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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붕괴론에 대해
Korea, Republic of 돌통 0 289 2021-02-24 17:49:42
●   북한 붕괴..??


◇  체제붕괴 : 현 국제 정세상,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고, 가능성도 낮아보인다.



1990년대 중반 북녘의 극심한 경제난이 남쪽에 널리 알려지면서 북녘은 곧 무너질 것이라는 얘기들이 많이 나왔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남북 사이에 체제경쟁이 끝났다고 선언하며, 북녘의 붕괴를 염두에 두고 "통일이 예기치 않은 순간에 갑자기 닥쳐올 수도 있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했다. 


1997년 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에서는 당선자가 통일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전망하였다. 후보자토론회가 열리면, 진행자나 토론자는 북녘이 붕괴되면 평양의 지도자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는 질문을 서슴없이 던졌고 후보자들은 법에 따라 처벌하겠노라고 주저없이 대답했다.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북녘의 붕괴를 예상하는 책과 논문들이 쏟아졌고, 이를 주제로 한 학술대회가 여러 차례 열리기도 했다. 예를 들어, 유종렬은 1995년 펴낸 흡수통일 금세기 중 가능한가! 에서 북녘의 식량난이 계속 악화한다면 '1-2년 후에는 (1996-97년)' 심각한 식량폭동 내지 반정부폭동이 전국적 규모로 발발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면서, 북녘 주민들이 아무리 주체사상으로 철저하게 무장되었다 할지라도 배가 고프면 아무 소용이 없고 비밀경찰의 위협에도 겁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종서는 1996년 열린 한국정치학회 학술대회에서 "북한은 지금 붕괴하고 있는 중"이라고 주장하며, "빠르면 3년 늦어도 10년 안에, 자멸에 의해 붕괴되어 남쪽에 의한 흡수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다"고 단언했다. 


민족통일연구원은 1996년 펴낸 북한 사회주의체제의 위기수준 평가 및 내구력 전망이라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북녘이 국제적으로 도덕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국제적인 경제협력 관계가 미약하며, 식량과 유류 등 안보자원을 원활하게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등을 체제 붕괴의 가능성 요인으로 꼽으며, 2001-2008년 사이에 북녘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질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다.

 

그러나 ** 그 무렵부터 강연이나 논문을 통해 북녘의 붕괴는 가능성도 낮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주장을 펴왔는데, "만약 북한이 붕괴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며 나의 장래 신상에 대해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정보 관련 부서 직원들이나 형사들은 대중강연회장은 말할 것도 없고 학술토론회장에까지 찾아와 학생운동권 출신 교수냐며 왜 그렇게 친북적인 내용의 논문을 발표하느냐고 시비를 걸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강도 (强度)는 약해지고 빈도 (頻度)는 낮아졌지만, 북녘이 무너질 것 같다는 얘기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2006년 11월 참 공교로운 일이 있었다. 신진보연대라는 계간지에서 북녘의 붕괴에 관한 논문 1편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이를 알아차리기도 한 듯 며칠 뒤에는 주한미국대사관에서 북녘의 붕괴에 관한 논문 1편을 보내주었다. 미국의 The Atlantic Monthly라는 월간지 2006년 10월호에 실린 논문으로, 북녘은 붕괴 7단계 중에서 중간쯤 처해 있다면서 북녘이 무너질 위기에 놓이면 남쪽을 침공할 가능성이 크고, 북녘이 붕괴하면 중국이 가장 큰 이익을 본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익산의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두 사람이 사업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북녘이 곧 붕괴할 것이라는 말을 꺼냈다. 평양에 다녀온 사람들에 따르면 북녘은 지금 나라꼴이 아니라면서 길어야 2-3년 안에 망할테니 그에 대비한 사업을 구상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이처럼 북녘이 붕괴할 것이라는 얘기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이에 먼저 '붕괴'가 어떠한 상태를 의미하고, 이 '북한 붕괴설'을 언제부터 누가 왜 제기해 왔으며, 우리는 어떻게 준비하거나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살펴보는것도 의미가 있어보인다.


 

☆ 붕괴의 개념과 종류로는


 

북녘의 붕괴에 관해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논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붕괴'라는 말의 개념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붕괴는 크게 3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는 정권 또는 정부가 무너지는 것이요, 


둘째는 체제 또는 정치경제구조가 무너지는 것이며, 


셋째는 국가 또는 국민이 무너지는 것이다. 


이를 북녘에 적용하면, 김정일 정권의 붕괴, 사회주의체제의 붕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붕괴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정권 또는 정부의 붕괴는 최고권력자가 쿠데타에 의하여 쫓겨나거나 갑작스럽게 죽음으로써 통치권력에 공백이 생기거나 지도자가 바뀌는 것을 뜻한다. 


