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이런현상이 생겨나진 않았다고 봅니다. 이미전부터 식량부족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다가 부족현상이 갑자기 증가했다는겁니다. 이미 함경북도쪽은 1990년대이전부터 배급이 끊겼고 그것이 전국으로 확대된것이 고난의행군의 시작이 된겁니다. 사람은 제것이 아니면 열심히 하려고 하지않습니다. 특히 사회주의처럼 다같이 일하고 다같이 나누어먹는 식으로 결코 생산성이 높아질수가 없으며 질또한 보장될수가 없는겁니다.
일을 아무리 잘해도 월급이 똑같은데 누가 열심히 하겠어요. 제도적 모순이라고 봅니다. 어차피 겪어야할 일입니다. 앞으로도 북한이 아무리 그어떤 대책을 내놓아도 사회주의 방식으로는 도저히 난국을 타개해 나갈수가 없습니다. 북한의 고위관리들이 호화스런 생활을 하는대가가 바로 노동력의 착취에서 나온다는 점을 국민들이 지금까지 모르고 살아온것입니다. 일자리가 없으면 불법이 되는 나라가 북한입니다. 노동력의 가치가 최하위수준인 북한이야말로 하루빨리 개방하는것이 국민들이 잘살수 있는길, 통일을 하루빨리 앞당기는 일이기도 합니다.
일을 아무리 잘해도 월급이 똑같은데 누가 열심히 하겠어요. 제도적 모순이라고 봅니다. 어차피 겪어야할 일입니다. 앞으로도 북한이 아무리 그어떤 대책을 내놓아도 사회주의 방식으로는 도저히 난국을 타개해 나갈수가 없습니다. 북한의 고위관리들이 호화스런 생활을 하는대가가 바로 노동력의 착취에서 나온다는 점을 국민들이 지금까지 모르고 살아온것입니다. 일자리가 없으면 불법이 되는 나라가 북한입니다. 노동력의 가치가 최하위수준인 북한이야말로 하루빨리 개방하는것이 국민들이 잘살수 있는길, 통일을 하루빨리 앞당기는 일이기도 합니다.
다시말해서 내가 벌어서 12명이 나누어 먹는 체계입니다.
자본주의 경제관리방식은 시장에서 나에게 필요한 것을 구입하는 체계입니다.다시말해서 내가 벌어서 내가먹는체계입니다.
북한이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시작한것은 그역사적 시작점이 있습니다.
남한이 1988년 "88올림픽"을 성황리에 시작하여 경제의 재원을 이루었고
북한은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억지로 개막하여 서로의 과시를 하였습니다.
경제적기반이 약한 중공업위주의 북한경제가 당자금을 모두 털어내 벌린 축전으로 축전은 치루어지만 몰락의 시작을 부르는 전주곡을 연기하였습니다.
그때를 시점으로 북한에는 자본주의 짠물이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당재원을 마련하느라 온갖 못된짓을 시작하였습니다.
위조화페.골동품.마약거래.무기밀매.공해에서 밀수출...
빈부격차가 완연하게 시작되면서 "잘 살아야겠구나"는 인식이 생겼죠.
그런데 배급에 매달린 서민층들이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게 되였죠.
왜냐면 하늘이 북한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계속되는 수해.페농이된 논과 밭에서는 군대강도가 떼를 지어 곡식을 약탈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강제로 일을 시켜놓고 월급을 안주니 양들이 "장군님께서 인민들이 굶는것을 다 아신다.이제 시급한 대책을 세울것이다."하고 말들을 하며 굶어죽었습니다.
중앙당선전선동부 부원들이 각 도.시.군의 농민시장을 돌며 "장군님께서 쪽잠에 제기밥을 드시면서 현지지도를 하신다"라고 선전하며 백성을 감동시켜지요.
그러나 하루 이틀 지나서 사람들은 믿지않았죠.
이러다간 죽는다는것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탈출구를 빠져나온 사람들은 살고 계속 남아있는 사람들은 늑대 아니면 여우로 변신을 하고 살고 있죠.
오래지 않아"승냥이들 끼리 잡아먹는 전쟁"이 일어난다고 내부에서 전하죠.
1990년대이전에는 유럽에 공산권나라들이 많았어요 그들이 물물교환으로 북한에서는 물건대신식량을 들여왔어요 그러던것이 로므니아를비롯한 공산권나라들이 무너지는 바람에 물물교환이 안되였어요 그들은 자기나라 먹고살기도 힘들었거든요 북한도 그타격을받은거야요 그래서나온구호가 우리식사회주의를 지키자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