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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건국 과정 역사 01편..
Korea, Republic of 돌통 0 223 2020-03-06 13:16:10

저는 동국대 북한학과를 졸업하고 역사학을 복수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공부하다 중도에 때려치웠는데, 전 지금은 전공 쪽과는 전혀 무관한 조그만 사업을 하고 있죠.

 

요즘 두 어 달 시간이 많이 남아도네요. 그래서 대학에서 공부했던 노트와 자료, 사료 등을 참고하고 모르는 것은 같은 과를 전공했던 선배들과 동료들에게 문의도 하면서 한번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시리즈 편으로 여러 편을 쓸 예정인데 주제는 한국의 건국 과정 역사라고 할까 합니다. 

 

 

 

*** 한국 건국 과정 역사. 제01편.. 

 

 

 

우리 민족은 1945년 08월 15일 해방을 맞이했다.  여기서 독립했다는 뜻은 한자로 풀면 혼자 섰다.란 뜻이다.

 

 

그러나 한반도가 둘로 쪼개졌는데 독립이라는 말은 맞지 않는다.  해방전 미국이 1945년 08월 06일 일본의 히로시마에 원폭(원자폭탄, 핵폭탄을 의미)을 떨어뜨리고, 그리고 이어서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하면서 1945년 08월 08일 만주에서 관동군(박정희가 속했던 군)을 탱크로 밀어붙이기 시작하고..

  

 

또 이어서 미국이 1945년 08월 09일 일본의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폭을 투하하고 1945년 0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된다.  제 2차 세계 대전의 연합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이랑 죽어라 싸운 중국영국이랑 미국, 그리고 소련 등의 연합국이 승리했기 때문에 추측 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이나 독일, 이탈리아가 패배해서 우리 독립이 좀 빨리하게 된 건 사실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원폭을 두 방 쏴서 독립했다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여기서 만약 2차 대전 때 반대로 일본이 승리했다면 정말 끔찍하다. 연합국의 미국과 영국과 프랑스와 소련의 식민지국들은 다 독립을 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아프리카와 아랍국가들이 다 독립을 했으며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소련 통치하에 놓였던 여러 국가가 다 독립을 했다.   

 

 

&&그래서 만약 2차대전 때 일본이 승리했다고 하여도 우리는 계속 독립운동을 했을 거고 물론 반일종족주의 저자 같은 새끼들은 황국 신민 하에 앞장서면서 뭐 이광수 최남선 등이 일제강점기 그때 그랬던 것처럼 자치론 같은 걸 주장했겠지.

  

 

자치론의 본질이 뭐냐면 자치란 말이 좋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일본의 식민지배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우리가 조선총독부에 들어가서 총독도 우리가 하고, 총감도 우리가 하고 이게 자치란 거다.    

 

 

아마 그 짓거리 하고 있었을 걸 뻔하다. 그러나 2차대전에서 일본이 승리했을지라도 우리는 분명 독립을 했을 것이고, 지금도 현재 독립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다만 독립이 좀 늦어졌겠죠. 미국의 원폭투하와 연합국의 승리는 우리의 독립을 앞 땅겨준 건 사실이다.

 

    

 

지금 어떤 가족이 한 아이가 부모님께 묻기를 우리가 일제강점기 때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으로 독립을 했다고 말한다면..  이거 틀린 말이라고 할 수 있나?  분명히 우리 독립 운동가들이 헛발질한 거 아니고 헛수고 한 거 분명 아니란 게 분명 사실이다. 라는 거다.

  

 

우리가 가열하게 독립운동을 했으므로 우리가 바로 독립해방을 쟁취했을 수 있었다. 이 점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분들이 분명 있을 거다.

 

그렇다면 한번 따져보자.

 

 

국제사회에서 한반도의 독립을 처음 얘기한 게 바로 1943년에 열렸던 카이로 회담이다.