이 경우 권력엘리트는 바뀌어도 일반적으로 정치와 경제체제의 기본적인 특징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는 선진국에서든 후진국에서든 자본주의국가에서든 사회주의국가에서든 드물지 않게 일어났다. 남쪽에서도 1960년 4월 이승만 정권이 붕괴하였으며 1979년 10월에는 박정희 정권이 붕괴한 적이 있다. 북녘의 김정일 정권 역시 쿠데타나 대중봉기에 의해 언제든지 붕괴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체제 또는 정치경제구조의 붕괴는 정치 및 경제적 틀이 급격하게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반드시 정권의 변화를 전제하지는 않지만 최고권력자 및 권력엘리트의 교체보다는 훨씬 포괄적이다. 1980년대 중반 중남미 및 아시아 국가들에서 민주화의 물결을 타고 독재체제가 민주체제로 바뀐 것이나, 1980년대 말 동유럽 사회주의권에서 물질적 풍요에 대한 동경에 따라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 바뀐 경우를 들 수 있다. 북녘이 급속도로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면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질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국가 또는 국민의 붕괴는 국민이 외부로 집단탈출을 감행함으로써 국가의 존립기반이 사라지는 것을 뜻한다. 이에는 전쟁이나 재난 등에 따른 신체적 탈출뿐만 아니라 정권 및 체제에 대한 광범위한 신념의 결핍에 따른 정신적 탈출도 포함된다. 1989년 11월 동독인들이 베를린장벽을 넘거나 이웃 나라들을 통하여 서독으로 집단탈출한 것이나 1991년 12월 소련이 해체된 경우를 들 수 있다. 


따라서 북녘 인민이 김정일 정권 및 사회주의체제에 대한 불만이나 굶주림에 의한 좌절 또는 외부 세계에 대한 동경 등으로 남쪽이나 중국으로 집단탈출을 한다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붕괴될 수 있을 것이다.


 

☆  북한 붕괴설은 언제부터 나왔는가



첫째, 1980년대 말부터 동유럽 사회주의체제가 몰락하면서 1990년 동독이 무너지고 서독에 흡수되자,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동독보다 훨씬 못한 북녘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겠느냐며, 통일에 대한 기대로 북녘의 붕괴를 예상했다.

 

둘째,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죽자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고 50년 동안 통치해온 지도자가 사라졌으니 북녘 체제도 곧 사라질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이에 따라 미국은 1994년 북녘에 경수로 제공을 약속하며 제네바합의를 이루었다. 경수로를 지어주는 체하며 시간을 보내면 북녘이 곧 무너질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미국이 2002년 북녘의 우라늄을 통한 핵무기개발 의혹을 핑계로 경수로건설에서 손을 뗄 때까지 터만 고르고 있었던 이유다.

 

셋째, 1995년에는 북녘에서 이른바 '100년만의 물난리'가 일어나 식량난이 세상에 알려지고, 1996년에도 엄청난 수해를 당하면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곧 식량폭동이 일어나 북녘이 무너질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미국의회에서는 "북한의 붕괴는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기와 방법의 문제일 뿐이다"는 증언이 나왔고, 이를 받아 남쪽의 학계와 언론계 일각에서는 "북한은 지금 붕괴하고 있는 중이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넷째, 1997년에는 황장엽 로동당비서의 망명에 이어 외교관들의 망명이 줄을 이었다. 노동자와 농민들뿐만 아니라 지식인과 고위관리들까지 북녘을 탈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주체사상을 체계적으로 다듬은 것으로 알려진 황장엽의 망명은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체제를 탈출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주체사상에 의해 지탱되는 북녘이 더 이상 버틸 수 있겠느냐는 전망을 낳게 했다.

 

그러다 1997년 말부터 외환위기에 따른 경제난을 겪는 가운데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북녘의 붕괴에 따른 흡수통일은 남쪽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국정원책임자가 개인적으로나마 북녘이 붕괴할 위기에 처하더라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아울러 북한 붕괴설이 사라지는 듯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북녘의 현실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에 의해 붕괴를 예상하기보다는, 북녘은 망해야 한다는 반북감정과 어떻게든 통일을 이루고 싶다는 희망사항으로 붕괴를 주장해온 것이다.


