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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god 예수의 말씀들..11편..
Korea, Republic of 돌통 0 365 2020-07-06 12:05:50

101.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증오하는 것처럼 아버지와 어머니를 증오하지 아니하는 자는 누구든지 나의 도반(제자)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것처럼 아버지와 어머니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누구든지 나의 도반이 될 수 없다.

나의 (가짜) 엄마는 거짓을 주었지만 나의 참된 엄마는 나에게 생명을 주었다."


 

해석 - 101절의 첫 번째 줄은 55절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므로 55절을 참고해주시기 바란다.

두 번째 줄은 첫 번째 줄에서의 예수의 각오? 의지? 그런 것과는 별개로 그래도 부모님은 언제나 사랑하고 공경해야 할 존재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세 번째 줄의 영문에는 앞부분이 생략되어 있는 형태이며, 한글 번역분은 뒷부분에서 앞부분의 의미를 유추하여 보충한 형태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 '가짜 엄마'라는 것은 세속적이며, 육체적인 의미에서의 부모를 의미하여, '진짜 엄마'라는 것은 예수가 생명으로써의 빛으로 표현했던 존재의 근원으로써의 부모를 의미한다고 보인다.

'가짜 엄마가 거짓을 주었다'는 '은 사망으로 인하여 끝나는 육체의 유한함과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 부분은 11절과, 63절에서의 예수의 말씀과 맥이 닿아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참된 엄마가 생명을 주었다'는 것은 자신의 육체가 죽어 사라져서 볼 수 없더라도 계속해서 존재하고 있을 생명으로써의 빛의 영속성과 관련 있다고 할 수 있다.


 

102. 예수께서 가라사대,   "부끄러워할지어다! 바리새인들이여. 그들은 소 구유에서 잠자고 있는 개와 같기 때문이다.

개는 여물을 먹지도 않으면서 또 소들로 하여금 여물을 먹지도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해석 - 도마복음에서 예수가 '바리새인'을 비판하거나 언급한 것은 39절과 102절이다.

당시 예루살렘에 있던 수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일반 갈릴리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였고 갈릴리 사람들을 율법을 모르는 사람들로 여겼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예수가 도반을 비롯한 여러 대중을 상대로 설교를 하는 것을 사사건건 바리새인들이 방해를 하였을 것이라 능히 짐작해 볼 수 있으며, 예수는 이러한 바리새인들을 39절이나 102절에서와 같은 말씀으로 꾸짖거나 비판했을 것이다.


 

103. 예수께서 가라사대,   "도둑놈들이 어느 시점에 어디로 들어올지를 미리 아는 자는 복되도다!

그는 일어나서 그의 중요한 자산들을 점검하고, 도둑놈들이 들어오기 전에 자신을 무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해석 - 102절의 '도둑'은 7절의 '사자' 21절의 '도적'이 시사하는 것과 동일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103절에서의 '도둑'을 거대한 부나 높은 직책과 같은 속세에서 소유할 수 있는 것들을 취하고자 하는 내면의 욕망이라 한다면 103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해 볼 수도 있다.

탐욕을 불러일으키는 수많은 세상의 것들을 미리 알고 그것에 대한 욕구를 절제할 수 있도록 자기수양을 통하여 마음의 준비를 하는 자들이야말로 진정 현명한 자들이다.

도마복음 전체를 통하여도 그렇지만 103절에서 예수는 속세에 의한 지배, 세속적이며 물질적인 욕구로부터 벗어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비로소 자신의 밖에 그리고 내면에 이미 존재하고 있지만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의 가치를 알게 되는 탐구를 시작하게 된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104. 그들이 예수께 가로되,   "오소서! 오늘 같이 기도합시다. 그리고 같이 금식합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도대체 무슨 죄를 저질러단 말인가? 또한 내가 어떻게 파멸되었단 말인가?

차라리, 신랑이 혼방을 떠난다면, 그제서야 사람들로 하여금 금식하고 기도케하라."


