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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VS김정일 그리고 김정운?? 에 관하여
Korea, Republic o 천재소년 1 513 2010-05-31 18:41:46
일단 이물음은
어디까지나 저의 추측에서 비롯된 궁금증이기에 다소 근거가 부족합니다.

탈북자여러분들의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과거 김일성은 관력을 완전히 장악한 것으로 보였는데요. 김일성이

죽은후 김정일은 완벽하게 권력을 잡지 못한것 아닌가요?

그렇기에 일부 세력의 분열이 되어 있는데도, 좌시할수 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 질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 그럼 김정일 죽은 후에는 지금

보다 분열세력이 더 큰 목소리르르 내게 되지 않을까요?

권력다음 후계자로 김정운이 지목되던데요.

대체로 경제적관점에서, 일정수준미달의 국가에서 쿠테다가

일어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던대요. 북한은 힘들까요?

또, 일정수준미달의 국가가 어느정도의 경제적성장이 이루어지면

국민들의 의식변화가 점차 가속화되어 권력층과 민중과의

대립으로 대규모의 시위가 일어나거나 났었던 나라가 많이 목격되던데,

과거 우리나라나 지금 태국처럼요.

그래서 기대해보는대요.

지금 현제, 아니면, 김정운(잡을 수 있을려나)

하여튼 김정일 다음사람이 권력의 정상에 섰을때

북한에서 쿠테타나 민중시위는 잃어날 가망성이 전혀 없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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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사대 2010-05-31 20:26:15
    가망성이 충분합니다 남쪽의 광주사태때 북한이 주도햇는데 남한이 도와주어야합니다 그래야 성공할수 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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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ㅋㅌㅊ 2010-05-31 20:39:09
    천재소년님의 생각이 거의 현실적이라 생각됩니다 좀 기달려 보시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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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재소년 2010-06-01 01:35:19
    5.18민주화운동에 북한이 주도했다는 근거가 있나요?
    제 생각엔
    북한의 권력층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의도로 활용하는 것을 과거 군사정권의
    핵심인사들이 자신들의 죄를 발뺌하기위해 이용하는 것같은 생각이 드는데
    전 아무리봐도 북한 개입설은 사실무근인거 같네요. 구체적인 증거도 하나없고. 다 추측설만 있고, 천안함과 같은 취지로 해석하는게 좋을듯싶네요.

    천안함도 북한측에서는 자신들이 해놓고 했다고 말하면 불리한까 안했다고 우기고, 정치하는 분들이 자신들 유리한대로 이용하잖아요. 국은사람만
    억울하게 광주민주화 운동도 그렇게 이용하는듯한 인상이 강하게 남네요.
    이나라 민주주의를 위해서 희생되신 분들에게 욕되는 언행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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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자료 2010-06-01 01:40:04
    5.18 북한개입설이 허구인 이유
    1.

    일단 대법원 판결에서 5.18과 관련된 북한개입설이 허위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다만 그런 말을 한 이종윤목사의 명예훼손성립여부에 있어서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아서 명예훼손이 안될 뿐이라고 했구요. 따라서 대법원판결은 북한개입설을 허위로 판시했다는 것이죠.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00514_0005193686&cID=10201&pID=10200



    2.

    북한에서 정확히 어떤 직종에 종사하셨고 어떤 업무를 주로
    담당하셨는지부터 밝히는게 순서인것 같군요

    탈북자들중...혹 남한에서 대우 더 잘 받을까봐 의도적으로 자신의
    북에서의 신분,경력을 과장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는 " 사실 "을 알고 있습니다

    ** 이건 좌파들이 두루뭉수리하게 탈북자 증언은 믿을수 없다고 말하는것과는
    다른 별개의 문제입니다

    가령 예를들어 A씨의 경우...처음엔 북한에서 농업대학 교수였다고 주장했었죠
    (김정일한테...북한 농업정책을 집단농에서 개인농으로 바꿔야 한다고 편지썼다가
    1호편지 사건으로 보위부에 끌려간 그분 이야기입니다)