 

☆  북한 붕괴설은 누가 왜 퍼뜨렸을까


 

북한 붕괴설은 전쟁도발설이나 한반도 위기설과 함께 여러 경로를 통해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얘기들은 주로 미국과 남쪽의 군부나 정보부처들을 비롯한 강경파로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이를 주장해온 주체와 배경을 살펴보면 북녘의 붕괴 및 전쟁도발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미국의 중앙정보국 (CIA)과 국방부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가 북녘의 붕괴 및 남침가능성을 가장 빈번하게 또는 주기적으로 주장해왔다. 죤 도이취 중앙정보국장은 1996년 2월 하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서 북녘의 정치경제적 상황 악화는 현 정권을 급속하게 붕괴시킬 수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북녘이 제한전쟁을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증언하였다.

 

둘째, 1999년 대북정책 조정관으로 일하며 이른바 '페리 보고서'로 유명해진 윌리엄 페리 국방부장관은 1996년 3월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북녘이 식량 및 전력부족 때문에 상황이 계속 나빠지고 있다며 한반도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라고 주장했다.

 

셋째, 개리 럭 주한미군 사령관은 1996년 3월 하원 국가안보위원회에서 북녘의 심각한 경제상황과 식량난을 볼 때 북녘의 붕괴는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기와 방법의 문제일 뿐이라고 증언했다. 북녘이 그러한 내부문제에 대한 관심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남쪽을 공격할지 모르기 때문에, 남쪽에 요격미사일을 배치하는 게 필수적이라고도 했다. 


나아가, 상원 군사위원회에서도 북녘붕괴 및 전쟁도발을 강조하며, 1997년의 국방예산 삭감을 반대했다. 군인답게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선적으로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은 것이다.

 

넷째, 죤 틸럴리 주한미군 사령관도 1997년 3월 하원 국가안보위원회에서 북녘의 붕괴와 남침을 우려하며, 1998년의 국방예산 증액을 요구했다. 그리고 남쪽 정부에 대해서는 1998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미군주둔 비용분담금을 늘리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와 같은 북한 붕괴설이나 전쟁도발설은 정보나 국방분야 책임자들의 업무성격상 실제로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것일 수도 있고, 그들의 '밥줄'을 지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냉전종식 이후 러시아의 군사위협이 줄어들면서, 당연히 관련부서들의 예산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따라서 예산삭감을 막기 위해 북한 붕괴론을 이용해 왔다는 말이다. 


북녘이 무너질 가능성이 커지면 남침가능성이 높아지고, 전쟁가능성이 높아지면 정보국이나 국방부의 예산이 늘거나 최소한 줄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3-4월 무렵에 의회에서 예산을 심의하는데, 이에 앞서 청문회를 열어 관련부서 책임자들의 증언을 듣는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나아가 와싱턴에서 흘러나오는 북녘의 붕괴 및 전쟁도발 가능성에 관한 얘기는 남쪽에서 반미감정과 함께 일고 있는 주한미군 철수설을 잠재우고 남쪽 정부에 미군주둔 비용분담금의 증액을 요구하며 남쪽에 무기를 더 많이 팔기 위한 속셈일 수도 있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냉전종식 이후 군수산업은 축소될 수밖에 없었지만, 미국의 무기수출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전 세계 무기수출의 절반을 차지하며 지금까지 세계 제 1의 무기수출국 자리를 빼앗긴 적이 없는데,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의 안정을 위한다는 위선 뒤에는 이러한 장삿속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1994년 3월 페리 국방부장관이 북녘의 핵무기개발 의혹을 구실로 한반도에 위기를 고조시키고 전쟁불사를 주장하며 남쪽에 패트리엇 미사일과 AH-64 아파치헬기 및 브래들리전차 등 새로운 무기들을 들여놓도록 이끌었던 것처럼, 1996년 3월 북녘의 붕괴 및 남침가능성이 제기된 직후에는 1970년대 말 주한미군 참모장을 지내고 미국 군수업계 상담역으로 활동해온 죤 싱글러브 장군이 서울을 방문하여 북녘의 대남 미사일공격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미사일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압력을 넣었다. 


그리고 1997년 4월 북녘의 붕괴 및 전쟁도발설이 흘러나온 뒤에는 윌리엄 코언 국방부장관이 서울에 와서 한미간에 무기의 상호운영성을 내세우며 남쪽이 러시아제 미사일 대신 미제 패트리엇 미사일을 구입하도록 강권하였다. 실제로 남쪽은 1996년 한 해 동안 10억 달러가 넘는 무기를 미국에서 사왔으며 그 액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냉전이 끝남에 따라 위상 약화와 함께 예산삭감 압력을 받아온 미국 중앙정보국과 국방부 그리고 위축될 우려가 있는 군수산업에 북한 붕괴설과 전쟁도발설이 왜 필요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섯째, 남쪽의 안전기획부 (국가정보원)와 국방부도 필요할 때마다 북녘의 붕괴 및 남침가능성을 경고해 왔다. 예를 들어, 1996년 12월 안전기획부법 개정안이 날치기로 통과되고 1997년 국방예산이 12.8%나 늘었는데, 안전기획부가 한참 논란이 벌어졌던 안전기획부법 재처리 및 국가보안법의 개정이나 철폐를 반대하면서, 그리고 국방부가 군비의 현대화 및 지속적인 국방비 증액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북한 붕괴설과 전쟁도발설이 흘러 나왔던 것은 무엇을 뜻하겠는가.

