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을 연애하는 자들아, 심판이 가까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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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이 제비를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세상의 흘러가는 것은 강물과 같다 하겠다. 물이 뭍을 이길 수 없도록 만들어 놓으신 세상의 이치를 보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인생은 어느 정해진 골짜기로 가게 된다는 말은 운명론적인 견해로 이해하려는 습성이 있다. 인간의 정해진 운명은 없다. 다만 자기가 선택하여 相應하는 反應을 누리고 사는 거다.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소위 말해서 정해진 코스는 그런 것, 운명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모든 것의 상응의 원리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말함이다. 이는 원리적 코스를 벗어날 수 없는 상응이라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원리적 코스라는 것은 무엇인가? 가령, 물은 낮은 곳으로 가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함이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은 낮은 곳으로 가는 것이 그의 가는 길이다. 해는 해가 가는 길로 간다. 달도 그의 가는 길이 있다. 이렇게 성향이나, 또는 그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에 상응하는 것이 곧 그런 이치를 말함이다. 사람이 김정일에 대한 음욕을 가득 품으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하는 말씀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도중에 그것을 거부하는 선택을 하면 그 반대의 결과를 갖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그렇게 흘러가는 상응의 원리로 세상은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2. 이를 심고 거둠의 因果의 원리로 생각해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심고 거둠으로 간다. 모든 것이 상응의 원리로 돌아간다. 모든 것이 심고 거둠과 상응의 원리로 돌아가도록 하는 마인드의 결정에 따르게 된다. 모든 것이 다 그렇게 풀려져 간다. 누가 뭐라 해도 각 사람이라 行한 대로 가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21세기의 문명보다 더 발전 된 문명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 생각을 가진 자들은 그런 길로 가게 된다. 그 자리에서 만족하며 그 자리에서 행복을 누리려고 한다. 이런 식으로 停止된 자들은 그 안에서 그런 지식을 가지고 21세기의 사람으로 자부하며 산다. 하지만 만유에 덮여 있는 지식에 비하면 모래 한 알도 다 발견치 못한 것이 지식의 세계라고 한다. 상상할 수 없는 지식산업의 혁명을 겪게 될 것으로 보는 것이 현재의 드러나는 지식의 진보이다. 이런 것으로 인식을 가다듬고 그 길로 주력하여 나가면 또 그런 것을 얻게 된다. 그것이 곧 상응의 원리이다. 이런 상응의 원리가 도대체 얼마나 될 것인가? 모든 식물은 각기 나름대로의 성장 패턴을 또는 생존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애정의 조건이 필요하듯이 말이다.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말함이다. 물이 없다면 식물은 시들어 버린다. 3. 그런 것처럼 인간은 과연 얼마나 많은 수의 상응의 원리를 찾아내었는가? 그런 원리의 수로 21세기의 문명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한다. 그런 상응의 원리가 차원을 높여 가면서 서로가 어떻게 상응하는가에 있다. 그런 고차원적인 상응의 관계성을 고찰해 내는 기본을 갖추는 것을 생각해 본다. 과연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선택이 어떤 상응이 발생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상응이라는 것의 의미는 인간이 발견한 것의 원리가 10가지라고 하면 실제는 1만 가지라고 했을 때, 그가 모르는 것의 상상할 수 없는 상응의 변화수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인간은 인간의 생각 밖에 상응을 겪어야 한다. 이런 것을 보다 더 깊이 보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 수읽기라고 하는 거다. 바둑에서의 千變萬化의 내용을 한 눈에 읽어내고 포석을 하는 것은 그런 상응의 내용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금의 김대중 김정일 노무현이가 진행시켜 가는 모든 일들이 과연 어떤 상응을 일으킬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만일 그들의 눈에 밝혀지는 상응이 10가라고 한다면, 실제는 1만 가지라고 했을 때, 그들은 뜻하지 않는 결과를 상응 받게 되는 거다. 그런 상응의 내용들이 그렇게 흘러가기 때문에, 이를 수평적 상응이라고 하면, 또 수직적 상응도 있게 되며, 또 전방위적인 상응도 발생하게 된다. 4. 그런 모든 상응들이 어떻게 펼쳐져 나가는 지는 인간이 다 헤아릴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모두는 다 이기려고 한다. 