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쓰지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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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투는 시작은 방죽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 세상에는 억지라는 단어가 있다. 이런 억지의 발생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본다. 그중에 하나가 바벨의 저주로 본다. 또 하나는 성격의 차이와 본질의 차이에 있다고 본다. 또 하나는 욕심의 차이가 바로 그것이고, 또 하나는 주도권의 다툼 곧 운전대 싸움이다. 그런 여러 가지들은 모두 다 다툼이라고 하는 단어를 만들어 낸다. 그런 다툼의 내용들의 내용을 보면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그런대로 이해할 만 하다. 그런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이해관계 때문에 억지 쓰면서 발생되는 다툼은 피를 보아야 끝이 난다. 이런 것으로 귀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것은 권력투쟁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권력투쟁을 하는 자들의 속성은 상대의 없는 약점이라도 억지로 만들어 내어 물고 늘어지는 것에 있다. 그런 물고 늘어짐으로서 자기들의 행동을 정당화시킨다. 그렇게 정당화시키는 것은 적을 이기는 명분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세상은 억지가 판을 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것은 언어폭력이라고 해도 무방한 표현으로 본다. 2. 언어폭력은 논리성이 없다. 그런 非논리적인 행동을 통해서 자기들의 행동을 논리화 시키려고 한다. 여기에 많은 시비가 일어나게 된다. 是是非非를 가리려는 노력이 결국은 인신모독으로 이어지고 그런 것을 통해서 결국은 심각한 상처를 받게 한다. 이런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의견대립의 非논리성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 갈 때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때문에 개념의 非公有로 인해 발생하는 非논리의 주장은 해당 논리를 억제하려는 억지가 다반사로 발생하는 것을 보게 된다. 억지가 지나치면 결국은 피 터지는 시시비비가 발생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때문에 우리는 논리가 가득한 사회로 나가야 한다고 본다. 그만큼의 논리성을 가지려면 博學多識해야 한다는 것과 온유함을 갖춰야 하는 거다. 박학다식하지 못하면 결코 논리성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의 전문화된 사회를 만들어 가려면 독서가 필연적이다. 독서가 많은 사회는 그 만큼의 지식의 공유가 일어나게 된다고 본다. 모든 장르의 언어들을 총화 시켜 모든 언어를 다 알아 듣는 노력이 필요하지 못하다면 그만큼의 억지가 형성이 되는 것으로 가게 된다. 억지가 없는 세상을 열려면 그만큼 어휘력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3. 어휘력의 함축성의 의미는 참으로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는 이런 언어의 함축성의 내용의 빈곤함을 갖고 살기를 좋아한다. 때문에 諺文이라고 하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非 함축성의 의미가 거기에 있다고 본다. 때문에 국한문 혼용의 의미가 더욱 그것을 카버해주고 있다고 본다. 언어의 국제화시대에서 고유민족을 지키려 면은 고유 언어를 지켜야 한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하지만 국제화시대의 언어의 국제화를 통해 새로운 함축언어의 등장을 해낸다면 그야말로 논리 언어의 함축의 의미가 더욱 증대될 것으로 본다. 우리 사회의 이런 언어의 차이점을 극복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諺文 정책이고 그것은 곧 함축어의 그릇을 작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시에 수많은 뜻을 전달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것을 갖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게 된다고 본다. 언어를 풍요롭게 표현하려면 표현기법의 다양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정해진 諺文的인 표현을 리메이크적인 표현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본다. 더욱 많은 함축의 뜻을 담을 수 있는 국제 언어 수준의 전문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언문의 전문 언어의 국제화를 통해 그 속에 들어 있는 내용의 함축을 통해서 한글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다툼이 없는 세상을 열기 위해서는 컴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언어 호환이 가능해야 한다고 본다. 4. 