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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사망직전 5일동안의 행적..( 2 ) 편
Korea, Republic of 돌통 0 1116 2022-05-03 09:38:35

2편


◇ 주치의 수행 제외, 고의인가 실수인가


김일성 : “그런 식으로 일하려면 최고사령관이고 조직비서고 싹 그만두라!”

김정일 : “통일, 통일 하는
놈들은 다 노망난 것들이야!”


■ 주치의 수행 제외, 고의인가 실수인가

 
1994년 7월9일 낮 12시, 북한은 중대방송을 통해김일성이 사망했음을 공식 발표했다. “수령님께서 심장혈관의 동맥경화증으로 치료를 받아오다가 겹쌓이는 과로로 인해 7월7일 심한 심근경색이 발생하고 심장쇼크가 합병되어 사망하셨다”는 것이었다.

북한에는 김일성과 그 친인척들의 건강증진을 위해 보약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세계 그 어느 지역에 가서라도 억만금을 주고 가져오는 전문부서와,그 귀물들로 약재를 만들어낸다는 만년장수연구소, 그리고 몇 사람만의 치료를 전담하기에는 너무도 큰 규모를 자랑하는 "봉화진료소"가 있다.

북한 최고의 의료진으로 구성된 봉화진료소의 치료과 과장들은 모두 조선적십자 종합병원 분병원원장들이 겸직하고 있다. 적십자 종합병원에서 주민을 상대로 약효 및 생체실험을 하고 그 임상경험과 파악한 약 효능을 토대로 특권층에 대한 치료를최대한 실용화하자는 것이다.

인민의 건강증진을 위한 종합적인 치료기지라고
북한이 자랑하는 조선 적십자병원은 이렇듯 김일성과 그 친인척들의 건강과 치료를 위한 일종의 종합 실험장이었다.

이런 나라에서 불치도 아닌 심근경색으로 김일성이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급사했다는 것이다. 우선 묘향산 출발준비 사업에서부터 그 의문점이 노출된다. 김일성은 김영삼 대통령과의 만남을 앞두고 매우 흥분해 있었다. 해마다 7월이면 삼지연으로 가서 무더위를 피하고 오는 그였지만, 그해만은김정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굳이 묘향산 초대소를 택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며칠 숙식하게 될 묘향산 특각을살펴보는 한편 남북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경제일꾼 협의회를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나라에 연유도 모자라고 간부들이 시간도 없겠는데 평양과 거리가 가까운 묘향산을 놔두고 양강도에까지 멀리불러낼 것이 뭐 있는가” 하며 떠난 것이었다. 먼 거리가 아니어선지 다른 행차 때보다 따라가는 사람도 적었고 호위장비도 간편했다.

그가 출발하기 며칠 전 호위안이며 동행성원들에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직접 점검한 사람은 김정일이었다. 김일성이 평시에 협심증 증세가 있었고 더욱이 나이가 여든을 넘어 언제 어떤 돌발상황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그에 대비하기 위해 심장담당 주치의가 동행하는 것이 호위원칙으로 돼 있었다.

하지만 김정일은 그 주치의를 묘향산행 명단에서삭제했다. 그동안 수령님을 모시느라 한번도 휴가를 제대로 못 가보았겠는데, 수령님께서 통일성업을 눈앞에 두고 마음도 육체도 아주 양호한 지금에나 주치의가 안심하고 옆 자리를 비워도 된다는 이유였다.

친위대원들을 상대로 김일성의 경호와 관련해선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고 신조 삼아 설교하던 김정일이었다. 그래서 호위사령부 청사에들어가면 정면의 대형 대리석판에 ‘수령님의 호위사업에는 천만번 중 단 한 번의 실수도 있어선 안
됩니다’라는 김정일의 친필이 사령부의 생명처럼쪼아 박혀 있다. 병실과 구내 곳곳에도 빨갛게 글을 써서 걸어놓았다. 전 대원이 신념화, 생활화하라는 의미였다. 그런 김정일이 이렇듯 중대한 실수를 한것이다.

또한 의심스러운 것은, 김일성이 한번 움직일 때마다 혈압이나 맥박, 체온상태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그 어떤 큰 수술도 진행할 수 있어서 일명 ‘움직이는 병원’이라고 부르던 독일산 최첨단 의료설비들도 수행에서 제외됐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김일성의 부관은 의문을 제기했으나 김정일의 지시를 정면에서 부정하는 행위가 될 것만 같아 두번 다시 입을 열지 못했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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