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文化革命 中國「林彪體系」와 金王朝의 종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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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주제 토론(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 > > 조회수 : 14 > > > > 이 번역문은 현명한 소수의 홈페이지 http://www.wisemid.org 의 >“주목할만한 논설과 주장 편”에 있는 것인데, 일본의 잡지 正論 2005년 2월호에 게재된 저널리스트 靑木直人의 글을 韓國市民思想敎育硏究所 (所長 韓 昇 助 高麗大 名譽 敎授)의 高 文 昇 副所長 이 번역 요약하고 韓 昇 助 高大 名譽敎授가 敎閱을 한 것임. > > >日本의 正論 2005년 2월호 > >文化革命 中國「林彪體系」와 金王朝의 종말 > > >독재체제의 破綻(파탄)과 中朝관계의 不和로 김정일 정권의 崩壞도 멀지 않다. > >靑木直人(아오끼나오또, 저널리스트- journalist) >번역 요약 :高 文 昇 ( 韓國市民思想敎育硏究所 副所長) > > > >中朝 國境이 “最前線”이다 > >2003년(平成 15년) 11월 나는 朝鮮半島문제를 분석한 (북조선을 처분하라)란 책을 출판했는데 그 책에서 제기했던 내용은 다음의 네 가지였다. >① 중국은 “北朝鮮有事”(북조선의 위기)를 바라지 않는다. 북조선과 중국의 전통적 관계도 冷戰(냉전)의 종료와 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등장으로 인하여 차가워지고 단절되었다. 양국의 同盟(동맹) 관계는 幻想(환상)일 뿐이다. > >② 부시 정권은 ‘9.11 테러’ 이후 중국을 “전략적 경쟁국(rival)”로 간주했던 외교 자세를 바꾸어서 중국을 통하여 북조선의 核(핵)포기와 체제 변화(regime change)"를 摸索(모색)하고 있다. 그 代價(대가)로 주는 것이 臺灣의 독립을 반대하는 것이다. >③ 美 中 양국의 再 接近(재접근)을 촉진하는 요인은 긴밀해진 경제무역 관계였다. 미국 자본의 對 中國 투자액은 선진국 중에 최고로 많으며 중국의 市場經濟를 안정화하며 또 성공시키는 것이 중국共産黨과 미국 대기업들( big business)의 공통 관심사이다. 美中 間을 연결하는 要人(요인) (key person) 前 미국 정부의 요인이었던 키신저 前 美 국무장관이며 또 부시 前 대통령이다. 이들은 미국대기업의 고문(adviser)역할을 하고 있으며 兩國의 인적 물적인 관계는 想像을 초월한다. > >④ 중국 정부는 김정일의 모험정책을 걱정하며 반발하고 있다. 이런 상태로 美朝 間의 對立이 본격화하면 중국은 국경의 安定을 確保하기위하여 北朝鮮을 侵攻(침공)하며 金 暗殺(김정일 암살)에 개입할 可能性도 있다. >이러한 지적을 한지 일년 몇 개월이 지나면서 事態(사태)는 더욱 더 진행되어서 중국 측은 金정권의 命運은 끝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아서 언젠가는 金정일정권에게 퇴장명령(red card)를 들이댈지도 모른다. > > 中朝 관계는 전통적으로 朝貢(조공)관계로 이어져왔다. >平時에는 內政에는 무관심하지만 자신의 國益(국익)을 위태롭게 할 듯한 경우 中國은 朝鮮의 指導者를 밀어내(處分)해 온 것이 중국과 조선의 歷史였다. >중국인은 내심으로 朝鮮人을 매우 싫어한다. 嫌惡感(혐오감)과 侮蔑感(모멸감) 도 마음속에 숨기고 있다. 이유의 하나는 전통적인 中華思想(중화사상)이다. 주변 여러 민족을 한 급수 낮은 “野蠻(야만)”인들로 보는데 북조선과 관련해서는 그것 이외에도 세 가지 요인이 더 있다. > >그 첫째가 北측의 “背信(배신)”이다. 