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의 현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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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탈북해 자녀 셋 둔 김용철씨 부인은 북한 있을 때 만난 중앙아시아 여성 LH 월세 체납·보증금 소진…명도집행으로 쫓겨나 “전국 돌며 열심히 일했는데” 작년엔 협력업체도 부도나 천만원 손해 “텐트라도 치고 살아야 하나” 한숨
김용철(52·가명)씨네 다섯 식구의 집은 여관이다. 지난 7일 경기도 광명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임대료가 밀려 쫓겨난 김씨는 중앙아시아 출신의 부인 나지라(48·가명)와 좁디좁은 여관방에서 10대 아이 셋을 돌보고 있다. 밤이 깊어지면 김씨는 여관 바닥에 이부자리를 편다. 침대에선 나지라와 초등학생인 막내 아들이 자고, 김씨는 바닥에서 중학생인 둘째 아들을 안고 잠든다. 고등학생인 맏딸은 차마 한 방에서 함께 지낼 수 없어 친구집에 보냈다. 막내는 밤이면 선잠에서 깨어 묻는다. “우리 집에 언제 가?”
이제 돌아갈 집이 없다는 걸 김씨는 어린 아들에게 차마 말할 수 없다. 지난 7일 아침 현관문에서 나는 쾅쾅 소리에 문을 연 김씨는 낯선 풍경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자루와 종이상자를 든 이들이 집 앞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발이라도 벗어달라”는 나지라의 요청에도 무작정 그의 집에 들이닥친 20여명의 용역직원은 냉장고의 반찬과 쌀, 아이들의 교복과 교과서까지 쓸어냈다. ‘귀중품을 챙기라’는 안내는 있었지만 챙길 시간도 없었다. 당황한 탓에 다섯 식구 중 누구도 사진 한장 남기지 못했을 정도다.
엘에이치(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사전에 ‘강제집행’을 통보했지만 이들 가족은 닥쳐올 일을 잘 알지 못했다. “이렇게 사람을 쫓아내는 건지 몰랐어요. 알았으면 생필품이라도 챙겼을 텐데….” 나지라가 울먹이며 말했다. 집행 전날 엘에치의 통보를 받은 뒤 ‘계좌번호를 알려주면 곧 긴급재난지원금이라도 받아서 임대료로 보내겠다’고 김씨가 호소했지만 엘에치는 ‘완납만 가능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김씨 가족은 그날 이후 모텔과 여관을 전전하는 중이다.
거리에 나앉은 김씨가 어디에도 기댈 수 없는 건 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인 가족의 처지 때문이다. 김씨는 이다. 러시아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일할 때 부인 나지라를 만나 연을 맺었지만 북한에선 살 수 없었다. 그때만 해도 북한은 국제결혼을 인정하지 않았다. 가족이 뿌리내릴 수 있는 터전을 찾아 국경을 넘어 2005년 한국에 왔다. 그러나 탈북자와 이주여성으로 구성된 ‘소수자’ 가족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김씨는 아파트 현관문 설치하는 일을 하며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았지만 ‘남쪽 사람’들처럼 수완이 좋지 못해 벌이가 없다시피 했다. 지난해엔 불행이 겹쳤다. 건강이 좋지 않아 두달 가량 일을 못 나간 데다 협력업체까지 부도나 천만원 넘게 손해를 봤다. 한국 국적이 없는 나지라는 미등록체류자로 분류돼 700만원의 벌금까지 냈다. 10여년 동안 월세빚과 관리비가 차곡차곡 빠져나가 3000만원가량의 보증금마저 소진됐다. 김씨는 끝내 남쪽 땅에서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작은 둥지에서도 쫓겨났다.
“제가 집에서 게으르게 논 것도 아니잖아요. 한국에 와서 체중이 20㎏가 빠질 정도로 일을 해도 안되네요. 집에서 쫓겨난 뒤 친구한테 텐트를 빌렸어요. 텐트라도 치고 살아야 할지 걱정입니다.” 가족이 짐을 푼 여관 앞에서 만난 김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엘에치 관계자는 이에 대해 “법원에서 계고장을 두 차례 보내는 등 충분히 공지했다. 임대료를 분할납부하겠다는 각서를 받았지만 이 또한 납부하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임차인들과의 형평성도 고려해 내린 결정이다”라고 말했다. 박원연 대한변호사협회 북한이탈주민법률지원위원회 부위원장은 “법에 따른 절차라 해도 나쁜 종류의 법집행이다. 법적인 절차에 어두울 수밖에 없는 탈북자와 다문화 가정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다”라며 “탈북자를 돕는 남북하나재단이 주거 지원 등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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