같은 한글말도 듣는 사람의 개념에 따라 이해관계에 따라 다르게 보고 듣고 하는 것이 인간사의 다툼의 내용이라고 본다. 사람마다 함축된 내용이 10개인 사람이 있고 1만개인 사람도 있을 것으로 본다. 이런 언어의 표현의 사회 속에서는 결국 천재는 외롭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의 언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면 그만큼 그들이 가지고 있는 표현문화는 단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지금 자유대한민국 안에 있는 김정일 언어 계열이 빠져 있는 자들에게는 북한 주민의 당하는 고통을 담아낼 수 있는 언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언어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뿐만이 아니라, 그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無발견의 未知의 영역이라고 한다. 그들 속에 그런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연구의 영역으로도 생각지 못한 부분이기 때문에, 아예 그들의 머리 속에는 북한에서의 인권은 김정일과 수령 독재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만이 가진 것으로 아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권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저들이 가지고 있는 인권의 의미라고 한다면 인권의 의미는 상반된 두 개념을 가진 인권의 의미가 한반도의 의식 무의식을 점령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지금의 정부의 인권의 개념은 공식적으로 기권에서 찬성으로 가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5. 기권에서 찬성으로 가게 되었다는 것은 김정일類의 인권만을 고집하던 데서 보편적인 인간의 인권을 또는 세계인권선언을 기초로 하는 인권의 개념에 동의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 두 가지 시각은 대북정책을 구상하는데도 작용하게 되었다. 정부가 진정으로 유엔의 결의를 찬성한 것으로 본다면 무엇보다도 정부 안에 이 두 가지 시각이 존재되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하나의 시각은 보안법을 어기는 것이고 또 하나의 시각은 자기들의 뇌리 속에 없는 개념의 세계이다. 지금 김정일을 위한 세상으로 대한민국을 밀고 가고 있다고 본다면, 자유대한민국의 인권이라는 단어는 김정일類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본다. 이런 것은 억지에 해당 된다. 곧 흰 것을 검다고 우기고 검은 것을 흰 것으로 우기는 억지가 存在하고 있다는 말이다. 검은 것은 검은 것이고 흰 것은 흰 것이다. 흰 것과 검은 것이 같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권력의 힘으로 또는 개체가 가지고 있는 힘으로 흰 것을 검은 것으로 바꾸려는 노력은 옳지 않다고 본다. 진실을 거짓으로 만들어 가는 억지세력이 세상에 있다. 거짓을 진실로 만들어 가는 억지세력이 세상에 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자기들의 입맛에 따라 해석하고 의미부여하고 해서 억지를 쓰는 것이다. 6. 이를 牽强附會라고 한다. 견강부회를 하는 세력은 결코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인권과 인도의 이유 말고도 수령독재를 반대하는 이유이고 과도한 민족주의를 배척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국제적인 무역을 하는 세상과 거리제한이 갈수록 좁혀지는 세상에서 인터넷이라고 하는 도구가 나와서 전 세계를 연결하는 세상에서는 실로 수많은 함축어의 등장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어의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는 자들의 쇄국은 참으로 모든 문명의 발전을 저해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이런 것은 닭장 속에 가두는 것일 뿐이다. 결국은 이런 일을 계속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피를 빨아 먹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한다. 때문에 억지를 쓰는 세상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방죽에서 물이 새듯이 결국은 온 세상으로 전이되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피를 보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자유 확산이 실패하였다면 수령 독재에게는 사회주의 세계화를 달성하려는 억지가 통용되는 것으로 간다고 보는 시각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세상은 그렇게 억지가 되어간다면 결국은 다툼이 일어날 것으로 본다. 그것이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전쟁하게 하는 이유로 발전해 갈 것으로 본다. 그렇게 흘러가면 결국은 온 세상이 망하게 되는 전쟁을 겪게 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 7. 