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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측서 신상 공개해 北가족 22명 행불”
동지회 633 2006-09-07 11:01:29
올 초 동해안 통해 탈북… 이광수씨 증언
“군사분계선 4㎞ 내려올때까지 한국軍은 몰라”
국방부 “발견했지만 非무장이라 대응조치 안해”

올 3월 18일 가족, 의형제와 함께 북한을 탈출한 이광수(37)씨가 “남측 수사당국의 신상정보 공개로 북한에 남아있는 직계가족 22명의 생사가 불분명해졌다”며 “신념에 따라 남으로 온 우리를 개만도 못하게 대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관계당국은 “우리가 누설한 게 아니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씨 가족 4명 등 일행 5명은 당시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송현리 통일전망대 인근 해안으로 소형 목선을 타고 상륙했다.

◆신상정보 공개돼 북측 가족 22명 생사 불명

이씨는 기무사, 국가정보원, 경찰로 구성된 합동신문조의 조사를 받은 뒤 4월 초 국정원 산하 기관에서 대기 중일 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제3국을 통해 들어온 탈북자가 이들의 성(姓), 나이, 직업, 군 복무 시기 등이 공개된 것을 언론에서 봤다는 것이었다.

이씨는 5월 하나원에 입소하자마자 가족의 생사를 탐문했다. 그러나 3명의 북한 소식통은 모두 “직계가족 22명의 행방을 찾고자 했지만 모두 행방불명”이라며 “원산시를 비롯한 북한 전역에서는 이씨 등을 ‘역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조사를 받을 때 수사당국으로부터 수차례 신상정보를 공개하지 않겠다고 다짐받았었다”며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북한에 남은 가족들을 죽이라고 알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국방부, 국정원, 경찰청, 통일부, 국회, 국가인권위 등에 정부의 공식 사과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그 어느 곳도 이씨의 요구에 시원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고 한다.

관계 당국에선 이에 대해 “우리가 공식적으로 공개한 것이 아니며 언론에 부주의하게 흘러나가 이런 비극이 일어난 것 같다”면서도 책임 소재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해안 경계 구멍”

이씨에 따르면 탈북 당시 날씨는 초속 20m가 넘는 북풍에 파도는 4m까지 치솟았다. 배가 가랑잎처럼 파도 위로 솟구쳤다가 곤두박질쳤다. 멀리 북한 경비정도 보였다.

숨죽여 해상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한국군 경비정을 찾아봤지만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초소가 있으리라 기대하며 손전등을 켜 흔들었다.

하지만 아무 반응도 없었다. 바위투성이인 해안가에 배를 대려고 했지만 파도가 높아 위험했다. 방향을 틀어 좀더 내려가기로 했다. 저 멀리 한국군 탐조등이 보였다. 탐조등 불빛이 훑고 지나갔지만 배에까지는 미치지 않았다.

소리치며 손전등을 더 열심히 흔들었다. 그러나 알아보지 못했다. 휴전선 남쪽으로 4㎞쯤 내려와 해안에서 채 5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르자 겨우 탐조등이 배를 발견했다. 그제야 초병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아이들과 아내를 업고 해안에 도착하자 얼마 후 병사들이 달려와 이씨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엎드리라고 소리쳤다.

원산시 인민위원회 지도원이었던 이씨가 남한행을 결심한 건 올 1월.

군 복무 시절인 1986~1994년 라디오를 통해 한국 사회를 접했던 이씨는 조선인민경비대 35여단 소속으로 통천 수상기지에서 근무하고 있던 의형제 김정철(26)씨와 함께 2t급 소형 목선을 구입하고 경운기 엔진 정도의 중국산 동력장치를 마련하는 등 치밀하게 남한행을 준비했다.

◆군 당국의 해명

이씨의 주장과 달리 군 당국은 지난 4월 이들의 귀순을 안전하게 유도했다며 육군22사단 장병 34명에게 표창장을 수여했다.

합참 관계자는 “당시 밤 11시 해안소초 초병이 야간투시경으로 해안에서 500~700m 떨어진 곳에 수상한 물체가 있는 것을 발견했고, 11시8분쯤 300m 전방에서 불빛을 발견, 즉각 중대에 비상이 발령돼 해안 경계초소에 전 병력을 투입하는 대비를 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11시15분엔 열영상 장비인 TOD로 전마선을 발견했고 5명이 탑승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지만 무장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경고사격 등 대응조치는 취하지 않고 계속 주시만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군 당국은 이들이 군사분계선 남쪽 2~4㎞ 내려올 때까지 경비함 등이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해상 경계선 인근은 월북 가능성과 해상경계선 침범 논란 등 때문에 해군 함정이나 해경 함정이 가까이 접근해 있지 않으며 대신 레이더로 북쪽까지 감시한다”고 설명했다. /nk.조선
200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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