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천국 8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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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다시 말 하지만 이 말씀의 의미는-사람이 죽은 후에 가서 보는 천국이 아니요. 죽기 전에 -언제인가는 반드시 이 땅에서 이루어져서 이 땅에 살아있는 사람이 보게 될 것이라는 새 세상의 꿈과 이상을 말씀한 것이다.
이는 바로 2천년이 지난 오늘 이 시대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이라고 해석되는 말씀이다.
사람의 개인적인 생명은 수명이 다하면 죽게 된다. 그러나 땅위에 사는 인류는 영원할 것이다. 다시 말해 살아있는 사람은 역사가 흘러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남은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천국 같은 하나님나라를 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진정 인류가 이러한 이상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이 세상을 참으로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그 꿈을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인류에게 심어준 영원한 인류의 꿈이다. 예수께서는 이 위대한 꿈을 위한 제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그래도 인류에게 이 꿈이 있었기에 그 처절한 왕권주의 전제주의 제국주의 일인 독제 체제하에서도 꾿꾿 하게 참고 견디며 오늘까지 버티어 온 것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2 천 년 전 그 시절에 비하여 오늘의 세계가 얼마나 살기 좋아졌는지는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2 천 년 전 예수님당시의 세상에 비하면 오늘의 세상은 천국처럼 달라졌다.
-당시의 모든 백성은 한사람의 왕을 위해 살았다.
당시의 모든 부는 오직 왕과 그를 추종하는 몇 사람들만의 소유였다. 그러므로 많은 백성들은 입에 풀칠하기에도 힘들었다. 뿐 만 아 니라 글자를 비롯한 모든 문화마저 일반 백성들에게는 그림의 떡 과 같았다.
그러한 때에 예수께서 오셔서 모든 백성에게 지상의 천국 곧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신 것이다. 이는 참으로 그 어떤 것에 비교 할 수 없이 귀한 일이다 무어라고 표현 할까.!!
이는 지상에 다시없는 대 개혁이다 - 민주개혁, 정치개혁, 경제개혁, 계급, 문화, 시민, 종교’생활 역사개혁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시의 체제하에서는 이러한 개혁 없이는 결코 상상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예수님의 이 한마디 -‘하나님나라’의 선포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려놓는 너무도 귀한 개혁의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오늘 당장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요. 오고 오는 세대를 통하여 계속해서 점진적으로 이루어가야 할 인류의 꿈이요 역사발전의 과제이다.
다시 말하지만 예수님은 그 꿈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다. 그리고 그 때에 비해 지금은 그 예수님의 꿈이 너무나 많이 이루어 졌다 이는 예수님의 다음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4:24)
이 말씀처럼 그분이 십자가에서 재물이 된지 2천년이 지난 오늘에야 세계는 비로소 모든 신분과 계급의 차별을 없애고 만민이 평등한 이상 국가를 표방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그러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계속된 노력이 진행돼야 할 것이다.
근래에 아프리카와 중동의 민주화 열풍을 보면 안타깝고 한숨겨울 뿐이다. 그분께서 지상천국의 이상으로 민주화의 씨 곧 하나님 나라의 씨를 뿌린지 2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지난 오늘에야
지구의 구석구석까지 민주화의 바람이 불어 수많은 목숨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면서도 민주화를 이루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아름다운 나라 건설을 외치는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생각해 보면 예수께서 지상천국 곧 <하나님 나라>의 씨앗을 뿌려놓은 후 세계는 계속해서 그 씨앗을 싹트게 하기 위한 혁명적 싸움을 계속해 왔다.
과거 프랑스 시민 혁명이나 영국의 산업 혁명 등 수없는 하나님나라를 이룩하기 위한 운동이 세계도처에서 진행되어 왔음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쨌든 이 과제는 영원한 인류의 꿈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의 제자 된 우리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때로는 십자가를 지는 아픔이 계속 돼야 할 것이다.
※ 지금까지 기독교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오직 속죄와 구원의 제물로만 설명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깊은 의미는 바로 사랑의 실천이요, 평화 평등 자유의 선언이요.
