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사망직전 5일동안의 행적..( 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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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편 ■ 운명의 녹음기 ○ 김일성 : “그런 식으로 일하려면 최고사령관이고 조직비서고 싹 그만두라! ○ ”김정일 : “통일, 통일 하는 놈들은 다 노망난 것들이야!” ◇ 운명의 녹음기 그러나 그 애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정일은 장성택을 불러 테이프를 던져주며 “왜 아직 이 문제를결속하지 않고 질질 끌고 있는가” 소리를 질렀다.테이프에 관계된 자들은 그 내용을 다 알고 있을 테니 한 놈도 절대로 살려두지 말라고 지시하고 나서는, 다시 이런 소리가 들려올 경우 18호 관리소를폭파해 버리겠다고 으르릉 거렸다는 것이다. ‘일찍이 생모를 잃고 아버지 김일성마저 사망한 김정일에게 이모와의 뜻밖의 상봉이 얼마나 감격적인 위안이 될까’ 하는 일념으로 테이프 보고에 공헌한 김정일의 충신 아홉 명이 그날 밤중으로 승합차에 짐짝처럼 실려 18호 관리소로 끌려갔다.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독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난 다음날 아침 김영숙, 신찬호, 계호원과 함께 말뚝에 묶인 채 사형당했다고 한다. 왜 김정일은 자기의 이모가 확실함에도 불구하고죽이라고 명령했을까. 그 동안 북한은 김정숙 가정의 투쟁경력을 과장하고 혁명가 혈통의 순수성을주장하기 위해 죽은 남동생 김기성 이외에는 형제가 없다고 선전해왔다. 그런데 중국에서 귀국한 김영숙의 말은 전혀 그 선전과 달랐다는 것이다. 자기가 김정숙의 동생이 맞다고 확인해주기 위해하는 말들이 너무도 엄청난 증언이었던 바, 김정숙은 이미 어릴 때 한번 시집을 갔으며, 자기는 마음무던한 지주집의 첩으로 들어갔었다는 등등 김정일 신격화에 형편없이 방해가 되는 이야기를 했던것이다. 김정일은 그 입을 틀어막기 위해 김영숙을 종신형수용소에 가두었고 한동안 그 문제를 잊고 있었던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신찬호로 인해 다시 상기하게 되니 몹시 화가 났던 것이다. 얼굴을 맞대고 사는 배다른 형제도 마음놓지 못하고 항시 경계하고증오하는 판인데, 평생 만나본 적도 없는 이모 죽이는 것이 무슨 대수였겠는가. 비슷한 사례는 그 전에도 있었다. 정무원 부총리를지낸 김달현은 김일성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친인척 중의 한 사람이었다. 김일성은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나라에 김달현이만큼 유능한 경제일꾼은 없어. 그는 경제뿐 아니라 외교술도 능하고 수학에도비상해. 그런 인재가 우리 김씨 가문에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후련한 자랑거리란 말이야.” 그래서인지 김일성은 무슨 걸리는 문제가 있으면김달현을 금수산의사당에 불러 토론하곤 했다. 말이 토론이지 김달현의 의견을 전적으로 정책에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사회주의 동구권이 무너지던 시기 김일성은 사회주의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침체된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외국에 출장 나간 김달현을 급히 불러들였다. 1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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