 

북녘이 심각한 경제난 속에서도 전쟁준비에 몰두하고 있다는 경고는 안전기획부나 보수극우적 단체들이 민간차원에서 퍼지고 있는 대북 식량지원운동을 반대하거나 방해하는 과정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일반적으로 대통령이나 지방 자치단체장 그리고 국회의원선거 등을 앞두고 반공분위기를 고조시키거나 공안정국을 강화하는 데에 북녘의 전쟁도발설은 적지 않은 효과를 거두어 왔다. 


나아가 남쪽이나 북녘이나 내부에서 반대세력을 억압하며 정권을 강화하는 데 남북한 사이에 갈등과 긴장을 조성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도 드물었다. 북녘의 붕괴 및 남침가능성을 흘림으로써 북녘의 자극을 이끌어내고 그것을 구실로 총화단결을 외치며 정부에 부정적인 여론을 잠재울 수 있었다는 뜻이다.

 

한편, 남쪽에서 제기되는 북한 붕괴설의 배경에는 북녘이 무너져야 한다는 당위성과 북녘이 무너지길 바라는 기대감이 섞여 있는 것이 미국에서 제기되는 북한 붕괴설의 배경과 다른 점이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동독의 붕괴 및 소련의 해체를 포함한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몰락을 지켜보며, 남쪽에서는 북녘이 체제경쟁에서 패배하고 상대적으로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무너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반도의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북녘이 빨리 무너지면 좋겠다고 바랐던 것이다.


 

☆  북한 붕괴설의 내용


 

지금까지 북녘 붕괴를 주장해온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크게 다섯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정치적으로 김일성 주석 사후 체제가 불안하다. 김정일 위원장의 정통성과 카리스마가 부족해서 군부의 도움을 받아 물리적인 힘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을 뿐이다.

 

둘째, 경제적으로 총체적 파탄 상태에 있다. 지속적인 마이너스 성장과 '경제 3난'이라 불리는 극심한 식량부족, 에너지부족, 외화부족의 악순환으로 경제가 자력으로 회복될 수 없다.

 

셋째, 사회적으로 통제체제가 느슨해졌다. 부정부패가 심해지고 상호감시 체제가 이완되어 사회규율과 질서가 무너짐으로써 탈북자가 증가하고 있다.

 

넷째, 정신적으로 국가 이데올로기가 실종되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함께 역사적으로 폐기되었고, 주체사상은 경제파탄으로 설득력을 잃었는데, 새로운 통치 이데올로기가 아직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

 

다섯째, 대외적으로 국제적 고립이 지속되고 있다. 테러, 인권탄압, 국제법위반, 핵무기개발 등으로 다른 나라들이 북녘에 대한 접근과 협력을 기피하는 터에 당이나 정부가 밀수와 위폐발행을 주도하여 국가의 윤리적 기초마저 무너졌다.

 

붕괴과정과 관련하여, 주한미군사령부는 1997년 북녘이 경제난, 사회적 불안, 신구 세대간의 갈등, 국제적 고립 등으로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며, "외롭게 남아있는 폐쇄적이고 군국주의적이며 스탈린주의적인 사회"가 7단계로 와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1단계로 자원이 고갈되면, 2단계로 산업이 마비되고, 3단계로 통제력이 상실되며, 4단계로 대중통제가 강화될 것이다. 5단계로 이에 따라 인민의 저항이 생기고, 6단계로 지배세력이 분열되면, 7단계로 권력투쟁을 거쳐 집단지도체제가 들어설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이 전망은 9년 뒤인 2006년에도 되풀이되었다. 미국의 국제문제 전문가 캐플런이 The Atlantic Monthly 2006년 10월호를 통해, 북녘의 붕괴가 다음과 같이 7단계 과정을 밟을 것이라고 전망한 것이다. 


