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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god 예수님의 말씀.. 08편..
Korea, Republic of 돌통 0 256 2020-06-25 15:56:35

71.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 집을 헐겠노라. 그리고 아무도 그것을 다시 짓지 못하리라."

 

해석 - 71절에서 예수가 언급한 "집"은 매우 다양한 단어들로 표현될 수 있다.

유대교의 율법(구약), 유대교의 성전, 세속적인 탐욕이 만든 제도와 규범, 권력 등등..

71절은 예수의 철저한 유대교의 율법(성경의 구약)과 성전 부정 사상을 매우 극명하게 보여주는 구절이다.

71절의 "집"을 "성전"으로 본다면 이는 예루살렘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이라 한 예수의 사상과 매우 일치한다.

그리고 구약의 측면에서 본다면 71절은 구약의 종말을 선언하는 구절이다.

또한 71절은 "죽는 순간 다시는 살아 있는 사람을 볼 수 없다"라고 한 59절과도 일맥상통하는 구절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성경에 71절과 유사한 구절들이 등장하고 있으나, 성경의 구절은 도마복음 71절과는 매우 다르게 변질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사흘 안에 성전을 짓거나 사흘 안에 부활한다는 성경의 구절 또한 도마복음의 예수 말씀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도올 교수는 설파하고 있다.

 

현재 한국 기독교의 성전 지상주의가 도마복음 속 예수의 말씀과 얼마나 큰 괴리를 갖고 있는지를 매우 잘 설명해주고 있는 구절이 71절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재의 한국 기독교 교회들을 볼 때 교회 내 권력의 순위를 매겨 본다면.

맨 위에 교회 - 목사 - 성경 - 하나님 순서로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형교회들이 수백억짜리 으리으리한 성전을 짓는 것 자체만으로도 교회 내에서 누가 가장 우선순위에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비록 생전에 종교를 생각지도 않고, 오히려 구약을 부정했던 뛰어난 사상가요 선지자로서의 인간 예수였지만, 예수가 죽은 이후 그의 말씀이 오랜 기간 입으로 전해지고, 책으로 쓰이면서 수정된 책들이 모여 성경으로 모양을 바꾸고, 거기에 2,000년이란 세월이 더해져서 인간 예수와는 전혀 무관하게 사후에 종교가 되었고 예수가 신으로 추앙을 받게 된 것이라면...

그래서 교회와 목사들이 예수를 진짜 신이라고 믿고 있다면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이 교회를 세습하고, 교회를 부의 치부 수단으로 만들고, 자신의 재산으로 만들고, 성도들을 상대로 성폭행을 일삼는 일은 꿈도 꿀 수 없는 행위일 것이다.

왜냐 교회와 목사들이 신이 진정 있다고 믿고 있다면 그 믿음만으로도 신이 노여워할 일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신을 두려워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교회들의 웃어른 격인 70대 80대의 은퇴장로, 권사들은 목사의 잘못된 행위를 제지하기는커녕 젊은 신도들의 소리에 "믿어라" "의심하지 말라"는 소리나 하는 인물들로 전락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바로 지난 100년 동안 그들이 목사의 설교에 세뇌되어 온 결과다.

그 결과로 인해 대형교회의 분할, 재산다툼, 각종 잇권 개입, 성폭행, 사기, 교회세습 같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도마복음 56절에서 예수가 말씀하신 구절을 다기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 세상을 알게 된 사람은 누구든지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이를 현재 한국교회의 상황에 비추어볼 때 자신 밖의 빛과 내면의 영혼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본 이들의 눈에는 지금의 한국 교회 내부에서 벌어지는 아귀다툼의 모습들에서 시체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72. 한 사람이 그에게 가로되,   "나의 형제들에게 나의 아버지의 재산을 나에게 분할하도록 말해주소서."

그께서 그 사람에게 가라사대,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분할자로 만들었단 말인가?"

그는 그의 따르는 자들에게 몸을 돌려 그들에게 물었다: "나는 분할자가 아니로다. 그렇지 아니한가?"


 

해석 - 72절의 "분할"을 표현하는 데 있어 영문 도마복음에서는 "divider"를 사용하고 있다. 이를 한글로 번역하면 분할, 분열, 등등으로 해석될 수 있다.

소유와 관련한 72절에서의 분할(분열)은 16절에서의 가족주의 분열과 관련한 갈등과는 다르다.

16절에서의 예수가 분열자임을 인정하는 쪽에 있었다면 72절에서의 예수는 분할(분열)자임을 부정하는 쪽에 있다.

예수는 재산에 대한 분할을 위한 촉매자로써의 역할을 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를 인간 내면의 측면에서 본다면 61절과 일맥상통하는 구절이라 할 수 있다.

