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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선생의 김정일과 김대중을 향한 비판.김일성에 대해.07편..
Korea, Republic of 돌통 0 231 2020-01-10 17:16:55

황장엽 선생의 김정일과 김대중을 향한 비판.김일성에 대해.07편..


 

      06 편 이후~~


 

 

우선 이건 기본적인 건데.. 김일성이 광복 후 나이나 투쟁경력에서 한참 앞선 최용건이나, 김책을 제치고 우두머리로 떠오른 것은 성격이 활달해 리더십이 있기도 했지만, 그가 동포들이 많은 동남 만주지역에서 독립된 부대를 오래 거느렸던 까닭에 직계 조선인 부하가 훨씬 많았던 것이 결정적 이유인거 같다.


 

지금은 흑룡강성 동강시 무원현 삼강평원으로 된 바로 삼강평원에서  항일투쟁이 가장 치열했던 곳이라고 알고 있다.


 

실제로 1930년대 여기 삼강평원에서 김일성(김성주) 그가 젊었을때 무장항일투쟁을 한건 사실이다.


 

내가 아는 사실만 얘기한다면..  일단 당시 그 당시 상황이 1920년대 김좌진 장군 등의 무장독립투쟁이 좌절한 뒤 민족주의 진영의 항일투쟁은 상해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일제에 쫓기면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윤봉길·이봉창 의사 등의 살신성인이 민족의 기개와 독립의지를 만방에 떨치고, 지속적인 투쟁으로 이어졌으나, 조직적인 무장투쟁을 전개하기에는 일제의 압박이 당시 너무 심했다고 한다.

 

 

우선 내가 아는 바로는,  김구주석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은 중.일전쟁이 터진 후 중국 장개석 정부를 따라 이곳저곳으로 옮기며 중경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우파의 본격적인 군대조직이라 할 수 있는 임시정부 예하, 광복군은 광복 직전에 창설된것으로 안다.

 

실제로 1930년대 항일무장투쟁에는 공산주의자들이 큰 몫을 한건 맞다. 특히 만주지방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진 무장투쟁은 거의가 항일 빨치산들에 의한 것이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조선인 좌익계열은 1928년 코민테른의 ‘일국일당노선’에 따라 중국공산당 휘하에 들어갔고, 그들과 연대해 만주지역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軍)으로 일컬어지는 부대가 그것이다.

     

 
당시 실제로 동북항일연군에는 중국공산당원 뿐 아니라 조선인이 상당히 많았으며 고위간부에 특히 조선인이 많았다. 일제에 일찍 짓밟힌 탓에 항일투쟁도 중국인보다 훨씬 앞서 나갔기 때문인것 같다.   
 

내가 아는 바로는 동북항일연군은 당시 여러 차례에 걸친 조직개편 끝에 활동지역에 따라 최종적으로 1로군(東南滿지역, 총지휘 양정우), 2로군(吉東지역, 총지휘 주보중), 3로군(北滿지역, 총지휘 이조린)으로 재편된다.  이건 기록에도 있다.

 
 
조선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던 두만강 건너편 동남 만주지역(간도 지방)은 ‘김일성 부대’ (1로군 제2방면군) 등 조선인 중심부대가 사실상 독립적인 군사활동을 펴기도 했으나, 거의 대부분 한·중연합부대로 군사활동도 함께 했었다.

 
 
초기 한때 민족간 갈등이 불거져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항일이라는 공동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공산당 기치 아래 함께 투쟁했던 것으로 안다.

 
 
1940년인가 국경선을 넘어 옛 소련령으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그곳에는 당시 대량의 일본군에 쫒겨서 국경선을 넘어온 김일성, 최용건, 안길, 강건, 최현, 김일,(참고로 김일,은 원래 이름이  박일, 이었는데 성격이 매우 급하고 잔인하고 힘이 장사였다고 한다. 그는 어려운 항일투쟁시절 때부터 김일성의, 지도력과 명석함에 반해, 김일성과 의형제를 맺어 이름을 박일에서 김일성의 김씨를 써서
"김일"로 바꿨다고 한다.) 그리고  최광 등..  훗날 북한정권의 핵심이 그들이 자랑하는 실제 빨치산 대원들이다.

 
 
소련령에 들어오기 전에.. 일본의 토벌작전이 가장 심했던 동남만주 지역에서 투쟁하던 김일성이 속한 1로군은 소부대 단위로 뿔뿔이 흩어진 가운데 전 부대가 궤멸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절망적 상황에 일본군 토벌대의 맹추격을 받던 김일성 부대는 1940년 말 국경을 넘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사실이다.
 
