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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카시즘의 진실
REPUBLIC OF KOREA 1234 1 296 2006-09-09 14:43:01
흔히 매카시즘이란 애국심과 안보를 내세워 무고한 사람에게 근거없는 누명을 씌우는 마녀사냥식 정치공세를 설명하는 용어로 알려져있다. 이는 1950년대 미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가 반대파 관료와 인사들을 공산주의자로 지명한 사건에서 유래되었다. 매카시는 청문회를 열어 반대파들을 공격했지만 분명한 증거가 드러나지 않아 결국 상원에서 견책되고 말았다. 하지만 매카시로 인해 소련의 간첩으로 지목된 국무부 관료 엘저 히스는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고 로젠버그 부부는 전기의자에 앉아 사형을 당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아는 사실이다.

이상돈 교수의 저서 [세계의 트렌드를 읽는 100권의 책]에서는 매카시즘의 대한 책 한권을 소개하고 있다. 아서 허만이 쓴 [조지프 매카시]란 책으로 우리가 알고있는 매카시즘과 다른 조지프 매카시를 소개하고 있다.

1995년 미 정부는 구 소련 국방정보국의 무선교신기록인 베노나 프로젝트가 공개한다. 이 문서는 엘저 히스와 로젠버그 부부등 그가 간첩으로 지목한 사람들이 실제 간첩행위를 했음을 증명해 주었다. 미 정부내 상당수 간첩이 존재했으며 미 정부가 이들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음도 밝혀냈다. 거짓으로 알려진 매카시의 주장들이 상당부분 진실했던 것이다. 매카시가 이러한 정보를 입수한 경위대해서는 논의가 있으나 당시 애드거 후버 FBI 국장에 제공했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하지만 매카시는 그의 성격장애와 행태로 인해 선동적으로 처신한 잘못이 있었으며 후버 국장이 어느정도 성과에 만족해 더 이상의 정보를 제공해 주지 않아 결국 당시 린든 존슨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에 의해 경질되었다.

매카시즘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오웬 래티모어로 매카시에게 혐의를 받던 사람이다. 래티모어는 중국의 모택동을 찬양했던 공산주의자였으며 당시 월러스 부통령과 함께 소련의 강제수용소를 다녀온뒤 미국의 테네시 계곡 공사장에 비유했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으로 인한 경재공황극복은 진실이 아니다. 이는 다음에 글을 올릴 것이다.) 심지어 한국이 소련의 통치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말했었다. (미친놈.) 이러한 래티모어는 매카시를 거짓말쟁이 선동자로 몰아세우고 히스와 로젠버그 부부를 양심적인 희생자로 만들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소련의 레닌주의자들은 서방의 공산주의자들을 쓸모있는 바보라 칭했는데 그중의 대표적인 한명이 래티모어이다.)

근래 미국에선 매카시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 지고 있다고 한다. 매카시는 아일랜드계 미국인의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 정계에 진출한 입지전적인 블루칼라 공화당원 이었으며 멀쩡한 사람을 공산주의자로 몰아세우는 거짓말쟁이 선동자가 아니라 미국자유수호의 기여자였다는 평가가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매카시의 비극과 같은 일이있었다. 1968년 조선일보의 북한무장공비에 의한 이승복 일가족 피살사건 보도에 대한 조작의혹제기가 있었다. 누구에 의해서인가 모르겠지만 이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졌고 이승복보도사건은 반공정부의 국민 선동을 위한 조작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이승복이 허구의 인물로 알려지는가 하면 모 개그프로그램에서는 이를 소재로 사용하기도 했다. (나도 이 이야기를 가지고 웃은 적이 있다. 죄송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세월이 지나 2004년 이승복보도사건관련 항소심에서 법원은 진실을 밝혀주었다. 이승복 피살사건은 진실이었으며 공산당이 싫다는 취지의 발언이 사실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진실로 알고있는 사실들도 그렇지 않은 것들이 많다. 특히나 편향적이고 악의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어느 한쪽의 주장에 의존해서는 안 될것이다. 사실을 좀 더 폭넓게 바라보고 진실을 가려내는 혜안이 필요하다.

