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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성악가 전월선씨, 아픈 가족사 공개
동지회 1027 2006-12-27 09:50:44
오빠 모두 요덕수용소 수감… 이후 병사·실종
직접 쓴 수기는 日 쇼각칸 논픽션대상에 뽑혀
“北送 네 아들 생각만 하던 어머니 ‘분하다…’말 남기고 눈감아”

“병상에 누운 어머니의 기억을 되살릴 말은 한마디밖에 없었다. 귓전에다 대고 ‘북한…’이라고 속삭였다. ‘분하다….’ 어머니는 확실히 그렇게 말했다. 그것이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재일교포 2세 오페라 가수 전월선(田月仙·49·사진)씨가 자서전 ‘해협의 아리아’를 통해 ‘재일교포 북송사업’으로 빚어진 가족의 비극사를 털어놨다.

조총련계 학교에서 조선 무용과 노래를 익힌 전씨는 1983년 일본의 대표적인 오페라단 ‘니키카이(二期會)’에 들어가 각종 국제공연에서 활약하면서, 일본 오페라계를 대표하는 ‘프리마돈나’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에게는 떨쳐버릴 수 없는 ‘악몽’이 따라다녔다. 악몽은 1960년, 전월선씨가 두 살 때 네 오빠가 북한 선전을 믿고 북한에 건너가면서 시작됐다.

“소학교 때 사진 속의 낯선 인물을 보고 ‘누구냐’고 물어봐도 어머니는 ‘멀리 사는 친척’이라고만 말했다. 오빠들임을 알게 된 것은 고교 때였다.”

오빠들의 소식은 북송된 어머니 친구의 편지를 통해 1971년에야 처음으로 알게 됐다. 오빠 4명이 모두 ‘남조선의 스파이’라는 죄명으로 1969년부터 1978년까지 9년간 함경남도 요덕 수용소에 수용됐고, 둘째 오빠는 거기서 죽었다. 누구보다 분노하고 슬퍼한 것은 전씨의 어머니였다.

“그후로 어머니의 인생은 완전히 변했습니다. 아들의 인생을 무참하게 앗아간 북한 정권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분노와 절망이 어머니를 버텨준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귀국자’들의 참상을 호소하는 고독한 싸움을 시작했다.

북한에 가족을 인질로 잡힌 많은 동포들이 어머니를 찾아왔다. 아들들과 같은 요덕 수용소에 수용돼 있다가 탈북한 강철환(현 조선일보 기자)씨를 일본에서 만난 것도 그때였다. 일본인 납치 문제가 북한의 국가범죄로 드러나기 이전부터 북한의 인권유린을 고발하는 시민단체에서 활동했다.

전씨가 오빠를 만난 것은 1985년 4월, 조총련 권유로 김일성 생일 축하 행사에서 노래를 부르기 위해 방북했을 때다. “평양의 호텔에서 만난 오빠의 눈빛이 마치 암흑 속에 있는 동물의 눈처럼 이상하게 빛났는데, 무언가를 호소하려는 그런 눈빛은 그전에도 그후에도 본 적이 없습니다.”

전씨는 오빠들을 그렇게 만든 사람 앞에서 북한 혁명가극 ‘피바다’의 아리아를 불렀다. “그 후에도 방북 제의가 있었지만, 거절했습니다. 오빠들이 당하는 현실을 알면서 그 체제를 찬양하는 노래를 차마 부를 수 없었습니다.”

큰 오빠와 셋째 오빠는 수용소에서 얻은 병 때문에 1990년, 2001년 차례로 병사했다. 막내 오빠의 소식도 끊겼다. 아들 생각만 하던 어머니는 작년 2월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품고 있던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려” 적어 내려간 전씨의 수기 ‘해협의 아리아’는 출판사 ‘쇼각칸(小學館)’이 제정한 제13회 논픽션 대상 우수상에 선정됐다.
/nk.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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