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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독재자들의 길..02편
Korea, Republic of 돌통 0 267 2021-01-01 15:13:38
  02편.     마지막



 02편.



알략산드르 루카셴카 (벨라루스)


소련 붕괴 후 혼란기를 수습하고, 경제개혁기간에 망가진 복지정책을 다시 부활시켰으며, 범죄를 척결하고, 러시아어를 금지하려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에게서 지켜냈지만, 어느새 폭압적인 통치와 각종 부정선거로 25년간 독재를 펼친 독재자가 되어 있었다.


블레즈 콩파오레 (부르키나파소)


토마스 상카라의 혁명을 도운 영웅 중 한 명이었으나, 이후 권력에 눈이 멀어 상카라를 죽이고 최악의 독재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부르키파나소는 현재 아프리카의 최빈국 중 하나가 되었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부통령 시절과 대통령 초기시절의 그는 이라크를 안정시킨 영웅적 인물이었다.

살바 키르 마야르디트 (남수단)

남수단 독립에 기여하며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나, 부정축재를 일삼고 부족 차별 및 경제적 무능에 이어 남수단 내전을 벌이면서 남수단을 소말리아 이상의 개막장 국가로 만들어 버렸다.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 (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의 국부.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에서 독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집권 이후 방글라데시판 유신헌법을 제정하고 독재자가 되었다. 밑에 언급되는 자기 딸 또한 독재자가 되고 말았다.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의 국부인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의 딸로, 한때는 방글라데시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투사였으나 정작 집권 후에는 정적들을 공공연히 암살하는 등 보기 드문 여성 독재자가 되었다.


시몬 볼리바르 (그란 콜롬비아)


남아메리카 독립운동의 영웅으로 '남미의 조지 워싱턴'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독립 뒤 종신 대통령으로 독재를 펼치다가, 혼란한 정계를 제어하는데 실패해 쓸쓸하게 은퇴했다. 그래도 스스로 물러나기라도 했으니 그나마 낫다.


수카르노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의 독립영웅이었으나 독립 뒤 내부 혼란을 수습한다는 명목으로 '교도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종신 독재를 폈다. 다만 그 뒤를 이은 수하르토의 악명이 워낙 커서 상대적으로 묻힌 감이 있다.


수파누봉 (라오스)


왕가의 핏줄임에도 공산주의를 받아들여 라오스의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 체제를 수립했지만, 초대 주석에 오르고 나서는 우파 인사들을 많이 탄압하거나 죽이는 등 공산당 독재 정치를 펼쳤다. 


그렇지만 대량학살급으로 자국민, 정적 등 사람들을 닥치는데로 학살하다 옆나라 베트남을 잘못 건드려 베트남군의 침공으로 축출당한 아랫나라의 폴 포트나 키우삼판보다는 처신을 잘하여 제 발로 사퇴한 면이 있어서 그런지 욕은 덜 먹는 편이다.☆(참고):《 애시당초 라오스 공산정권은 집권 초기에 숙청을 하거나 반대파를 죽이긴 했어도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 정권가 저지른 킬링필드보다는 그나마 온건했다.》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이란)


억압적인 팔라비 왕조를 대체하여 이란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었으나 세속주의 국가였던 팔라비 왕조보다도 더 억압적인 신정국가를 세워 여성, 세속주의자, 공산주의자를 극도로 탄압했고 무수한 사람들을 처형했고 반대파들에게 백색테러를 했다. 통치는 10년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극히 억압적이라 세계 각국의 자유주의자와 인권단체의 비판을 샀고 그의 후계자 하메네이도 신정 국가를 유지한다.


