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난딸의 죽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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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애의 시신에서 나온 비닐봉지 (아래의 글은 평안남도 oo시에 사는 40대 남자가 지난 4월 말에 쓴 글) 나는 아이들을 살려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이 생겼다. 종전에 죽기만을 기다리던 방식에서 죽는 날까지 아이들을 위하여 무슨 짓인들 다 해보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곰곰 누워서 생각하니 아파트 1층 집에 쥐이빨 강냉이 종자를 매달아 놓은 것을 보았던 기억이 났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아파트 골목을 누비다가 끝내 그 집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창문을 만져보니 다행이도 유리가 아닌 비닐방막 이었다. 허기에 지쳤던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지만 먹이를 구했다는 안도감으로 마음은 설랬다. 나는 준비해 가지고 갔던 칼로 비닐을 째고 옥수수 종자를 움켜쥐었다. 먹이를 눈앞에 둔 야수의 흥분으로 내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때의 쾌감을 나는 적절이 표현할 길이 없는 것이 유감이다. 간난신고 끝에 옥수수 종자를 떼 내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발걸음은 비칠거리기는 했어도 가벼웠다. 이것이 내 일생에 처음으로 내집은 도적생활이었다. 성공하고 보니 나도 꽤 노력하면 훔쳐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어디에 무었을 하며 손에 닿는 대로 가능성이 있는 대로 훔쳐내어 자신들을 먹여 살리는 도적무리의 한 일원이 되어 버렸다. 이날 밤 우리 집에서는 근간에 보기 드문 성대한 연회가 벌어졌다. "눈물은 내려오고 밥술은 올라간다" 는 격언이 틀리지 않았다. 연달은 초상으로 푹 꺼져 들어갔던 생기가 옥수수 종자 다섯 이삭이 생기면서 집안에 화기가 돌았다. 죽은 건 죽은 것이고 산 놈은 살아야 한다는 삶의 요구가 우리들을 다시 제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들었다. 나는 옥수수 종자 한 이삭을 아이들에게 날것으로 먹도록 배려해 주었다. 음식이 익는 동안 아이들의 고통을 생각해서 그렇게 하였는데 두 딸애는 그 돌덩이 같은 옥수수 알을 맛있게 씹어 먹었다. 아이들은 아버지와 함께 살아남은 긍지로 오랫만에 웃고 떠들었다. 이때부터 우리 세 식구는 빌어도 먹고 훔쳐도 먹어 보고 땅에서 주워도 먹어보면서 신성천-고원, 원산-단천 등지로 방랑하면서 인간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며 인민이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 가를 직접 목격하면서 파리 목숨 같은 인생을 유지 하였다. 이 길에 고원에서 맏딸이 숨을 거두었고 그 후 순천역의 쓰레기장에서 막내딸의 시체가 발견되어 나를 질식케 하였다. 막내딸은 마지막까지 나의 곁에 남아 아버지께 충직했던 나의 혁명동지였으며 이 세상에서 나를 고아로 만들어 버린 유일한 마지막 혈육 이었다. (이미 아내와 아들은 아사로 94년도에 죽었음)그의 시체를 집에 가져가 헤쳐 보니 가슴속에는 깨끗한 비닐봉지에 정성들여 골라놓은 배 껍질과 배송치, 명태껍질 돼지 뼈 한 개가 들어 있었다. 아마도 나를 만나면 함께 먹으려고 그렇게 먹고 싶은 것도 참고 건사했을 딸애를 생각하며 나는 울고 또 울었다. 나는 양지바른 산기슭에 딸애를 안장하고 그 비닐봉지를 입가에 얹어 주었다. 그때 막내딸 나이가 12세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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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실상을 그대로 보는것같아 마음이 천갈래 만갈래 찢어집니다.
이것이 어디 이 한가정의 비극같은 운명이겠습니까?
아마 거의 대다수가 이런 가슴아픈 사연 한가지 쯤 은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는 북한 당국자들이 참으로 저주스럽습니다.
하나님! 정말로 이세상에 존재하신다면 이같이 불쌍한 이들을 제발 굽어 살피소서!
눈물이 앞을 가려 도저히 글을 쓸수가 업다.
인민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도 동포의 죽음을 몰고 온 북한 당국자들은 살인자일 것이며, 형식적 남북한교류협력으로 일관한 대한민국 당국자들은 살인방조자에 분명하다.
통일을 들먹이는 위정자들이여!
눈이 있으면 이 글을 보며 느껴보라. 누가 저 남자를 도둑으로 만들었으며, 순진무구한 저 아이들을 누가 죽음으로 몰았는지를.
그리고 깊이 생각해 보라. 통일정책의 최우선적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할 지를.
아이야..... 천국에 가서 맛있는 음식 많이 먹고 엄마와 같이 행복하게 살으렴....
글이 눈앞에 서운해서 눈에서는 눈물이 나고 속에서는 불이나서 도저히 못보겠어요...
고난에 행군시기 너무나도 많은 시람들이 죽었는데 ....
한사람, 한사람, 이름없이 죽어갈때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울엇겠어요
...... 슬퍼서 울대신에 배고픔에 못이겨 허덕이면서 추은겨울 끝내 빈집에서 9홉살짜리 남자애을 홀로 남겨놓고 죽은 우리친척 강철이 엄마 생각이나 형이라고 부르던 그애을 한국에 데려오지 못한게 후에만되네요..........
빨리 김정일세대가 끝나야죠. 좋은날 오지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