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잘할 수 있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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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아들아 지혜를 얻고 내 마음을 기쁘게 하라 그리하면 나를 비방하는 자에게 내가 대답할 수 있겠노라.] 모든 자의 지혜는 具現(구현)에 따라 誹謗(비방)을 받을 수가 있고 尊榮(존영)을 얻을 수가 있게 된다는 것을 勘案(감안)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때문에 지혜를 구현하는 아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완전하게 지혜로 통제되어 완벽하게 지혜의 지시를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지혜가 주는 훈련이라고 하는데, 신약성서에서는 하나님의 지혜에 훈련을 받게 되는 것을 그리스도의 할례라는 말을 사용한다. 완벽하게 하나님의 지혜에 길들여지고 연습되어져서 지혜의 요구를 완벽하게 구현해낸다고 하는 것에 지혜의 영광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차원의 개념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모든 것은 장점단점의 의미로 존재되기 때문에 어떤 지혜 곧 국제경쟁력을 갖춘 지혜가 있다고 해도 알아보지 못하면 의미가 없게 된다. 2. 알아본다고 해도 그것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그것을 완벽하게 구현해내는 아들(구현해내는 자)이 없다면 그 지혜는 오히려 사람들의 비방을 받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완벽하게 지혜의 요구를 구현시켜내는 訓練(훈련)이 필요하다. 그런 훈련을 통해 완벽한 통제를 받게 되는 자들이 된다면 그 지혜가 요구하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에 있다. 그때 비로소 사람들은 그것이 국제경쟁력을 갖춘 지혜였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국제경쟁력을 갖춘 지혜를 알아보게 하는 구현은 참으로 그래서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내용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해볼 수가 있다. 例(예)를 들어 대통령이 가진 지혜를 구현한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자는 말이다. 대통령이 지시를 내렸다. 많은 政敵(정적)들이 그 지시의 단점을 열거하면서 문제를 삼고 반대를 할 것은 분명하다. 政敵(정적)이라면 대통령의 지시의 속에 들어 있는 장점을 가지고 공격을 하는 이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3. 그런 것이 크게 부각이 되면 국제경쟁력을 갖춘 지혜는 廢棄(폐기)될 수도 있게 된다. 이런 것은 그 시대의 거대 손실이라고 본다. 그런 손실을 막으려면 지혜의 아들들이 굳건해야 한다. 지혜의 아들이라는 말은 지혜의 훈련을 받아 지혜의 요구를 구현해내도록 지혜에 통제를 받고 있는 자를 말한다. 지혜의 아들들은 모든 정적들의 반대를 무릅 쓰고 모든 일에 오차의 범위를 최대한 좁혀 그 지혜의 요구를 달성해내야 한다. 그때가 되면 정적들은 입을 다물고 꽁지를 빼게 된다. 國民(국민)의 지탄을 받게 된다.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하는 것을 국민들이 알게 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요구를 그대로 세상에 펴내는 자들이 된다면 그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우리는 대통령의 하는 말과 정책이나 지혜에 있어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명박 대통령당선인 그가 가진 理想(이상)은 국제경쟁력을 갖춘 지혜의 아들들이 꾸려가야만이 달성된다면 그런 지혜의 아들들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4.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능력을 공직에 활용되도록 起用(기용)되어 제대로 평가받고 싶어 한다. 그들이 가진 능력이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있는가에 따라 평가를 받아야 함에도 그런 것을 제대로 확인할 길은 없다. 때문에 다만 그 곁에서 아첨아부로 한 세월 得勢(득세)하려고 한다. 때문에 아무리 대통령의 지혜가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구현할 수 있는 지혜의 아들들은 대통령 곁에 다가갈 수 없는 여건이 될 수도 있게 된다. 그것은 대통령의 실패의 根源(근원)이고 국가적인 거대손실이 된다. 대통령이 성공하려면 그의 지혜가 좀 부족해도 그 곁에 지혜에 훈련된 자들이 있다면 오히려 挽回(만회)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자들이 곁에 없다면 오히려 대통령의 지혜가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있을 지라도 오히려 빛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의 지혜의 이상을 펴려면 반드시 국제경쟁력을 가질 만큼 지혜의 훈련받은 아들들이 필요하다. 5. 지혜의 아들이란 지혜에 따라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섬기는데, 그 지혜를 구현하는데 능하게 지혜의 훈련을 받은 자들을 말한다. 