    헌데 후속 탈북자에 의해서 농업대학 교수라는 신분이 " 거짓 "임이 밝혀지자
    그때부턴 농학자라고 말을 바꾸었고...그 뒤에도 A씨의 북한에서의 정확한 신분에
    대한 의혹이 계속 나돌자...그때부턴 아예 " 농업연구원 "이었다고 두루뭉수리
    하게 이야기하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 사례로 90년대에 탈북한...50대 여성인 B씨란 탈북자가 있는데
    이 분의 경우엔 처음엔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역시 후속 탈북자에 의해 정치범 수용소 출신이 아닌 경제사범이었단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 90년대에 역시 자신이 김일성 사돈이라고 주장한 C씨란 탈북자
    도 있었습니다 (역시 나중에 사실무근으로 밝혀졌습니다)


    임천용씨가 과연...5,18 북한군 개입설...자신이 주장하는 그 내용에 대해
    그만큼이나 정확히 파악할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 맞는지 의문이 듭니다

    우선 북한에서 5.18 영웅이 62명이라고 주장한다는데...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갑니다
    임천용씨 주장을 참고한다 하더라도...정말 그 한 사건에 62명이나 되는 공화국 영웅이
    탄생(?)했다면...북한으로써도 엄청난 전과를 올린 사건이란건데...그걸 쉬쉬했을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

    제 말은 그정도로 엄청난 전과를 올린 사건을 지금껏...자체적으로 아무런 찬양도
    하지 않았느냐는 겁니다...남한에서...가령 안기부 같은 정보기관은 북한의 신분,방송
    을 매일 체크합니다...그리고 80년대 운동권들 역시...북한방송 듣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이었습니다...헌데...과연...만약 정말 62명의 5.18 공화국 영웅이 사실이
    라면...북한이 그런 주장을 하는게 80년대에 정보기관을 통해서든 운동권을 통해서든
    포착이 안 되었을것이냐는 의문입니다 ?

    왜 전두환은 80년대에 북한 개입설에 대해 수사하지 않았나...네, 맞습니다 !
    그건 임천용씨한테 따질 문제가 아니라 전두환씨한테 따질 문제죠

    그래서 더더욱 의문스럽다는겁니다. 임천용 선생이야 80년대 남한 상황을 잘
    모르실테지만...당시 운동권은 " 전두환 찢어죽여야 한다 "는 소릴 다반사로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물론 5.18 때문이죠. 그만큼 전두환
    정권한테 5.18이 아킬레스건이었고 치명적 약점이었는데...그게 북한과 관련
    이 있다는 단서가 포착되었다면 가만 있었겠냐는겁니다. 대번에 용공혐의를
    들고나오고...대대적인 공안정국이 펼쳐졌을겁니다. 헌데 그런 일은 없었습니
    다. 적어도 5.18 북한 관련 여부에 관해선...그저 막연히 빨갱이들의 집단
    난동이란 말만 돌았을뿐...

    그리고 소위 " 신원이 확인 안된 시신 "에 대해선 님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고
    결국 님의 주관적 판단 아닙니까 ?

    참고로 5.18 유족회에선 2000년대 중반까지 신원이 확인 안된 시신이 11구 있었고
    나중에 유전자 감식을 통해 6구가 신원이 확인되었고 나머지 다섯구가 미확인이라
    밝힌바 있습니다.

    - 이 부분은 확실히 님의 주장과 유족회 주장이 많이 어긋나네요. 설사 다섯구가
    전부 님의 주장대로 북한 공작원이라 치더라도...62명 5.18 영웅관 너무 숫자적으로
    차이가 나지 않습니까 ?

    글고...90년대만 해도 유전자 감식 기술이 아직 개발되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땐 신원확인이 불가능했죠...그래서 6.25 전사자 유해도 지금에
    서야 신원확인을 하게 된건데...