1단계로 자원이 고갈되면, 


2단계로 산업기반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고, 


3단계로 지방의 당 관료나 군벌이 각 지역을 통제하게 되며, 


4단계로 김정일 정권이 이의 진압을 시도하게 되고, 


5단계로 이들이 중앙정부에 대해 저항하면, 


6단계로 정권이 파열되고, 


7단계로 새로운 지도부가 구성될 것이다.


 

☆  북한 붕괴설에 대한 다른 생각


 

북녘의 붕괴가능성에 대해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연구하기는 쉽지 않다. 워낙 폐쇄된 사회라 정확한 자료가 부족하고 심층적 접근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른바 '내재적 접근 및 분석방법'을 통해 다음과 같이 북한 붕괴설에 대해 반대의견을 내고 싶다.

 

첫째,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체제가 몰락한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따라서 북녘보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앞섰던 동독도 붕괴되었는데, 북녘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주장에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동유럽의 몰락과 북녘의 붕괴를 비교하려면, 둘 사이에는 적어도 두 가지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는.. 동유럽 지도자들이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소련군의 점령과 함께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도입한 '강요된' 공산주의자들이었다면, 북녘과 중국 그리고 베트남 등 동아시아의 공산주의 지도자들은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민족해방운동의 수단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받아들인 '자생적' 또는 '민족적' 공산주의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동유럽 국가들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따르며 '종속적' 처지에서 소련의 지지를 받았다면, 북녘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변용하며 '자주적' 입장에서 소련과 중국이라는 양대 사회주의국가의 지원을 이끌어 냈다는 점이다. 


따라서 동유럽 국가들은 소련군이 철수하면서 더 이상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자 무너지고 말았지만, 북녘은 소련의 지원 중단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을지라도, 나름대로 자립 경제의 기반 위에서 중국의 지원을 받으며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1995년 중반부터 북녘 당국이 강조했던 '붉은기 사상'과 '고난의 행군'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자본주의의 부정적 이미지를 벗기 위해 '시장경제체제'라는 말을 즐겨 쓰듯, 북녘은 주체사상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혁명과 고난을 강조하며 정권강화 및 체제유지에 힘써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둘째, 우리는 북녘이 정권수립이나 권력세습의 과정에서 정통성을 얻지 못했다고 평가하지만, 특히 정권강화 및 체제유지와 관련하여, 정권이나 체제의 정당성 여부는 그 나라의 정치나 역사 또는 문화적 전통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북녘은 지금까지 정통 사회주의를 따르지 않고 민족주의와 유교사상을 접합한 민족적 유교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최고지도자인 수령을 아버지로 그리고 노동당을 어머니로 비유하는 가족사회 또는 국가에서, 김일성 일가는 조선의 독립과 해방에 몸바친 혁명가족으로서 북녘의 '전형적인 모범가족'으로 선전되는 가운데, 아버지가 죽은 뒤 그의 아들이 수령 자리에 오르는 것을 북녘 인민은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더구나 아들은 1970년대 초부터 후계자 또는 실질적 통치자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고 권력을 행사해 왔으며,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부터 병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군대를 앞세우는 사회에서 말이다.

 

셋째, 북녘은 분명히 경제가 파탄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속적인 마이너스 성장과 '경제 3난'이라 불리는 식량부족, 에너지부족, 외화부족의 악순환으로 굶어죽는 사람들이 나오고, 공장이 가동되지 않으며 교통수단도 마비되는 등 경제가 자력으로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어려운 것 같다. 


심각한 식량폭동 내지 반정부폭동이 전국적인 규모로 발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근거다. 그러나 인민들은 식량난이 미국의 경제봉쇄 때문이라는 선전과 남쪽의 천박한 자본주의보다는 '우리식 사회주의'가 낫다는 사상교육을 받는 가운데, 절대적 빈곤에 따른 좌절감은 맛보더라도, 상대적 박탈로 인한 분노나 체제에 대한 불만은 크게 느끼지 못할 수 있다. 


또한 분노와 불만이 생겨도 당과 정부의 통제와 감시 속에서 표출되기 어려울 것이며, 시민사회가 발달하지 않은 마당에 집단행동으로 연결되기란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굶주림 때문에 목숨 내걸고 중국 땅을 밟은 뒤에도, '남조선으로' 가기보다는 허기를 채우면 '수령님 품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라.

 

참고로, 북녘 인민들의 굶주림이 폭동을 초래할 것이라는 예상은 정치심리학의 '좌절-공격 이론 (frustration-aggression theory)'이나 '상대적 박탈 이론 (relative deprivation theory)'에 근거한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은 기대가 좌절되거나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낄 때 좌절감이나 박탈감이 분노로 표출되어 공격행위나 폭동을 유발하기 쉽다는 이 이론들의 한 부분만을 적용했을 뿐이다. 