61절에서 예수는 분열되지 않은 전체 속에 있으면 빛으로 가득 차게 되고, 자아가 빛으로 가득 찬 상태일 때 즉, 자아가 분열되지 않고 오로지 전체를 이룰 때 안식에 이를 수 있음을 설파하고 있다.


 

73. 예수께서 가라사대,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해석 - 73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9절에서 "뿌려진 씨"와과 57절에 나오는 "아버지의 나라는 좋은 씨앗을 가진 사람과 같다"라는 것과 "추수의 날"에 대한 것을 이해하고 있어야 73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당시 예수운동은 성공을 거두고 있었고, 그래서 점점 사람들이 예수에게 몰려들고 있었다.

예수는 몰려들고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관리할 사람들을 더 필요로 하게 되었다.

73절에서 "추수"라는 것은 예수에게서 좋은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계속해서 관리하는 행위라고 보인다.

 

그렇다면 예수는 73절에서 왜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달라고 간청을 하라고 했을까...

73절의 주인을 영문 도마복음에서는 "Lord"로 표현하고 있다.

Lord는 귀족이나 또는 영주 혹은 도시의 시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로마제국이 왕성하게 번성하던 기원 후 1-2세기 무렵에는 수많은 도시들이 생겨나면서 매우 굉장한 번영을 누리고 있던 시기였다.

이에 근거하여 볼 때 73절은 기원 후 1세기 초 당시 귀족 혹은 시장이나 영주들이 흉년이 들 때에도 추수할 일꾼들을 계속해서 데리고 있었다면, 영주나 시장들이 흉작에도 많은 일꾼들을 놀리면서 데리고 있는 상황을 예수가 은근히 돌려서 비판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구절이다.


 

74. 그께서 가라사대,   "오 주여! 샘물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나이다. 그러나 샘 속에는 아무도 없나이다."

( 그가 말하기를, "오 맙소사, 술통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지만 샘 안에는 아무도 없나이다.")


해석 - 74절을 괄호 안과 같이 바꾸어서 번역을 했다.

 

번역을 달리 하게 된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도마복음 74절의 영문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He said, "O Lord, there are many around the drinking trough, but there is nothing in the cistern."

good lord를 한글로 번역하면 "하느님 맙소사"로 번역을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위 영어 문장 중 "O Lord"는 "오 맙소사"로 번역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번역을 한 이유는 74절은 어떤 한 사람이 예수에게 이르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 주여"라고 번역을 하게 되면 구약의 율법을 부정하고, 성전을 부정하며, 종교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던 예수를 다른 사람이 "주님"이라고 호칭하는 황당한 경우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drinking trough"를 한글로 번역하면 술통이라고 번역을 할 수 있다.

 

괄호 안의 한글 번역문을 그대로 번역하면 "몸에 좋지 않은 술통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나, 정작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샘 안에 있는 물을 뜨는 사람은 없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도마복음 속에 한 구절로 당당히 74절이 들어온 데에는 그 만한 이유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었을 것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즉, 단순히 샘 안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 것임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위와 같이 한글로 번역을 하였을 때, 어떤 사람이 예수에게 하는 말인 74절을 도마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말씀들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세속적인 것만을 중시하고, 진짜 소중하고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자신의 밖과 내면(영혼)의 빛에 관심을 갖는 이는 없다."


 

75. 예수께서 가라사대,   "문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다. 그러나 단독자만이 신부의 혼방(婚房)에 들어갈 수 있다."


 

해석 - 75절의 "단독자"는 16절의 "홀로 된 자", 23절의 "하나 된 자", 29절의 "영혼이 몸으로 인하여 존재케 된 상태(에 도달한 자)", 49절의 "홀로 된 자", 61절의 "분열되지 않은 전체로부터 온 자"라는 의미와 매우 밀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혼방"이라 함은 분열되지 않은 자아의 공간이라는 의미다.

또한 "혼방"은 아기와 같이 순수하고 깨끗한 영역의 상징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22절에서 "아기들이야말로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46절에서는 "아기가 되는 자는 나라를 알 것이라"라고 하고 있는 부분과 맥이 닿아 있다.

그리고 예수가 3절과 49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나라"와 75절의 "혼방"은 동일한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리고 75절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73절, 74절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것과 유사하다.

 

인간 예수나 소크라테스, 부처, 공자와 같은 보통 인간의 수준을 넘어선 깨달음의 반열에 오른 성인들의 가르침이 대다수의 보통사람들에게 있어 쉽게 도달하기 어려운 부분들이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75절은 바로 이러한 의미를 닮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75절은 혼방과 같은 깨달음의 영역은 아무나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전달하고자 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76.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의 나라는 한 상인과도 같도다. 그는 매매할 많은 상품을 가지고 있었으나 언젠가 영롱한 한 진주를 발견하고 말았다.

