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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신.이오시프 스탈린. 독재의 최고봉.22편..
Korea, Republic of 돌통 0 182 2019-11-27 20:14:10

스탈린 사망후 그의 장례식은 어땠을까..?

 


파일:external/seanmunger.files.wordpress.com/zombie-stalin.jpg

"그를 보니 5개년 계획과 공포정치, 대조국전쟁 등 그들의 지난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스탈린은 그들이 집단적으로 걸어온 길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그들은 소비에트 국가를 강화하고, 군사력과 산업 생산력을 높이고, 영토를 확장하고, 정치적 안정을 꾀하며 함께 노력한 동지들이었다.

 

그들은 스탈린이 두렵기도 했지만, 그의 지성과 경험을 존경하기도 했다.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줄 때조차 그들을 매혹했다. 그가 소파에 축 늘어져 있는 동안, 어떤 초인의 능력으로도 그가 다시 일어나 소련의 공적 생활을 지배할 수 없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스탈린의 지도하에 수백만을 굴라그에 처넣었던 사람들이 의식을 반쯤 잃고 마비된 늙은이를 보면서 벌벌 떨었다. 그가 그들을 노예로 만들어놓았던 것이다.

 

설사 한순간일지라도, 그가 벌떡 일어나 모두를 파멸시키라고 명령할 가능성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그들은 죽어가는 스탈린에게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지도자가 숨을 거두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몇몇 사람이 서로의 품에 쓰러졌다.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는 슬픔에 정신

을 잃고 흐루쇼프의 품에 안겨 위로를 받았다.

 

그들은 시종들도 들어와 주검을 보게 했다. 바로 몇 시간 전에 스탈린 사후의 정치를 논의했던 간부회 지도자들도 가슴이 쿵 하고 내려 앉았다. 그들의 인생 뿐만 아니라, 이 나라 역사에서 한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었다."

 

- 스탈린 강철 권력 -
 
 
 
그의 죽음이 발표되자 소련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스탈린의 오랜 통치 카리스마와 오랜 숭배 의식으로 이미 신격화가 철저히 진행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가 죽자 수많은 인민이 대성통곡을 했고 소련 인민들은 공황상태에 빠질 정도였다.
 
 
몇년간 그가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혀 들은 적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소련 각지에서 그를 숭배하던 국민들이 몰려들었다.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들은 모두 만원이었고, 경찰의 통제가 필요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운집했다. 스탈린은 그의 스승이라고 알려진 레닌과 비슷한 방식으로 장례를 치를 계획이었다.
 
 
이집트의 파라오처럼 방부 처리가 된 시신은 유리관 속에 넣어져 레닌 영묘에 함께 안장될 예정이었다. 독재자가 현직에서 죽으면 대체로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실제로 김일성, 마오쩌둥의 장례식을 보면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사후 시신은 방부처리되어 붉은 광장에 있는 레닌 영묘에 합장되었다.
 
레닌과 같이 스탈린도 잠자는 듯한 모습으로 방문객이 관람할 수 있었고 당시 영묘 입구에도 레닌과 스탈린의 이름이 동시에 쓰여있었다. 그러다가 후에 스탈린 격하 운동 이후 1961년에 다시 화장되어 크렘린 벽 묘지에 안장되었다.


스탈린의 관 옆에는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라고 외치는 휘장이 쳐졌다.
 
스탈린 동무는 죽음에 이르러서도 자신의 특기를 끝까지 발휘했다. 3월 8일 그의 시신을 보려는 인파가 너무 많이 몰려서 수백명이 깔려 죽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었다.
 
 
이 참사는 스탈린의 장례식에서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소련 체제에 타격을 줄 것을 우려한 소련 지도부가 은폐하기로 결정하면서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다.
 
 
로버트 서비스는 스탈린이 죽어서까지 죽음을 부르는 능력을 잃지 않았다고 촌평했고 올레크 흘레브뉴크는 이 참사가 외국의 사주로 일어난 것이라는 음모론이 나타난 것을 지적하며 스탈린이 인민들을 잘 교육시켜놨다고 촌평했다.


스탈린의 죽음에 대해서 많은 인민들이 그의 죽음을 정말로 슬퍼했지만 노골적인 증오와 적의를 드러내는 사람도 있었다. 이 때문에 국가보안부는 스탈린에 대해 불경한 발언을 한 인민들을 체포하여 처벌했다.


여담으로 바로 같은 날에 대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가 사망. 그러나 그의 죽음은 스탈린의 죽음에 묻혔는데
 
더욱 더 안습한 사실은 스탈린의 죽음에 조화를 사가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조화를 사가서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장례식에는 쓸 수 있는 조화가 단 한개도 없어서 조화 없이 장례식을 치뤄야 했다는 심히 안습한 이야기가 있다.


1953년 3월 9일, 스탈린의 장례식이 끝났다. 이제 레닌-스탈린 영묘로 이름을 바꾼 레닌 영묘에서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주가시빌리는 영원히 잠들었다.


자유 진영의 거두 미국, 영국을 포함해 전세계에서 고위급의 인사로 구성된 조문단이 장례식에 참석했다.
 
 
세계의 언론들은 스탈린의 죽음을 알리며 그를 위대한 지도자로도,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사악한 독재자로도 평가했지만,
 
그가 농업국가 러시아를 원자력 소련으로 현대화했으며 세계를 양분하는 초강대국의 지도자이자, 무엇보다도 히틀러에 맞써 싸운 최고사령관 중 하나였다는 것에 경의를 표했다.
 
 
 
           이상.   끝..   다음편 2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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