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대한 민국 최초의 군함과 관련된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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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지독하게도 가난한 나라의 바다를 지킬 전투함은 단 한 척도 없었다. 일본군이 버리고 간 목재...나무로 만들었다는 얘기 되겠다. 어선과 비스무리한 소해정 따위의 잡선 몇 척은 있었으나, 이는 고작 어선들의 진로나 잡아주는 어업지도선 정도의 수준에 지나지 않는 초라한 함정일 뿐이다. 명색이 해군인데, 탈 배가 없어서야 원... 당시 손원일 제독 이하 말단 수병들까지 월급의 10% 이상을 원천공제하면서, 해군의 염원인 전투함 도입을 위한 모금운동이 성냥불처럼 일어났던 바, 장교 월급이 쌀 한 말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하기와 다를 바 없었다. 이 대목에서 그 언젠가 독립기념관 짓는다고 또 평화의 댐 쌓는다고 이래저래 벽돌 한 장 값 씩 자발적으로 성금내던 애국심을 기억하게 된다. 우리는 "애국"이 앞에 걸린 일에는 불평불만이 없는 민족이다. 반다시 좋은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장교 부인들은 삯바느질로 한 푼 두 푼을 모았고, 수병들은 삼삼오오 골목을 돌며 폐품을 수집하는 피눈물을 흘린 끝에... 1년 만에 15,000 달러를 가까스로 모았고, 이에 감격한 이승만대통령은 국고에서 무려 45,000 달러를 지원해 주어, 종자돈은 모두 60,000 달러가 되었다. 이 금쪽같은 귀중한 돈을 들고, 배를 사서 한국까지 몰고 올 15명의 각 분야별 전문가 해군장교들이 미국으로 원정쇼핑을 갔으나, 정작 미군은 우리에게 팔 배가 없다며 비협조적인 자세를 보이니 그 얼마나 난감했겠는가? 당시 미국방성의 지침은 남한에 절대로 공격무기를 판매, 대여할 수 없도록 규제하였다고 한다. 노상, 이승만대통령이 평양에서 점심 먹고 신의주에서 저녁 먹는 북진통일 공염불을 부르짖는 통에, 얼라들에게 칼 쥐어주지 않으려는 그런 배려(?) 였다던가? 태평양 한 가운데에 안 쓰는 구축함, 순양함을 수십 척 띄워 놓고 폭격 연습하는 넘들이, 팔 배가 없다는 것이 말이나 되겠는가 말이다. 그 중에 하나 싸게 좀 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비슷한 시기에 1,000 달러에 민간인에게 불하하는 비무장 미군전투기(=머스탱) 를 쇼핑하러 건너간 공군도 결국 캐나다로 넘어가 열배나 비싼 대당 10,000 달러 씩 주고서야 연습기 10대를 겨우 사 갈 수 있었으니... 이래저래 힘 없는 나라의 설움을 독톡히 맛 봤던 것이었던 것이다. 수소문 끝에, 마침 미국 동부 뉴욕주의 해안경비대에서 실습선 한 척을 매각한다는 소식을 듣고 15명이 화물열차를 얻어타고 며칠을 지새며 달려가 간신히 부두에 도착한다. 요즘처럼 인터넷 중고거래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배수량 450톤, 길이 52m, 최대속도 열어덟노트 규모의 작은 연안초계정... 지저분하고 녹 슬고 낡은 배, 그나마 선수 갑판에 당연히 있어야 할 함포도 없는 비무장... 어쩌겠는가? 일단 만팔천 달러에 계약도장 찍고, 곱게 접어간 태극기 부터 달고 본다. 해군정복으로 깨끗하게 갈아입고 갑판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감격의 눈물을 줄줄줄... 마이카를 장만한 그 기쁨보다 아마 열배 백배는 더 했을 것이다. 비싼 부두 노동자들의 품삯을 지불할 여유가 없어, 장교 15명이 모두 웃통을 벗어 제끼고 보름간 직접 배를 수리했다. 구 일본군 해군 출신들의 장교들에게 이 까짓 작은 배의 정비 쯤은 일도 아니다. 그저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군함이 생겼다는 기쁨에 모두가 싱글벙글... 하루 만에 기관정비가 끝나고 선체의 도색에 모두 매달려 회색빛과 검은색의 예쁜(?) 