그런 내용으로 지혜로부터 국제경쟁력을 갖도록 훈련된 자들이란 말이다. 특히 하나님의 지혜에 훈련된 아들들이 대통령의 곁에서 그를 도운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라고 본다. 성경에 요셉 같은 이들이 있고 다니엘 같은 이들이 있어 집권자의 善(선)한 이상을 구현하였다. 하나님의 지혜의 훈련을 갖춘 자들이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이 한국으로 오셔서 인간을 섬긴다면 그런 지혜를 알아보고 받드는 지혜의 아들들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런 갖춤 마디가 되려면 늘 말했듯이 김정일의 인적인프라와 노무현의 인적인프라와 김대중의 인적인프라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들이 있다면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자리 잡을 수가 없는 雜草(잡초)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잡초를 제초하는 것을 해야 하는데, 6. 대한민국의 지금은 그런 잡초를 무리 없이 除草(제초)해내는가를 생각할 때라고 본다. 만일 하나님이 이 나라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신다고 하면 그런 잡초들을 극복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셔야 하고 당선자는 그것을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그것이 곧 당선자가 가야할 길이라고 본다. 잡초 밭에 농사짓는 이가 없다. 반드시 제초 후에 起耕(기경)을 해야 한다. 곡식이 잘 자라도록 밭의 여건이 沃土(옥토)가 되어야 한다. 많은 분들이 대통령의 힘을 전지전능한 신으로 여기는 모양 같다. 대통령이 성공하려면 위에 열거한 잡초들을 제거해야 한다. 그것에 성공하지 못하면 대통령은 결코 국민의 질타를 받게 되고 국민은 그를 크게 외면하게 될 것이다. 우선 국민들이 그런 것에 질타를 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대통령의 제초를 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분명하게 힘을 실어주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이 대통령을 지원사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7. 예수를 믿고 있는 대통령당선자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상을 구현하는 것을 요구한다. 하나님의 이상이라는 말은 예수로 말미암아 살아계신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그것으로 모든 인간을 골고루 幸福(행복)하게 함을 말한다. 인간을 사랑하는 지혜와 인간을 섬기는 지혜는 인간의 것이 있고 하나님의 것이 있다. 인간의 것은 유한하고 일시적이다. 그 本質(본질)은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것은 무한하고 영구적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받아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인간을 망하게 하고 인간을 착취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 것은 김정일을 받들어 섬기는 자들이 가는 길이다. 그들에게서는 결코 국민을 섬기는 일이 나오지 않는다. 속은 김정일을 섬기고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 속에서는 결코 국민을 사랑하고 섬기는 지혜가 나올 리가 없다. 8.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를 예수이름으로 기름부음 받은 자들 속에 있고 그 지혜는 그들을 훈련하여 진실되게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섬기는 길을 따르게 한다. 오로지 그런 길로만 인도해 가는 것이다. 그런 지혜에 훈련된 자들이 발생하는 것이 절실하고 그런 자들이 있다면 인간을 사랑하고 섬기는 세상을 열어가게 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이상은 바로 그런 사랑을 成就(성취)하고 그런 섬김을 이루는 세상을 여는데 있다고 한다.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의 아들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오늘 날의 기독교는 人本主義(인본주의)적인 것이 강하다. 이는 예수로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혜로 하나님의 지혜를 대신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예수의 이름을 걸고 정치를 하여도 그 속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곧 그들의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이 사회는 분명하게 겉과 다르게 그 마음속으로 김정일을 따르는 무리가 있다. 9. 그들이 권력의 핵심으로 다가가면 羊頭狗肉(양두구육)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겉과는 사뭇 다른 정체 곧 나라를 김정일 발밑에 갖다 주지 못해 안달하는 세력이고 그 농간을 말함이다. 