아웅 산 수 치 (미얀마)


미얀마 군부 독재 정권 시기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이 되기도 했으나 정작 미얀마가 민주 정권이 들어서고 수지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 당이 선거에서 집권한 뒤로는 로힝야, 카친, 카렌족 등 미얀마군의 미얀마 내 소수민족 탄압 및 학살을 방관하고 권위주의적 통치를 펼치며 언론을 탄압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그 중에서 로힝야족은 부족 전체가 미얀마 식민지배의 앞잡이 노릇을 했기 때문에 보복성으로 탄압당하는 것이다.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자유장교단 쿠데타에 참여하여 부패한 이집트의 파루크 왕정을 끝내고 혁명정부를 이끌었으나 반대파를 처형하는 등 많은 과오를 저질렀다.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포르투갈)


포르투갈을 대공황에서 구해낸 공로가 있지만 타고난 정치, 경제적 감각과 대중적 인기를 등에 업고서 오히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인들을 무력화시키고 거의 종신토록 독재를 펼쳤다. 문서를 보면 알지만 스페인에 비하면 포르투갈은 정치적 자유 측면에서 훨씬 나았다. 그러나 살라자르가 편 국민 문맹 정책, 미개발 정책 등을 보면, 포르투갈의 경제를 살리다가 다시 망하게 한 막장 독재자라고 볼 수 있다.


압둘 라작 (말레이시아)


한때는 말레이시아를 영국으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하여 투쟁하였으나, 권좌에 오른 뒤에는 인종차별 정책을 일삼고 반대파를 탄압한 독재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 인간은 스스로의 치적을 과장하여 우상화를 처음으로 주도한 장본인이다.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남예멘과 북예멘으로 분단돼 있던 자국을 하나의 예멘으로 통일시켰으나, 통일 이후 타락하여 본격적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게다가 통일 이전에도 혼란스럽던 나라는 통일 이후에도 여전히 혼란스러웠고, 결과적으로 이 인간의 독재로 인하여 현재 예멘은 서아시아에서도 아프가니스탄급의 헬게이트+최빈국으로 더 추락한 상태이다. 그 뒤 아랍의 봄 및 예멘 민주화 운동으로 완전히 물러났지만, 물러난 이후에도 뻑하면 다시 독재자가 되려는 수상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의심을 받았고, 이후 자국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후티 반군에 의해 살해되면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앙리 1세 (아이티)


스페인 제국의 식민 지배에 대항하여 독립전쟁을 일으키며 아이티를 독립으로 이끈 사람이며, 재위 초반엔 남 아이티 공화국보다 강력하고, 지지 받는 나름 좋다 할수 있는 국왕이였지만 각종 정책의 실패, 권력에 맞들린 앙리 1세, 탈출하는 국민들 및 정부의 부패가 더욱 심해져서 날날이 두 국가의 국력차이는 심해졌고, 결국 왕국 선포가 10년이 지나고 조금 되던날 국왕은 자살하였다. 그 이후 국왕이 살던 궁은 20년 넘게 버려지다가 1850년대 대지진으로 붕괴된 이후 아무도 재건축을 하지 않았다. 앙리 1세가 민심을 얼마나 버렸는지 알려주는 부분.


에밀리오 아기날도 (필리핀)


스페인 제국의 식민 지배에 저항하여 필리핀 제1공화국을 수립한 초대 대통령이었지만, 카티푸난 등의 반대파들을 폭력적으로 탄압하였다.


엔베르 호자 (알바니아)


제2차 세계 대전 때 알바니아를 점령한 나치 독일군에 맞서 싸운 공산 게릴라의 지도자였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권력을 잡으면서 동유럽판 김일성, 알바니아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으로 전락, 반대파들을 숙청·학살하고 통치자의 신격화·우상화 정책을 폈다.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3세 (브루나이)


브루나이인들에게 있어, 사이푸딘은 한마디로 국민적 영웅이자 브루나이의 국부이다.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였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되는데, 생전 브루나이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으며, 말라야로의 합방을 권유하는 주변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를 끝까지 거부하고 조국의 자주적 독립을 이룩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석유를 통해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였고, 그 돈으로 인민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온 몸을 다했다. 인민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부여하고 복지에 큰 신경을 썼으며, 오늘날 브루나이가 세계적인 부국이 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뿐만 아니라 적들의 반란에도 어김없이 즉각 대처하는 등 그의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했다. 


