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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김정일을 극복할 것인가?
REPUBLIC OF KOREA 구국기도 0 264 2007-07-19 12:47:58
1.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이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드리는 예배라고 하는 것이 있다. 일정한 예식의 순서가 있고 그 안에는 경배와 찬양과 설교와 헌신과 감사와 강복(축복과 축도)이 있다. 이런 일련의 예식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뜻에 절대로 굴복하신 예수님의 뒤를 따르겠다고 하는 복종이라고 하는 것이 들어 있다. 복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뤄지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겟세마네 기도라는 의미로 말한다. 예수님이 인류를 건지는 대업의 십자가를 지겠다고 최종 굴복한 시간과 장소가 바로 그 겟세마네 기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독교의 진정한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공평이라는 말은 균형의 접점이라고 하는 조화의 극치 접점을 의미한다. 이런 조화의 극치 접점을 찾아내는 것은 현대문명의 트렌드(trend)이다. 이런 극치 점을 추구하는 인간은 거대한 부요를 얻기 위한 자본주의 열정으로 발산하게도 한다. 이런 것을 얻기 위한 노력을 다하는 것이 현대의 모든 인간의 갈망이다. 그만큼 균형의 접점이라는 것의 조화의 극치 접점을 찾아내기가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은 모든 존재를 만드시고 운영하심에 그런 균형의 극치 접점을 제공하는 공평의 근원으로 임하신다. 그분이 가지고 계신 모든 공평으로 창조이래의 모든 만물이 상호관계를 가지고 유지하셨다. 발전되게 하셨다. 그 모든 존재들의 생산성을 높여가게 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의 공평을 받아들이는 것은 곧 合當義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성경은 선언한다. 合當義는 하나님의 공평을 받아들여 그에 맞춰 사는 것을 하나님의 공평 안에서 만물이 함께 선다는 개념어로 정의할 수가 있다. 인간은 국가 안에 있고, 국가는 지구 안에 있고, 지구는 우주 안에 있고, 우주는 만유 안에 있는 것이다. 이런 말의 전개는 곧 萬有 안에 나(我)라고 하는 존재의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그런 공평 가운데라고 하는 길을 찾아내어 갈 때만이 만유와 더불어 사는 나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인간이 만물과 충돌한다면 인간은 죽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우주는 만유 안에 있어야 하고 지구도 만유 안에 있어야 하고 국가도 만유 안에 있어야 한다. 만유는 하나님이 세우신 공평 가운데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말의 의미는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공평을 찾아나서는 길로 가야만이 생명을 이어가고 행복을 얻고 누려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3. 그런 공평 가운데로 가지 못하는 자들은 合當義를 잃어버리게 된다.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合當義의 요구에 따라 온 삶을 드리겠다고 하는 기술적 誓約이다. 성경은 그런 서약을 토대로 해서 하나님의 제시한 공평가운데로 가는 길을 실제적으로 가는 것이 참된 예배라고 하셨다. 예배의식의 순서보다는 예배의 서약대로 하나님이 제시하신 공평에 자신의 모든 삶을 바치고 그 길로만 가는 것을 하나님은 더 기뻐하신다고 하신 이유는 인간 구원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복종을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공평을 받아들이는 행동(義)을 통해 인류의 靈魂肉을 살려내는 구원의 길을 열어 내셨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나(我)는 공평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공평이십니다.’ 하고 외치는 예배의식보다 실제적으로 그 공평을 받아들이는 것에 하나님은 더 큰 기쁨이 있다는 것의 의미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예수님의 구원은 인간 타락으로 무너진 만유의 공평을 원래대로 돌이켜 다시 세우는 길이고, 곧 그 길이 이타적 사랑으로 펼쳐지고 완성된다고 하는 아가페의 사랑을 의미한다.

4. ‘하나님만이 공평이시다. 아니다. 인간의 지성으로 내가 보는 것이 공평이다.’ 하고 싸우는 것이 현재의 인간과 하나님의 사이에 있는 敵對性이다. 이런 본질적인 척도의 차이점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많은 지성인들이 나름대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나름 公平論을 제시한다. 이런 것으로 하면 그 문제가 해결될 수가 있다고 한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공평과 적대적인 것이 있다. 하나님의 제시한 공평은 전혀 무시한다. 예를 들어 보자. 하나님의 제시한 공평은 사랑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하나님의 수준의 사랑 곧 아가페를 의미한다. 그런 사랑은 북한주민을 사랑하라고 요구한다. 그것이 곧 공평이라고 강조한다. 또 그 사랑의 지혜는 북한주민을 사랑하는 길이 구국의 길이 열린다고 하는 지혜를 낸다. 하지만 인간의 지성의 공평은 이를 무시해 버린다. 인간은 인간의 말을 잘 듣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약점으로 작용할 때가 있는 것인데,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 같다. 북한주민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평을 세우는 길이다. 만일 하나님이 이런 눈빛으로 한국의 현 상황을 직시하고 있다면, 이를 제일 먼저 알아보아야 하는 것은 아마도 교회 목사들이어야 할 것이다.

5. 하나님을 구원자라고 한다. 예수님의 이름의 뜻은 구원자이다. 그분이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 곧 구원의 아이템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이템이 있다는 것을 아는 목회자들은 얼마나 될까를 생각한다. 만일 목회자의 나름대로 설파하는 공평을 제시하고 그것을 따르겠다고 하는 예배를 기술적 강요 및 드리게 한다면 이는 하나의 敎主가 될 수 있는 성질을 內包하고 있다고 본다.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인생의 영혼의 문제만을 생각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참으로 하나님을 만유의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것을 제외시키려는 것이고, 아울러 하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부정하는 行動語라고 하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부분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 그것이 인간에게 주시는 지혜이다. 그 지혜는 아가페 사랑이라고 하는 그릇에 담아 주신다고 한다. 그런 것을 담아 주시는 사랑의 그릇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이 주시는 조화의 극치 접점을, 공평가운데로 가는 길을 찾아 낼 수가 없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아는 신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런 신비의 영역을 인간에게 제공하는 조건이 곧 예수의 십자가의 길,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길에 있다고 한다.

