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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親美’·‘反美’를 가르는 대통령을 걱정한다
0 310 2005-04-18 10:39:38
노무현 대통령은 16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가진 동포 간담회에서 “한국 국민들중 미국 사람보다 더 親美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게 내게는 걱정스럽고 제일 힘들다”면서 “(한국이 아닌)미국을 중심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한국 사람이면 한국 사람답게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정부의 ‘편가르기’ 현상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親美·反美 가르기다. 그 바탕에는 친미는 외세 의존이고, 반미는 自主라는 이분법적 단순 사고가 자리잡고 있다.

특정 국가에 대한 태도를 ‘親’과 ‘反’ 둘 중 하나로 가르는 구분법은 과거 식민지 시대의 기억에 얽매어 있는 이념적 운동가들의 낡은 습벽이다.

오늘날 주권 국가들의 국가 관계에서 최우선 원칙은 國益이다. 동맹이나 우방사이라도 마찬가지다. 통상문제에선 미국과 대립하기도 하고, 일본의 교과서 왜곡에 대해선 중국과 보조를 맞출 수도 있다. 김영삼 정권이나 김대중 정권도 그랬다.

다만 장기적 국익의 관점에서 좀처럼 바꾸기 힘들고 경솔하게 바꾸려 하다가는 나라에 害가 되는 對外관계의 기본 골격이란 것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우리 외교는 한·미 동맹관계를 굳건히 하고, 한·미·일 공조를 유지하며, 4대국과의 협력을 보완해 가는 3개 틀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운명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한 것도 그런 이치를 가리킨 말이다.

노 대통령은 최근 ‘동북아 지역의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 ‘주한미군이 미국과 중국간의 분쟁에 투입되는 것을 반대한다’는 외교 발언을 잇따라 내놓았다.

그러나 노대통령이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 배경인 미·중간의 충돌 은 가까운 장래에 발생한 가능성이 희박한 시나리오다. 미국의 對中 정책방향은 냉전시대 미국의 對蘇 봉쇄와는 거리가 멀뿐 아니라, 중국 역시 당분간 미국과의 패권 다툼에 나설 뜻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인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불필요한 말을 서둘러 꺼냄으로써 미국으로부터는 ‘한미동맹을 깨겠다는 것이냐’, 중국으로부터는 ‘환영한다’는 말이 나오게 해 대한민국의 진로에 대한 국제적 논란을 불어오는 것이 과연 국익에 보탬이 될 것이냐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대통령의 말과 행동을 걱정하는 사람들을 친미로 몰아붙인다면 그것은 국가의 운명과 관련된 외교정책에 대한 異論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대통령의 발언이 ‘친미는 외세의존’, ‘반미는 자주’라는 대통령 지지자들의 단세포적인 이분법을 격발시켜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든다면 한 나라의 외교정책이 포퓰리즘의 祭物이 되는 비상상황이 닥칠 수도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의 대외 관계는 대통령 1인 외교에 의존하고 있다. 외교부는 대통령의 지침을 받아 실행에 옮기는 기능만을 수행하고 있다.

외교부 장관 스스로 “외교부의 역량이 미치지 못할 때 대통령께서 명쾌한 지침을 주셔서 앞길을 가르쳐주신 데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다.

나라가 이런 상황에 와 있기에 친미·반미를 가르는 대통령 발언이 더욱 걱정스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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