한걸음 더 나아가 지상천국인 하나님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이상국가의 제물로 그 의미를 새롭게 재해석해야 할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이에 대하여 평소에 생각해온 내 생각을 표현하고 싶다.
[막]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
앞에서 언급한 대로 지금까지 교회에서는 이 말씀을 오직 속죄를 위한 말씀으로만 인용하면서 예수의 십자가를 오직 속죄를 위한 제물로만 해석 해 왔다.
※ 그러나 나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그것은 이미 몇 번 언급한 것처럼 그 당시 종교 정치 사회적 상황에서 예수님의 만민 평등과 만민 행복을 위한 하나님나라 선포..
곧 지상 천국사상은 당시의 기득권층에게는 정면 도전이 될 것이니 이를 다 알고계신 예수께서는 결국 자신의 이러한 말 때문에 십자가의 희생이 불가피 함을 다 짐작하고 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본문(막10;45)의 말씀을 -“ 자기 목숨을 대속 물로 내주러 왔다."고 구속사 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사실적으로 말하여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 목숨을 내어주러 왔다“고 하는 위대한 결단과 희생을 표현하는 것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해야 만이 본문의 내용이 더 자연스러워 진다. 왜냐하면 본문의 전후를 보면 이는 제자들에게 겸손을 가르치기 위한 말씀이지. 결코 속죄나 구속을 가르치는 말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대 갑자기“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는 말씀은 전후가 맞지 않는 부자유함을 면키 어렵게 한다. 사실 나는 이 문제를 교리적 해석보다 더 사실적으로 해석해 야 한다고 생각해..
현재 번역되어 있는 성경을 다 읽어보았다 그것은 행여 교리적으로(구속사)보다 사실적으로 기록한 성경이 있는지 찾아보고 싶어서 였다. 그 결과 정말 내 생각에 꼭 맞는 성경을 발견하고 너무 기뻤다. 여기 소개한다.
막10:45 인자가 온 것도 섬김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요,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몸값으로 주려고 온 것이 라 하시니라.(현대번역,표준,공동번역)
막10:45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공동번역)
여기에서 이 세 성경은 다 같이 -“대속 물로 내어주러 왔다”고 구속사 적으로 번역하지 않고 현대 번역에서는“ 자기 생명을 몸값으로 주려고 온 것이라” 고 번역 되었으며 공동번역 성경에서는“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라고 번역되어 구속사적 의미로 기록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기록 된 것을 확인 하였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는 것은 구속적 목적보다 현실적으로 -그 당시 구조적으로 잘못된 세상(높은계급,과 부자들만을 위한세상)을 바꾸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런 세상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나라 건설이 목적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가톨릭은 개신교에 비해 보다 보수적인 교리에 더 집착하고 있다고 보는데도 불구하고 구속사적으로 기록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말할 것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 보다 원뜻에 맞는 사실적 해석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문제는 앞으로 학계에서 더 깊게 연구해야 할 문제임에 틀림없다.
어쨌든 명심해야 할 것은 -이처럼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나라는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하는 현실적인 천국으로 말씀하신 것이지, 결코 확인 할 수 없는 내세에서 이루질 것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분명한 것은 아무리 귀한 천국의 말씀이라도 깨닫지 못 한 자에게는 무의미 하다 더구나 당시 원시적 사고와 전통적 관습으로 굳어진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지상의 천국에 대한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소귀에 경 읽기 같은 경우요. 마치 돌밭에 떨어진 씨앗처럼 무의미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모르시는 예수가 아니기에 그분은 가끔 말씀 한다.