 

 

카이로 회담에서 중국의 장제스와 미국의 루스벨트와 영국의 처칠이 만나 회담을 한다. 영국의 처칠은 중국의 장제스를 개 무시하면서 내가 왜? 저딴 새끼 만나야해? 라고 생각했겠지만, 미국의 루스벨트는 중국의 장제스를 좀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세 나라 지도자들이 카이로에서 만나서 일본을 패전시키고 난 다음에 어떻게 하면? 논의를 했다. 중국이 카이로 회담에 낀 것만 해도,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간 건 사실이다. 당시 서양에서 중국을 우습게 본건 다들 아실 거다.

 

이 회담에서 합의 결론은.. 카이로 회담에서 1차 세계 대전 때 일본이 빼앗은 모든 일본의 영토들을 제자리고 돌려놓는다. 이렇게 합의를 하게 된다. 

 

 

그리고 요동이나 만주하고 대만은 중국에 복속되고 동남아국가들 다 독립을 시키고 남태평양의 섬들을 모두 독립시킨다는 그런 내용이, 주된 카이로 회담의 내용이다.  

 

 

그런데 별책부록처럼 한 문장이 들어간다. 한국인이 식민지 노예 상태로 있는 것을 유의하여 그야말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인은 노예였다. 우리 국민들,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의 노예로 치부했다. 노예였음을 유의하여 적절한 시기에 이 한반도를 독립시키자 는 내용이 들어간다.    아주 아주 중요한 내용이다.

 

 

자.. 그럼 갑자기 왜 카이로 회담에서 한반도 독립을 언급했을까? 무슨 말이냐면 카이로 회담에선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일본이 빼앗은 영토를 돌려놓는 것으로 합의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1914년이고 우리가 한일합방당한건 1910년이기 때문에 우리는 1차 세게대전 이전에 병합당했기 때문에 일본 입장에선 우리를 독립시킬 이유가 없다.  이유가 없다는거다.

 

 

만일 카이로 회담에서 적절한 시기에 우리를 독립 시키겠다는 표현이 없었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일본패망 이후에 영토 문제를 논의했던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독도 가지고 싸우는 게 아니라, 우리 독립 가지고 이제 국제사회와 일본이 막 옥신각신했을,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적절한 시기에 우리 한반도를 독립시키겠다는 조항이 들어가면서 우리의 독립이 국제사회에서 처음 약속됐고  그리고 일본패망 직전인 1945년 07월에 포츠머스 조약에 의해서 우리 독립이 재확인된다. 

 

 

자.. 그럼 그 세 나라 지도자들이 만났는데 한반도의 독립은 누가 건의했을까? 그건 바로 장제스가 건의했다. 우리는 장제스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가져야 한다. 당시 미국과 영국은 한반도를 국제사회가 공동 경영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장제스가 특히 루스벨트에게, 아니다, 얘네들 정말 가열하게 독립운동을 하였다. 독립시키자. 이렇게 강력하게 주장했다.

 

 

물론 국제사회에서 외교는 자기 국익만을 생각하게 되는 건 당연한 거다.

 

 

그러면 장제스가 뭐, 우리나라 민족을 얼마나 예쁘게 좋게 봐서 그랬겠냐..  쉽게 말해서 장제스 입장에선 자기는 1%도 나중에 마오쩌둥에게 밀려서 중국대륙을 빼앗기고 대만으로 쫓겨날 것을 생각을 전혀 안 했을거고, 자기 밑에 있는 임시정부 인사들이 고생하고 자기를 잘 따라다녔으니

 

나중에 한반도를 독립시키면 임시정부 인사들이 한반도에 들어가서 한반도의 독립국가를 이끌 테니 어쩌면 중화사상에 입각해서 그래, 너희는 우리 사대 순위, 너희 나라 독립도 우리가 함께 이끌어주겠다는 취재하에 그런 얘기를 했을 것이다.

  

 

자.. 그러면 장제스는 처칠과 루스벨트를 만나서 왜 한반도 독립을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일본에 병합된 우리나라 한반도의 독립을 강하게 어필했을까?  그건 장제스가 보기에도 한국인들이 가열하게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이다.

   

 

장제스가 인정하는 최고의 독립운동가가 누구냐? 김구다, 그리고 김원봉이다,  김구는 언제부터 장제스와 같이했을까?  장제스는 1932년 04월에 윤봉길 의거에 깜짝 놀라서, 우리민족을 다시 보게 된다. 