북조선이 中소가 대립했을 때에 조선전쟁 때부터 김일성 체제를 지원해온 중국을 배신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敵(적)인 소련에 대해서도 꼬리를 흔들었으니 용서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중국은 조선전쟁(한국전쟁)에 多大한 犧牲(희생)을 지불했으며 毛擇東(마오 쩌퉁)의 장남도 美軍의 燒夷彈(소이탄)에 희생되어 죽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중국은 臺灣 “解放”(대만해방)의 찬스(chance)를 놓쳤으며 그 후에도 기대하고 있었던 미국과의 관계 改善(개선)도 어렵게 되었다. > >그 다음은 北의 정치 체제에 대한 철저한 反感(반감)이다. 전국에 여기저기 세워져있는 정치범 수용소, 철저한 인물 崇拜(숭배), 지나친 이데올로기 관리, 절망적인 貧困(빈곤), 등 오늘의 北朝鮮(북조선) 모습은 30년 前 文化大革命으로 大混亂(대혼란)속에 빠져 있었던 中國의 모습 그대로이다. >그 가운데서도 當時(당시) 紅衛兵(홍위병)노릇을 하였던 中年世代의 嫌惡(혐오)는 상당한 것이었다. >작년 6월 中國人民解放軍 總參謀部(총참모부)의 멤버들이 北朝鮮의 首都 평양을 방문하고 있었다. 그런데 해방군의 기관지 (해방군보)는 겨우 몇 줄의 토막기사로 뉴스를 보도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중국 대표단은 북조선과 “國境協定(구경협정)”을 체결하였으며 그 때까지 인민무장 경찰이 경비를 담당해 왔다는 中朝 國境(중조국경)에다 3 万인의 正規軍(정규군)을 배치한다는 異例(이례)의 事態까지 발생했다. > 현재 중국이 국경을 接하고 있는 나라는 14개국이다. 그런 가운데 이런 정도로 중국解放軍이 경비를 담당하는 장소는 이 북조선 국경 지역 밖에 없다.(미얀마 국경지대에는 아편 대책상 소수의 軍이 배치되어 있음) 또한 難民(난민)의 流出때문에 국제사회로부터 높은 관심을 이끄는 것도 中朝國境(중소국경) 뿐이다. >중국이 북조선 국경의 안정에 열을 내는 데는 國內的 이유도 있다. 2002년의 공산당 16회 대회에서 정식으로 손을 대게 된 東北(滿洲) 진흥정책 때문이다. > >중국은 市場經濟 下에서 躍進을 계속하고 있지만 모든 지역이 平等하게 번영의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다. 윤택하게 된 곳은 沿岸部(연안부)라는 장소였는데 廣大한 농촌지역이나 內陸部(내륙부)는 지금도 번영에서 뒤떨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東北지방도 그렇게 뒤떨어진 지역의 하나이지만 同 지역이 일찍이 중국 최대의 重工業 지대였으며 농업지역이기도 하니 사태는 더욱 심각한 한 것이다. >중국은 2001년 2월에 WTO (세계무역기구)에 加盟하였다. 以後 중국 경제는 국제적 자본 넷 워크(net work) 에 편입되어 있어서 세계화 (globalism)의 파도가 역사상 처음으로 中國 全國土(전국토)를 휘덮고 있다. >혜택을 받는 것은 旺盛한 海外市場을 겨냥하는 수출 관계자이지만 逆으로 保護 關稅 障壁(보호관세 장벽)이 낮아져서 농업이나 자동차 산업 그리고 지금까지 정부에 의해서 보호받아온 모든 산업들이 壞滅(괴멸)하는 손실(damage)을 받게 됨이 거의 확실시되어 있다. >그러한 상징적(symbolic) 산업이 집중하고 있는 곳이 東北 三省(삼성) (黑龍江省, 遼寧省, 吉林省(성)이다. >그러나 再生하는데 不可缺(불가결)한 자본과 기술은 중국에는 없다. >外資의 進出에 기대하는 것 이외에 중국이 선택할 여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찍이 沿岸지역에 외국기업의 誘致(유치)를 위하여 택했던 정책에 拍車를 가하는 것뿐이다. 그러자니 우선 인프라 (infra)의 整備가 필요하다. >현재 중국에서는 러시아, 북조선과의 국경에는 大連港(대련항)까지 全長 1380 km 철도 시설의 건설이 계획되고 있다. 더욱이 기업 誘致團(유치단)이 日本이나 韓國, 香港 등을 자주 방문하고 있다. 