 

해석 - 104절은 유대교의 경전, 토라를 부정했던 예수의 사상이 그대로 드러난 구절이다.

당시 금식은 유대인들에게 종교적 의무로 여기고 있었다.

장소적 개념의 천국을 부정하고, 천국은 자기 주변과 내면에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예수에게 있어 당시 유대인들의 금식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음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104절 후미에 등장하는 "혼방"은 75절에 등장했던 혼방과 같은 개념이다.

104절의 예수는 분열되지 않은 자아의 공간에 있는 자들 즉, 천국(나라)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이들은 그러한 깨달음을 부정하지 않는 한 유대교의 경전인 토라에 맞춰 금식과 기도를 할 필요가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105. 예수께서 가라사대,   "(세속적) 아버지와 엄마만을 아는 자는 누구든지 창녀의 자식이라 불릴 것이니라."


 

해석 - 105절에 등장하는 아버지와 엄마는 55절에 등장했던 아버지와 엄마와 같은 대상이다.

도마복음 전체를 통하여 예수는 천국운동의 핵심을 "세속적인 탐욕을 극복하고 끊임없는 탐구를 통하여 내면과 주변에 존재하는 생명(빛)의 가치를 깨닫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29절의 "영혼이 몸으로 인하여 존재케 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예수가 허례허식이나 세속적인 것을 멀리했으며, 내면적인 깨달음을 중시했다는 의미다.

105절에 등장하는 창녀는 영어로 "whore" "harlot"로 변역되고 있다.

이 중에서 whore에서 파생된 whoredom이란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성서적 의미로 우상숭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105절의 '창녀의 자식'을 '우상숭배하는 자의 자식'으로 번역을 해볼 수도 있다.

즉, 105절의 창녀는 흔히 사용되는 의미와는 전혀 다른 뜻을 갖고 있다.

더 나아가서 '창녀의 자식'을 106절의 '사람의 자식'과 반대의 의미로 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창녀의 자식은 (영혼적인) 내면적인 것보다는 외형적인 모습, 제식적인 것을 중시하는 경우를 비틀어 표현한 것이라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리고 105절의 '세속적 아버지와 엄마만을 아는 자'는 62절의 "합당한 자들"의 반대의 의미라 할 수 있다.

육체적으로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와 엄마만을 안다면 이는 자신과 함께 하기에 합당하지 않다는 의미다.

 

또한 105절을 자신을 낳아 준 부모와의 내면적인 교감을 강조한 것으로 접근하여 해석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105절은 예수가 자신의 부모와의 내면적인 교감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론해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구절이다.

 

결론적으로 105절은 예수가 자신이 도마복음을 통해 계속 강조한 부분들을 육체와 정신(내면, 영혼)의 관점에서 설파하고 있는 구절이다.


 

106.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둘을 하나로 만들 때는 너희는 사람의 자식들이 될 것이니라. 그리고 너희가 '산이여! 여기서 움직이라' 라고 말하면, 산이 움직이리라."


 

해석 - 106절은 105절과 같은 선상에서 보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구절이다.

106절에서 예수가 말하는 '둘'이라 함은 '육신과 영혼'을 의미한다.

예수가 내면적인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궁극적으로 무엇을 추구했는지에 대하여는 도마복음에서 여러 차례 드러난 바 있다.

대표적인 부분이 29절에 등장하는 "영혼이 육신으로 인하여 존재케 되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예수는 제자들이 이러한 상태가 되었을 때 비로소 예수 자신과 같이 내면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된 것이라는 뜻에서 "사람의 자식"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리고 후미에 등장하는 산을 움직이는 부분은 실제로 산이 움직인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눈 앞 보이는 산이 움직이는 것만큼이나 엄청난 변화를 내면에서 경험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107. 예수께서 가라사대,   왕국은 100 마리 양을 지키는 목자와 같다. 그중 가장 큰 것이 길을 잃으매 99 마리를 방치한 채 그 한 마리를 찾아 나서니, 고생 끝에 그 한 마리를 찾고 이르기를 '나머지 99 마리 보다 너를 더 사랑 하노라'


 

해석 - 107절의 '목자'는 96절의 '여인'과 닮은 의미를 갖고 있다.