 

그렇다 그럼.. 구체적으로 보자..  상해사변이 일어나고 상해가 점령당하게 된다. 그런데 그 상해 점령했다고 승리기념식에서 상해 홍커우공원에서 자기네, 뭐 왜왕 생일과 겹쳐서 행사하게 되는데..

 

 

윤봉길이 도시락을 올려버린 거 누구나 다 알 것이다. 지금은 물통 폭탄이었다는 설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어쨌든, 이때 장제스가 깜짝 놀라가지고 백만 중국 군인이 해내지 못한 일을 조선 청년 한 명이 해냈구나.!!  기록에도 쓰여 있다.

 

 

그리고 윤봉길 배후에 김구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차피 우리 임시정부는 상해에 있었는데 일본이 상해를 점령해버렸으니 이 임시정부 활동도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깐 장제스가 말하길.. 앞으로 분명히 일본이 우리 중국을 쳐들어올 거고 우리 중국본토에서 일본과 계속 싸워야 할 텐데 장제스 표현입니다. 김구야. 너 나 따라다녀라.. 내가 항일전을 계속하다가 언젠가 어디선가 내가 자리를 제대로 잡으면 중국 관내 관내 하면 만리장성 산 관 안쪽을 얘기한다

  

 

중국 관내 무장투쟁을 만들 수 있게 해줄께.. 자 이래서 1932년에 임시정부를 떠났던 김구는 장제스를 따라다니면서 난징에서 광저우까지 갔다가 충칭까지 들어갔는데 이때 무려 8년을 장제스를 따라다니게 된다. 

 

 

내가 김구 선생님을 좋아하는 이유가 뭐냐면, 이 8년 동안 김구는 임시정부 관련 직책도 없었다. 실제로 3대 국무령이었던 김구 선생님이 임시정부가 위기 상황이었고 자기 이름값만으로 임시정부가 이끌어 지는 게 좀 어렵기 때문에..

 

 

1927년에 자신의 국무령 직함을 다 떼버리고 집단 지도체제로 전환하게 된다. 막말로 임시정부 직함 뭐, 임시정부 주석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김구 선생님이 임시정부를 이끌고 장제스를 따라 따라다니면서 8년 동안 얼마나 장제스 밑에서 자존심도 상하고 빈정도 상하고 진짜 화도 나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1940년에 가서 그 윤봉길 의거를 계기로 장제스가 중국 관내 무장단체를 만들어줄 수 있게 하겠다는 약속이 실천된다. 그게 바로 1940년 한국광복군이다. 

 

 

자.. 그럼 이런 입장에서 장제스는 김구의 독립운동 노력을 인정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당연히 하겠죠.. 또 하나 장제스가 눈여겨보고 예뻐했던 인물은 바로 김원봉이다.

  

 

김원봉은 사회주의자고 그렇다고 완전히 좌파 사회주의자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의열단을 이끌고 있었고 그런데 그 의열단들을 장제스가 교장이었던 황포군관학교에 유학을 시킨다.

 

 

그리고 장제스는 이 김원봉을 너무 예뻐해서 당시 중국 국민당 수도의 난징에 조선혁명간부학교를 만들게 하고 김원봉을 교장으로 시키게 된다.

   

 

실은. 김구를 데리고 이렇게 항일전 전개하면서 도망치고 있는 장제스가 1940년 충칭에서 한국광복군을 만들어주기 전에 중국 관내에서 먼저 김원봉에게 무장단체를 허락하는데 그게 바로 김원봉의 조선민족혁명당이다. 김원봉이 이 조직을 이끌고 있을 때 그 밑에 산하 부대가 바로 조선의용대이다.  

 

 

그러니깐 물론 1938년에 조선의용대가 만들어질 때 김구는 빡 쳤을 것이다. 내가 장제스 너 말, 한마디 믿고 이렇게 자존심 상해가면서 우리 임시정부가 너를 쫓아다니고 따라다녔는데 어떻게 김원봉에게 무장단체를 먼저 만들어주게 할 수 있냐..