 
그런데 그때 소련측과 연락이 없는 상태에서 월경했기 때문에 소련군에 억류되어 취조를 받았는데, 이 소식을 들은 주보중 2로군 총사령과 이조린 3로군 총사령이 신분을 보장해 풀려난 것으로, 중국측 자료에도 나와 있다.
 
 
3로군 가운데 북만주의 김책은 한참을 더 버티다 1943년 말 국경을 넘어 1944년 1월에 하바로프스크에서 합류한거로 기록 되어 있다.

 
 
그리고 내가 들어서 아는 바로는.. 소련령에 들어온 동북항일연군은 한때 ‘동북항일연군교도려’란 이름으로 있다가 ‘88특별저격여단’이란.. 이름으로 소련 赤軍에 편입한다.
 
 
 
소련군은 일본 관동군과 벌일 일전에 대비하고 향후 동북아에서 공산주의 세력을 펼치기 위해 일본군에 쫓겨 국경을 넘어온 항일투쟁 세력들을 지원했던 것이다.

 
 
88여단의 위상을 놓고 동북항일연군과 소련측 사이에는 큰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소련측은 동북항일연군 조직을 해체해 소련군 각 부대에 나누어 편입시키려고 했던 반면에, 항일연군측은 중국공산당의 지시를 받는 독자적인 조직으로 남아 있기를 원했기 때문에 심각한 갈등이 벌어졌다고 한다.
 
 
 
결국 형식상 소련 적군에 편입해 각종 지원을 받되, 항일연군 조직을 그대로 유지해 독자적 위상을 갖도록 결정됐다. 항일연군측의 주장이 많이 반영된 셈이다.
 
 
이 과정에 소련측의 대표자였던 왕신림(王新林·일종의 암호명으로 누구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사람이 바뀔 때마다 제2대 왕신림, 제3대 왕신림으로 불렸다)이 교체되는 혼란을 겪기도 했다.
 
 
 
88특별여단의 주요 지휘부는 여장 주보중 소좌(후에 중좌로 승진), 정치 부여장에 이조린 소좌, 부여장 시린스키 소좌, 참모장은 샤마르첸코 소좌, 부참모장은 최용건 대위로 사령부가 구성됐다.
 
 
단위 부대로 제1교도영은 1로군을 기초로 편성돼 영장 김일성 대위, 정치 부영장 안길 대위, 부영장 마리체프로 구성됐고, 제2교도영은 2로군 2지대를 기초로 편성돼 영장 왕효명, 정치 부영장 강건 상위(후에 대위로 승진), 부영장 아다모프였다.
 
 
또, 제3교도영은 3로군을 중심으로 편성돼 영장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허형식, 정치 부영장은 역시 도착하지 않은, 김책, 부영장은 사포지니크였다.
 
 
그리고 제4교도영은 2로군 5지대를 중심으로 편성돼 영장 시세영, 정치 부영장 계청, 부영장은 지레노프였던 것으로 기록에 나와 있다. 이른바 부(副) 자리를 소련군인들이 차지했다.
 
 
그러나 88여단은 오랜 투쟁을 통한 단결력을 과시해 제2로군 총사령이던 주보중의 지휘 아래 제3로군 총사령이던 이조린이 함께 이끌었고 부참모장이던 조선인 최용건이 이들과 주로 논의했다고 한다.
 
 
이조린은 부인이 죽자 조선족 김백문과 재혼했다고 한다.  최용건은 주보중과 중국 운남 군관학교를 같이 나온 인연으로 매우 가까운 사이였고, 항일투쟁 때도 줄곧 주보중 밑에서 참모장으로 일해, 부대 안에서 각종 실무를 관장하고 조정하는 실력자였다고 한다.
 
 
제1교도영장을 맡은 김일성(김성주)은 직속 부하가 많은데다, 제1로군 지도부가 모두 일본군에 잡혀 죽고 살아남은 지휘자 가운데 직책이 가장 높았기 때문에 사실상 1로군을 대표하는,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1·2·3로군을 고루 배려하고, 정치적으로 중국·조선인 간 갈등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주보중은 김일성을 각별히 대우했다고 한다. 
 
 
주보중은 중요한 문제를 이조린, 최용건, 김일성과 주로 상의했는데, 조선족과 상의할 민감한 일이 있으면 김일성과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러한 증언들과 기록등은 확실한것으로 보고  김일성이 적어도 소련군에 의해서만  갑자기 세워진 꼭두각시가 아니라는 점일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밖에 조선인 가운데 간부급으로 아직 도착하지 않은 김책이 거물급이었고, 김일성과 함께 생활한 안길 대위, 주보중 부하로 신임이 각별했던 강건 상위가 어린 나이에도 중책을 맡았으며, 김일성과 보천보 전투를 함께 치른 최현 상위가 두각을 나타냈다.

 
 
 
          이상..   08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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