투톤칼라로 사양을 맞추고, 함번을 701로 하얗게 칠해 명실공히 701함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자, 이제 집으로... 지도를 보라. 미국 동부 뉴욕에서 지구 반대편, 아시아의 동쪽 끝 한국까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말이다. 어디로 가든지 지구 반바퀴는 돌아야 한다. 그 옛날 콜럼부스나 바스코다가마의 그런 대항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민할 이유가 전혀 없다. 당장 갑판에 장착할 함포를 사야 하기에 파나마운하를 넘어 하와이-괌-진해 이렇게 달려야 한다. 택배가 없었으니 그들이 직접 몰고 달려야 한단 말씀이다. 길이 50m도 안되는 쪼매난 통통배 초계정으로 태평양을 건넌다는 그런 용기는... 미국 신문에 한국 해군이 군함을 사서 파나마운하 지나 태평양 건너 집에 간다는 뉴스가 짤막하게 실렸다. 소식을 들은 하와이의 교민들은 태극기를 손에 들고 701함이 들어올 하와이 진주만의 부둣가에서 감격의 환영식을 준비한다. (돼지머리에 고사떡까지 차렸다는 얘기가 있다) 이국 땅에서 조국의 군함을 맞이하는 기쁨은 특별하게도 남다르다던가? 미해군은, 많은 재미동포 환영인파를 수용할 수 있는 넓직한 대형 부두에 자리를 내어 주었다. 미안했었던지, 나름대로 그들의 호의였나 보다. 그러나 저어 멀리서 부두로 들어오는 701함의 모습에... 환영객들은 눈물을...기쁨의 눈물이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부끄러움의 눈물이었다고 한다. 대형 함정들이 정박하는 부두에, 701함을 정박하였는데, 부두 높이 보다도 낮은 701함을 내려다 보는 환영인파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 지 몰랐다. 저 작은 배가 어떻게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까지 건너 왔는지... 또 어떻게 조국까지 갈 지...보는 이들은 벌써부터 걱정이다. 바로 옆에 정박중인 미군 중순양함의 웅장한 모습에 1/4 토막도 안되는 작고 볼품 없는 701함의 모습은 차라리 보지 말 것을 후회하는 듯 모두들 눈물로 아무 말 없이 태극기만 흔들 뿐이었다. 하필이면 왜 큰 배 옆에 정박을 하냔 말이다. 좀 떨어진 작은 배들 틈에 붙이면 덜했을 것을... 없는 돈에 식량, 부품, 연료 만땅 으로 채우고 76mm함포, 기관총, 무전기 사서 달고 남은 돈이 얼마 안되어 포탄은 딱 100 발 밖에 사질 못한다. 야박하게스리 덤으로 몇 발도 더 안주고 100...딱 100발... 한국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포탄이 아까와, 실제 연습사격은 단 5발 뿐이었다고 한다. 허구헌 날 장탄도 안된 함포를 붙잡고 조준연습만 하루죙일 했었단다. 얼마나 깨끗히 닦고 또 닦았는지, 미군들은 새로나온 최신형 군함인줄 알았단다. 이 배가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초계함 701 백두산함 이다. 눈물로 시작된 우리나라 해군의 첫 걸음이다. 몇 개월 후,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 6. 25일 밤, 북한 육전대 600명을 실은 1,000톤급 무장수송선을 발견...끝까지 추격하여 부산 앞바다에서 격침하는 쾌거를 이룬다. 돈 없어 겨우 100발 밖에 못 샀던 그 포탄들을 아껴 쏴서 말이다. 행여 비싼 포탄 빗나갈까봐 90m 까지 접근하기도 하며 포격전을 벌인 결과, 우리 수병들이 다치고 전사하면서 까지 말이다. 만약 북한의 무장수송선을 놓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북한육전대의 상륙예정지는 경악스럽게도 바로 부산항 제1부두였다) 우리는 지금 공산에게 쇠뇌되어 살고있겠지? [세줄 요약] ① 찢어지게 가난한 없는 살림에 어렵사리 군함을 한 척 샀다. ② 근데 무쟈게 작고 낡고 형편없는 그런 군함이었다. ③ 그러나 열심히 닦고 조이고 기름쳐서 화끈하게 북한군을 무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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