의 타당한 판단이 자네의 자신감을 받쳐주는 것이겠지.라며 로코솝스키의 제안을 따랐다. 그리고 작전은 대성공.



1941년 11월 7일 모스크바 10월 혁명 퍼레이드 스탈린은 행진하는 부대를 향해 레닌 묘소에서 짧은 연설을 했다.


"앞으로 몇 개월 안에, 반년이나 어쩌면 1년 이내에, 히틀러의 독일은 그들이 저지른 죄악의 무게로 인해 붕괴할 것입니다."

스탈린 독재자....


가장 큰 위기는 1941년 12월의 모스크바 전투였는데, 스탈린은 정부 부서를 모두 동쪽으로 피난시켰으면서도 시와 운명을 함께할 것이라고 선언했고, 실제로 공방전 내내 모스크바를 지키면서 방위전을 독려했다.


게오르기 주코프와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의 활약으로 모스크바는 성공적으로 사수되었다. 이후에는 총사령관 대리인 주코프에 작전지도를 맡기고, 자신은 자는 시간을 빼놓고 하루 12시간 이상씩 일하면서 전쟁 수행에 필요한 행정을 총괄했다.

그는 전쟁 전부터 총괄하던 일반 행정뿐만 아니라 군업무로부터 군수생산, 그리고 서방 원조까지 거의 모든 방면의 세부사항을 직접 챙기면서 실무진에 엄청난 압박감을 주었고, 이들은 저승사자였던 스탈린의 노여움을 사지 않기 위해 죽어라 일을 했다.


실제로 이 당시 대숙청 기간은 아니었으나 자신의 임무를 달성하지 못한 자는 굴라그로 가거나 혹은 처형되었다. 이런 면에서 스탈린은 2차대전 당시 소련의 승리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무리한 작업은 스탈린의 육체를 크게 손상시켰다. 주코프가 회상하기를 스탈린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노화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얼굴은 쭈글쭈글해졌으며, 눈은 심하게 쳐지고 몸동작도 느려졌으며 머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새하얘졌다고 한다. 실제로 1939년과 독소 불가침 조약 때와 1945년 얄타 회담 에 찍은 사진을 보면 6년밖에 안 지났는데 머리나 수염이 모두 새하여졌다는걸 알 수 있다.

 

게오르기 주코프가 작전 계획을 짜는 동안 스탈린은 정치가들을 이용하여 군수물자의 생산을 늘리도록했고, 1942년 소련은 놀라운 성과를 달성했다.

소련 경제는 1942년 후반 여섯 달 동안 독일이 그해를 통틀어 얻을 수 있었던 생산 수준에 도달했을 정도로 전쟁 수행에 성공적으로 헌신했고, 그 수치는 주목할만 했는데, 그 반년 동안 소련은 15,000대의 항공기와 13,000대의 탱크를 생산해냈다. 즉 탱크와 항공기 생산에서 엄청난 성과를 올려 독일군의 침략을 상대했던 것이다. 그야 말로 스탈린의 강철철권 이었다.


어쨌든 붉은 군대는 모스크바 공방전, 스탈린 그라드 전투, 쿠르스쿠 전투, 레닌그라드 포위전, 바그라티온 작전을 비롯한 전투에서 전세를 역전시키고, 베를린을 함락시킴으로써 1945년 5월 9일 마침내 게오르기 주코프 장군은 국방군 총참모장 빌헬름 카이텔로부터 항복문서를 받아냈다.


마침내 독소전쟁이 마무리된 것이었다. 당시 소련인들이 얼마나 기뻐했는지는 달리 설명할 필요도 없다, 당시 모스크바에서는 축포가 1000여발이나 발사되었고, 화려한 불꽃놀이가 벌어졌으며, 무엇보다도 모두들 엄청나게 마셔댔다.

비록 본진이 탈탈 털려서 식량은 없었지만 보드카는 넘쳐나서 술은 잔뜩 마실 수 있었으며 경찰들은 사람들이 고성방가를 하거나, 오줌을 벽에다가 싸는 것도 눈감아주었다고 한다.


이 가슴 벅찬 승리에 스탈린 그 자신도 대단한 감명을 받았음은 분명해보인다.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는 아버지와 관계가 소원해진지 꽤 오래 되었음에도 전승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드디어 우리가 이겼어요!"라며 축하의 인사를 건냈다.

스탈린 또한 이 날 만큼은 딸에 대한 나쁜 감정을 잊어버리고 감동과 기쁨에 가득찬 목소리로 "그래, 우리가 이겼구나."라는 말로 화답하였다. 그런데 정작 스베틀라나와 이야기를 나눈 후에 부하들로부터 승전을 축하하는 전화가 걸려오자 되려 벌컥 화를 내며 "지금 한가하게 전화나 하고 있을 때란 말이오?"라며 퉁명스런 태도로 일관했다.
 

그해 6월 24일, 모스크바에서 역사적인 전승 기념 개선식이 벌어졌다. 본래 이 날에는 러시아군의 전통에 따라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최고 사령관이 백마를 타고 개선식에서 그림처럼 달려나가기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


물론 여기서 최고 사령관은 주코프가 아니라 스탈린이었다. 그러나 이 그림은 완성될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스탈린이 탈 수 있을 만한 아랍산 백마는 구할 수 있었지만, 승마에 익숙하지 않은, 정확히 말하자면 안 타본지 오래 되어서 감이 떨어졌는데 건강까지 나빠지는데도 괜히 마상 사열을 하려다 고생한 것.


소싯적엔 스탈린도 한 승마 하는 기병대 정치위원이었다. 스탈린이 이 말을 타자 놀란 말이 앞다리를 치켜 드는 바람에 스탈린은 굴욕적으로 내동댕이 쳐져서 머리와 어깨에 부상을 입었다. 기분이 상한 스탈린은 큰소리로 말했다. "주코프더러 행렬의 선두에 서라고 하시오. 그는 노련한 기병이니까." 이에 다시 베를린에서 모스크바로 호출을 받은 주코프는 스탈린으로부터 말을 잘 다루냐는 질문을 받았다.


물론 주코프는 러시아 내전 당시 기병 장교였으니 이런 질문은 물을 가치조차 없었다. 그러나 이 독재자가 자신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주코프는, 본능적인 방어로 당연히 스탈린 동무만이 최고사령관으로써 행렬에 선두에 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자신이 너무 늙어서 힘들다며 주코프에게 선두에 설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스탈린은 행사장의 가장 높은 곳 위에서 말을 타고 가는 주코프를 보았다.


  이상.  끝..  제 17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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