하지만 1962년 아자하리의 난을 진압한 이후로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했으며, 즉각 의회를 해산하고 반대파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했다. 또한 인민들에게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대신 표현의 자유를 철저하게 탄압했으며, 만에 하나 정부에 반대하기라도 하면 그 사람은 즉각 코렁탕 원샷이었다. 그리고 석유를 통한 막대한 부의 이면에는 그가 쌓은 치적들이 문제였는데, 인민들을 먹여살리는 대신 스스로를 신격화했다. 그를 향한 인민들의 충성과 찬양은 사실상 인민의 의무였으며, 이 때문에 윗동네 못지않은 살벌한 분위기를 깔아놓았다. 


또한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3세 모스크를 크게 짓는 선이 아니라 내부를 아주 순금으로 치장하는 등 유례없는 돈지랄을 강행했으면서도, 두바이처럼 현대화를 위한 개발에는 관심조차 없어서, 이에 대한 비판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옆동네처럼 인종차별 정책을 강행했는데, 이는 악명높은 옆동네의 부미푸트라 정책보다 한술 더 떠서 종종 문제가 된다. 말레이·이슬람사상을 보존하는 전제로 중국인과 같은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을 대대적으로 가했으며, 현재 이들은 국적조차 받을 수 없으며 차이나타운도 금지되어 있다. 


기독교와 같은 이른바 적성종교에 대한 탄압도 큰 논란거리인데, 크리스마스를 금지시키고 툭하면 교회를 폐쇄시키는 정책은 각계의 큰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종교법인 샤리아가 도를 넘어서 문제인데, 저게 신앙심을 지키고 범죄척결에나 사용되면 모를까, 개개인의 사생활까지 탄압해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다.


올리버 크롬웰 (영국)


청교도 혁명의 주인공. 중상층에서 폭군을 폐위해 민중들의 환호를 받았지만, 청교도 교리에 입각한 지나친 금욕주의적 생활을 강요하는 독재자였으며 사후 다시 왕정복고가 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참고):《 이후로 왕에 즉위한 찰스 2세는 크롬웰의 무덤을 파해쳐 부관참시 해버렸다.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우간다민족해방전선(UNLF)에 참가하여 인간의 탈을 쓴 악마 이디 아민을 몰아내고 생지옥이던 우간다를 구하는데 큰 공을 세운 영웅. 그러나 1986년부터 이은 장기집권과 부정선거, 동성애자를 사형에 처하는 세계 최악의 반동성애법 등으로 그 역시 막장 독재자의 길을 걷게 된다. 


집권 기간은 이디 아민보다 훨씬 길었고 온갖 비리와 실정도 많이 저질렀지만 이전에 이디 아민이 워낙에 유례없는 막장성을 자랑하는 독재자였던지라 상대적으로 많이 묻힌 인물.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1인당 GDP는 매우 높았지만 빈부격차가 걷잡을 수 없이 높아졌고, 양당이 모두 썩어서 서로 돌려먹기를 하며 기득권에게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우고 차베스(당시 중령)는 쿠데타를 일어켰으니 실패하고 투옥되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서 그 다음에 있던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을 교체하는 데 성공했으며, 그 자신도 2년 뒤 사면되어 출소되었다. 그리고 정치에 입문, 그 인기를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너무 성급하게 개혁하려고 했다가 반대파의 반대에 부딪히고, 결국 포퓰리즘 독재를 선택하게 되었지만 얼마되지 않아 암으로 사망하고 만다. 그는 베네수엘라를 온두라스 그자체로 만들었으며, 그가 남긴 유산은 사후에 문제를 크게 일으켜 베네수엘라 정부가 사실상 두 개로 갈라져버린 원인이 되었다.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폴란드)