그런 자들이 있는 한 결코 대통령의 善(선)한 이상은 이뤄질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김정일을 속에 품고 있는 자들을 이기는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하고 그를 이뤄줄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의 아들들이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예수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지혜는 언제든지 인간에게 선한 길을 가르치고 있다.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섬기는 지식인이 바로 지성인이다. 하지만 다만 지식인으로 있으며 권력이 주어지면 그것으로 私利私慾(사리사욕)에 잠기는 것이 오늘 날의 한국의 지식인들의 모습이다. 이들이 가지는 것은 애국심이나 이웃을 사랑함이 없다. 있다면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고 자기 이익만을 위해 살아간다. 그런 자들이 마음에 김정일을 품고 나라를 반역하고 있다. 10. 그런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 교회에 다닌다. 자신을 예수의 제자로 보이려고 僞裝(위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예수를 따르지 않는다. 오로지 김정일의 강탈과 그 착취만을 따른다. 그것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지식인들이다. 그들은 지성인이라고 하는 자리에 앉아 거들먹거린다. 사실 예수로 말미암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지혜를 마음에 품고 국민을 섬기는 자들이 있어야 한다. 국민을 참으로 잘 섬기는 공복들이 가득한 대한민국을 열자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그것이 착취의 대칭적인 힘을 갖게 한다. 사랑은 희생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희생이라는 무기를 만들지 않으면 결코 착취라는 적의 무기를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것의 대칭이 이 나라를 위기에서 살려낸다고 하는 것을 어서 속히 인정해야 한다. 북한주민을 공산수령세습독재에서 건져내자는 말은 그런데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사랑을 위해 오천만 국민이 희생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11. 북한주민을 건져내는 투쟁을 하는 것은 사랑이고 그것은 지갑을 열고 땀을 흘려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것을 통해서 착취의 세력을 이기는 對稱(대칭)을 이루게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아가페적인 이타적 희생을 통해 착취의 세력을 극복하고 구국을 이루고 국가가 번영된다고 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이루는 자들이 하나님의 지혜의 아들들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는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아주 잘 熟達(숙달)된 자들 곧 능숙한 자들의 손에서 달성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이상을 이루는 일에 얼마나 採算性(채산성)이나 生産性(생산성)이 있는가를 두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주민의 인권을 돌아보는 것은 채산성이 좋고 생산성도 좋은 것이라고 하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하지만 그것을 이루는 인간들이 얼마나 희생에 훈련이 되었는지가 성공의 關鍵(관건)이라고 본다. 입으로만 북한주민을 생각하고 마음에는 김정일을 위해 일하는 자들의 손에서는 결코 그런 것이 이뤄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런 진정성이 대통령 속에 있는가의 여부를 묻고자 하는 것이다. 12. 이제 곧 대통령의 속내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볼 때 그가 가는 길에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이제 아주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북한 인권을 외치며 마음속으로는 김정일을 결사옹위하려는 자들을 통해서는 절대로 이뤄질 수 없다는 것 때문이다. 인본주의 교인을 가지고는 절대로 달성될 수 없는 내용이라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아브라함 링컨은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하나님의 도움을 진정으로 요구하는 자들만이 북한주민을 공산수령세습독재에서 벗어나게 하는 변치 않는 다함이 없는 진정성을 가지게 된다. 대통령이 예수를 믿고 있고 그가 스스로 기도한다고 밝혔고 그런 것을 위해 달려간다고 하는 것은 그가 진정성을 필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정말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앞에 놓인 김정일과 그 同盟(동맹)의 인프라를 극복하는 관건이 문제가 된다.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국민의 도움을 전심으로 요청해야 한다. 과연 그가 賢明(현명)하다면 국민에게 북한주민의 인권문제를 도와 달라고 진지하게 부탁하고 전 국민의 이슈가 되게 할 것이라고 思料(사료)된다. www.onlyjesusnara.com www.korea318.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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