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사망직전 5일동안의 행적..( 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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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편 ※ 중국에서 온 ‘지도자’의 이모 ○ 김일성 : “그런 식으로 일하려면 최고사령관이고 조직비서고 싹 그만두라! ○ ”김정일 : “통일, 통일 하는 놈들은 다 노망난 것들이야!” ● 중국에서 온 ‘지도자’의 이모 신찬호가 18호에 들어가니 거기엔 상습 살인범들도 있었지만, 10년 전 헤어진 낯익은 중앙당 직원들도 있었고 이름있는 작가, 학자들, 영화배우를 비롯한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인물은 김정일의 이모 김영숙이었다는 것이다. 북한에선 김일성의 전처이며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을 조선의 3대 장군으로 신격화하고 있다. 책가방을 메고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김정숙에 대해물어보면 누구나 똑같은 대답을 한다. “조선의 어머니 김정숙 동지는 함경남도 신파군에서 1917년 12월24일 가난한 빈농의 맏딸로 태어나시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 김기성 동지도 항일무장투쟁에 참가하셨다가 일제 놈들에 의해 장렬하게 희생되시었습니다.” 신찬호도 그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다른 곳도 아니고 18호 관리소라는 처참한 곳에 김정숙의 여동생이 갇혀 있음을 알게 된 것이었다. 이어 그는 자기가 수용소 생활을 하고 있는 것 역시 혁명역사교과서에 써 있는 한 페이지 문장처럼 ‘민생단’(일본경찰이 1930년대 중엽 반일조직을 색출하기 위해 조선인 사이에 심어놓은 비밀조직. 그 규모나 내용은 보잘것 없었지만 이념투쟁의 붉은기 수호를 외치던 당시 조선 공산주의 세력 내에서는 그 ‘민생단 의심병’ 때문에 서로 반목 질시하고 죽이는 참사가 빚어져 수천명이 목숨을 잃었다) 조작 비슷한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을 갖게 됐다. 그리하여 그는 김정일에게 친이모와의 극적상봉을 마련해줌으로써 그 공로가 인정되어 지옥 같은 18호 수용소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어설픈 희망에 목숨을 기대게 되었다. 신찬호는 먼저 계호 한 명을 포섭했다. 당의 유일사상체계 10대원칙에는 수령의 권위를 백방으로 옹호 보위하는 길에서는 그 어떤 주저나 타협도 있어선 안 된다는 문구가 있다. 신찬호는 중앙당에서 사람과의 사업을 오래 한 경험을 살려 그 10대 원칙의 자자구구를 다시금 상기시키며, ‘대내의 나쁜 놈들이 수령님 처제를 매장시키려 하는 만큼 분연히 일어서야 한다’고 단순한계호원을 추동질하였다고 한다. 하여 계호원의 방조하에 밖으로부터 휴대형 녹음기를 들여온 다음 김영숙에게 태어난 날부터 지금까지 겪은 고생에 대해 녹음을 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아무나 김정일에게 신소한다고 해서 다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한 해 100개의 신소가 제기됐다면 한두 건이나 가능할 정도다. 그것도 일반 사람들의 하소연은 문장이나 내용이 잡스러운것이 태반이라는 이유로 거의 일축되고,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안목에 들어있던 사람들의 글이 선발돼 올라가는 것이 보통이다. 신소도 권력이 있어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북한에서 보통사람도 아닌 종신수용소 수인의 글이 김정일에게 올라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일이었지만, 중앙당 신소처리부장을 지낸 신찬호에게는 늘 하던 일이라 김정일에게까지 올려보낼수 있는 지하통로가 있었다. 그는 계호원에게 휴가를 받게 한 다음 테이프를 쥐어주었다고 한다. 평양에 가서 처음에는 누구에게갖다주고, 그 사람이 또 다음 누구에게 전달하고,이런 식으로 차례차례 선을 잇게 했다. 과연 김정일은 어느 날 그 테이프를 직접 들어볼 수 있었다. 녹음기 속의 여인은 몇 년동안 짐승처럼 갇혀 살아온 설움을 마디마디 쏟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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