폴란드의 독립영웅이었지만 독재자로 변신하여 폴란드를 대차게 말아먹었다. 만약 그의 독재만 아니었으면 폴란드는 나치에 더더욱 가열차게 투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고대 로마)


사실상 이 방면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며, "기존의 구체제는 답이 없어서, 구국의 결단을 내린 XX님께서 민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권력을 획득하셨다"라는 레퍼토리의 원조가 되는 인물이다.☆(참고):《  하지만 카이사르가 정말로 폭거를 저지른 독재자였는지, 그리고 카이사르의 반대파들이 정말로 공화정을 수호하려는 세력이였는지는 반론이 있다. 》


그야말로 모든 독재자들의 롤모델. 고대 로마의 영웅이었으나 그에게 권력이 모여 공화정을 위협했고, 공화주의자들이 암살한다.☆(참고):《 다만 카이사르는 생전에 적극적으로 공화정을 부정하거나 전복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인 적은 없으며, 합법적인 절차였던 독재관이라는 직책을 수여받아 국정을 이끌었다. 그리고 카이사르를 암살한 인물들은 공화정이라는 체제를 지키려 한것이기 보다는 본인들을 포함한 귀족들만의 기득권을 지키려 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사야스 아페워키 (에리트레아)


에리트레아의 독립영웅이었으나, 독재자로 변신하며 모든 걸 다 말아먹는다. 에리트리아의 언론자유도가 북한과 함께 세계 최악일 정도.


장제스 (중화민국)


군벌 시대로 분열된 중국을 북벌을 감행하여 통일을 했다. 연합국 수뇌부의 일원으로, 히로히토의 침략을 물리치고 제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세계와 중국을 일본 제국의 손아귀에서 구했지만, 중화민국 통치시절 내내 독재정치를 펼쳤고, 측근 인사들의 부정부패 척결에 소홀하게 임했다. 그 때문에 중국 공산당에 일격을 받아 섬으로 쫓겨나고 만다. 파란만장한 중국사의 한 축을 담당한 만큼 평가가 좀 복잡한데


콰메 은크루마 (가나)


가나의 독립 영웅이자 아프리카 해방 운동의 선도자였으나, 한편으로 자신의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일당 독재와 무소불위의 종신 집권 체제를 구축했다. 끝내 1966년 중국 방문 중에 쿠데타로 실각했다.


토도르 지프코프(불가리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모국을 점령한 나치 독일군에 맞서 게릴라 전을 주도하던 공산당 게릴라의 지휘관이었으나 1945년 나치가 패망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불가리아에 공산당 독재 정권이 수립되자 제1대 주석인 디미트로프와 제2대 주석 체르벤코프의 뒤를 이어 독재자가 되었다.


툰쿠 압둘 라만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영웅이었으나, 집권 후 인종차별의 면모를 서서히 드러내더니 결국 5.13 사건 직후 무시무시한 독재자로 돌변했다.


펠릭스 우푸에부아니 (코트디부아르)


코트디부아르 독립에 기여한 영웅이지만 무려 33년에 이르는 장기 집권으로 결국 독재자로 변모했다. 중반기까지 그럭저럭 아프리카 나라에서는 제법 안정적으로 나라를 잘 다스렸으나 결국 나중에는 말아먹었고 그럼에도 고향인 야무스크로에 대형 건물을 무리하게 지으면서 돈낭비를 해버리다가 천수를 누리고 갔다.


포르피리오 디아스 (멕시코)


프랑스 원정군을 물리치고 멕시코 제2제정을 무너뜨리는 데 공헌한 성공한 군인이었다. 대통령에 취임한 뒤 독재자로 바뀌었다. 현지에서 그가 멕시코의 인프라를 구축해서 유능한 인물로는 평가받지만 좋은 사람이라고는 국민들이 생각하지 않는다. 끝내 멕시코 혁명으로 쫓겨남. 현대 멕시코에서는 오히려 이 사람을 몰아낸 에밀리아노 사파타를 영웅으로 추앙하며 현행 페소화에도 사파타의 얼굴이 찍혀서 나온다.