그 상인은 매우 신중하였다. 그는 그 상품을 모두 팔아 자기 자신을 위하여 그 단 하나의 진주를 샀느니라.

그러하므로 너희도 그리하라. 좀이 갉아먹거나 벌레가 궤멸시키지 못하는 곳에서 썩지도 않고 변치도 않는 그의 보물을 구하라."


 

해석 - 76절의 예수는 상인의 가치 투자에 대한 설명을 통하여 인간이 살아가면서 어떤 것에 자신을 투자해야 하는 가를 전하고 있다.

76절은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보물에 자신의 것을 투자하는 것 자체를 예수가 추구했던 '천국운동' 그리고 자신의 안과 밖에 있으나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예수가 말했던 '나라'라는 개념을 또 다른 표현을 통하여 드러냄으로써 그 맥이 연결되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상인의 입장이 된 예수는 한 상인이 매우 신중한 자세로 자신이 보유한 상품들을 모두 팔아 단 하나의 진주를 샀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이 그 가치가 지속될 수 있는 것을 얻기 위하여 자신을 오롯이 투자해야 함을 설파하고 있다.

예수가 언급한 상인은 대표적 예를 든 것이고 상인 외에도 학자, 기술자, 가수 등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도 상인의 진주와 같은 또 다른 그들만의 진주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헤아릴 수 있다.

76절은 자신의 재산을 교회에 갖다 바치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구약(유대교의 경전)을 부정했던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은 강도들의 소굴"이라 했던 것을 떠올리면 그러한 사실이 더 분명해진다.

우리는 76절을 통하여 한국 기독교의 목사들이 신도들의 헌금을 내도록 하기 위하여 이용하는 단골 멘트인 "재물을 교회에 받치는 것이 곧 하늘에 있는 천국에 재물을 쌓는 것"이라는 설교가 얼마나 괴이하고 기만적인 설교인가를 실감할 수 있다.

 

예수는 인간은 죽는 순간 자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됨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예수는 더더욱 살아 있는 시간들의 소중함을 느꼈을 것이며, 또한 그 시간을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수 있는 매우 가치 있는 것을 위하여 자신의 시간이나 에너지를 할애해야 함을 느끼고 있었기에 76절과 같은 말씀을 하셨으리라 여겨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76절은 59절과 맥이 닿아 있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77.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존재하는 모든 것 위에 존재하는 빛이다. 나는 전부이다. 나로부터 모든 것이 나왔고, 그리고 나에게로 모든 것이 돌아온다.

한 편의 장작을 쪼개 보아라! 나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돌 하나를 들어보아라! 그리하면 너희는 나를 거기서 발견할 수 있으리라."

 

77절 영문 재번역 : 예수께서가라사대,  "나는존재하는모든것위에존재하는빛이다.
나는모든사람과같은존재다.
모든 것(천국운동)은 나로부터 제안되었고, 퍼져나간 모든 것(천국운동)은 나에게로 돌아온다.
한편의장작을쪼개 보아라!나는거기에있을것이다.
돌 하나를 들어보아라! 그리하면 너희는 나를 거기서 발견할 수 있으리라."


 

해석 - 77절은 24절, 50절, 52절과 관련 있는 구절이라 할 수 있다.

77절의 예수는 자신은 다른 모든 사람과 같이 그냥 살아 있는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77절의 예수가 전하고자 한 것을 나열해 보면, 예수 자신은 살아 있는 존재이며, 예수는 생명을 갖고 있고, 그 생명을 유지해주는 것은 (내, 외면의) 빛이다. 그러므로 빛과 생명은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77절은 예수 자신 역시 모든 존재하는 것들 위에 함께 하는 빛과 같은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는 구절이다.


 

7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무엇 때문에 모래벌판에 나왔느뇨?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기 위함이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 왕들이나 너희 궁전의 힘센 고관들처럼 화려한 옷을 두른 사람을 만나기 위함이냐?

진실로 그들은 화려한 옷을 둘렀으나 그들은 진리를 깨달을 수 없느니라."


 

해석 -78절의 예수는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심상 속에 자리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이미지와 현실 속의 예수 자신의 차이를 알리고 있다.

예수를 찾아 오는 사람들은 예수를 사회적 문제나, 권력과 문제와 같은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지도자나 메시아로 보고 있었으나 예수는 그것이 그들의 착오적 기대임을 겸손하게 일깨우고 있다.