일본으로부터도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의 단체조직인 ‘日中 經濟協議會(일중 경제협의회)”의 시찰단이 여러 번 同地를 방문하고 있다. >중국 정부 요인의 현지 시찰도 자주 있었으며 小泉 首相이 제 2회 북조선 방문이 발표된 다음 날 胡 總書記(후진타오 총서기)가 直接으로 吉林省을 시찰하고 東北지역 부흥을 豪言壯談(호언장담)하고 있다. >정부가 東北 再建에 눈빛을 바꾸고 있는 것은 治安上으로도 구조변경-리스트라 (restructure)로 인하여 大量(대량)으로 출현하게 될 失業者(실업자들)에 의한 社會不安을 警戒(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 >이 東北지역과 鴨綠江(압록강)과 豆滿江(두만강)을 사이에 둔 이웃 나라가 저 北朝鮮인데 北朝鮮 政情(정정)의 混亂(혼란)이나 不安定化는 東北 부흥의 大事業(대사업)을 일거에 破滅(파멸)로 이끌어 가는 것이 된다. >그 가운데서도 계속 증가하는 脫北者(탈북자) 難民(난민)의 存在는 어려운 문제이며 이 問題를 解決하지 않은 한 지역의 安定은 확보될 수가 없다. > 이것이 例外的으로 3萬 人의 解放軍이 국경에 常時 駐留하게 되었다는 것이 표면상의 이유이다. >그러나 實은 같은 시기에 日本의 “難民 救援民間 人權團體 ‘RENK - Rescue North Korean People'"가 解放軍의 鴨綠江에서 工兵部隊에의한 渡江 訓練을 실시하고 있는 것을 스쿠푸 (scoop) 특종기사로 내었으며 더욱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8도선(휴전선)에 배치하고 있던 最强部隊(최강부대)를 中朝 국경에 派遣하고 있는 것도 분명해 졌다. > >金정일도 中朝 국경을 ‘最前線’이라고 부른다고 전해지고 있다. >여기까지 온 것을 보면 이미 단순한 難民 對策(남민 대책)이라고 말할 수 없다. 中朝 國境은 潛在的으로 兩國 안전보장의 “最前線”으로 浮上(부상)한 것이다. >중국 외무성의 싱크 탱크 (think tank)의 보고서에서는 북조선을 포함하여 朝鮮半島 一帶(일대)를 “熱點(열점)”이라고 位置지우며 “금후 중국경제의 성장에 마이너스 (minus)의 作用을 미치게 하는 최대 요인의 하나라고 강한 警戒(경계)를 보이고 있다. > > >林彪 體系(림퍄오 체계)와 北朝鮮의 社會體制(사회체제) > > >중국이 북조선 崩壞(붕괴)의 징조의 낌새를 알아 차렸던 이유는 文化大革命으로부터 開放政策에 이르는 전환기에 이르는 國內에서 어느 정도 流血의 動亂을 체험하였는가를 몸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前의 일이였다. >중국 남부 廣東省의 省都(성도)인 廣州市의 가장 繁華街 北京路 출입구와 南京 五路의 交差(교차) 장소에 몇 개의 大字報(대자보)‘ (壁新聞(벽신문))가 붙여졌다. >筆者(pen-name)는 4 人의 紅衛兵 世代의 靑年들로서 李正天, 陳一陽, 王希哲, 郭鴻志의 各各의 頭 文字(머리 글자)만 취하여 李一哲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 >그들은 “廣東은 어떻게 할 것인가?” “星火遼遠(성화요원)의 顚末(전말)”, “革命은 죽었다. 革命萬歲”, 등 몇 개인가의 大字報(대자보)를 발표했으나 그 가운데서도 “廣東은 어떻게 할 것인가?”는 큰 사회적 反響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유는 청년들이 고발했던 것이 當時 全 中國을 휘덮었던 “林彪體系”(림퍄오체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實은 그들은 失脚(실각)한 林彪 副主席(부주석)을 공격하는 자세를 취하면서 “새빨간 태양”이라고 칭송되어온 毛擇東(마오쩌퉁) 體制(체제) 下의 중국의 정치사회체제를 공격목표에 올려버린 것이었다. 그들은 共産黨의 개개 정책이 아니라 體系(체계전체)를 문제로 삼았던 것이었다. >「“林彪體系”는 事物에 관련된 관계의 총체이며 모든 계통이다」이것은 >1966년부터 시작했던 文化大革命(문화대혁명)의 강령, 노선, 방침 정책, 방법, 黨風(당풍) 등을 포함한 사회 체제의 완성을 뜻한다.「현재의 중국은 "封建(봉건) 파시즘 (fascism) 體系"이며 그 중 최대의 문제는 "天才(천재)史觀(사관)"에 있다.」 >毛擇東을 숭배하는 天才史觀(천제사관)이 隆盛(융성)의 극에 달한 시기의 중국 내의 상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독자는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들이 다 나온다고 생각할 것이다. > >「번잡하기가 끝이 없는 忠孝(충효)禮儀(예의) = 아침의 기도, 밤의 속죄, 집회, 集隊, 출근, 귀가, 업무교대, 물품의 팔고 삼(賣買), 편지를 쓰는 것, 전화를 거는 것, 식사를 하는데도, 모든 것이 지도자에의 熱狂(열광)하는 것 둘레를 모두 색칠하여 보이지 않게 하여 안에 넣어 종교적 분위기로 포장되어있었다.」「政治를 밀어 내어 진공 상태로 하며」「“毛擇東 語錄(어록)”을 念佛式(연불식)으로 매일 매일 읽는 것.」 當時는 전화를 걸 때도 꼭 「偉大한 首領 毛擇東 主席의 만수무강을 기도한다.」라고 최초의 相對에게 인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일을 끝내고 귀택하여도 “毛擇東 저작 學習(학습)이” 기다리고 있었다. >또한 毛의 새로운 指示(지시)가 나오면 일을 하는 도중이라도, 한 밤 중이라도, 드럼이라든지 큰북을 치면서 “최고 지시”를 칭송하는 학습회가 열려던 것이다. > >이런 天才史觀이 나오게 된 것은 중국사회가 과거나 다름없이 봉건적 색조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도자에의 “忠誠”은 「우리의 黨을 君臣父子의 黨 으로 하고, 우리의 국가를 封建的 社會 파시즘 (fascism) 獨裁의 국가로 하고 우리의 군대를 袁 世凱의 北洋 軍閥 ( =私兵으로 하였다는 意味)과 같은 군대로 한다.」는 것이 였다. >個人崇拜, 天才史觀, 指導者에의 熱狂的 支持의 强制 등 文化革命 같으면 중국의 어디서든지 보였던 光景이 지금도 이웃 나라 北朝鮮에서는 계속되고 있다. >毛擇東이 「샛빨간 太陽(태양)」이라면 金正日은 「위대한 將軍(장군)님」이고, 「百戰百勝(백전백승)의 靈長(영장)」이라고 칭송되고 있다. >이렇게 하여 封建的 社會 파시즘(fascism)이 생겨난 背景(배경)에는 外적 要因도 존재하고 있다. >중국이 美러 양국으로부터의 정치적 군사적 압박을 느끼고 있으며 조국을 방위하는 軍 도 武器(무기)의 劣勢(열세)를 정신력으로 보충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林彪(림퍄오) 시스템이라고 하나 실은 毛擇東 체계였는데 안으로는 內戰(내전), 밖으로는 소련과 미국의 壓迫(압박) 下에 태어난 戰時(전시) 共産主義(공산주의)체제였다. >국가는 해방군의 政治的 影響力과 그 강력한 통제 하에 있었다. >「66년 여름 文化革命이 개시하자 政權의 座에 붙어있으며 文化革命의 과정에서 가장 뛰어난 체계를 확립하여 68년 후반에 이르러 완성하였다.」 >大字報가 문화혁명이라는 內戰(내전)과 외부의 壓力(압력)이 「林彪 體系를」만들어낸 것이다. 중국의 軍은 전통적으로 “黨이 軍을 支配한다”는 原則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文化大革命 中에는 이런 원칙이 사실상 포기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중요한 黨이 分裂하고 조직은 紅衛兵(홍위병)의 攻擊(공격) 으로 사실상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紅衛兵의 內부투쟁도 어설픈 것은 아니였다. >로겟트 砲로 공격 받기도 하였다. >나의 知人중 當時 全國 지도자로서 指名手配(지명수배) 되었던 leader가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강간(rape), 살인, 유괴, 「온갖 것을 다 목격 하였습니다.」고 말했다. >직장에서의 노동자 間의 대립, 학원내 學生 홍위병의 폭발을 진압하여 질서를 회복하는 일은 이미 분열한 공산당으로서는 되지 않았으며 해방군 이외에는 아무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軍의 影響力(영향력)을 강화되자 힘(力)을 배경으로 하여 林彪 勢力(세력)이 69년의 제 9회 共産黨 대회에서 실제적으로 中央委員(중앙위원)의 半을 점유하기에 이르렀다. >그 1년 前에도 林은 유일한 副 主席(부주석)으로 선출되어 毛擇東의 後繼者(후계자)로 나서게 되었다. >政權 기관에서 黨 , 政府, 軍의 관계에서 보면 軍의 발언권이 타를 壓倒(압도)하였다. 