좌절감과 박탈감을 아무리 깊이 느끼더라도 공격행위나 폭동에 대한 처벌이 가혹하리라고 예상하면 분노를 표출하기 어렵다는 이 이론들의 다른 부분은 무시한 것이다. 인민의 기본적인 자유가 확실하게 보장되는 선진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는 폭력데모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인민은 불만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고, 정부는 여론을 잘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북녘처럼 인민의 기본적인 자유가 몹시 제한되는 독재국가에서도 폭력데모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어나기 어렵다. 


데모가 원천적으로 봉쇄되거나 데모 참가자에 대한 처벌이 너무 가혹할 것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열린 사회도 아니고 그렇다고 꽉 닫힌 사회도 아닌 어정쩡한 남쪽 같은 나라에서 폭력데모가 일어나기 쉽다는 말이다.(15년전 쯤 남한상황)

 

넷째, 북녘의 사회기강이 어느 정도 해이해진 것처럼 보인다. 1980년대 말부터 벌목공을 비롯한 노동자계층의 탈출이 급증하고, 유학생 및 작가나 교원 등의 지식층뿐만 아니라, 외교관이나 당비서를 포함한 지배층의 망명까지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지식층의 이반'이든 '지배층의 동요'든 그들이 반드시 정권이나 체제에 불만을 품고 북녘을 탈출한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자신들의 잘못에 따른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나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소외감으로 북녘을 탈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일본 언론인 시게무라 도시미츠의 다음 말을 되씹을 필요가 있다. 


"요컨데 북조선 망명자의 대부분은 그 체제에서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소외되어 생명의 위기에 직면하였기 때문에, 탈출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다. 굳이 말하자면 북조선이란 사회에서 출세와 승진에 실패한 사람들이다."

 

이와 관련하여, 1997년 8월 장승길 이집트주재 북한대사 및 장승호 프랑스주재 북한대표부 참사관 일가가 미국에 망명했을 때, 미국의 주요언론은 국무부 관리의 말을 인용하며 그 사건이 "지도체제의 붕괴와 관련이 없다"거나 "정권의 위기를 반영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망명이 "개인적 이유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김정일이 지도층의 지지를 잃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쪽 언론은 장대사 일가의 망명을 "북한 지도체제의 심각한 동요"나 "북한 체제붕괴의 전주곡"으로 해석했다.

 

한편, 남쪽에서도 지금까지 죄를 저지르고 해외로 도피한 사람들이 적지 않으며, 정치적 탄압이나 경제적 어려움을 피해 망명이나 이민의 길을 택한 사람들은 헤아리기 힘들다. 구체적으로 1970년대에는 남쪽의 비공식 권력서열 2위로까지 불리던 중앙정보부장을 비롯하여 주미한국대사관의 공보관장 및 대사관에 파견된 중앙정보부 요원 등의 미국 망명이 줄을 잇기도 하였고 육군사관학교장 및 외무부장관을 지낸 종교지도자까지 북녘으로 망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러한 망명과 월북사건들을 남쪽 체제붕괴의 가능성과 연결시키지는 않았다.

 

다섯째, 북녘이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로 '깡패 국가'라는 오명을 들으며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을 지속적인 후원자로 삼고 러시아와 과거의 우호관계를 회복하였다. 이들 강대국들은 북녘 붕괴에 따른 한반도에서의 돌발사태가 동북아시아의 안정을 해친다는 이유로 북녘의 급격한 변화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특히, 중국은 '순망치한 (脣亡齒寒)' 즉 입술 (북녘)이 없어지면 이 (중국)가 시려워질 것이라는 생각에,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내세우며, 북녘이 필요로 하는 전력의 80-90%와 막대한 식량을 지원해오고 있다. 1990년대 중반 미국이 유엔을 앞세우고 남쪽과 일본을 끌어들여 북녘을 봉쇄하고 경제제재를 강화하려 했지만, 중국의 거부로 성공하지 못한 사례를 떠올려보기 바란다.

 

나는 이렇듯 북녘이 붕괴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북녘이 무너질 수도 있고 무너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털어놓았다. 한 쪽으로만 치우치지 말고 두 가지 시각을 가져 보자는 뜻에서다. 


물론 무너질 것이라는 주장은 귀가 닳도록 들었을 것이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견을 강조하여 소개했다.

 

☆  만약 북한이 붕괴한다면?

 


북녘은 붕괴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무너질 위기에 놓이거나 무너질 경우 어떻게 될까. 


크게 <네 가지 진로>를 예상해 볼 수 있다.