때문에 진리의 논리성으로 사는 세상을 열어가야 한다는 이유라고 보는 것이다. 억지를 부려 德을 보려는 자들과 是是非非를 가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법으로 가서 그 시시비비를 가리는 방법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진리의 논리성을 사랑하고 그 진리를 따라 대화하는 순리적인 사회를 열어가야 한다고 본다. 김정일類의 인권만을 인권이라고 강변하는 억지는 이제 없어져 한다. 권력이나 힘에 의해 유린당하고 있는 인간 존엄성의 회복과 그들의 누려야 할 인간의 기본 권리를 되찾아주는 논리성이 이제 어깨를 펴고 이 한반도를 주장해야 한다고 본다. 만일 이런 것이 없다면 억지가 판을 칠 것이고 그런 억지가 판을 치는 곳에는 요란스러움과 다툼이 가득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시시비비를 非논리적으로 몰고 가는 억지들을 그쳐야 만이 그 나라가 강대국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들이 언어가 단순하고 단순하기에 그 그릇에 넘치는 말을 들으면 배우려고 함보다는 억지를 써서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무너지게 한다면 죄악으로 봐야 한다. 때문에 천재가 배출되어도 그들을 담아내는 언어 시스템이 없다면 그들이 발붙일 곳이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천재를 가지고 있는 사회는 그들이 발상하는 모든 것을 존중하고 담아내는 언어표현시스템을 현실화시켜주는 유형무형의 언어 표현 사회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다는 말이다. 8. 천재가 발생해도 결코 외롭지 않는 사회를 열어 가야 한다. 그것은 곧 다툼이 없는 사회, 바벨의 저주가 없는 사회를 여는 것이다. 때문에 언어의 단순화는 곧 황폐 된 사회라고 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황폐 된 사회는 사막화된 사회라고 한다. 사막화 된 사회는 결국 인간들로 하여금 억지를 써서 사는 사회 곧 폭력에 의지하는 사회로 가게 한다. 폭력의 사회로 몰려가면 결국은 강자의 억지가 논리로 자리 잡게 되고 非과학적인 사고방식이 자리를 잡게 된다. 이를 공포의 사회 곧 사이비의 사회라고 한다. 북한은 바로 그런 사이비와 공포가 자리 잡고 있고, 그들의 의식무의식 속에는 폭력이 자리 잡고 있다. 말하다 안 되면 폭력을 싸서 자기억지를 정당화시키는 것이다. 때문에 다툼의 시작이 일어난 후 10년간의 시간이 흘러왔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매우 무서운 결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본다. 국민 개개인이 논리적으로 국제경쟁력을 가지고 산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국제적인 모든 언어의 컴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면, 인류 보편적인 가치 곧 북한주민의 인권의 문제가 화두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절대 다수는 북한 인권을 알아보는 능력이 현저하게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본다. 이는 억지 쓰며 사는 자들이 권력을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 것이다. 9. 이들의 膨脹은 방죽의 물이 터져 내려오는 효과를 발생케 하여 결국은 전 국민이 억지를 쓰며 살게 되고 마침내 폭력적 언어를 통해서 세상을 살아가게 되는 것으로 본다. 때문에 어느 정치집단이든지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를 보면 어휘를 보면 결국 억지 쓰는 집단인지 아니면 진실의 논리성을 가지고 있는 집단인지를 알게 해주는 것으로 본다. 모름지기 억지 쓰는 것으로 是是非非를 가리는 사회는 폭력의 사회로 가게 된다. 그것은 결국은 현재의 북한과 같은 처절한 고통이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봐야 하는 것이다. 지식이 태산을 이루어도 국제 공용어인 인권문제를 알아듣지 못하는 자들은 21세기 야만인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자유대한민국 안에 그런 자들이 억지를 쓰며 사는 세상을 열어가려고 수많은 각종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김정일類의 인권만을 챙겨주려는 의도로 만들어 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저들의 억지를 그만 쓰게 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북한 인권을 생각하고 그것을 문제 삼고 明明白白하게 들춰낼 때만이 가능하다고 본다. 우리는 이제 저들의 팽창을 막아내기 위한 방죽의 둑을 더 높이 쌓아야 한다고 본다. 저들의 억지를 멈추게 하는 것은 북한 인권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룸에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본다. http://onlyjesusnara.com/ http://www.korea318.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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