軍의 대두에 위기감을 느낀 것이 周恩來(주은례)였다. 그가 총리를 하면서 全國의 행정조직은 文革으로서 파괴되어 기능 정지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林彪 體系가 崩壞(붕괴)된 것은 海外와의 교류가 본격화하여 물건과 사람과의 접촉이 빈번해졌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러한 緊張緩和(긴장완화)를 성공시킨 것은 서방측(西側)과의 관계 개선이었다. 중국은 그 때문에 流血이라는 권력투쟁의 비싼 대가를 지불했다. > 林彪 와 四人組의 肅淸(숙청)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은 서방측과의 관계개선을 投降主義(투항주의) 라고 단정하며 과계개선에 열심이었던 朱恩來 등을 일방적으로 賣國奴(매국노), 서양 놈 철학(洋奴哲學 )을 가진 자 라고 비난하였다. >현재의 市場經濟(시장경제)로 突進(돌진)하는 중국도 30년 前에는 이런 과정을 겪었던 것이다. 一黨獨裁(일당독재)하에 軍部支配(군부지배)가 계속되는 文革中 중국의 모습(姿)은 지금의 북조선 체제와 완전히 유사하다고 말 해도 좋을 것이다. > >그렇다면 일부의 論者가 말하는 것처럼 북조선 체제가 內部 軋轢(알력)도 겪음이 없이 원활하게 개방체제로 향하여 간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6개국 協議(협의)의 場에서도 武裝解除(무장해제)나 다름이 없는 對美 讓步(양보)를 받아드릴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 >軍을 支配하고 있었던 林彪 등도 毛擇東과 周恩來(주은례)의 對美 接近(대미접근)에 반대하여 毛擇東 暗殺(암살) 까지 계획하며 反對하였던 것이다. >軍이란 이런 것이다. > > >勞動黨은 消滅(소멸) 하고 軍도 動搖(동요)하고 > > >北朝鮮이 “先軍政治”라하여 선전하는 국내 支配 體制에 관하여 간단히 紹介하겠다. 金日成 國家 主席 (勞動黨 總書記)의 후계자인 김정일 國防委員長이 憲法을 改正(개정)한 것이 1998년 9월 5일의 일이였다. >이것이 오늘의 先軍(선군) 정치를 떠받치는 근거이다. >金 總書記(총서기)가 헌법 개정으로 계획했던 것은 사실상의 쿠데타 (coup detat)였다. >그는 아버지 時代에는 形式的으로나마 존재하고 있었던 ‘勞動黨에 의한 人民軍의 支配’라고 하는 鐵則(철칙)을 깨끗이 내던지고 없애버렸으며 軍人 支配(지배)에 의한 北朝鮮 統治를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國防委員會이며 金 委員長을 톱 (top)에 앉혀서 君臨(군림)케하는 지도체제였다. 위원회의 멤버 (member)는 全員이 10 人, 金 위원장과 延亨黙(연형물) 위원을 除外하여 全員이 前, 現 軍人이며 제 1 副委員長이 趙明錄(조명록)이다. >金日成 시대에는 軍人의 권력 中樞(중추)진출이 없었음으로 金正日 時代의 최대의 特徵(특징)이라고 하겠다. > >노동당은 이렇게 해서 消滅(소멸)하였다. >이름은 아직 남아 있으나 換骨奪胎 (환골탈태)되어 黨 大會는 전혀 열리고 있지 않다. > 軍事體制 下의 北朝鮮에서는 위기상황을 최대의 理由로하여 軍이 모든 것에 優先(우선)하며 軍의 요구에는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렇지 않아도 崩壞(붕괴)를 눈앞에 둔 경제상태에서 일반 국민의 困窮(곤궁)은 한층 넓혀졌고, 數百 萬 人의 非核心 階層(비핵심 계층) 人士가 餓死(아사)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 >북조선에는 (1) 軍, (2) 黨, (3) 國民 의 3가지 경제가 있다고 한다. >(1)에는 資金과 人力 (man power)을 最優先(최우선)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3)의 國民經濟나 일반의 생활수준(level)의 向上에는 물론 굶주림의 解決도 되지 않는다. >그 軍 내부에서도 崩壞(붕괴) 現象(현상)이 시작되었다. 우선 國境(국경)의 警備 體制(경비체제)가 느슨해지고 있다. 