    글고...또 한가지 님이 해명해 주셔야 할게 있네요...2006년에 보수단체들이
    주선한 기자회견에선 님이 자신의 신분을 " 자유북한군인 연합 " 대표라고
    밝히셨더군요. 헌데 지금 지만원씨 홈피에 올라온 글엔 님의 신분이 " 자유북한
    기독군인 연합 " 대표라 되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바뀌었는지 해명해 주시죠 ? 알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 지금 탈북자들이 자기네들끼리 만든 단체가 무려 20개가 넘습니다. 여러분 !!!
    좀 웃긴단 생각 안 듭니다. 아무리 탈북자가 많아졌다지만...그래도 만 수천여명
    입니다. 그래봐야 남한 1개군 인구보다 적은 숫자인데...그 1만 몇천명이 만든
    단체가 20여개 ??? 말이 됩니까 ? 자기네들끼리 그동안 얼마나 치고박고 싸우고
    하다 이합집산하고...그랬으면...저렇게나 많은 탈북자 단체들이 난립한단 말인가
    그런 생각 안 드십니까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임천용씨가 자유북한 군인연합 대표에서 자유북한 기독군인
    연합 대표로 신분이 바뀐 이유에 대해선 해명을 좀 들어야겠습니다

    - 뭐 설마 몇년전 탈북자 동지회마냥...북한민주화 운동을 하자는 세력과 남한내
    정착한 탈북자 민생을 걱정하는 세력간의 의견차이가 있었을뿐...이렇게 두루뭉수
    리하게 해명하고 넘어가시진 않겠죠 ?


    http://www.frontiertimes.co.kr/toron_view.html?s=OK01&s_id=197&ss_id=0&no=28089&l_page=309&find_how=&find_value=


    3.

    거기다 극우파의 대부 조갑제까지 부정하는 판국(조갑제는 광주민주화항쟁시 실
    제 현장에 있었다) "북한특수부대의 광주개입" 주장은 믿을 수 없다!


    광주사태를 취재했던 수백 명의 기자중 그런 의심을 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대대규모의 북한군이 등장할 무대가 없었다.
    조갑제

    2년 전부터 한 탈북자가 "광주사태에 북한 특수부대가 개입했다"는 주장을 하고 일부 애국단체에서 이에 동조하고 있다. 이 탈북자는 이렇게 주장했다.

    <5.18사태 당시 함경남도에 위치해 있던 우리 부대는 전투동원상태에 진입하라는 참모부의 명령을 받고 완전 무장한 상태에서 신발도 벗지 못한 채 24시간 진지를 차지하고 광주사태에 대해 긴급속보로 전해 들으면서 20여일 이상 출전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치부 비 편제 서기로 자주 동원됐던 나는 나중에야 당시 제10군단장이었던 여병남과 7군단 참모장이었던 김두산의 대화를 통해 특수부대 1개 대대가 광주에 침투했었고 희생도 많았지만 공로가 컸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북한군 특수부대 지휘관들 사이에서는 광주에 특수부대가 침투 했었다는 말이 공공연한 비밀로 나 돌았다. 특수부대들에서 선발한 최정예 전투원 1개 대대가 해상을 통해 남파됐으며 그중 3분의 2가 희생되고 나머지 인원이 모두 귀대 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개연성이나 증거가 없다.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함이 타당할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1. 광주사태는 목격자가 많은 사건이다. 광주시민 수십 만 명과 진압군이 목격자이고, 수백 명의 직업적 구경꾼들, 즉 기자들이 취재했다. 외국 기자들도 많았다. 공개리에 일어나고 공개적으로 취재된 사건이다. 광주사태를 취재했던 나를 포함한 어느 기자도 북한군 부대가 개입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2. 광주사태에 개입한 북한군이 대대규모, 즉 수백 명이라는데, 이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을 당시 진압군(계엄군)의 장교들 중 어느 한 사람도 북한군의 출현에 대해서 보고하거나 주장한 사람이 없다.

    3. 광주사태 사망자는 국방부 조사에 따르면 193명이다. 이들중 군인은 23명이고 경찰관이 4명이다. 군인 사망자 23명 중 13명은 공수부대에 대한 국군 교도대의 오인 사격 등 진압군끼리의 충돌로 죽었다. 5월27일 광주수복을 위해 계엄군이 진입할 때 국군 3명이 죽었다. 나머지 7명의 군인들이 무장시민들에 의해 죽은 셈이다. 대대 규모의 북한군이 개입했다면 국군 사망자가 이 정도에 그칠 리가 없다.

    4. 당시는 계엄령이 펴진 상태였다. 해안과 항만은 철저히 봉쇄되었고 공중감시도 정밀했다. 대대규모의 북한군이 어떻게 침투한단 말인가? 침투병력중 3분의 2가 희생되었다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이들을 섬멸한 국군이 있을 것 아닌가? 무장간첩 한 명만 사살해도 부대 표창을 받는데 수백 명을 사살한 국군 부대가 이 자랑스런 사실을 숨겼단 말인가?

