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으로부터 받은 은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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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오시는 분들 중에는, "대한민국"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좌파 시레기들, 혹은 친북 시레기들에 대해 경멸과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다. 이 글은 그런 분들을 위한 글이다. 북한에 핵이 있어야 한다는 둥, 북한도 미국에 대해 자위수단이 있어야 한다는 둥의 논리를 가지신 분들은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다. 내가 귀하들 글의 독자가 아니듯, 귀하들 역시 내 글의 독자가 아니다. * * * * * * 우리는 북한으로부터 입은 은혜를 망각하고 산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이 만들어진 데에는 북한의 은혜가 크다. 이 때 북한은, 북한 주민을 의미한다. 소련 극동군이 만들어진게 1945년 6월인가 7월이고, 극동군 군사위원에 슈티코프가 임명된게 그 때이며, "북한의 전후 조치에 관한 일체의 작업은 극동군 군사위원이 한다"는 스탈린의 특명이 온 게 그 때이며, 극동군이 함경도로 부랴부랴 들어온게 1945년 8월 7일이다. 우선 소련군의 체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련군은 야전 사령관과 별도로 정치장교가 존재한다. 이 정치장교가 실세이다. 극동군 정치장교의 최고위층이 바로 "군사위원"이다. 한마디로 슈티코프는 극동군 사령관 쯤의 위치인 것이다. 슈티코프란 인물을 살펴보자. 이 인간은 29살인가 되던 1936년인가, 레닌그라드(지금의 뻬쩨르부르그) 시 당에 입당하여 2년 만에 (1938년인가) 레닌그라드 당 서기 중 한 명이 된다. 초초초고속 승진이다 승진이 이루어진 것은 이 인간이 즈다노프의 애제자 (일설에 의하면 즈다노프의 사위라고 한다)로서, 스탈린의 1936-1938 대숙청에서 레닌그라드의 선배 당원을 잡아죽이는 개백정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1936-1938 대숙청은 최소 3백만명 최대 1천만명이 숙청당한 사건이다. 즈다노프는 1936-1938 대숙청 때 스탈린을 위해 "입속의 혀"와 같은 역할을 했다. 스탈린 개인숭배 사상(스탈리니즘)을 만든 게 즈다노프이다. 즈다노프는 또한 1945년 동구 위성국가 건립을 위한 "인민민주주의 노선"을 만들었다. 그전에는 아마 공산주의자 사이에 "인민민주주의"라는 단어도 없었을 것이다. 인민민주주의 노선은, 처음부터 집단농장 과 같은 소비에트를 실현하는 게 아니라 처음에는 소농을 위한 토지개혁 같은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고, 그 다음에 소비에트화를 실현한다는 간교한 전략이다. 즈다노프는 1945년 무렵 발틱 3국, 폴랜드,체코, 헝가리, 루마니아 같은 위성국가들을 만들었는데, 이 중 인민민주주의를 거치지 않은 곳은 발틱3국(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뿐이다. 발틱3국은 한 때 공산혁명이 성공한 적이 있던 나라들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미 공산당의 구라빨을 잘 알고 있는 나라들이었다. 따라서 사탕발림 사기극을 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곧바로 대량 숙청및 테러에 의한 소비에트화가 추진되었다. 이때 무지하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즈다노프는 또한 1945년 이후, 코민포름을 만들어 위성국가들을 제어하는 국제질서를 만들어 내었다. 한마디로 (1945년 8월 북한에 부임한) 슈티코프의 (사실상의) 장인이자, 정신적 스승인 즈다노프는 1936-1938 스탈린 숙청 때 개백정 노릇, 스탈린을 위한 개인 숭배 철학을 만든 사기꾼 노릇, 동구 공산화를 위한 '인민민주주의" 사기극을 만든 학살자 노릇, 공산화된 위성국가를 제어하는 국제 체제인 코민포름을 만든 사악한 국제정치가 노릇을 한 악마였다. (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즈다노프는 1948년 숙청 때 그 첫 대상으로서 베리아에 의해 독살된다. 베리아는 스탈린의 또다른 인간백정이었다.) 한편 레닌그라드 시 당 서기가 된 슈티코프는 제2차세계 대전중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다. 첫째 그는 배급물자의 통제 및 '간첩' 색출 처형에 관한 책임을 지었다. 레닌그라드는 나찌에 의해 3년인가 포위되는 데, 그 포위된 상태에서 시민의 1/3 이상이 굶어죽었다. 그 때 배급물자를 통제하여 누구가 굶어죽을 것이며 누구가 살아 날 것인가를 집행한 놈이 슈티코프이다. 둘째 그는 라고드 호수를 가로지르는 동계(겨울) 비밀루트를 통하여 원자재를 들여오고, 이걸로 무기를 만들어 모스크바 측에 넘겨주는 군수 조달 책임을 맡았다. 레닌그라드는 소련의 핵심적 군사 기술/생산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슈티코프란 인간은 그 개인으로서는 엄청 영악한 인간 백정이었다. 또한 즈다노프로부터 위성국가의 설립에 관한 노하우 일체를 물려받은 놈이었다. 스탈린은 이런 인간을 '정치장교 총책인 군사위원' (중장)으로서 극동군에 배치하여 북한에 보낸것이다. 슈티코프는 1945년 8월에 입국하자 바로 인민위원회를 조직하기 시작하고, 1946년 2월부터는 지주/자본가에 대한 탄압에 들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1946년 5월 "북조선인민위원회"가 만들어진다. 이게 사실상 북한의 "정부창건"이다. 1948년 9월9일은 다 만들어져 운영되어오던 정부에 껍데기만 바꾸어 씌운 것이다. 1945년 8월부터 1950년 사이에 북한 사람들 약 1백60만명이 남한으로 넘어온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공산화의 허구, 인민민주주의의 허구를 사회곳곳에 전파했다. 이 사람들의 영향이 없었다면, 남한의 취약한 정치 질서로서는 아마 바닥 빨갱이들의 준동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김일성이 6.25직전에 큰소리 쳤듯이 6.25 때에 1백만 게릴라 부대가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것을 '북한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맞을 매를 혹은 '우리도 맞을 뻔한 매"를 아예 몰매로 맞고, 무려 1백60만명의 사람들이 넘어 와서 그 매가 무슨 매인지 미리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북한은 "우리가 갈 뻔한 지옥으로 가는 길"을 간 지역이다. 북한 주민은 "우리가 갈 뻔한 지옥으로 가는 길을 대신 간 사람들"이며, 월남 북한주민은 "그 길이 지옥으로 가는 길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가장 선봉에 나서서 우파 운동을 한 사람들"이다. 이 보다 더 큰 은혜는 많지 않다. 오늘 우리 사회의 탈북자 분들은, 정치 활동을 하시든, 안 하시든, 그 분들의 존재 자체가 김정일체제에 대한 증언이다. 마치 해방공간에서 북한에서 넘어온 분들이 하셨던 것과 같은 역할을, 그분들은 "본인이 깨닫든 못 깨닫든" 이미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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