賂物(뇌물)의 橫行(횡행), 難民(난민)의 돈으로 국경통과와 密輸(밀수) 가 묵인되고 있다. 그러나 軍人 支配는 본질적으로 內外로부터의 緊張(긴장)이 없으면 그 正體性(정체성)(identity)을 유지하질 못한다. >文化革命 中의 中國이 그렜던 것처럼 內政 混亂(냐종 혼란)과 外部 勢力으로부터의 侵略 위협만이 군의 政治 關與(관여)를 합법화하는 것이다. >그 結果 로 나라와 국민이 얼마나 極貧(극빈)상티로 빠지던 간에 문호를 외국에 개방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小泉 首相의 북조선 방문이 실현된 것도 日本으로부터의 賠償金(배상금) 獲得(획득)과 美國과 日本의 과계단절 단절에 목적을 둔 것이며 先軍 政治를 계속하는 북조선이 본격적인 開放을 할리는 만무한 것이다. > >先軍 政治를 1960년 대 韓國의 朴正熙 대통령과 軍人들이 斷行(단행)했던 開發獨裁 下의 “經濟再建” 운동과 동일시하려는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肅淸(숙청)과 收容所(수용소)의 恐怖政治(공포정치)가 너무 길었던 理由로 人材(인재)가 바닥이 나 있었다. >그래서 2002년부터 실시된 “經濟管理(경제관리)改善處置(개선 조치)”라고 할 경제정책도 완전히 破綻(파탄)나고 있어 새로운 階層(계층)의 급격한 分化만 促進시켰을 뿐인 것 같았다. > >나는 이 新興(신흥) 政治集團의 內部로부터 金正日 體制에 저항하는 反對(반대) 세력이 서서히 태어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 > >< 中國의 북조선 浸透(침투)가 進行되고 있다. > > > >북조선이 아무리 극빈상태로 떨어진다고 해도 군부 측이 緊張(긴장) 緩和 (완화) 外交로 전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도 開放을 할 수가 없는 북조선 政治構造의 最大의 약점- 아킬레스 (Achilles) 腱 (건)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日本으로서는 알기 어려운 일이지만 中國 측의 北朝鮮 浸透(침투)는 착착 진행되고 있다. >평양에서 가장 큰 大使館은 中國 大使館 ( 武東和 大使 )이다. >최근 數年, 北朝鮮의 中國에 對한 經濟支援 依存 度가 높아짐에 따라서 中國政府의 情報收集(정보수집) 體制(체제)도 强化되어 整備(정비)되어 간다. 中國은 북조선 國內에서 (1) 大使館을 통한 정규적인 외교 通路 (route), (2) 貿易機關(무역기관) 등의 통로 (route), 그 이외에도 (3) 중국의 民間人 旅行者나 貿易 관계자로서 潛入(잠입)하는 情報요원, 8,000 人의 華僑 (화교)로부터의 정보 등 通路 (route)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북경에 있는 북조선대사관의 盜聽(도청) 여기에 포함된다. >중국인 觀光客(관광객)들도 그 數가 倍增(배증)하고 있으며 昨年에는 年間 5 - 6萬 인의 中國人들이 北朝鮮 旅行(북조선 여행 (tour)에 참가하고 있다. >그들이 떨어트리는 人民元 貨幣(화폐)도 상당한 액수가 된다. >丹東市로부터 평양까지 버스의 운행도 시작되고 있다. >국경 延辺(연변) 조선족 自治區)의 무역액도 증가하고 있다. 同 지역의 北朝鮮 側에서는 이미 중국의 인민원화폐가 보통으로 使用되어 2004년 上半期의 북조선과 조선족 자치구와의 무역액은 9,254 萬 달러에 달하고, 前 年 同期와 比較해서 約 倍增하고 있다. >중국, 북조선의 국경 무역의 피크 (peak)는 1993년으로 當時는 3億 달러 이상도 되었다고 한다. >그 후 一貫하여 減少를 계속하고 하고 있으나, 99년부터 다시 증가하여 昨年부터 大幅的으로 증가를 보이고 있다. >數字만 보아도 瀕死(빈사)상태에 빠진 북한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중국과의 國境 貿易이며, 사실상 中朝 國境은 北朝鮮의 “경제특별구”가 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邊境(변경) 貿易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中國으로부터의 投資도 몇 가지가 報告되어 있다. >그 가운데서도 話題가 되었던 것은 北朝鮮 최대의 百貨店 평양 第一百貨店인데 이것도 현재 中國資本이 經營(경영)하고 있다. 