풀헨시오 바티스타 (쿠바)


쿠바 최조의 비백인 대통령이자 혁명으로 독재를 엎었지만 그 역시 독재자가 되었고 결국 축출되었다. 바티스타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주인공은 바로 그 유명한 피델 카스트로.


프란시스코 프랑코 (스페인)


리프 전쟁 당시 스페인 군 최연소 소령 등을 먹고 결혼식에서는 국왕이 주례를 서는 등 전설적인 전쟁영웅이었다. 그러나 스페인 내전 뒤로는 툭하면 정적들을 갈아마셔대는 독재자였다. 심지어 아돌프 히틀러까지는 몰라도 원조 파시스트인 베니토 무솔리니보다 그 죄질이 더 사악하다고 할 지경이니...


피델 카스트로 (쿠바)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에게 맞써 싸웠으나, 권력을 잡고 독재자에 올랐다. 다만 쿠바 국민들의 지지는 높은 편. 최장 집권기록을 가진 독재자지만 스스로 자리에서 사임하고, 친동생에게 넘긴 정권도 결국 평화롭게 이양했다.


허를러깅 처이발상 (몽골)


본래는 담딘 수흐바타르와 함께 운게른의 폭정에서 몽골을 구했지만 독재자로 변신했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본래는 전쟁영웅이었지만 독재자에 올라 끝내 이집트 혁명으로 몰락했다.


호찌민 (베트남)


한참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던 시절과 주석직에 집권한 후에 농민, 지주들, 가톨릭 교도들 등 반대파들, 주로 남베트남인을 앞뒤 가리지 않고 학살하기도 하였다. 총책임자로서 전혀 잘못하지 않았다고 할 순 없지만, 당시에 호찌민은 너무 늙어서 늘 멍하고 죽은 듯이 잠자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전쟁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냐고 묻는 게 고작이였는데 베트남엔 곧 죽을 노인에게 부하들의 행동을 말할 정도로 소신있는 사람이 없었으니 다소 억울한 부분.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본인은 평생을 베트남에 헌신한 독립영웅이자 통일의 기초까지 다져냈으며 공산권 지도자들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훌륭한 인품을 가졌으나 공산권 특유의 개인숭배징조까지 시너지를 이루어 유언이 씹혔을 정도이다.


훈 센 (캄보디아)


캄보디아 내전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이었으나 장기집권으로 독재자에 올랐다.☆(참고):《사실 캄보디아에는 이 인간이 있어서 상당히 묻혔다.》


● . 반대 사례


◇  조지 워싱턴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 미국편에서도 언급되는 이야기이지만, 워싱턴은 다른 나라의 군주처럼 자신을 3인칭 대명사로 지칭하거나 당시의 미국 영토 전체를 순방하고 화려한 무도회를 자주 여는 등, 스스로 군주처럼 행동하였다. 미국은 대통령이 있는 민주 공화제였지만 세상에서 처음으로 대통령을 뽑은거라 그 당시 사람들은 대통령을 '시민들이 뽑는 군주'로 생각했다. 조지 워싱턴도 그렇게 생각해서 자신을 3인칭으로 지칭하고 왕처럼 행동한 것. 


그러나, 정작 자신을 종신대통령이나 미국의 왕으로 추대하려는 여론을 모두 물리치고 임기가 끝나자 자신의 조국 미국의 정치적 안정과 민주주의의 안착을 위하여 대통령직을 존 애덤스 부통령에게 이양하고 깔끔하게 자리에서 물러나 고향에 은거하여 남은 여생을 보냈다. 


선거군주제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 대통령제를 선택한 국가들이 단 한 국가를 제외하고는 모두 독재자의 출현 문제에 시달렸는데, 그 한 국가가 바로 미국이며, 합법적으로 장기집권한 대통령도 단 한 명 밖에 없다.☆(참고):《 그나마도 그 한 명 이후로 헌법이 바뀌어 3연임 이상이 확실하게 금지되었다.》


◇  크리스티안 10세


집권 초기에는 야당을 탄압한 전제 군주였으나 2차대전때에는...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심지어 종전 이후 덴마크를 민주화시킨다.