    5. 全斗煥 정권하에서는 광주사태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단서가 나오면 이를 반드시 확인했을 것이다. 전혀 그런 움직임이 없었다.

    6. 탈북자의 증언은 傳言에 불과하다. "내가 광주에 내려왔었다"고 나서도 믿기 힘든 판에 "카더라"란 이야기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7. 광주사태는 1980년 5월18일부터 시작되었다. 그 직후 광주 일원은 봉쇄되었다. 5월21일 계엄군은 광주시내에서 철수, 외곽을 포위했다. 이때 市外로 빠져나가던 시민들이 매복하고 있던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죽기도 했다. 대대규모의 북한군이 이런 상황에서 광주로 잠입했다면 국군과 대규모 전투가 발생했을 것이다. 정규군끼리의 충돌은 한 건도 없었다. 김일성(또는 김정일)이 5월18일 광주 상황 보고를 받고 특수부대의 출동을 명령했다고 해도 그 부대가 광주 부근에 나타나려면 빨라도 20일 이후일 것이다. 그때는 이미 광주가 철통같이 포위되어 있을 때였다. 수백 명의 북한군이 등장할 무대는 없었다.




    ============================================================================

    "북한군 특수부대 광주사태 개입했다"
    -자유북한군인연합 대표 임천용씨 공개증언
    프리존뉴스(2006년)

    북한군 특수부대 출신의 탈북자 모임인 ‘자유북한군인연합’(대표 임천용·전 교도지도국 19여단 2대대· 계급 상위)은 20일 오전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80년 발생한 5.18 광주사태 당시 북한군이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아래는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임천용 씨의 증언을 요약한 것이다. <편집자 주>

    김일성, 김정일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심복들에게 “연방제 통일은 평화적 방법으로 가능할지 모르나 남조선 혁명은 폭력적 방법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평화적 방법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해왔다.

    남한 내 친북세력들이 미군 기지를 공격하며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집회나 4.19나 광주봉기처럼 민주·평화·자주를 외치는 격렬한 시위가 전국을 뒤 덮을 때 민주·애국투사들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무력 개입한다는 전략이다.

    역대 남한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불행한 사건들에는 빠짐없이 북한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해왔다.

    “북한군 특수부대 광주사태 개입 공공연한 비밀”

    다른 것은 접어 두고라도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5.18광주민중항쟁의 경우에도 현역 북한군 출신들, 특히 특수부대 출신들은 북한군 정예 특수부대가 투입됐다는 정도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음은 김일성이 76년 8월, 그리고 80년 5월 대남공작원들에게 내린 비밀지령의 전문이다.

    [비밀지령1] “남조선에서 노동자들이 드디어 들고 일어났습니다. 사북 탄광의 유혈사태는 반세기에 걸친 식민지 통치의 필연적 산물이며 인간 이하의 천대와 멸시 속에서 신음하던 노동자들의 쌓이고 쌓인 울분의 폭발입니다. 남조선 혁명가들과 지하혁명 조직들은 이번 사북 사태가 전국으로 확산되도록 적극 불을 붙이고 청년학생들과 도시 빈민 등 각계각층의 광범한 민중들의 연대 투쟁을 조직 전개해 더 격렬한 전민 항쟁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비밀지령2] “결정적 시기가 포착되면 지체 없이 총 공격을 개시해야 합니다. 전국적인 총파업과 동시에 전략적 요충지대 곳곳에서 무장봉기를 일으켜 전신 전화국, 변전소, 방송국 등 중요 공공시설들을 점거하는 동시에 단전과 함께 통신 교통망을 마비시키고 임시혁명정부의 이름으로 북에 지원을 요청하는 전파를 날려야 합니다. 그래야 남과 북의 전략적 배합으로 혁명적 대 사변을 주동적으로 앞당길 수 있습니다.”

    “북한군 특수부대 5.18 당시 ‘완전 무장’ 상태로 대기”

    김일성의 이 같은 비밀지령과 80년 5월을 전후한 북한군의 움직임 등 제반 상황은 광주사태에 분명히 북한군이 개입됐음을 보여준다.