또한 羊角島 호텔의 카지노 (casino)는 중국인 여행 (tour) 專用이 되어있다. > >서방측 (西側)도 人件費가 싼 中國에 投資(투자)를 集中하였다. 中國의 人件費는 日本의 大略 10 분의 1이다. 그 結果 부자가 된 中國은 이제는 自國의 10 분의 1 程度의 勞賃(노임)으로 살고 있는 北朝鮮에 下請(하청)을 주기 시작했다. > >그러나 그런 投資(투자)가 반드시 成功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확실한 外資의 받침 밑받침이 없기 때문이다. 막되어 먹은 企業 (business) 環境(환경), 法 整備의 결여, 인프라 (infrastructure)의 不備(불비) 등, 30년 前 의 日本 등과 西方 諸國이 直面(직면)하여 손해를 보았던 中國의 실태가 지금의 북조선의 實態(실태) 그대로인 것이다. > >현재 왕성한 중국의 화폐가 近隣 諸國(근린제국)에 대하여 本格的인 資本 進出에 拍車(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동북 경제권에 朝鮮半島를 연계시키려는 것이 長期的인 構想(구상)이 되어 있다. >이미 朝鮮半島의 한 쪽에서는 韓國의 對 中國 투자액이 美國을 追越(추월)하여 第 1 位이다. >大東北(East Asia) 경제권 構想(구상)의 관점에서 보아도 북조선의 현상은 중국의 國益(국익)上 歡迎(환영)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北朝鮮이 日本과 國交를 正常化하는 경우 그 賠償金(배상금)으로 압록강에 현대적인 巨大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는 풍설이 나돌고 있다. 그렇게 되면 중국도 大歡迎(대환영)이다. >東北의 經濟와 北朝鮮의 市場을 돈 안 드리고 연결(link)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중요한 日朝관계의 正常化가 느리며 진행되고 있지 않다. > >北朝鮮에서는 國內의 통제력이 뚜렷하게 약화되고 政權 中樞(중추)를 떠받쳐왔던 核心階層(핵심계층)의 離反(이반)이 시작되어 士氣가 떨어져 忠誠心은 急激(급격)하게 低下(저하)하고 있다. >“그들을 붙잡아 매어 오던 ”下賜(하사)품“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 또한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經濟政策으로 인하여 誕生(탄생)한 新 “富裕” 勢力의 존재는 注目해 두어야 할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金正日이 없는 勞動黨 政權을 지탱할 中核 세력으로 될 可能性을 가지고 있다. > 昨年 4月의 金正日 國防 委員長의 中國 訪問 이후, 政府, 軍 , 黨의 首腦(수뇌)들이 빈번하게 北京을 출입하고 있다고 한다. >中國은 北京을 방문하는 그들에 대하여 中國 風의 “改革開放”정책의 採用(채용)과 對外 緊張 緩和 外交를 권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만이 勞動黨이 生存할 수 있는 길(道)이라고 말해주기도 하는 모양이다. > >중국은 經濟成長을 위해서도 또 臺灣獨立의 沮止(저지)를 위해서도 대미관계를 중시하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중국의 經濟建設을 위해서도 北朝鮮의 安定과 市場확대를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의 宗主國(종주국)인 中國의 이런 期待에도 김정일은 應하지 못할 것 같다. >작년의 중국방문 마저도 이미 實은 3년 만에 하게 된 것이며 이 사이에 중국에서는 胡錦濤(후진타오) 新體制가 탄생하여 중국을 仲介로하여 3개국 會談, 또 6개국회의를 실현하였다. > >작년의 중국방문 마저도 이미 實은 3년 만이 하게 된 것이며 이 사이에 중국에서는 胡錦濤(후진타오) 