◇  후안 카를로스 1세


독재자인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왕정복고 뒤 자신의 파시즘 정권을 연장시킬 꼭두각시로 삼고자 옹립한 군주였으나, 정작 프랑코가 죽고 왕정복고가 되자마자 스페인의 민주화를 추진하고 입헌 군주제를 실시하는 등 이후 스페인 민주주의의 아이콘이 된다...만 2014년 고가의 아프리카 사냥 여행을 간 것이 논란이 되어 좋은 이미지를 다 날리고 결국 장남 펠리페 6세에게 양위한다. 게다가 그동안의 난잡한 사생활이 다 까발려지면서 스페인 왕실이 폐지될 위기에도 놓이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고.


◇  부탄의 왕축 왕조


이들은 전제군주제였던 부탄에서 선정을 펼쳐 국민들조차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못 느낄 정도였지만, 스스로 절대왕권을 내려놓고 국민들에게 민주화의 필요성을 설득시켰다. 2017년 현재 부탄은 입헌군주국체제인데, 아래로부터의 권력 투쟁이 아니라 윗선에서 자진해서 권력을 내려놓은 사례는 정말 찾기 어렵다. 물론 전제군주제였었기에 아직도 개선해야할 사안이 좀 남아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는 피 안흘리고 자유 얻은 사례가 거의 없는 것을 감안하면 양호한 편이다.☆(참고):《 윗선에서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은 사례로는 냉전 말기의 헝가리가 공산당 지도부가 있다. 당시의 공산당 지도부가 자본주의 체제로의 이행의 필요성을 느껴서 직접 다당제 시행과 공산주의 체제의 공식적인 포기를 담은 신 헌법을 통과시키고 모든 권력을 내려놓았다. 그 외 비슷한 시기의 몽골도 공산당이 자발적으로 공산독재를 종결했다


◇  체 게바라


독재자가 된 피델 카스트로 및 라울 카스트로와는 달리 혁명으로 권력을 가지게 되었으나 자신의 이상과 동떨어져 가는 쿠바를 보고 소련의 외압 반, 자의 반으로 쿠바를 나와 볼리비아로 가서 다시 혁명에 동참하게 된다. 


물론 볼리비아 혁명 시도는 실패했으나 권력에 물들지 않고 고결함을 지켰다는 데에서 자유진영, 공산진영, 제3세계를 가리지 않고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이 사람이 반대파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보면 역시 모른다. 미처 독재자가 되지 못한 것이라고 봐야 할지도...


◇  담딘 수흐바타르


위의 체 게바라와 비슷한 케이스. 차이점이 있다면 이쪽은 권력을 얻은 후 뭘 해보기도 전에 요절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자기 친구과는 달리 평가가 매우 좋다.


◇  넬슨 만델라


막장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의 완벽한 안티테제. 백인정권 아래에서 신음하던 흑인들의 인권신장을 이룩했다는 점에서는 똑같은 영웅이지만, 대통령이 되고 난 이후에는 완전하게 달라졌다. 만델라의 관용과 용서 정책은 흑인 정권의 복수를 걱정하던 백인들을 안심시켜 남아공의 경제를 잡고 있던 백인들이 떠나지 않게 했으나, 


무가베는 인기를 위해 백인들의 재산을 무자비하게 몰수해 영국의 분노를 샀고, 백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인종차별적인 정책을 폈으며, 막장스러운 경제정책으로 짐바브웨를 말아먹었다. 결정적으로 만델라는 단 5년만 대통령이었지만, 무가베는 30여년이나 권력의 정점에 서서 야당은 물론 국민들까지 탄압했다. 물론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그 30~40여년 전에 이미 국가의 기틀이 잡힌 나라였고, 무가베는 과격파였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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