    5.18사태 당시 함경남도에 위치해 있던 우리 부대는 전투동원상태에 진입하라는 참모부의 명령을 받고 완전 무장한 상태에서 신발도 벗지 못한 채 24시간 진지를 차지하고 광주사태에 대해 긴급속보로 전해 들으면서 20여일 이상 출전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치부 비 편제 서기로 자주 동원됐던 나는 나중에야 당시 제10군단장이었던 여병남과 7군단 참모장이었던 김두산의 대화를 통해 특수부대 1개 대대가 광주에 침투했었고 희생도 많았지만 공로가 컸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북한군 특수부대 지휘관들 사이에서는 광주에 특수부대 침투 했었다는 말이 공공연한 비밀로 나 돌았다.

    또 북한군 4군단 70정찰대대 전투원으로 복무했던 이덕선 씨로부터 당시 정찰국 소속 정찰대대원들의 광주 침투 상황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특수부대 1개 대대 해상 통해 남파, 3분의 2가 희생”

    이덕선 씨에 따르면 광주봉기 당시 2군단 정찰대대를 모토(motto)로 하고 각 특수부대들에서 선발한 최정예 전투원 1개 대대가 해상을 통해 남파됐으며 그중 3분의 2가 희생되고 나머지 인원이 모두 귀대 했다는 것이다.

    이덕선 씨가 알고 있는 광주봉기 침투자는 조장이었던 4군단 70정찰대대 상좌 황종인, 부조장이었던 4군단 33사단 중좌, 조원으로 침투했던 4군단 정찰대대 작전집체조의 홍씨 성을 가진 참모였다고 한다.

    통상 북한 당국은 남파돼서 임무를 수행하고 귀대하거나 임무수행 중 사망한 공작원 또는 전투원에게 공화국 영웅 칭호와 함께 각종 훈장을 수여하는데 그 수는 1년에 불과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정도였다.

    이덕선 씨에 따르면 80년에 2군단 75정찰대대에서만 41명의 공화국 영웅이 배출됐고 타 부대들에서 21명, 도합 62명의 영웅이 나왔다고 한다. 북한의 경우 평화시기에는 남파간첩이나 전투원이 아니면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는 일이 거의 없음을 감안할 때 한 해 동안에 62명의 전투영웅이 탄생했다는 것은 대남침투관련 거대 작전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군 광주사태 개입 확신, 진상 반드시 밝혀야”

    이외에도 당시에는 국군에 없었던 카빈 소총이나 M1 소총에 맞은 시신이 수십 여구라던가, 봉기자(시민군)들이 정부군의 탱크와 장갑차를 탈취해 진압군을 공격했다든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시신이 있는 등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문제들이 너무나도 많다.

    북한에서의 체험과 이상의 근거들만 가지고도 광주민주항쟁에는 분명히 북한군이 개입됐다고 확신한다. 대남적화통일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신성한 민주시위를 유혈 폭동으로 몰아간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제물로 바쳐졌을지도 모르는 5.18광주 민주화 영령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하면서 광주 사태의 진상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리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기사출처: 프리존뉴스)


    4.

    또한가지 더 정리하면 한국논단의 북한군 광주 개입 주장입니다.