  

 

어쨌든 간에 이 조선의용대가 일부의 화곡지대로 올라가서 마오쩌둥과 연대하고 조선의용대 본대를 이끌던 김원봉은 김구가 부른 것도 있지만, 장제스가 이리오라고 해서 충칭에 함류했던 것이다.

   

 

바로 이 독립운동가 두 분의 노력을 보고 장제스가 어찌 국제사회에서야.!!  한국인들은 그렇게 열기 차게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니 우리가 이들을 독립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거고 여기서 완벽한 팩트 역사적 사실을 전해 주겠다.  

 

 

1943년 장제스가 영국의 처칠과 미국의 루스벨트를 만나러 카이로에 간다는 소식을 들은 김구가, 춘칭임시정부에선 김구가 주석이었고, 당시 부주석이 되기 전에 선전부장인 김규식과 외무부 장관인 조소앙과 한국광복군의 총사령관이었던 지청천과 한국광복군의 부사령관이었던 김원봉 등 이 훌륭하신 분들이, 이 다섯 분이 장제스를 찾아가서 장제스야.. 카이로에서 영국의 처칠과 미국의 루스벨트를 만나서, 반드시 국제사회에서 우리 한반도를 독립시켜주겠다는 확답을 받고 오라고 장제스에게 압박했고, 장제스가, 그래 내가 너희 의견을 받아들이겠다고 해서 카이로 회담에서 적절한 시기에 한반도를 독립시키겠다는 문구가 들어가게 된다.

 

  

 

바로 이 독립운동하셨던 다섯 분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독립을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 카이로 회담과 포츠담 회담에서 한반도의 독립이 재확인되면서 당시 우리 지식인들에 의해, 우리 한반도의 우리들  동포들역시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게 되면 우리가 독립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1945년 08월 15일 일본 왜왕 히로히토가 항복선언을 할 때, 여기서 ("솔직히 항복선언이라고? 좃나 빈정 상하는데, 그의 하는 말이 나는 일본인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야 되기 때문에 전쟁을 중지시켜야 한다.")

 

 

이딴 개소리를 했단 말이지.. 그런데도 우리는 와, 이건 일본의 패망 소식이다. 하고 태극기 들고 나간 거 아닙니까?  그러면 그 카이로 회담과 포츠담 회담에서 국제적으로 우리 한반도의 독립을 확약 받은 거 임시정부에 계셨던 우리 독립운동하셨던 김구, 지청천, 조소앙, 김규식, 김원봉 덕분이라고 분명히 분명히 말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들이 드러나자 갑자기 최근에 보수 쪽에서 루스벨트하고 이승만이 미리 만나서 루스벨트가 한반도 독립을 약속했다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펴는데. 사료적으로 증거를 대십쇼..

 

 

단 한 건이라도 증거를 대지 못하지 않습니까? 미국의 어떤 자료에서도 루스벨트가 카이로회담에서 한반도를 독립시키겠다고 미리 언급했던 적은 없었고요 

 

 

정확히 루스벨트가 그 장제스의 주장을 받아들인 거고요.. 미국이 루스벨트에게 이승만이 한반도 독립을 청원했다는 어떤 역사적 근거도 없는데 왜?보수 아 진짜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들 그렇게 왜곡들하고 그러니깐 보수 유튜브가 이승만이 미국에 건의해서 우리 한반도가 독립된 거 아닙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역사적 근거도 없는 소리를 하고..

그래서 슬쩍 그 주장을 했던 유 튜브들은 없어지고 잠수타는 거 아닙니까? 

 

 

한편...  나중에 우리 어린 자식들이 후손들이, 우린 어떻게 해서 독립이 될 수 있었습니까? 하고 물어보거든.. 자신 있게 우리 훌륭하신 독립운동가들이 가열하게 독립운동을 해서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고 말해도 충분한 훌륭한 대답이 된다는 것을 알고 계시고 당당히 말하세요.. 

 

 

다음에 2편이 써진다면, 우리 한반도의 38선을 누가 분단시켰냐? 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루겠습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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