소량의 효모를 이용하여 밀가루를 많은 수의 빵으로 크게 부풀리는 여인이나 가장 큰 양을 99마리 보다 더 사랑하는 목자나 모두 나라(천국)이라고 예수는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즉, 107절은 예수는 양적으로나 숫적인 것보다는 진짜로 천국운동에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라면 비록 그것이 양적으로 작더라도, 혹은 숫적으로 단 한 개이더라도 그것에 더 큰 의미를 두었음 알 수 있는 구절이다.


 

108.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마시는 자는 누구든지 나와 같이 되리라. 나 자신 또한 그 사람과 같이 되리라. 그리고 감추어져 있는 것들이 그 사람에게 드러나게 되리라."

 

해석 - 전반부는 예수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실천하면 자신이 그러한 것처럼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됨을 말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는 '나와 같이 되리라'의 의미를 자신과 함께 수행하기에 합당한 자가 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리고 후반부의 '감추어져 있는 것'이라 함은 깨닫지 못하여 보지 못하는 상태의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50절에 등장하였던 생명이라 표현할 수 있는 내면의 빛과 같은 것이 있다.

깨달음을 얻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면 이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알 수 있게 되고, 보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이 부분은 5절에서도 등장하였던 부분이다.


 

10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라는 그의 밭에 한 보물이 숨겨져 있는데도 그것이 거기에 있는 줄을 모르는 한 사람과도 같다.

그리고 그가 죽었을 때에 그는 그 밭을 그의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그 아들 또한 보물에 관해서는 전혀 알지를 못했다. 그 아들은 그 밭을 상속받은 후에 곧 팔아버렸다.

그 밭을 산 사람은 밭을 갈았고 그 보물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누구에게든지 이자를 붙여서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해석 - 109절은 3절, 96절, 97절에 등장했던 천국으로써의 '나라'의 또 다른 표현의 구절로써, 지금도 예수가 살아 있다면 기독교의 천국 보물주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대표적 구절이라 했을 것으로 보일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구절이다.

109절의 핵심은 첫 줄에 있다.

1즉, 세속적인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에 비로소 나라를 발견하게 됨을 예수는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1이러한 예수의 말씀이 거대 기독교 자본권력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성서 기자들에 의하여 어떻게 왜곡되어 왔는가를 분명히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1'거대한 부의 탐욕에 눈이 멀은 나머지 자기 주변과 내면에 이미 존재하는 천국(나라)을 발견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 했던 예수의 말씀을 성서기자들이 왜곡시켜 성서를 조작함으로써 교회와 목사들이 이를 이용하여 신도들을 상대로 모든 재산을 예수와 하나님으로 포장된 교회에 갖다 바치면 미래에 획득하게 될 보물인 천국을 그 대가로 얻게 된다는 해괴한 사기를 치는 상황들이 계속 가능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1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세상을 발견하여 부자가 된 자는 누구든지, 그로 하여금 세상을 부정케 하라."


 

해석 - 110절에는 "세상"이란 단어가 두 번 등장하는데 두 개의 세상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부터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앞부분의 '세상'은 도마복음에서 예수가 나라(천국)로 표현했던 그 세상을 말한다. 뒷부분의 세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속적인 탐욕에 찌든 '세상'을 말한다.

29절을 보면 '부유함'이란 단어를 예수가 사용하고 있다. 이는 110절 앞부분의 '부자'라는 단어와 일치한다.

이를 토대로 110절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누구든지 영혼이 몸으로 존재케 되는 경지에 이르러 즉, 나라(세상)를 발견하여 진짜 부자가 된 자는 영원히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는 재화 같은 것으로 부자와 가난을 결정짓는 그런 세상을 부정해도 된다."