또한 좋은 의복을 갖추고, 높은 지위에 있다고 삶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님 또한 가르치고 있다.

78절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가 말하고자 한 것은 28절, 29절, 49절, 54절, 69절, 74절에서 예수가 전하고자 하는 것과 많이 닮아 있다고 할 수 있다.

 

 

79. 무리 속의 한 여인이 그를 향해 외쳤다, "너를 낳은 자궁과 너를 먹인 유방이여, 복이 있도다!"

그가 그 여인에게 말하였다,

'애기 밴 적이 없는 자궁과 젖을 먹인 적이 없는 유방 (역시) 복이 있다'라고 너희가 말할 날이 올 것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참되게 지킨 자들이여 복이 있도다!".


 

해석 - 79절의 문맥을 매끄럽게 번역하기 위하여 특히 마지막 부분의 순서를 바꾸었다.

79절에서는 영문을 보면 예수를 가리킬 때 jesus 대신 him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복되다" "복이 있다"라는 표현은 18절과 19절, 49절, 54절, 58절, 68절, 69절, 79절에서 등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79절은 여성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구절이다.

79절을 접함에 있어, 아이를 낳고 젖을 먹여 키우는 여성을 예수가 경시하고 있는 것이 아나라는 사실을 매우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79절에서 예수는 단순히 아기를 낳고 기르는 것에서 느끼는 자긍심 외에도 또 다른 영역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지혜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외면과 내면(영혼)의 빛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의 가치와 의미를 깨달을 수 있도록 큰 부와 권력에 대한세속적인 탐욕을 극복하는 삶을 사는 것을 통하여 모든 여성이 자긍심을 느끼게 될 것임을 예수는 설파하고 있다.

79절의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지킨다" 함은 한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말씀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세속적인 탐욕의 극복을 통한 인간 내, 외면에 존재하는 빛의 존재 의미를 깨닫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본다.

50절에서 예수는 "우리는 빛의 자녀들이다"라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8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세상을 알게된 사람은 누구든지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시체를 발견하게 된 사람에게는 누구든지 이 세상이 합당치 아니 한다."


 

해석 - 80절에서 전하고자 하는 의미는 56절에서의 그것과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는 구절이다.

도마복음 영문 80절을 보면 body가 등장하는데 body는 육체 대신 "시체"로 번역을 할 수도 있다.

예수는 56절과 80절을 통하여 죽으면 육체는 썩어 사라질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부분은 29절과 38절 그리고 59절에 매우 명확하게 제시되고 있다.

80절과 59절은 그만큼 영혼의 소리, 빛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 의미와 가치를 깨달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구절이다.



이상..             09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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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스피린 ip1 2020-07-01 21:45:36
    아스피린이 돌통이를 인간쓰레기 혹은 바퀴벌레색퀴라 부르는 것은 돌통이가 대한민국과 북한에 특대형 재앙을 가져다주고 어마어마한 특대형 경력위조, 현대사 위조를 자행한 김일성과 그의 자손들을 칭송하고 빨아대면서 그놈들의 범죄에찬 역사와 경력들을 슬쩍 슬쩍 은근히 선전선동, 찬양하고 있기때문이다.
    오늘 지금 이시각도 나의 고향이 있는 북한에서는 나의 친척들과 추억을 함께 쌓은 소싯적친구에서 학창의 친구들, 힘들었지만 활기에찼던 군복무시절에 우정을 쌓았던 친구들 그리고 한동네에서 같은 삶의 터전에서 스쳐간 수많은 인연들이 돌통이 색퀴가 흠모하여 칭송하고 빨아대는 김일성과 그 자손들에 의하여 현대문명을 향유하기는 고사하고 인간의 초보적 권리인 하루 세끼 끼니조차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또한 김일성과 그의 후손들의 사리사욕과 이기심으로 말미아마 핵전쟁의 위협속에 늘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상황이다.
    이러한 인간쓰레기들을 빨아대는 돌통이의 행위는 그러지않아도 충분히 어려운 북한사람들의 삶에 보다 더 큰 고통을 가증시키는 행위이며
    그러지 않아도 김정은의 핵위협속에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삶에 더큰 고통을 가증시킨다
    이 쓰레기색퀴는 이런 김씨 인간백정들을 항일영웅이라 추앙한다
    이 쓰레기 새퀴는 탈북자들이 이런 쓰레기같은 김씨일가들보다 못하다고 지꺼렸다
    이러한 연고로 아스피린은 돌통이를 인간쓰레기, 바퀴벌레색퀴라고 부른다

    나의 댓글 내용 중에 네놈이 한 짓이 아닌것이 있으면 정정당당히반박을 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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