(마11: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마12;9,43,막4;9,23,눅8;8)
오죽 답답했으면 그렇게 말 해야만 했는지를 짐작도 되지만 사실 예수님 자신도 당시의 사람들이 결코 알아듣지 못하리라 생각하면서도
당신의 말씀처럼 언젠가는 이 인류에 당신의 이상인 지상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질 것이라는 그 믿음이 싹을 내고 꽃피어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결국은 십자가에 몸을 던지기까지 계속해서 외쳤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제부터라도 하늘 위의 천국만을 말하지 말고 땅위에 천국을 건설하기 위한 하나님 나라 선포를 위한 말씀을 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진정한 복음이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될 때 세상은 비로소 보다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인류와 세상을 사랑하신 예수께서는 이러한 세상을 이루기 위해 2천 년 전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선포 하였다. 이는 실로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요. 인류역사에 두고두고 변함없는 가장 큰 은혜일 것이다.
**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
무엇보다 하나님나라 곧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은 개인의 심령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그것은 각 개인의 깊은 회개로부터 이루어짐을 말 한다.
(마21:31)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 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이 비유의 말씀은 택함을 받았다고 자만하는 유대인 지도층들과 재물만 추구하는 당시의 부자들 곧 기득권자들을 비판하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계층에서 진정한 계급적 사회적 경제적 평등이 이루어 질 때 비로소 가능함을 시사 하는 참으로 중요한 말씀이다.
세상이 비록 민주화 된다 할지라도 계급적 사회적 경제적 평등이 이루어 지지 않고는 참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 질수 없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가 바로 그러한 모습을 여실히 말해 주고 있지 않는가? 우리나라는 말할 것 없고 민주화의 선두 주자라 할 수 있는 미국이나(월가사건을 비롯한 부자들의 문제)중국이나 유럽 각 국의 문제가 바로 부의 편중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앞으로 세계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몇 안 되는 부자들에게 세계의 부가 다 모아질 것으로 생각 된다. 그렇게 된다면 이 세상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그 혼란을 가히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벌서 2 천 년 전에 말씀 하였다 -의로움을 자랑 하는 아들보다 차라리 회개하는 세리와 창기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임한다고 말씀하신다.
-계속해서 선포 한다,
(마21: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 이 말씀의 직접적인 뜻은 택함 받았다고 의를 주장하는 유대인 보다 회개하는 이방 백성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임한다.-는 의미이지만 사실은 언젠가는 온 세상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임할 것이라는 선언이다.
(막9:1)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현실성을 너무도 확실하게 하시는 말씀이다.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다- 바로 어느 정도 하나님 나라의 이상인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 시대를 예견한 말씀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이 말씀의 의미는 다음의 말씀을 생각하면 더욱 확실해 진다.
(막4:31) 겨자씨와 같으니 그것은 땅에 심을 때에는 세상에 있는 어떤 씨보다도 더 작다. 32/그러나 심고나면 자라서 어떤 풀보다 더 큰 가지들을 뻗어,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 수 있게 된다.
- 하나님나라는 땅에 뿌려진 씨가 싹을 내고 자라듯이 부정할 수없는 현실성을 말할 뿐 아니라 언젠가는 반드시 크게 발전되고 확장되어 결국에는 온 세계에 편만하게 될 것을 말씀 하신다.
다시 말해 2 천 년 전 당시로서는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나라가 겨자씨처럼 작고 보잘것없어 그 귀한 뜻을 말씀한 예수님을 오히려 십자가에 죽이기까지 하였지만,
먼 훗날 언젠가는 그 귀한 뜻은 반드시 싹을 내고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사람과 동물들까지 쉴만한 그늘을 찾아 새들도 깃들게 될 것이라는 말씀으로 해석해야한다. 그러면서 거듭 말씀 한다.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께서는 이 거룩한 뜻을 위해 한 알의 밀알처럼 떨어져 죽지만 세월이 지나 언젠가는 그 죽은 씨가 다시 살아나 많은 열매를 맺을 거라는 예언의 말씀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말씀 한다.
(눅9: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 지상에 하나님나라를 이루려는 이 아름다운 뜻을 품은 사람은 마치 쟁기를 잡은 농부가 앞만 보고 가듯 거침없이 미래를 향해 나가야 한다.
