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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무부-북한 인권실상보고- [2]-2005년
고문승 7 246 2005-03-14 22:13:16
이 글은 미국국무부가 2005년 2월 28일 발표한 북한의 인권의 실상에 관한 보고인데 미국국무부 홈페이지 http://www.state.gov 의 International Topics and Issues 의 Human Rights 에서 북한을 click 하면 원문이 나타남.
이 글의 번역은 高 文 昇 이 했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간의 권리의 실상에 관한 국가보고
미국무부 민주주의, 인권, 그리고 노동국에 의해서 발표되었다.
2005년 2월 28일

번역 高 文 昇

번역을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서 [1]-----[5]

북한의 인권실상 보고 - 미국국무부 ---[2]




d 함부로 하는 체포, 구속 혹은 망명

정치범들을 체포하고 구속하고 그리고 그들을 독방에 가두는 북한 정부의 권한에 제한조치들이 없다.
가족들과 다른 관계있는 사람들은 보고된 것처럼 억류된 사람들에 대한 고소나 선고의 형기(刑期)에 대한 정보를 문자 그대로 얻기가 불가능하다.
억류에 대한 사법적인 재심은 법률 혹은 실제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15만 명에서 20만 명으로 평가되는 사람들을 정치적 이유 때문에 거리가 먼 지역에 있는 억류자 수용소에 가두어 진다고 믿어진다.

이 수용소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수용소들의 주요 시설들의 특징 등을 지적해 내는 상업적 인공위성의 화상(사잔)을 이용해서 탈북자들은 이 수용소들이 200 평방 마일에 이른 다고 주장했다.
수용소들은 대량의 무덤들, 빈민촌들, 작업장들, 그리고 다른 수용소 시설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북한정부는 정치범들을 위한 범죄자 수용소들 (prison camps)의 존재를 부인해왔다.
최근 몇 년에 북한 정부는 범죄자 수용소의 전체 숫자를 대략 20개에서 10개 보다 작게 줄여왔다고 했으나 수용 인원은 줄이기 전보다 오히려 공고해졌다.

2003년에 안전부에서 고위직 공무원이었던 망명자(탈북자)가 미국의 북한인권위원회(USCHRNK)에 “정치범들을 위한 수용소의 조건들은 극도로 가혹하고 수용된 자들(범죄자들)은 생존을 기대하지 아니 한다”고 보고했다.
이러한 수용소들에서 수용된 자들(범죄자들)은 거의 식량을 받지 못하고 의료적인 치료를 받지 못했다.
가족 구성원 중에 한명이 범죄로 고발되면 어린 아이들을 포함한 전 가족들에게 집단적 처벌을 시행한다.


e 공정한 공적인 재판의 거부

북한 헌법은 법정은 (재판)은 독립적이고 재판절차는 법률과의 엄격한 일치 속에서 수행된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독립적인 재판은 실제에는 존재하고 있지 않다.
더욱이 헌법은 역시 중앙법원은 최고인민회의에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책임이 있다고) 하고 있고, 형법은 판사들이 공정하지 못한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하여 형사적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더욱이 개인의 권리는 알려 지지 않고 있다.
공안부(The Public Security Ministry)는 정치적 사건들에 있어서의 재판들을 분배하고 정치범들(수용된 자들)의 처벌을 국가안전부(the Ministry of State Security)로 보내고 있다.

형식적인 형사 재판의 절차와 실제에 대한 정보가 거의 쓸모 있는 것이 없고 법체계에 대한 외부의 관찰은 교통위반과 다른 사소한 범죄에 대한 심리(재판)를 보여
주는데 제한되어 왔다.

북한 헌법은 자세한 절차상의 보호조치들을 규정하고 있다.
헌법은 형사사건들이 법에 의해서 규정된 어떤 환경 하에서라는 것 이외에는 공개적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공청-公聽할 수 있어야한다고)기술하고 있다.
재판이 거행될 때에는 북한정부는 보고 되었던 던 것처럼 변호인들을 선임했다.
다소(어떤)의 보고서들은 정치적 범죄로 고소된 사람들과 일반 형사범들 사이에 구별을 지적하고 있었고, 북한정부는 후자(일반 형사범)에게만 재판과 변호인들을 허용했다고 보고했다.