 

첫째,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 세력균형자임을 자처하며 동북아시아질서 유지를 이유로 유엔을 앞세우거나 단독으로 북녘을 관리하겠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냉전종식 이후 사회주의국가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시장민주주의'를 확장한다며 북녘에 대한 '연착륙' 정책이나 체제변환 정책을 펴온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참고로 남쪽은 헌법에 한반도 전체를 자신의 영토로 규정하고 있지만, 우리는 북녘이 유엔에도 가입한 국제법상 엄연한 독립국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둘째, 중국은 자본주의권과 사회주의권의 완충지 역할을 해주고 있는 북녘에 대하여 '이와 입술의 관계 (脣齒關係)'임을 주장하며 개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1950년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논리다. 동유럽에서 사회주의권이 몰락하고 러시아가 자본주의체제로 이행하는 것을 보면서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한반도 마저 세계 양대 자본주의국가들인 미국과 일본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될 것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북녘이 무너지면 주한미군이 압록강-백두산-두만강까지 올라가 주둔할 가능성이 있는데 중국이 이를 지켜보고만 있겠는가.

 

셋째, 최악의 경우로, 북녘 강경파 군부의 결사항전에 따라 제 2의 한국전쟁 또는 최소한 게릴라투쟁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100만이 넘는 병력과 첨단무기를 가지고 있는 북녘 지배층이, 남쪽의 지도자들이 통일이 되면 북녘의 통치자들에게 응당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하는 마당에 남쪽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보복이 가해지는 것을 보면서도, 붕괴 위기에 처하면 남쪽에 순순히 투항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너무도 순박한 발상이 아닐까.

 

따라서 김정일 정권 또는 군부를 앞세운 이른바 '선군정치체제'가 무너질 위기에 처하면 군부가 남쪽에 투항해서 죽느니 차라리 결사적으로 항전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결사항전이 남북 사이의 전쟁이나 게릴라투쟁으로 이어진다면 그 결과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생각해 보자. 


1996년 10월 강릉에서 '북한잠수함 침투사건'이 터졌을 때 남쪽은 겨우 25명 안팎의 경무장간첩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약 두 달 동안 각종 첨단장비를 동원하고 연인원 200만명 이상을 투입하며 약 2,000억원에 이르는 경제손실 뿐만 아니라, 11명이 사망하고 20여명이 부상당하는 엄청난 피해를 당했던 사실을 기억해보라. 


빨치산의 후예들인 110만 북녘 병력의 1/100이나 1/1,000이라도 중무장을 하고 죽기 살기로 투쟁할 경우 얼마나 끔찍한 결과가 빚어지겠는가.

 

넷째, 흡수통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동독의 붕괴가 서독에 의한 흡수통일로 이어졌듯이, 북녘이 남쪽에 고이 접수될 가능성도 있다. 주변 강대국들이 한반도의 통일을 적극적으로 바라지는 않더라도, 북녘의 붕괴가 폭력과 혼란을 초래하지 않는다면 한민족의 통합을 막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의 세 가지 경우는 말할 것조차 없고 마지막 경우도 바람직하지 않다. 북녘의 붕괴가 외세의 개입이나 무력충돌 없이 남쪽에 의한 흡수통일로 이어진다 할지라도, 남쪽은 그 혼란을 수습하고 탈북자들을 껴안을 수 있는 능력도 없고 의지도 지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까지 북녘을 탈출해 남쪽에 들어온 사람은 약 10,000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는 고급정보를 지니고 왔다고 해서 남쪽 정부로부터 많은 돈과 높은 자리를 받은 사람도 있고, 남쪽 사회에 잘 적응하여 성공한 사업가도 있으며, 유명해진 학자나 연예인도 있는데, 이렇듯 어느 정도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은 10% 안팎이다. 


대부분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대 들어 한꺼번에 많이 들어와 갑자기 생긴 현상이 아니라, 이들의 숫자가 1,000명도 되지 않아 웬만큼 대접받던 1990년대 말에도 그랬다.

 

이들은 먼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2004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서울에 살고 있는 탈북자의 80%가 극심한 빈곤으로 정부의 기초생활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탈북자 교육기관인 [하나원]의 조사에 의하면, 이들 가운데 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업한 사람들은 겨우 15%에 머무르고, 약 40%가 임시직이나 시간제 등 불안정한 돈벌이를 하며, 40% 이상이 무직 상태이다. 그리고 직장을 가지고 있어도 80%가 한 달 평균 100만원 미만을 벌고 있다고 한다.(지금 현재는 탈북자가 3만에

이르고 무엇보다 여성이 75%로 절대적 이다.)