 

111.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늘들과 땅이 너희 면전에서 두루 말릴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자로부터 살아있는 자는 누구든지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예수께서 말씀하시지 아니하느뇨?: "자신을 발견한 자는 누구든지, 이 세상이 그에게 합당치 아니하리라."

 

 

해석 - 111절은 2절 그리고 56절과 62절과 맥이 닿아 있는 구절이다.

111절은 2절, 크게 두 개의 문장으로 이뤄져 있으며, 첫 번째 문장은 또다시 두 개로 쪼개 볼 수 있다.

첫 번째 문장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러나'라는 단어다.

'그러나'를 이용했다는 것은 첫 문장의 앞부분과 뒷부분이 서로 반대되는 상황임을 말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하늘들과 땅이 면전에서 두루 말린다는 것은 사람이 숨을 멈추는 죽음의 순간에 눈을 감는 것 즉,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해야 첫 문장의 해석이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을 바탕으로 첫 문장을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죽음을 경험한다. 그러나 살아 있는 예수의 가르침을 통하여 내면과 밖에 존재하는 세상(나라, 천국)을 발견한 사람들은 육신이 정신을 지배하고, 세속적 탐욕의 욕구에 지배당하는 시체와 같은 삶을 살지 않게 된다.

두 번째 문장은 56절과 연관되는 부문으로써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러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세상(나라, 천국)을 발견한다면 그가 이전까지 살고 있던 세상은 죽음이 가득한 시체와 같은 세상으로 보이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112. 예수께서 가라사대,   "부끄러울지어다. 영혼에 매달린 육체여! 2 부끄러울지어다. 육체에 매달린 영혼이여!."

 

해석 - 112절은 표현을 달리 한 또 다른 29절이다.

112절은 말 그대로 영혼과 육체는 분리할 수 없는 하나로써 종국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은 영혼이 육신으로 인하여 존재케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인데 그렇지 못하고 단지 영혼과 육체가 단지 서로 붙어 있는 상태로만 놔두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의미다.

 

113. 그의 따르는 자들이 그에게 가로되, "언제 나라가 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라는 너희들이 그것을 쳐다보려고 지켜보고 있는, 그런 방식으로 결코 오지 않는다.

'보아라, 여기 있다!' '보아라, 저기 있다!' 아무도 이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아버지의 나라는 이 땅 위에 깔려 있느니라. 단지 사람들이 그것을 보지 못할 뿐이니라."


 

해석 - 113절은 대표적으로 3절, 51절 등 도마복음 전체를 통하여 예수가 계속 '아버지' 혹은 '나라'라는 표현을 통하여 강조하고 있는 부분의 의미를 또 다른 표현을 통하여 드러낸 구절이라 할 수 있다.

113절에서 예수는 나라(천국)는 죽음 이후에 보게 되거나 갈 수 있는 그런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113절은 예수를 그리스도라 믿는 사도들을 신봉하는 기독교를 지난 2,000년 동안 지탱해 왔던 것들이 얼마나 허왕된 것인가를 입증하는 중요한 구절이라 할 수 있다.


 

114.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가로되,  "마리아는 우리를 떠나야 한다. 여자는 생명에 합당치 아니 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마리아를 인도하여 그녀 스스로 남성이 되도록 만드리라. 그리하여 그녀도 너희 남성들을 닮은 살아있는 정기(精氣)가 되도록 하리라. 어떠한 여인이라도 자신을 남성으로 만드는 모든 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니라."

 

해석 - 114절은 22절과 연결되고 있는 구절로써 22절 중에서도 특별히 남녀에 대한 부분을 언급하고 있는 구절이다.