출처 : http://aceshigh.word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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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프 2006-09-09 15:02:13
    좋은 글입니다. 한번 그 책 사서 읽을께요.

    그런데 고이승복군의 일에는 사실 이야기가 좀 있습니다.
    이승복군이 공비에 의해 피살되었다는 것은
    (배배꼬인 좌파 골통이 아니라면)
    누구나 받아들입니다.

    문제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을 했냐, 안했냐입니다.
    그런 말을 해서 피살되었다고 신문에 났는데,
    수십년이 지나
    정확하게는 "그런 말 한적 없다"라고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아가 그 일가의 피살도 공비의 손에 의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좌파들이 있었습니다.

    순전히 개연성으로 보면
    그런말을 한 적 없을 수 있습니다. (녹음이 안된 다음에야...)
    문제는 수십년이 지나 그걸 정치쟁점화하는 악질적인 놈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그런 말 한적 없는 편에 베팅합니다.
    (이건 순전히 개인적 취향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정치쟁점은 더욱더 아니지요...)
    70년대 이전 신문기자의 수준은 지금에서 보면 웃기는 수준입니다.
    90년대 중반 만해도 , 용의자를 체포하면 신문에서 "범인 체포'라고 하고
    대문짝 만하게 글을 썼습니다. 신문이 모든 것을 판단한 것이지요.
    70년 무렵 신문기자의 태반은 월급을 받지 않고,
    촌지를 뜯어서 먹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일간지의 기자는 촌지를 뜯어 본사에 경영자금으로 상납했어야 합니다.)

    아, 물론 이 때에도 기개가 넘치는 기자들이 있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기자 하나가 1961년에 국방부출입 기자 하나가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는 장군 승진에 국방부 출입기자의 빽이 좀 통하던 시절이어서, 국방부 출입기자의 말빨이 보통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에 성공하고, 이 기자가 '최고회의' (박정희 대통령은 '혁명최고회의'를 설치해서 다스렸습니다. 그게 지금 문체부 자립입니다)
    에서 박 최고회의의장과 마주쳤다고 합니다. 이 간덩이가 부은 기자가 박 최고회의의장의 어깨를 툭치면서 말하기를: "자네, 한 건 했다며?"라고 했다고 합니다. (실화입니다)

    아무튼 60년대 70년대 이전의 기자들이란 좀 이렇게 괴물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좀 사는 집에서 하는 말 중 하나가 "형사하고 기자는 사위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말까지 있었습니다.

    이런 괴물들이 가끔 사고를 칩니다.
    유명한 사고 중의 하나가 조선일보의 아동 교통사고 관련 기사였다고 합니다. 60년대 중반인가 종로구 수송동에서 수송국민학교 (지금은 없음) 에 등교하던 어린 아이가 차에 치어 직사했습니다. (당시엔 교통사고도 별로 없을 때입니다. 자동차 신호등 깜박이가 없던 시절이라고 하니까요...)
    그 때 조선일보가 사회면 톱으로 뽑으면서 기사 제목이...
    "그래도 머리는 학교를 향해..." 였습니다. 차에 치여 튕겨나가 죽는 아이가 무슨 정신으로 머리의 방향을 선택합니까?

    또 하나의 웃지못할 유명한 사고가 있습니다. 자유당 말기,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의 관계가 극도로 안 좋을 때, 겨울철에 이승만 대통령이 방미했다가 김포공항에 내렸습니다. 날씨가 추워서 이승만 대통령의 입김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그걸 조선일보인가 동아일보가 신문 제목으로 뽑았습니다.
    "귀국일성' '어...춥다...'"라고. 즉 미국에 가서 한미관계가 잘 안풀린 것을 토로했다는 것이지요...

    옛날 신문기자들은 이런 식의 사고를 곧잘 쳤습니다.
    고 이승복 군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했다는 것도 이런 식의 '사고'일 가능성이 있지요.
    그걸...수십년 지나서, '박정희 정권이 조작했다'는 식으로 떠드는 좌파 시레기들입니다. 정말 웃기는 짜장들이지요. 역사도 모르고..옛날이 어땠는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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