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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락치 사건. 성시백 05편 (총 07편작)
Korea, Republic of 돌통 0 321 2021-03-20 18:39:13
 05편  시리즈   (총07편작)

 

 

 

●  북한 로동신문의 보도 내용

 

●  동시에 성시백의 김구 회유 공작이 있었다.


...성시백 동지는 4월 남북련석회의를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높으신 권위를 가지고 극단한 반동분자로 있던 김구 선생을 돌려 세우는 사업체에도 큰 힘을 넣었다.

성시백 동지와 김구 선생은 남다른 인연이 있었다.

 

 

 

 

 


최근에 이북에서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고 민족 자주 력량으로 조국을 통일하기위한 대표자들의 련석회의를 개최할데 대한 제의를 내 놓았는데, 이 거사가 성사되기만 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우리 민족사에 특기할 사변이 아니겠는가 하는 의견입니다.”

김구 선생은 그의 이 말을 듣고 한숨을 푹 내 쉬더니 “자네 말에는 반박할 여지가 하나도 없네. 그렇지만 공산주의자들이라면 무조건 적으로 규정한 이 김구를 반가워할 리가 없지 않은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미국 사람들의 시녀노릇을 하는 리승만과 손을 잡겠습니까? 아니면 북에 들어가서 김일성 장군과 마주 앉겠습니까?”
성시백 동지는 이러한 실태를 인편으로 위대한 수령님께 보고 드리었다. 그의 보고를 받으신 김일성 수령님께서는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할 각계 민주인사들에게 초청장을 보내면서 김구, 김규식에게 보내는 초청장만은 성시백 동지가 직접 전달하도록 하시였다......(중략)

 

간단한 인사말이 오고 간 다음 성시백 동지는 김구 선생에게 “선생님은 전번에 북의 공산주의자들이 과거를 불문에 붙인다는 것을 무엇으로 담보하겠는가고 물으셨지요?”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들이댔다.

 

 

 


“내가 바로 김일성 장군님의 특사입니다.”

 


성시백 동지가 일어나서 김구 선생에게 엄숙히 초청장을 전달하였다. “우리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 장군님께서 백범 선생에게 보내시는 남북련석회의 초청장입니다.” 이 순간 과묵하고 고집스럽던 김구 선생의 얼굴이 감격과 흥분으로 붉어졌다.

 

“김일성 장군님께서 그처럼 믿어 주실 줄을 내 미처 몰랐습니다. 장군님께서 불러 주셨으니 기여이 평양으로 가겠습니다. 내 이후로는 다시 일구이언하는 그런 추물이 되지 않겠습니다.”

 

 

북한은 1985년 남북 제정당 사회단체연석회의(1948.4)에 참석한 김구의 행적을 소재로 한 <위대한 품>이라는 영화를 제작했다.

 

 

김일성에게 투항하여 국기와 임시정부 관인까지 바치면서 “황해도 신천에 과수원이나 하나 마련해주면 여생을 장군님에게 의탁하여 살겠다.”고 읍소하는 장면을 묘사하는 등 김구를 비하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구는 생전(生前)은 물론 사후에도 김일성-김정일의 이용 대상이 된 셈이다.

 

 

남북 정당대표회의 개최를 위한 북측의 준비과정

 


남한 정치권의 새로운 통일대오를 꾸리기 위해 자기가 속한 정당에서 정치적 신임을 받고 있던 실무자들인 근로인민당의 최백근(1961년 체포됨, 사형. 사회당,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에서 활동, 북한의 애국열사능에 묘비가 있음),

한독당의 안우생, 민족자주연맹의 권태양, 민주독립당 강병찬, 조선인민당 염정권, 삼균청년동맹 김홍곤 등은 미국과 이승만에 반대하여 남북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정치적 연합을 실현시켜 나갔다.

 
그리고 김구에게는 김구의 비서로 있던 김규식에게는 4월 남북연석회의 남측 대변인으로 대회를 성사시킨 실무자인 권태양(1966년 사망.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으로 ‘조국통일상’을 수여 받음)을, 조소앙은 비서였던 김홍근을, 그리고 홍명희에게는 그의 아들 홍기무와 비서였던 김기환을 통해 집중 공작하여 남북협상을 성숙시켜 나갔다48년 2월과 4월의 ‘레베제프 비망록’에 의하면  
결국, 김구는 이승만 박사를 비롯한 민족지도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4월 19일 평양을 방문하여 남북한 연석회의에 참석했다.

 

그리고 미군 철수와 북한에 모인 좌파 56개 단체에 의한 임시정부 수립, 남조선 선거 반대와 수립된 정부 불인정을 골자로 하는 4·30 성명에 한독당 대표 자격으로 서명했다.

자신이 지켜온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스스로 무시해 버리고, 북측과 합작으로 새로운 임시 정부를 수립하기로 한 것이다. 진의야 무엇이든지 김구의 행동은 소련과 북측의 의도대로 따라준 결과를 야기했다.

김구는 북한에서 북한헌법과 국기제정 등 공산정권수립의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목도하고 왔다.

 

그럼에도, 공산측에 가담하여 UN이 결의한 선거로 세워질 남한의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방해하기까지 했다.

 

 

대한민국 불인정, 북한과 한목소리

 



 
 

 


남북통일정부를 주장했다.반면에 양 김 씨와 함께 북한을 다녀온 조소앙은 7월 10일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해서 독립운동의 정맥을 계승하게 한 것은 당연하게 생각한다.“며 법통승계문제에 긍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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