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랑의 고백..< 1 >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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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편 ※ 북한현실. 처형 성혜랑의 고백 (1)편 ◇ 김정일의 사생활 ■ 김정일의 사생활 (처형 성혜랑의 고백 1편) 2003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성혜랑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독재국가들 중의 하나인 북한의 권력핵심부에서 탈출한 지 수년이 지났으며 지금까지서방 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할 용기가 없었습니다.성혜랑은 전체주의 체제하의 북한에서 멀리 떨어져 유럽 어느 곳에 있는 간소하고, 흰 벽으로 둘러쌓인 침실 하나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데, 그 위치가 언론에서 밝혀지지 않도록 신신당부했습니다. 성혜랑은 자기가 김정일을 너무 좋게만 말하려고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갖고 있는데, 일부 외부 세계에서는 김정일을 국제 평화를 가장 위협하는 존재로 보고 있습니다. "누구나 다 김정일은 어떤 사람인지, 그는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등에 관해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의 통치자로서의지위만 보고 그 인간의 전모를 이해할 수는 없다. 나는 그를 하나의 인간으로,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잘 알고 있다"라고 성혜랑은 이 북한 통치자였던 사람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정녕, 성혜랑은 김정일 가족의 한사람으로 살았었습니다. 성혜랑의 동생이며, 북한의 영화 스타였던 성혜림은 김정일의 세 아내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성혜랑은 동생이 낳은 김정일의 아들의 양육을도왔으며, 성혜랑 자신의 두 자식인 아들과 딸도 독재자 김정일의 대가족의 성원 일부분을 이루며 살았습니다. 김정일은 이 스탈린주의 국가의 창시자인 김일성의 폐쇄적인 지배체제하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어려운 시절을 성혜랑과 같이 보냈으며, 그는 마침내스스로 북한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온 세계에서풍자의 대상이 되고 있는 핵 구름 모양의 퐁파두르헤어스타일의 독재자로만 단순하게 평가해버릴 수 없는 무엇이 그에게는 있다고 성혜랑은 주장합니다. 많은 이들이 김정일은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기만하는 위험한 미치광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북한주민들은 굶주리고 있는데, 자신은 마약 밀매에서 번막대한 돈으로 자기 호주머니를 채우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김정일을 단순히 사악하고 얄팍한 만화 주인공 정도로 단정한다면, 이는 그 인간의 반쪽을 보지 못하는 꼴이 된다"라고 성혜랑은 말했습니다. 김정일이 독재자인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후 어느 때인가, 성혜랑은 김정일과 같이 앉아 TV의 북한 선전장면을 지켜보던 일을 상기합니다. "화면에는 옷을 잘 차려입은 어린이들이 부자연스럽게 미소를 짓고 행동하는 어색한 영상이 비치고있었다"라고 성혜랑은 기억합니다. 성혜랑은 김정일을 향하여, "이는 누가 봐도 엉터리이다. 저것을어떻게 고칠 수 없겠는가?"라고 물었습니다. 매우 피곤해 보이는 김정일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부자연스러운 장면을 고치라고 지시하면, 그들은 완전히 반대방향으로 흘러, 제일 더럽고 비참한 어린것들을 잡아다 형편없는 누더기 옷을 입혀 등장시킬 것이란말이다" 북한주민들이 "친애하는 지도자"라고 부르는 이 사람을 성혜랑은 이따금 불쌍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그는 폭주하는 기차에 올라탄 사람과 같다. 누가 그를 가로막거나 그를 말리려 든다면 그는 충돌할 것"이러면서 성혜랑은 두 손바닥을 마주칩니다. 아직도 성혜랑은 이 악명 높은 사돈에게 자신의 현 은신처가 밝혀지는 것을 꺼리고 있습니다. 성혜랑과의 공동의 친척 되는 사람들의 주선으로겨우 그녀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으며, 그 공동의 친척들이 성혜랑의 약 12시간에 걸친 인터뷰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성혜랑은 김정일의 내면적인 생활에 관해 귀한 정보를 제공하기로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대목에 관래 이야기할 때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김정일은 상냥하다가도 갑자기 광포해지기도 하는데 이 양 극단의 기질이 그의 마음속에서 상충하고 있습니다] 성혜랑은 김정일의 걷잡을 수 없는 무서운 기질에대하여 입을 열었습니다. "김정일은 기분 좋을 때는 남에게 그렇게 잘 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화가 나기만 하면 집안의 모든 창문을 뒤흔들 만큼 난폭해진다. 그는 한 극단에서 다른 극단으로 급변하는기질을 가지고 있으며 이 양 극단이 그의 마음속에서 갈등한다"며 몸을 떨며 말했습니다. 성혜랑이 김정일을 처음 만난 것은 1971년 5월 10일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자동차 경적소리에 잠에서 깬 그녀는 잠자리에서 너무 빨리 일어나는 바람에 입고 있던 속옷을 찢길 뻔했으며, 서둘러 아래층에 내려가, 그 전에는 사진에서만 볼 수 있었던 남자와 마주쳤습니다. 당시 29세이던 김정일은 그녀에게 검은색 대형차에 오르도록 일렀습니다. 그녀는 김정일이 그녀 동생 성혜림을 아내로 삼아같이 살기 위해 몰래 데려갔으며, 그의 아버지 김일성에게 이 사실을 감추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알고 있었다 합니다. 그러나 김정일이 자동차 안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사태는 더 복잡하게 발전하고있었습니다. 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에는 이미 김정남이라는 아들이 생겨 있었던 것입니다. 이 새로운 사실 때문에 성혜랑은 그녀 말대로라면그 당시 "북한 최대 비밀"을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할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결국 그녀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1976년 성혜랑은 김정일의 뜻에 따라 김정남의 양육을 돕기 위해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가옥에서 같이 살도록 강요당했습니다. 김정남의 출생 내력이 밖에 알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당시 5세이던 이 소년은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을 어떤 사고로 이미 잃은 성혜랑은 자신의 아들과 딸도 새 집으로 데려가 김정남의 친구노릇을하게 했습니다. 성혜랑의 친정어머니도 함께 살게되었는데, 그녀는 한때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서 높은 인정을 받던 편집간부였습니다. 성혜랑과 그녀 가족은 그 후 20년간 북한의 "최고위 가족"의 일부로 살게 됩니다. 성혜랑은 요즘 그녀의 한국어 회고록 <등나무 집>을 영어로 번역하고 있는데, 그 책에서 당시의 경험을 음모와 은폐 위에 구축된 그늘진 가정인 "호화감옥"안에서의 생활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김일성은 사상적으로 엄격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아들이 성혜림과 은밀한 살림을 차리는 것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라 합니다. 김정일의 새 애첩인 성혜림은 6세나 나이가 위였습니다. 그리고그녀는 이미 남편이 있는 몸이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은 그녀 남편에게 이혼을 강요해 결국 그 결혼은 끝장이 났습니다. 김정일과 성혜림이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렸는지 또는 김정일이 그들의 은밀한 동거생활을 감추기 쉽게 하기 위해 공식적인 절차를 피하기로 한 것인지는 성혜랑도 그리고 그 밖의 아무도 확실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로서는 새 살림이 세상에 밝혀졌을 때 그의 막강한 아버지의 노여움을 사는 사태를 감당할수 없었음은 분명했습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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