6.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모든 자들은 다 사랑의 길로 간다고 하는 誓約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예배의 기술적 合心을 의미한다. 예배에 참석하는 자들이 자기도 모른 사이에 그런 기술적 합심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자기가 同意한 合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의 길로 간다. 그들은 여전히 예수가 십자가에 죽어 이웃을 사랑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예수가 죽어 이웃을 살리는 길이 곧 인류의 구원이 되었다면, 예수의 뒤를 따라 사는 자들이 많을수록 인간은 풍성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때문에 오늘날의 많은 기독인들이 예수를 따르지 않고 있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들이 삶의 이득만을 추구하는 극히 적대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곧 북한 전주민이 받고 있는 혹독한 모든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다. 그것이 한국교회의 예배이다. 이런 예배는 하나님과의 반대적인 길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예배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게 하는 신앙생활은 아니라고 본다. 하나님께 최선의 기쁨을 드리는 것은 합심에 있다. 하나님과 합심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 합심을 거부하는 교회는 예수를 부끄럽게 하는 자들이다.

7. 예수는 아버지의 뜻에 합심하고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헌신이 없는 예배를 드리는 것에 많은 돈을 사용하고 있고 또 그런 일이 그 전부인 세대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구원의 이름은 있으나 구원의 내용은 없는 包裝紙만 요란한 세대에서 북한주민은 내팽개쳐져 있는 것이다. 그렇게 버려진 북 주민들은 오늘도 처절히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실제적으로 북한주민을 사랑하는 것에 하나님의 마음이 거기에 있다고 하는 것의 확인은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과연 사랑의 기름부음을 하나님께로부터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받았다면 그 내용은 분명하게도 하나님의 사랑은 북한주민을 구출하라고 하는 말씀으로 나타나는 것을 확신하게 될 것으로 본다. 만일 귀하가 마음속에 하나님의 기름 부어 주시는 사랑을 품으면 그런 것을 결심하게 될 것으로 본다. 하지만 만일 귀하가 귀하의 마음에 나름대로 생각을 품으면, 귀하는 북한주민을 외면하고 자기의 이익만을 도모하며 살 것이 분명하다고 본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말씀은 참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하나님은 제사를 원치 않으시고 인애를 원하신다고 하신 말씀도 우리 마음에 와 닿는다.

8. 참으로 우리가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사는 인간이라고 한다면 이런 학대, 해 아래서 받고 있는 학대에 대한 우리의 참담한 심정은 반드시 발동되어야 한다. 그렇게 발동되어야 한다고 믿고 사는 것이 진실된 인간이 할 당연한 일로 여겨야 한다. 이런 참담한 학대를 받는 것을 보고도 외면하는 자들이 드리는 예배는 무의미하다고 본다. 예배라고 하는 의식을 다하였다고 정상적인 기독인이라고 자부심을 갖고 있다면 귀하는 아직 선한 사마리아사람은 되지 못한 것으로 알아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선한 사마리아사람처럼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북한주민은 60년 동안 그런 강도를 만나 처절하게 혹독하게 고통을 받고 죽임을 당하여 왔다. 350만 명이 굶어 죽어 갈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던 것인가를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용소에 잡혀 가서 생매장을 당하며 혹독하게 인권을 유린을 당하고 있는데, 우리는 무엇을 해온 것일까? 우리는 이 나라의 위기를 보면서 이것이 곧 북한주민을 돌아보지 못한 연고로 인해 벌 받고 있는 것이라고 왜 생각지는 못하고 있는 것일까? 현재의 국난은 북한주민의 고통을 외면한 죄얼이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9. 김일성 김정일을 미화하려는 자들 속에 감춰진 이 참상을 알면서 외면하였는지, 아니면 일부러 속아 준 것인지 구분이 모호한 것이지만 이미 벌써 소리치고 소리쳤더라면, 지금쯤의 대북포용論者들, 햇볕정책자들이 설 자리가 없었을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50년 전부터 김일성, 김정일의 악마성을 깊이 있게 들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우리가 노력해 왔더라면, 전국민이 치를 떨며 김정일의 주구들을 향해 질타의 돌을 던졌을 것으로 본다. 이웃사랑이 없는 경제발전에 주력하는 모든 자들이 있는 한에는 결코 이 나라의 미래는 김정일의 주구들의 손에 농락을 당할 것이라고 본다. 이 간단 명료한 해답을 일부러 歪曲시켜가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곧 김정일 주구들일 것이다. 또는 소경된 지도자들일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합심시키는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헌신을 선택해야 한다고 본다. 이웃의 불행을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것이 곧 이 나라를 구출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구국의 싹은 發芽하고 마침내 열매를 내는 것이라고 본다. 전국민이 일어나 북한주민을 해방하려는 열심, 이 나라를 구출하고 마침내 세계 최고의 국가로 나가게 할 것으로 확신한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를 부르는 날이 진정 오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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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anam 2007-07-20 21:12:51
    님의글 잘 리해가 안갑니다..
    한사람 구원하기도 힘이든데 언제 북한까지 구원하시겠는지? 하여튼 감사함니다..님과같은 분들도 계신다는 자체가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일일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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