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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통혁당 장례식' 國葬으로 치렀다
동지회 1028 2006-10-31 10:05:07
[탈북 기자] 장례식날 1분간 묵념…'공화국 영웅' 칭호 받아

◇ 평양에 있는 '김종태전기기관차 공장'

1968년 적발된 남한의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은 북한에도 잘 알려져 있다.

김종태 최영도 등 통혁당 주모자들이 남한에서 체포되어 처형되면서 북한당국이 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공화국 영웅' 칭호와 '조국통일상' 등 각종 명예를 수여했기 때문이다. 북한주민들은 통혁당 사건을 남한의 '간첩단 사건'이 아니라 '남조선 파쇼분자들에게 희생된 남조선 혁명가 탄압사건'으로 알고 있다.

통혁당 사건과 관련해 당시 남한당국은 관련자 158명을 검거하고, 1969년 1월 25일에 열린 선고공판에서 국가보안법, 반공법, 형법상의 간첩죄, 내란음모죄 등을 적용, 김종태∙김질락∙이문규 등 5명은 사형, 신광현 등 4명에게 무기징역, 나머지 21명은 최고 15년에서 최하 3년까지의 징역형을 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은 '4.19 혁명' 직후 대남 통일전선 조직을 총괄하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를 구성하고, 남한내 지하당 조직을 건설하기 위해 김종태를 주모자로 하는 당조직을 만들었다.

통일혁명당은 당시 지식인, 학생, 청년 등과 전(前) 남로당 당원을 포섭하여 결정적 시기에 수도권을 장악하고 요인암살, 정부전복을 결행할 것을 기도했으나, 통혁당 서울시 창당준비위원회 활동이 드러남으로써 사전에 발각되었다.

김종태는 통일혁명당 서울시위원회를 맡고 이문규(조국해방전선 책임자), 김질락(민족해방전선 책임자), 최영도(전라남도위원회위원장), 정태묵, 윤광수 등이 활동한 통혁당은 분명한 북한 노동당의 지하당 조직이었다.

통혁당 창당 기념일 맞아 해마다 추모모임

북한당국은 김종태 최영도 등이 사형되자 이들에 대한 장례식을 빨치산 투사들과 똑같은 격에 맞추어 '국장'(國葬)으로 진행했다. 북한 장례식으로는 최고 영예다.

북한당국은 추도모임을 전국적으로 갖고, "김종태 동지는 미제 식민지 통치에서 남조선을 해방하기 위한 조국통일위업을 위해 싸우다 체포되어 애석하게 서거했다"고 전했다.

당시 북한 당국은 각지에 빈소를 만들어놓고 각 기업소 직장 주민들이 1분간 작업을 멈추고 남쪽을 향해 묵도(묵념)하게 했다. 동시에 기차와 자동차는 경적을 울리게 했다.

김종태를 비롯한 통혁당 지하당원들이 체포되자, 북한은 전국적 범위에서 이들의 사형을 반대하는 궐기대회를 열고 그들의 사형을 막아보려고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다.

김종태는 사형집행 후 '공화국 영웅' 칭호를 수여받았고, 그가 죽은 해인 1969년 평양전기기관차 공장을 '김종태전기기관차 공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해마다 통혁당 창당 기념일을 즈음해 추모모임을 가지고 있다.

또 통혁당 관계자들의 활동을 '김일성혁명역사' 교과서에 '조국통일을 위한 남조선 혁명가들의 투쟁'이라는 한 개 절로 만들어 통혁당 건설과 최후에 대해 교육하고 있다. 교과서는 "통일혁명당은 조선노동당의 붉은 혈통을 이어받아 남조선에 주체사상을 전파하기 위한 전위부대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김종태가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의 지령을 받았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고, 마치 남한에서 주체사상을 신봉하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조직을 결성한 것처럼 묘사했다.

더욱이 통혁당 관계자들이 북한 교과서에 등장하게 된 것도 김정일이 "남조선 혁명도 김일성주의 기치를 들어야 한다"는 '온사회의 김일성주의화' 작업이 한창이던 70년대 중반이다.

국정원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또 94년 7월 통혁당 연루자들인 이상진과 김영복이 입북하자, 김종태의 처와 아들의 행처를 확인할 데 대한 지령을 내리고, 김일성의 "남조선 혁명가 김종태의 가족을 찾고, 그들이 원할 경우 북한으로 데려오라"는 뜻을 전달 받기도 했다고 한다.
/데일리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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