독립적인 非 정부적인 (정부와 관련이 없는) 변호를 하는 변호사들이 존재한다는 표시(암시)는 없다.
북한정부는 정권의 비판자들은 정치적 범죄자들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의 보고서들은 김일성 사진이 있는 신문지들 위에 앉아 있는 것,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설자에 대한 얼마 안 되는 형식적인 교육, 혹은 두 명의 김씨(김일성과 김정일)들의 사진을 손상하는 것 같은 것을 포함하여 정치적 범죄를 기술해왔다.
보통 형사범들은 김일성 혹은 김정일의 생일에 때때로 사면되었다.



f 사생활, 가족, 혹은 통신에 대한 제멋대로의 간섭

북한헌법은 인격과 주거의 불가침성을 그리고 통신의 비밀 불가침성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북한 정부는 이러한 조항들을 존중하고 있지 않다.
북한정권은 그 시민들을 엄격한 통제 하에 복종하게 하고 있다.
북한 정부는 비판자들과 잠재적 말썽꾸러기들을 확인하기 위하여 첩보원들의 대량의 다단계적 제도에 의존하고 있다.
온 사회가 때로는 안전 검사(security checks)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반국가적인 자료의 소유 그리고 외국 방송을 듣는 것은 위반자가 5년간의 노동 재교육을 포함해서 엄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범죄들이다.
만일 위반자가 정부에 반대하는 음모(기도)에서 반국가적 자료를 사용한 것 때문에 고발되면 최대한의 벌은 사형이다.

정부는 통신과 전화의 대화를 도청(monitored)했다.
전화들은 근본적으로 국내적 용도에 제한되어 있다, 설혹 다소의 국제적 용도는 매우 제한된 근거로 효력이 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북한정부는 휴대전화 넷워크(network)를 수립했다.
용천 역의 4월 기차 폭발 사건 후에 북한정부는 일반 국민의 휴대전화사용을 금지했다.
북한에서 외국인들에 의해서 사용되는 전화 체계는 보다 넓은 체제에서 독립적이다.
보고 되었던 것처럼 북한 사람들은 그들의 라디오 세트(sets)를 통하여 감시 하에 놓여왔고,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구내에서의 이루어진 진술(성명들)에 대하여는 투옥되고 처형되어 왔다.

북한 헌법은 청원에 대한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 행정에 대하여 청원이나 혹은 불평이 제출되었을 때 국가 안전과 공적 안전부서들(the Ministries of State Security and Public Safety)은 작성자를 확인하기 위해 추구하고 작성자는 조사와 처벌을 받을 수 있었다.

1950년 대 후반 이후 북한 정부는 세 가지 기본 계급들로 사회를 분류했는데, 핵심 계급. 동요(흔들리는) 계급, 적대 계급이다.
안전보장계급 등급들은 각 개인들에게 매겨져있다.
어떤 평가들에 따르면 주민의 거의 반이 동요 계급이거나 적대 계급으로 지정되어 있다.
충성 계층(계급)들은 고용, 고등교육, 주거의 장소, 의료적 시설 그리고 어떤 가게(점포)들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정해져있다.
충성도 평가계층은 법률적 위반 사건에서 처벌의 심도에 또한 영향을 준다.

한국전쟁 당시에 대한민국으로 탈출한 친족들과 관계가 있는 시민들은 적대적 계급으로 분류되었다는 것이 나타났었다.

주민의 25%에서 30%가 잠재적으로 적대적인 것으로 고려되고 있다.

설혹 망명자들(탈북자들)이 그들(적대 계층)의 대우가 최근에 크게 개선되었다고 보고하였지만, 이 계급의 구성원들은 아직도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

북한정권이 이러한 조치들을 완화하였다는 다소의 증거는 있는데 예컨대, 생활 모습을 촬영한 필름에서 고된 일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우호적인 낮은 배경(나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묘사하는 (그리는 ) 것으로 완화하였다.
첨가해서 경제적 개혁들은 어느 정도로 엄격한 계급적 제한들을 손상시켜왔다

모든 연령 구릅들과 직업들 속의 시민들은 집중적인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교화를 받아야한다.
김정일과 그의 아버지의 개인숭배와 공식적인 주체사상은 다소 기울어졌으나 국가종교의 수준으로 접근하는 정권의 중요한 토대로 남아 있다.

김정일 지배 하(下)에서 북한정권은 군(軍)이 첫째인 (先軍) 정책을 강조하여왔다.
외부의 위협이 의도적으로 선군 정책을 필요하게 되었다.
이데올로기의 교화는 국가의 이데올로기와 권위에 대한 확인과 동시에 체제와 지도력에 대한 충성을 확고히 하려는 의도였다.
이러한 교화에 대한 심화의 필요성은 되풀이하여 정권에 의하여 강조되었다.
국가(북한은)는 소비에트 연방(Soviet Union)의 붕괴가 불충분한 이데올로기 교화에 그 원인이 있으며 부패한 외국의 영향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보았다.

이데올로기의 교화는 체계적으로 수행되었다.
이데올로기 교화는 대중매체를 통해서, 학교에서, 노동자와 이웃들과의 협회를 통해서 체계적으로 수행되었다.