    "월간지 한국논단은 11월호(2006년 11월호) 커버스토리에 5.18 광주사태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 1개 대대가 진압군과 시민군 양쪽 진영에 포진해 내부소요를 일으켰다는 내용을 공개했다.
    월간 한국논단은 북한군 특수부대 출신의 탈북자 임천용(43) 씨와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된 대담에서 임씨는 지난 80년 발생한 광주 사건의 경우, 북한군 특수부대가 서해안을 통해 광주에 잠입, 내부교란작전을 수행했다고 주장했다.
    임씨는 광주사태 때 광주에 내려왔다가 3분의 2는 돌아가지 못했으므로 그 잔재 세력이 남아 있을 것이고, 최근 들어 '평택 사태' 등은 내부에 모종의 세력이 상당히 조직적으로 연결되어서 어떤 내부적인 반란 내지 소요를 동원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다음은 대담 내용의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중략) 광주사태 때, 약 4백50명 정도 되는 1개 대대병력 가량의 특전부대 내에서 훈련이 잘 된 사람들을 뽑아서 임시 단위를 구성해서 광주로 보냈다. 계엄령이 내려져서 육지는 전부 봉쇄되어 있었고 그들은 전부 서해안으로 잠입했다. 잠입한 그들은 절반을로 나뉘어져서 한 무리는 진압군 쪽 군복을 입고 계엄군 쪽에 침투하고 그리고 절반쯤은 시민군 쪽에서 활동을 했다. 무기는 방산업체와 교도소를 습격하여 탈취했을 것이다.
    당시 병원에서 수습하고 치료한 사상자들의 내용을 분석한 것을 보면 뒤에서 맞아 사망하고 부상한 경우가 더 많았다. 북한에서 내려간 특수요원이 양쪽 진영에 포진해서 내부교란 내지 배후교란을 의도하여 양쪽에서 소요를 일으켜 싸움을 붙이고 혼란상황을 이용해서 사상자를 내서 무조건 진압군 쪽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만들어 나갔다.
    광주사태 직후에 육군본부에 근무하던 광주지구 계엄사령부 참모였던 사람의 말에 의하면 희생자들 1백68구의 시신탄흔을 조사한 결과 약 3분의 2가 칼빈총에 의해 사망했다. 그 당시 국군은 모두 M16을 갖고 있었으며 칼빈이나 M1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것은 자기들끼리 쏘아죽인 것이란 이야기가 된다. 확실한 것은 북한이 광주에 개입했다는 사실이다. (후략)"


    일단 북한군이 광주에 떳다는데 그 당시 광주에서는 상점하나 털린 적이 없을
    정도로 내부치안이 잘 이루어졌다고 하니 북한군이 와서 선동했다면 그렇게
    내부치안이 유지되도록 놔두었을까 싶네요. 진압군과 시민군이 서로 싸우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북한군이 난리쳤어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리고 시민군은 최후의
    항쟁 즉 도청사수 직전에 여성과 어린 학생들을 귀가조치시키기까지 했더군요.

    그리고 간첩간첩하는데 전옥주씨의 사례를 보건데 시민들이 오히려 간첩이 아닐까 하는 사람을 잡아서 계엄군에 넘겨주기도 했습니다. 전옥주씨는 나중에 간첩이 아닌 것으로 풀려났습니다.(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참조-전옥주씨가 19일 밤 부터 트럭을 타고 가두방송을 하면서 시위의 확산을 이끌었다. 한 때는 시민들로부터도 간첩이라는 오해를 받아 고초를 겪기도 했다. 많은 자료에서 전옥주 열사가 이 때 계엄군에게 넘겨져서 간첩이라는 누명으로 조사를 받았다고 하는데, 장작 전옥주씨 본인은 2004년 5월 CBS 시사프로와의 인터뷰에서 간첩으로 시민들에게 오해를 받아 잡혀 고초를 치르긴 했지만, 다행히 아는 사람이 간첩이 아니라는 걸 확인해줘서 풀려나 다시 방송에 임했다고 증언하였다.) 오히려 시민들이 간첩에 대해서 더 엄격한 태도를 취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김수환추기경이 메지지와 구호대책비 1천만원을 전달했는데 그러면 김수환추기경님도 북한에 놀아난것인가 묻고 싶네요?그런데 김수환추기경은 박정희때에 비해서는 소극적이었다고 하더군요.) 김성용신부님 같은 분이 적극적으로 활동하시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위 기사에 따르면 광주는 공수부대와 광주 시민들의 대결이 아니라
    북한군과 북한군의 대결이 됩니다. 북한군은 '내부교란 내지 배후교란'을
    의도해서 '자기들끼리 쏘아죽'이는 엽기 퍼포먼스 집단이 됩니다. 쇼 곱하기
    쇼곱하기 쇼는 쇼? 게다가 북한 측에서 의도한 것이 '무조건 진압군 쪽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몰고 가는 것이었다면 적어도 군부 집권 당시에는
    그 의도는 전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먼 훗날 민주화가 이룩되어
    광주의 항쟁이 민주화 운동으로 자리매김 될 것을 내다보고 자기네들끼리
    쏘아죽이는 쇼를 펼쳤다? 너무 거룩하고 뜻이 넓어서 저같은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작전인데요.