-예수께서 이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를 향해 뚜벅 뚜벅 걸어가듯이 이 귀한 씨를 받은 그 제자들은 그 뜻을 이루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머무르지도 말고 멈추지도 말고 쟁기를 잡은 농부처럼 앞으로만 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말씀 한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그러므로 더욱 분명한 것은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는 그 어떤 희생에 앞서 잘 못된 전통과 이념으로 굳어진 생각을 바꾸어 예수님의 새 역사 곧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을 우선으로 여겨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 가장 우선적인 것은 회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외친다.
(마3:2)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마3:8)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어라.
(막1:15)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
(눅3:8) 회개에 알 맞는 열매를 맺어라. 너희는 속으로 아브라함은 우리의 조상이다 하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
(눅5:32)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러 왔다"
‘회개’라는 말의 근본 뜻이 무엇인가 -굳어진 인습의 껍데기를 마치 살가죽을 벗겨내듯 벗겨낸 다음 완전히 방향을 바꾸어 새 길을 걷는 것을 말한다. 아니 거듭남 곧 다시 태어남이다.
그러므로 위의 말씀들의 공통된 의미는 하나님의 나라를 맞이하기 위한 제 일의 조건은‘회개’하라는 것이다.
모든 부조리한 제도와 계급, 불평등을 정당화 하는 사회적 제도와 함께 종교적 선민의식에 매어 그릇된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유대인들까지 모두가 그대로는 안 된다.
모두가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만 새 세상을 맞이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계속해서 외친다.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회개에 알 맞는 열매를 맺어라.- 속으로 아브라함은 우리의 조상이다 하고 말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는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그렇다 이제는 하루속히 원시적 사고에서 벗어나 무엇이 진정 하나님의 뜻인지 알고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회개해야 한다.
속으로 생각하기를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선택된 백성이니 마땅히 구원받게 된다고 자만하지 말고 지금까지 잘못 굳어진 그릇된 사상과 믿음을 회개해야 한다.
너희만 선택받았다고 자만하지 말아라. 하나님은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 고 하시면서 더욱 간절하고 절박하게 회개를 요청한다.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회개에 알 맞는 열매를 맺어라.- 속으로 아브라함은 우리의 조상이다 하고 말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는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기독교는 2천년동안 잘못된 교리에 의해 굳어졌다. 마치 돌처럼 굳어진 교리를 납을 녹이듯 녹여야 예수님의 참 모습을 볼 수 있다 거짓된 가면을 벗고 다시 태어나 진실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회개라고 말씀한 깊은 뜻을 알아야 할 것이다
** 하나님나라에 대한 보다 확실한 해석..
이미 살펴 본 대로 하나님나라에 대한 분명한 말씀들이 많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말씀은 다음의 말씀이다.
(눅17:20-21)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할 것인가를 물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마도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위해서 기도하도록 가르쳤고 그래서 제자들까지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고 널리 전파한 것으로 이해한 듯싶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은 그 영화로운 때가 언제 있게 될 것입니까 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너희가 묻는 것을 너희는 알지 못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히 임할 것이로되 너희는 그것의 임함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바리새인들은 그 하나님의 나라를 자신들이 믿고 기대하고 있는 하늘의 천국으로 오해하고 있었든 것 같다. 그래서 예수께서는'너희가 묻는 것을 너희는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너무도 당연한 말씀이다 - 예수께서 말씀한 하나님의 나라는 어느 날 갑자기 마치 하늘에서 번개가 치듯 혹은 무지개가 뜨듯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함께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인식 할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이는 역사를 통하여 오래 동안 점진 적으로 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하나님나라의 근본적인 속성을 말씀 한다.
- 하나님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가 아니요 너희 마음에 있느니라 고 말씀 한다 - 그러면서 결론적인 말씀을 곁들여 덧붙인다.
(눅20:38) 하나님은 죽은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하나님이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표준새번역,현대번역 공동번역)
※ 하나님은 죽어 하늘의 천국을 가는 사람들을 위해 계신 분이 아니요. 살아서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이루려는 사람들을 위해 계신 분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에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 는 너무도 확실한 말씀이다.
이상.. 09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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