新體制가 탄생하여 중국을 仲介로하여 3개국 會談, 6개국회의가 실현하였다. >金 國防 委員長은 중국과 아무런 사전 타합도 하고 있지 않으니 兩國의 指導者 사이에는 찬 바람이 불고 있다. >6個 國 協議 進展 여하에 따라서 中國은 北 의 現 體制(현체제)에 레드 카드 (Red Card)를 내놓을 것 같다. > 金정일 體制는 中國의 國益과 衝突을시작하였으니 이것을 注目하여야 한다. > >平成 16년(2004년), 天津 社會科學院의 硏究員인 王忠文이 발표한 “戰略과 管理”의 가운데 北朝鮮에대하여 批判을 했던 것으로 日本에서도 알려져 있지만 論文의 目的은 김정일에게 脅迫(협박)하려는 것이었다. >王은 분명히 말하였다.『 북조선은 美國과 中國의 良好한 관계를 破壞(파괴)하려고 여러 가지 陰謀(음모)를 계획하고 있다』고. 그 論文은 6個 國 協議(협의)가 계속되고 있는 시기에 발표된 것인데 그 글이 回收(회수)되었다는 말동없고, 筆者가 어떠한 處罰(처벌)分을 받은 일도 없다. >중국은 오래지 않아서 北이 아니라 미국을 편들 것이다. 王이 示唆한 것은 장래 中國의 外交 轉換인 것이다. > >北朝鮮의 위험한 벼랑 끝 모험정책이 극정에 도달하였거나, 국내에서 쿠데타 (coup detat), 暗殺, 暴動 등의 위급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人民解放軍이 鴨綠江을넘어서 北朝鮮 국내에 進軍(진군)할 것으로 보아야 한다. 中國은 결코 朝鮮의 위급사태를 座視(좌시)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 >마지막으로 북조선에 대한 經濟 制裁(경제재제)를 대하여 언급하겠다. 첫째는 납치문제에 대하여 일본 국민의 決意를 북조선에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일본 外交가 要求하는 국민의 覺悟(각오)가 喚起(환기)된다. >또한 制裁(제재)나 金政權 崩壞(붕괴)를 유발하는 것은 獨裁 政權 하에서 呻吟(신음)하는 2,300 萬의 북조선 국민에 대한 連帶로 이어질 것이다.經濟制裁(경제제재)는 金을 지원해 오던 核心 階層(계층)에 대한 확실한 痛擊(통격)이다. >그들의 忠誠心(충성심)은 “물건”을 받음으로써 그 대가로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幕末(막부 말) 土佐(도사)의 浪人(낭인) 나까오까 신타로 (中岡愼太郞)는 도꾸가와 게이끼(德川慶喜)의 大政奉還(대정봉환-권력 위양)에 앞서서 右往左往(우왕좌왕)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하였다. >【 非常時(시) 難을 말하려면 常道를 가지고 논해서는 안 된다. 여지 것 議論(의논)이나 교섭으로 시종일관하면서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없었다. 결국은 武器를 가지고 일어설 覺悟(각오)가 없으면 空論(공론) 밖에 안 되는 것이다】 >끝내는 武器를 들고 싸울 覺悟가 되어있어야 만, 交涉(교섭)도 대화도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橫田(요꼬다)메구미나 同胞(동포)를 奪還(탈환)하기를 바란다면 우리들은 中岡愼太郞에게 심각하게 배워야 할 일이다. (끝)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이전글 : [동아광장/김순덕 칼럼]‘앵글로... >다음글 : 편애와 개혁 > > > > > > > > > > >566 文化革命 中國「林彪體系」와 金... 日本正論독자 2005-02-26 14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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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가보시기 바랍니다. 중공 진짜, 중공이 정말 민주화가 필요한 나라입니다. 최소한 북한은 사람을 먹는 식인풍습은 없지요. 인육만두같은 것도 실제로 중국에는 옛날에 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