    게다가 북한군이 우리나라 군으로 어떻게 위장해서 돌아다닐 수 있었는지
    위 기사에 나온 설명은 너무 한심한 수준이라 도저히 이해가 안가고, 북한군이
    교도소와 방산업체를 털어서 무기를 마련했다는 거라는 주장은 순전히 추측인데다
    실제로 습격당하여 무기를 탈취당한 교도소가 한 군데도 없다는 데서 진짜
    헛웃음이 나오게 합니다. 실제로 북한군이 교도소를 털어서 무기를 마련했다면
    그 사실이 당연히 알려졌겠죠. 신군부에서 북한이랑 한 통속이라서 눈을 감은
    건가요?

    이런 류의 헛소리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전두환 지지자들이나 광주 민주화 항쟁을
    폭동으로 보는 자들에 의해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광주를 폭동으로 보는 다른
    주장들도 이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자기네들에게
    불리한 사실을 생략하거나 왜곡한 얄팍한 주장들입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사실일 리가 없는 주장들이 사실인 것처럼 번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무섭고 씁쓸한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1백 68구의 시신검사결과 2/3가 칼빈총에 의한 사망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이 주장은 안기부가 날조한 주장이고 그 이후 조사된 검찰조사는
    M16의한 사망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참고로 그 당시 군인사상자가 23명인가 있었
    는데 대부분은 군인간의 오인에 의한 사상이라고 합니다.

    한국논단이라는 곳이 97년 대선에 DJ사상검증을 하던 꼴통집단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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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임 2010-06-01 07:18:35
    북한 개입한 건 북한에서 탈북한 분들 책 읽어보면 나오던데
    북한 관련에 대해서 좌빨들이 하는 말 다 거짓말이라고 생각
    하면 정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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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북민 2010-06-01 07:44:50
    참고자료님.
    감사합니다.
    좋은 자료 참고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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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신좀 2010-06-11 13:04:28

    - 정신좀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0-06-11 13: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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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심함 2010-06-11 13:08:37
    한국 사람들 멍청하지 않습니다. 전쟁과 간첩때문에 북한을 증오하거나 못믿는 나이드신분(혹 가족이 희생당한 젊은분 혹 새로운 이슈를 좋아하시는분)들은 있어도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신분은 헛소리에 휘둘지 않습니다.
    글의 칼빈소총희생, 북한내의 공공연한 사실 이런 소리 듣고 북한개입 맞다고 하고, 참고자료님 글 보고 다시 생각해보니 참고자료님 말이 맞다고 하면서 혼란스러워하지 않습니다. 북한사람들 정말 멍청하네요.
    한국은 의견이 상이하면 정확한 증거쪽을 믿습니다. 정확한 증거가 없다면 상황을 놓고 실현가능성 높은쪽에 무게를 두고 확실한 증거가 나올때까진 소수의견 또한 버리지않고요.
    근데 글쓴이님이 말한건 아주 허황되고 과장됐네요. 그냥 북한도 5.18에 개입됐고 소수인원이 투입돼서 조작했다 정도만 하셨으면 좋은데 북한이 한국을 휘두를 정도로 대단하다고 보시는건지 아니면 그런식으로 생각하는 북한에게 세뇌되신건지 아니면 정황과 증거보단 남들이 하는 음모론 몇마디에 소설 쓰기를 좋아하는지 궁금하네요. 한국에 오셨으면 한국인들의 사고방식을 알고 글을 쓰세요.
    참고로 천안함 또한 북한설, 정부음모론 어쩌고 저쩌고해도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신분은 북한설을 떠나서 정부가 내놓은 증거가 북한을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하는 정도지, 유죄를 판정할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정부는 좀더 정확한 증거를 찾거나 나온 증거를 확인하기 보다는 무조건 북한이라고 떠들면서 선거에 이용한다 - 그래서 실제 북한설이 맞다고 하더라도 현정부의 안보소홀로 여당 불신, 정확한 증거가 아니여서 100퍼 확신하기 힘든데 선거에 이용하는 정치꼬라지가 싫어서 한나라를 피한거지, 멍청한 색깔론자들처럼 친북론자에 이용됐네 북한의 음모에 넘어갔네 하는건 한국국민 수준을 한참 우습게 보는겁니다. 정신차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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