하지만 자기가 파악한 상응의 원리 안에서 이기려는 것뿐이다. 단순한 일에도(한두 가지 상응의 원리가 적용되는 일) 상응이 항상 발생한다. 그런 식으로 모든 것을 단순화 보려는 자들의 눈에는 복잡한 세상의 변화무쌍을 다 읽어 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상응의 원리가 어디로 튀게 될지를 모르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수직의 상응에 있어 어떤 메시지가 서로 간에 교환되는 가에 있고 그런 것을 반응하는 최고 높은 차원인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는 가에 있다는 것이다. 과연 하나님의 반응은 상응의 원리를 통해 규정된 것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라고 본다면, 하나님은 원칙의 하나님의 되시는 것이다. 만일 원칙의 하나님이라면, 밤과 낮이 영원히 합해질 수 없는 상응과 반응을 세워 놓으신 거다. 이렇게 모든 것은 그들의 행한 것의 상응의 원리로 만들어 놓았다고 볼 때, 김정일이가 행한 짓의 반응과 상응은 어떻게 드러날 것인가를 우리는 생각하게 된다. 그들이 가지는 상응의 내용은 무엇인가? 수평적인 상응은 무엇이고 그 반응은 무엇인가? 5. 수직적 상응은 무엇이고 그 반응은 무엇인가? 전방위적인 상응과 반응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상응 또는 반응은 최종 결재권자의 몫이 있게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성경은 선언한다. 또 실제로 그렇게 되어 있다. 하나님의 모든 결재는 상응의 원리 안에 應用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상응의 의미와 반응의 의미와 응용의 의미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상응과 반응과 응용의 한계밖에 계시다면 또 그런 것에 반응하도록 자기 통치체계를 상응하게 하신다. 때문에 내재적 하나님으로 거기에 계셔서 원칙으로 움직이시고 동시에 초월적인 하나님으로 계신다. 하나님은 내재적인 상응의 원리를 지배하는 또 다른 상응과 반응과 응용의 원리를 얼마든지 만들어 내시는 분이시다. 자신이 만든 원리를 절대 지키시며, 또는 그 모든 원리에 또 상응하는 더 높은 차원의 원리를 만들어 내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의 원리응용은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김정일 노무현 김대중의 선택을 어떻게 결정하실 지는 또는 상응하실 지는 또는 반응하실 지는 또는 응용하실 지는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여기서 이용이라는 말도 나오고 사용이라는 말도 나오는 거다. 우리가 아주 간단한 이치를 또는 상응의 원리를 반응의 원리를 응용의 원리를 예를 들어 보기로 하자. 6. 봄이 오면 그 모든 식물들과 피조물들이 상응하고 반응하고 응용하고 생존을 펼쳐 나간다. 비가 오면 온대로 아니 오면 안 온대로 그런 반응을 보이고 그렇게 상응한다. 이를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신다고 하는 거다. 때를 따라서 상응하는 것이고 반응하는 것이고 利用하는 것이고 使用하는 것이고 應用하는 것이다. 과연 여기서 하나님의 반응을 우리는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만일 하나님이 그동안의 김정일의 악마적인 행태와 김대중의 술수와 노무현의 선택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시면 벌하시기로 결심하셨다면, 모든 것이 그렇게 상응하는 반응하는 응용하는 이용하는 사용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하나님이 자유자재로 그런 만드신 원리 안에서 일하시게 되어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의도가 그대로 인간사에 펼쳐지도록 만들어진 상응의 원리를 반응의 원리를 응용의 원리를 이용과 사용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하늘에 응하시고 하늘은 땅에 응하고 땅은 땅에 속한 자들에게 응하는 원리이다. 이것이 결재권과 같은 원리 곧 권세의 원리이다. 땅에 속한 자들이 심고 거둠을 따라 진행되는 것이지만, 때를 만들어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아주 심도 있게 생각해야 한다. 7. 그것은 곧 김정일의 때가 다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때가 다 되었다면 그의 선택에 따라 어떤 것을 선택해도 모든 것이 그의 종말로 이어지게 하는 거다. 그가 손대는 모든 것 마다 결국은 다 그를 망하게 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결심에 따라 때가 주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게 상응이 되도록 만들어져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만든 시스템에 하나님이 결코 묶이지 않으시면서 또한 그 시스템과 하나이시다. 하나님은 내재적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초월적인 하나님이시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결정에 따라 세상은 돌아가는 거다. 이는 운명론적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운명론적이라는 것은 심고 거둠의 법칙을 거부하고 무시하고 있고, 상응의 원리와 반응의 원리도 무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때가 다 되었다면 결과적으로 그들이 무슨 수를 다 쓴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죽게 되고 망하게 되는 거다. 