 

게다가 이들은 경제적 어려움보다 심리적 고통을 더 심하게 겪는 듯하다. 이들에 대한 남쪽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 그리고 냉대가 지나친 것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남쪽에 들어온 뒤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했으며, 이후에는 정부나 탈북 지원단체 또는 직장 관계자 등으로부터 폭언이나 폭행, 차별이나 임금체불 또는 성폭행 등을 당했다. 


그래서 이들 가운데 40%가 현재의 남쪽 생활에 큰 불만을 품고 있으며, 70%가 캐나다나 호주 또는 미국 등 다른 나라로의 이민을 바란다고 한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합법적으로 북녘에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는 탈북자들이 30%를 넘는다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이들 가운데는 실제로 도둑이나 강도 같은 죄를 짓고 감옥에 가는 사람들도 생겼고, 다시 남쪽을 탈출하려다 붙잡힌 사람들도 나타났으며, 심지어 목숨 걸고 들어온 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나온 게 아니겠는가.

 

이와 관련하여, 1990년대 연변에서 온 동포 직업연수생들을 생각해보자. 이들이 동포인 우리에게 얼마나 냉대받고 멸시당했으면, 집으로 돌아가며 "만약 전쟁이 다시 한 번 난다면 총을 들고 선참으로 한국에 와서 한국놈들을 쏴 죽이겠다"는 악담을 퍼부었겠는가. 일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겠다며 고국땅을 밟았던 사람들이 그 정도였다면, 떼거리로 몰려와서 '빌어먹을 사람'들이 남쪽의 '잘난 사람'들에게 어떠한 대접을 받을 것인지 짐작해보자.

 

한편, 1990년대 말부터 북녘의 인권문제와 관련하여, "김정일 체제를 무너뜨리고 북한을 민주화시켜야 한다"거나 "김정일 정권은 하루라도 빨리 무너질수록 좋고, 김정일 정권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은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이나 체제의 타도를 외치는 데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정권이나 체제의 위기는 민주화나 통일에 앞서 남북 사이의 무력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북녘 체제를 타도하자는 선언은 한 판 붙자는 선전포고로 간주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물론 나도 북녘의 열악한 인권과 폐쇄적 독재를 포함한 비참한 현실에 좌절과 분노를 느끼며 북녘의 민주화를 바란다. 


1998년 북녘을 일주일 동안 돌아보며, 초청자와 안내원들에게 "북녘에 와서 보고들은 것 가운데 10%가 긍정적이라면, 90%가 부정적인 것"이라고 실토하기도 했을 정도다.

 

그런데 남쪽 정부는 북녘의 붕괴 또는 북녘의 체제변화를 전제로 한 정책을 세워놓고 대내외에 널리 알린 적이 있다. 물론 북녘의 붕괴가능성과 관련하여 남쪽은 여러 가지 대북정책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1%의 가능성이 실현될 수도 있고 99%의 가능성이 실현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어떠한 경우라도 전쟁만큼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된다면, 북녘의 남침도발을 부추길 수 있는 방안은 비밀리에 만들고 북녘과의 화해와 협력을 끌어낼 수 있는 정책은 공개적으로 세우기를 제안한다.

 

예를 들어, 남쪽 정부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자유민주주의로의 통일을 추진하겠다고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것은 북녘을 자극할 뿐 통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북녘이 총을 숨긴 채 연방제통일을 얘기해도 남쪽은 국방비 증액을 고려하듯이, 남쪽이 드러내놓고 돈을 앞세우며 자유민주주의로의 체제통합을 주장하기 때문에 북녘은 당연히 체제붕괴를 우려하는 기막힌 현실을 보게 되는 것 아닌가. 북녘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고 붕괴가 바람직하다면, 굳이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할 필요도 없이 붕괴를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절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어떻게 북녘의 남침가능성을 줄이고, 무슨 수로 주변 강대국들의 개입을 저지하며, 어떻게 난민들을 처리하고, 무슨 방법으로 사회혼란을 최소화할지 조용히 비밀대책을 세워 놓으면 될 것이다.

 

반면에 북녘이 무너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붕괴가 바람직하지 않다면 북녘이 안정을 취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굳이 자유민주주의로의 통일이라는 최종목표를 미리 공표함으로써 북녘이 거부할 수밖에 없도록 이끌 필요도 없다. 공개적으로는 북녘이 응할 수 있는 정책을 내세워 협상을 진행하며 1차적으로 국가연합이라도 이루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바람직할 것이기 때문이다. 안보나 통일은 우리의 궁극 목표가 아니라 남북한이 더불어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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