김정일은 국가의 학교들에서 학술적인 교육에 앞서 이데올로기 교육이 우선권을 가져야 한다고 선언했으며 그는 또한 성인 노동자들을 위한 위임된 이데올로기 연구와 토론과정의 심화를 요청했다.
이데올로기 교화교육은 또한 군중의 행진들, 대회들, 조정된 행사들(무대에 올린 행사들)을 포함했고 때로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집단적 처벌이 시행되었다.
가족의 구성원의 한 사람이 어떤 범죄로 고발되었을 때에 어린아이들을 포함하여 가족의 모든 구성원들이 투옥되어왔다.
2003년 11월에 인권 관계 비정부기구 (NGO) 인권조사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처벌은 중노동으로 평생(종신)동안 한 가족의 3 세대들을 투옥시키는 데 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난민들은 이러한 실제들을 문서화해왔다.



제 2조 (다음과 같은 것들을) 포함하는 시민의 자유들에 대한 고려

a 언론과 보도의 자유

북한헌법은 언론과 보도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정부는 실제에 있어서 이러한 권리의 행사를 금지하고 있다.
시민들이 사회주의자의 생활 규범을 따르도록 요청하고 집단적 정신에 복종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북한 헌법의 조문들은 개인의 정치적 그리고 시민의 자유들에 우선권이 있다.

북한정부는 모든 정보를 문자 그대로 통제하기를 추구했다.
북한 정부는 외국인들에 의한 방문들을, 특별히 외국의 언론인들의 방문들은 주의 깊게 조정하였다.
4월에(2004년) 북한 정부는 수백 명이 사망했던 용천 역에서의 기차 폭발의 장면에의 접근을 거부했다, 설혹 외국의 외교관들의 접근은 허용했지만.
때로는 북한 정부가 정부의 협의사항(agenda)을 다룰 때는, 북한 정부는 외국 미디어 (media)가 어떤 행사들(events)을 취재하도록 허용했다.
외국의 지도자들에 의한 방문이 있는 동안에는 외국기자들의 구릅들은 공식적인 대표들과 동반하도록 허용되었고, 기사들을 전송하도록 허용하였다.

그들은 관리들과 대화하거나 길가에서 주민들과 대화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고 휴대폰이나 인공위성 이용 전화는 방문자의 체제 기간 동안은 압수되었다.
국내 미디어(언론)에 대한 검열은 엄격하게 강요되었고 공식적인 정부의 선(line)으로부터의 일탈은 허용되지 않았다.

국경 없는 기자들(RWB -Reporters Without Border)은 어떤 국영 라디오 기자가 장관을 차관으로 잘못 언급한 것 때문에 처벌 받았다고 보고(보도)했다.
그는 보고 되었던 것처럼 여러 달 동안 혁명화 수용소에 보내어졌다.

북한 정권은 정치적 엘리트들이 듣는 예외 이외에는 외국 방송 미디어를 듣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위반자는 중대한 처벌을 받는다.
라디오와 텔레비전 세트는 달리 고치지 않는 한 국내 프로그램만을 시청하며 외국에서 얻은 라디오는 비슷한 방법으로 작동하도록 고쳐야한다.

그해 동안(2004년) 라디오는 과거보다 더욱 접근할 수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
주로 부패한 국경 경비원들에 의해서 어떤 NGO들은 더 많은 탈북자들이 그 전(前
) 해들보다 외국 방송들에 의해 청취해왔다고 보고 있다.
인권운동가들이 북한으로 풍선(balloon)으로 트랜지스터 라디오(transistor radio)
들을 보내려는 그들의 의도를 발표한 후에 국경 없는 기자들은 북한 당국자들은 라디오 세트들은 7월 13일에 정권의 새로운 적들이라고 보고(보도)했다.


개인 전화선은 국제적 호출을 받는 것을 방지하는 국내적 체제로 운영되었다.
국제적인 전화선은 매우 제한적인 환경 하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평양에 있는 어떤 호화 호텔은 외국 방문객들에게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러나 시민들에게는 인터넷 접근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고위직 공무원들에게로 제한되었다.
이러한 접근은 중국에서 준비한 자에게 국제전화선을 통하여 제공되었다.
북한 정부는 엄격하게 학문적 자유를 제한했고 예술적이며 학문적 작업들을 통제했다.
연극, 영화, 오페라, 아동들의 공연 등 그리고 도서들의 기본적인 기능은 김일성과 김정일을 에워 싼 개인숭배에 공헌하는 것이다.


b. 평화적 집회와 결사의 자유


북한 헌법은 집회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정부는 실제에 있어서 이 조항을 존중하지 않았다.
북한 정부 당국의 승인 없이는 어떤 공개적인 집회들도 금지하고 있다.
북한 헌법은 결사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정부는 실제에 있어서 이 조항을 존중하지 않았다.
북한 정부에 의해서 창설된 조직들 이외에 다른 알려진 조직들은 없다.
직업적인 조직들은 북한 정부가 모니터링(체크하는데)하고 조직원들에 대하여 통제하는 데에 우선 편의를 제공하기 위하여 존재했다.

淸遠의 e-mail - chungwon3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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