파리는 언제가 죽는다. 죽을 때, 어르신 밥 드시는 국에 빠져 죽을 수도 있다. 어떻게 그를 망하게 하는가가 우리의 관심이다. 우리의 관심은 그가 어떻게 망할 것인가이다. 우리는 후세인의 망함을 보게 되었다. 그가 토굴 속에 숨겨져 있다고 잡혀 마지막에 교수형처리가 되었다. 그런 과정에 전쟁이라고 하는 것이 발생하게 된다. 8. 그 전후로 수많은 테러가 발생하고 있다. 그처럼 김정일이가 죽을 때, 그 가진 핵무기를 서울 상공에 투하하고 죽게 되는 것으로 결정이 된다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는 최고 결정권자의 무원칙적인 결정이 아니라, 남한 사람들의 선택이 그런 결정을 하도록 상응 및 반응을 만들어 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사실 김대중김정일노무현의 하는 짓이 다 그런 것을 향해 가고 있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김정일의 혹은 그 군부가 최후발악을 하게 만드는 분위기, 겁을 먹고 조공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의 강력한 결집을 보여주어야 그들이 절망을 하고 무너진다. 도발을 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겁을 먹는 마인드로 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하는 거다. 심리적으로 겁을 먹고 무너진 곳에선 반드시 전쟁이 발생한다는 원리는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른다고 하는 원리와 같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결재 개입이 중요하다. 그런 원리대로 그대로 적응하게 하시면 그대로 전쟁으로 가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 하나님의 최종 결심으로 결재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나고 결재가 내리신 때가 오게 되면 곧 전쟁이 발생하게 된다. 하나님은 모든 상응의 원리의 내용을 만드신 분이시고 그 원리들이 다 하나님의 결재를 통해 상응, 반응, 응용, 이용, 사용이 발생하게 된다. 9. 과연 하나님의 결정이 김정일을 버리시는 것이라면 결국은 그렇게 된다. 버리실 때 그를 이용하여 전쟁을 하게 하시는 것으로 상응 또는 반응을 보이신다면 전쟁이 난다고 하는 것이다. 왜 전쟁으로 가게 되는가? 나는 남한 사람들이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악마의 자식 김정일의 수령독재에 혹독하게 고통을 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돌아보지 않는 것 때문에 전쟁으로 갈 것이라고 본다. 때문에 나의 주장은 이왕에 무너지는 망하는 김정일을 전쟁 없이 무너지게 하자고 하는 것에 있다. 자유대한민국의 사람들의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으로 무장되어 결과적으로 북한 주민을 구출하기를 힘을 쓴다면 전쟁은 없다. 오히려 김정일 세력은 갑자기 붕괴하게 된다. 지금처럼 대북포용정책이다 뭐다 의원들이 김정일 알현하기에 全 힘을 쏟는 것이라면, 전쟁은 반드시 발발하고 마침내 그들은 김정일과 같이 함께 망하게 된다고 확신한다. 정치인들이 악마 편에 서게 되는 그 정치인들을 필요로 하는 자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한 상응이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에 있는 수령독재 괴물과 남한에 그를 방조하는 괴물들을 벌하시는 길이 전쟁이라고 본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도 북한 주민의 고통을 널리 알려 모든 국민을 일깨워 우리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인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 10. 그 길이 곧 북한주민의 해방의 길에 전쟁 없이 달성할 수 있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내재적 상응 시스템에서 얻어지는, 인관응보의 결과를 얻게 하는 올바른 선택이고 하나님의 언제든지 개입하시면 상응하는 시스템의 초월적 상응으로 때가 결정되는 것에도 올바른 선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사람이 제비를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이 한 문장의 내용에 내재성과 초월성이 함께 묶여 있다. 이는 하나님의 깊으신 모략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이루시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뽑으나, 작정은 하나님께 있다는 말은 곧 때를 결정하신다는 말이다. 때와 기한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시기 때문이다. 북녘에 수많은 피 소리들이 하늘에 사무쳤다. 그 소리가 하나님으로 응하게 한다. 비로소 심판의 때가 결정된다. 그 결정된 때가 갑자기 적용되는 수도 있고 서서히 적용되는 수도 있다. 이도 역시 초월적인 분야이다. 내재하시며 아울러 초월하시는 하나님은 한분이시기에 그 두가지 내용이 하나님 안에서 오묘하게 상응한다. 그렇게 결정된 상응은 남북에 걸쳐 있는 김정일의 괴물들을 제거하려고 심판의 칼을 뺀 것이다. 북한주민을 위해 큰 소리를 쳐서 나는 김정일類가 아니라고 밝혀야 한다. 그래야 산다. 그것이 곧 살 자와 죽을 자의 구분법이기 때문이다. http://onlyjesusnara.com/ http://www.korea318.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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