114절에서 예수가 언급하고 있는 '남성'은 앞뒤 문맥상 단순히 여성의 반대 개념으로써의 남성이 아닌 차별받지 않는 것이 당연한 대상으로써의 남성을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

114절의 예수는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지 여부를 구분함에 있어 신체적 구조를 통해서 결정짓지 않고, 정기(기상)가 살아 있는가 여부(여자라도 자신을 남자와 똑같은 존재로 인식하는가 여부)에 관점을 두고 있다.

즉, 정기가 살아 있는 사람은 나라에 들어갈 수 있으나 56절과 80절에 등장했던 시체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나라에 드러갈 수 없다고 예수는 보고 있다. 여기에서의 나라는 성경에 등장하는 그러한 의미의 천국이 아니다.

 

어째서 도마복음에 등장하는 '나라'가 성경에 등장하는 '천국'과 같지 아니한가.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기독교는 예수를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바울이 만들었으며, 이러한 기독교는 예수를 직접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를 그리스도라 믿는 사도들을 믿는 종교였다는데 서 찾아야 할 것이다. 

 

 

도마복음 1차 해설을 마치며 종교와 신에 대하여 새롭게 느끼게 된 점을 요약하면 ...


"종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사기극이며, 신은 규모가 가장 큰 사기극의 도구다."

"신을 이용한 종교의 사기극이 가능한 것은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진리가 깨질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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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통 ip1 2020-07-10 17:57:40
    돌통이 아스피린을 인간쓰레기 혹은 바퀴벌레색퀴라 부르는 것은 아스피린이가 대한민국과 북한에 특대형 재앙을 가져다주고 어마어마한 특대형 경력위조, 현대사 위조를 자행한 김일성과 그의 자손들을 칭송하고 빨아대면서 그놈들의 범죄에찬 역사와 경력들을 슬쩍 슬쩍 은근히 선전선동, 찬양하고 있기때문이다.
    오늘 지금 이시각도 아스피린의 고향이 있는 북한에서는 그의 친척들과 추억을 함께 쌓은 소싯적친구에서 학창의 친구들, 힘들었지만 활기에찼던 북조선 남파 간첩대 동무들의 우정을 쌓았던 동무들 그리고 한동네에서 같은 삶의 터전에서 스쳐간 수많은 인연들.. 흠모하여 칭송하고 빨아대는 위대한 김일성이와 그 자손들에 의하여 현대문명을 향유하지 못하고 있으며 인간의 초보적 권리인 하루 한끼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며,
    김일성 일가의 사리사욕과 이기심으로 말미아마 핵전쟁의 위협속에 늘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상황이다.
    이러한 인간쓰레기들을 빨아대는 아스피리의 행위는 기본적인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비참한 북한사람들의 삶에 보다 더 큰 고통을 가증시키는 행위이며
    그러지 않아도 김정은의 핵위협속에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삶에 더큰 고통을 가증시킨다
    이 쓰레기색퀴는 이런 김씨 인간백정들을 항일영웅이라 은근히 추앙한다
    이 쓰레기 새퀴는 탈북자들이 이런 쓰레기같은 김씨일가들보다 못하다고 지꺼렸다. 자기도 탈북한 고정 간첩이면서..
    그리고 이 쓰레기 색퀴는 아스피린 지 가 직접 공개하겠다고 하더니 이제와서 이 창에다 주민번호를 올리지 못하겠다고 우긴다. 그럼 나는 뭐가되나?
    하긴 중국을 통해서 온 남파 간첩이 공개하는건 꺼리겠지..
    하여튼 이러한 연고로 나,돌통은 아스피린이를 인간쓰레기, 바퀴벌레색퀴라고 부른다

    아스피린색퀴야 이중에 네놈이 한짓이 아닌것이 있으면 당당하게 말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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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통 ip1 2020-07-10 17:58:50
    아스피린이는 북에서 지령받고 중국으로 와서 강간,절도,협박등, 범죄자이며 중국에서 남한으로 위장탈북해서 첩질하고 절도죄로도 조사받고 전과자이며
    이 놈은 민족반역자이며 김부자3명을 합한것보다 더 인간 쓰레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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