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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발간된 전시납북사건사료집
동지회 467 2006-09-28 10:26:09
“아버지 영전에 바칠 수 있는 좋은 자료집을 만들어 주신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6.25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가 27일 서울 청량리 사무실에서 개최한 ‘한국전쟁납북사건사료집1’ 발간 기자간담회에서, 황용균 씨는 “아버님이 납북되신지 오늘로 56년 34일”이라며 붉어진 눈으로 가족회 이미일 이사장을 바라봤다.

▲황용균 씨는 1950년 아버지가 납북된 후 56년간 생사를 모르고 있다.

가족회는 2000년 통일부에 전쟁납북자 생사확인을 요청했다가 납북자로 인정할 근거가 없다는 답변을 듣고 6년간의 자료수집 끝에 전쟁시 민간인 납북 관련 사료를 모은 ‘사료집1’을 지난 9월 20일 발간했다.

이미일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오늘 전쟁납북사건 관련 자료를 집대성한 백과사전에 해당하는 한국전쟁납북사건사료집 첫 권을 발간하게 되어 감개가 무량하다”고 감회를 밝혔다.

특히 이 이사장은 “전쟁납북 사건이 전후납북자처럼 공론화가 되지 못하고 있다”며 그 이유가 “전쟁 중 불특정 다수가 피해를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로 보는 인식과 “순수한 인권 피해에 관한 문제를 이념의 문제로 보는 경향”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미일 이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이사장은 “북한 당국은 그들이 필요한 특정 민간인을 지목하여 납북해 갔기 때문에 일반 전쟁 피해와는 다른 인권피해”이고 “비록 전쟁 중이라는 특수상황이라고 해도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을 납치한 것은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 결코 비중이 덜하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 전후납북자 문제는 납북자와 그의 가족에 대한 지원을 골자로 하는 특별법이 준비되고 있지만 전시납북자의 경우에는 정부차원의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가족회 부속 자료원실 앞에 게시된 사진. 김직자씨(사진,91세)는 아들 안호철(당시 19세)이 납북된후 54년동안 ‘생사확인 불가’라는 통지만을 받았다. 한자는 김씨가 ‘납북길 따라 걷기 행사’에 나섰다가 임진강 다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쓴 한시.

이 이사장은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전후납북자만 별도로 먼저 했으면 좋겠다는 부탁이 있어 수용했다”면서 “전시나 전후나 인권 문제라는 점에서 동일하기 때문에 일단 (전후 납북자 문제가) 먼저 가면 우리가 뒤를 따라 갈 수 있다고 약속도 받았고 또 믿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회는 이번 사료집 1권에 이어 앞으로도 가족회 부설 자료원을 통해 “계속 국제적인 납북관련 자료 수집 등 전쟁 납북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자료들과 연구물들을 발간”할 계획이다.

한편 이날 가족회는 지난 5일 북한이 로동신문 사설을 통해 “납북자는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성명서를 통해 “납치피해 가족들은 북한의 거짓된 주장에 대한 현장검증을 위해 ‘한국전쟁납북사건사료집’을 반론을 위한 증거자료로 제시하는 바”라면서 “어머니에게서 아들을, 아내에게서 남편을, 자식에게서 아버지를 빼앗아 납치해 북으로 끌고 가고서도 아직도 거짓으로 자신들의 죄악을 은폐하려고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사료집에는 납치 당사자와, 납치 피해 가족들의 증언, ‘남조선에서 인테리들을 데려 오라“는 김일성의 교시가 적힌 문서 등을 비롯해 국내외 문서들을 통해 북한이 조직적으로 납치를 진행했다는 증거들이 제시되어 있다.


▲가족회 부속 자료원실에 있는 전시납북자 사진

/자유북한방송 2006-09-27


- 다음은 성명서 전문
9월 5일자 논평 “용납할 수 없는 반공화국 모략소동”에 대한 성명서

북한은 전쟁 납북자의 존재를 솔직히 인정하고 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라!

북한은 지난 9월 5일 논평을 통해 우리 가족회 부설 한국전쟁납북사건자료원이 발표한 통계자료에 대해 비난하고 “전쟁납북자는 없다”는 주장을 강한 어조로 내놓았다. 이에 우리 납치피해 가족들은 북한의 거짓된 주장에 대한 현장검증을 위해 2006년 9월 20일 발간한 을 반론을 위한 증거 자료로 제시하는 바이다.

1946년 7월 31일 김일성은 북한내에 인텔리들이 부족하니 “남조선에서 인테리들을 데려 오라”는 교시를 내림으로써 이미 남한 내에서 데리고 올 인텔리 지식인들의 소재를 파악하여 명단을 작성하였음을 여러 경로로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은 남한을 기습 남침하기 전인 1949년부터 주재지사업 등을 통하여 남한 내 각 지역의 정보를 입수하고 그들이 말하는 반동세력 와해와 협조세력들을 조성하는 등 치밀한 계획을 사전에 실행하였다.

1950년 6월 25일 끝내 북한은 해방전쟁이라는 미명하에 동족상잔이라는 민족역사상 최대 비극인 6.25전쟁을 도발하였고 곧장 그들은 전쟁 전에 데려가지 못했던 필요한 인텔리들을 색출하여 7,8,9월에 집중적으로 납북하였다.

전쟁이 장기화 되자 남한 점령지역에서 의용군을 강제로 모집하여 전선으로 보냈고, 북한의 전후 재건을 위하여 기술자를 비롯한 ‘노력자’들을 납치하여 북송하였다.

그 당시 납북되었다가 구사일생으로 탈출에 성공한 여러 분들의 생생한 증언이 있고, 에 그것을 풍부히 담고 있다.

이 외에도 북한은 에 명시된 북한내 인력부족과 서울의 식량난으로 인하여 서울 인구의 50만을 북송하라는 지시에 의하여 7월부터 서울시민들을 강압적으로 북으로 전출시키기까지 하였다.

우리들이 보는 앞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강제로 잡아 갔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휴전 협정당시부터 지금까지 애시 당초 “납북자는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데, 이에 납북자 가족들의 억장은 무너져 내렸다.

전쟁 중 결성되었던 ‘6.25사변 피랍치인사가족협회’에서는 가장과 아들을 졸지에 빼앗기고 돌려 달라고 죽을 힘을 다해 호소했지만 북한은 지금껏 단 1명도 돌려보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생사조차도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북한은 어머니에게서 아들을, 아내에게서 남편을, 자식에게서 아버지를 빼앗아 납치해 북으로 끌고 가고서도 아직도 거짓으로 자신들의 죄악을 은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북한은 이번 논평에서 납북자는 없고 의용군만 있다고 했다. 의용군이야말로 남한, 북한 양 체제에서 버림받고 잊혀져간 대표적인 전쟁 납북자들이며 우리는 이들의 인권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의용군의 존재를 인정한 북한의 이번 논평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전쟁 납북자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는 것이라고 우리는 보고 있다.

납북 1세대들이 다시 만날 날만을 학수고대하며 살다가 많은 분들이 한을 품고 세상을 떴고 지금도 속속 뜨고 있다. 그리고 그 자녀들도 그 뒤를 이어 세상을 뜨고 있지만 진실은 이미 밝혀지고 있고 역사는 진실을 말한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

북한 당국은 더 이상 진실을 왜곡 은폐하지 말고 같은 민족끼리 전쟁납북자의 생사와 소재파악 등 문제 해결을 위하여 진실하게 남북 협상에 임해줄 것을 촉구한다.

2006년 9월 27일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회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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